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42
교랑의경 142화
태평거 앞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서생들은 얼큰하게 취한 모습으로 웃고 떠들고 노래 부르며 춤을 추다가 하나둘씩 말을 타고 흩어졌다. 지나가던 행인들은 흥겨워 보이는 광경을 호기심으로 쳐다보다가, 이따금 서생들에게 다가와 직접 묻기도 했다.
“여긴 뭐 하는 곳입니까?”
“여긴 식당이지요!”
서생들이 취기 오른 얼굴로 대답했다.
“아 참, 여기는 보통 식당이 아니라오. 아주 좋은 글씨도 있고, 맛있는 요리도 있는 곳이지요.”
좋은 글씨? 행인들은 좋은 글씨에 별 관심이 없었다. 하지만 맛있는 요리라면 얘기가 달라졌다. 대체 무슨 음식이기에 서생들이 이렇게 열광하지? 뭐 특이한 게 있나?
손님이 떠난 자리를 정리하는 와중에도 사람들은 계속해서 식당 안으로 들어왔다.
“여기는 뭘 팝니까?”
“고기 요리 두 개 시켜서 먹어 봅시다.”
“술은 뭐가 있소?”
서무수가 시선을 거두고 마차를 쳐다봤다. 정교랑이 서무수를 향해 웃으며 예를 표하고 떠날 채비를 했다.
“누이, 아무 걱정하지 말고 가 봐.”
“일이 많아 도련님들께서 많이 바빠지시겠어요. 사람을 더 쓰는 건 어때요?”
얼굴 가득 웃음이 번진 시녀가 정교랑 옆에서 말했다.
“그건 오 관리인과 상의해 보고 결정해야지.”
서무수가 대답했다. 정교랑이 잠자코 고개를 끄덕이자 시녀가 휘장을 내렸다. 서무수는 마차가 시야에서 사라질 때까지 정교랑 일행을 배웅하고 뒤돌아섰다.
서생들이 가득했던 태평거 문 앞은 이미 깔끔하게 정리됐고, 식당 안에는 다른 손님들이 드문드문 앉아 있었다.
“어떤 일들은, 막상 해 보면 쉽단 말이지.”
서무수는 고개를 내저으며 혼잣말했다. 혼잣말을 들은 범강림이 웃으면서 대꾸했다.
“누가 하느냐에 따라 달라.”
서무수가 웃음을 터뜨렸다.
마차는 길 위를 천천히 움직였다. 성문에 가까워지자 시녀의 얼굴에서 웃음기가 걷혔다.
“아씨, 주 노야께서 말씀하신 혼사는 어떻게 하실 거예요?”
시녀가 참고 있던 질문을 던졌다.
“어떻게?”
정교랑이 시녀를 쳐다봤다.
“아씨.”
시녀가 정교랑 옆으로 바짝 붙어 말을 이어갔다.
“주 노야 입장에서 진씨 가문과의 혼사는 경사예요. 주 노야 내외분들은 아씨 말을 귓등으로도 안 들으실걸요.”
시녀가 한숨을 푹 쉬었다. 그 사람들이 아씨의 말을 한 번이라도 제대로 들어준 적이 있나?
혼인이라는 대사는 중매를 통하거나 부모의 뜻대로 치러지는 게 일반적인 도리이긴 했다. 다만 걱정스러운 것은 아씨의 친가와 외가 모두 믿을 구석이 못 된다는 점이었다. 이런 부모와 친척이라면 차라리 없는 게 나을지 몰라.
시녀는 진씨 가문에 대해 잘 알았고, 다른 이들도 마찬가지였다. 주씨 가문이든 정씨 가문이든 혼담이 들어온 사실을 알면 반대는커녕 좋아 어쩔 줄 모를 게 분명하다는 사실은 누구나 쉬이 짐작할 수 있었다.
“괜찮아. 다른 집이었다면, 걱정했을 거야. 근데 진씨 가문이라면.”
정교랑은 입꼬리를 올리고 턱을 살짝 들어 올리며 밖을 가리켰다.
“나 대신, 걱정해줄 사람이 있거든.”
시녀는 정교랑의 의중을 파악하지 못하겠다는 듯 밖을 내다봤다.
저택 앞에는 마차 한 대와 말 한 필, 그리고 주육낭이 우뚝 서 있었다.
회랑 아래에서 자리를 마련하느라 분주한 시녀의 모습은 길 가던 행인들에게도 한눈에 들어왔다. 마차와 말은 안으로 들이지 않고 밖에 세워 둔 채, 대문만 활짝 열어 놓았다. 외간 사내가 여인 혼자 거하는 방 안에 함부로 들어가지 않는다는 걸 떳떳하게 보여주기 위함이었다.
회랑 아래 각자 자리를 잡고 앉았다. 시녀가 바쁜 탓에 반근이 차와 물을 준비했다. 반근은 고개를 숙인 채 물이 든 잔 세 개를 가지런히 두고 서둘러 물러났다.
“아버지가 오셨었다고?”
주육낭이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자 주육낭은 질문을 이어갔다.
“그럼 알고 있겠네?”
정교랑이 다시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주육낭은 입을 열었지만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거봐. 고의로 그런 건 아니었지만 어쨌든 자네는 늘 낭자에게 폐를 끼치잖아.”
진 공자는 주육낭의 말을 이으면서 정교랑에게 예를 표하고 사과했다.
“이럴 필요 없어요. 원하는 사람이 없는 게, 진짜 골칫거리지요.”
두 사람은 멈칫했다. 이 여인은 정녕 부끄러움이란 걸 모르나? 이런 말을 아무렇지도 않게 꺼내다니.
주육낭이 정교랑을 노려보자 진 공자가 웃음을 터트렸다.
“낭자는 염려 마십시오. 내가 알아서 해결하겠습니다.”
“그럼 제일 좋고요.”
대답을 마친 정교랑이 자리에서 일어났다. 정교랑이 배웅하려 하자 근처에 있던 사환 둘이 재빨리 지팡이를 들고 진 공자에게 향했다. 사환 하나는 진 공자를 온몸으로 부축하고, 다른 사환은 균형을 잡아주며 진 공자의 지팡이를 바로 세웠다.
주육낭은 그제야 깨달은 듯싶었다. 그저 일어서기만 하면 되는 간단한 일인데, 진 공자에게는 사환 둘도 모자라 지팡이까지 필요하다니…….
주육낭은 저도 모르게 주먹을 꽉 쥐고 소리쳤다.
“정교랑, 내가 어떻게 해야 다리를 고쳐 주겠어?”
정교랑은 아무 말 없이 주육낭을 바라봤다. 주육낭 또한 핏대가 선 얼굴로 정교랑을 노려봤다.
“육낭, 자네가 이럴 땐 정말 재미없어.”
진 공자는 주육낭과 정교랑을 쳐다보지도 않고 곧장 대문 밖으로 향했다. 마당에 깔린 청석길에 나무 지팡이가 부딪치는 소리만 규칙적으로 울려 퍼졌다.
주육낭은 옷소매를 휙 뿌리치고 성큼성큼 걸어 진 공자의 뒤를 따라 나갔다.
“아씨, 따뜻한 물을 받아두었으니 씻고 쉬세요.”
시녀가 말했다. 정교랑은 고개를 끄덕이고 시녀의 부축을 받으며 안으로 들어갔다. 사환이 저택 대문을 닫아 바깥의 소란을 차단했다.
진안 군왕이 내궁문으로 급히 걸어 들어왔다. 누구라도 마주칠세라 조심스럽게 좌우를 살피고는 다시 걸음을 내디뎠다. 막 두어 걸음 내디뎠을 때 옆에서 사람 하나가 불쑥 튀어나왔다.
“형님.”
진안 군왕이 깜짝 놀라 고개를 돌려 보니 어린 장난꾸러기가 보였다.
“형님, 무슨 나쁜 짓 했어요? 놀라기는!”
이황자가 장난기 가득한 얼굴로 말했다. 진안 군왕은 찔리는 게 있어 얼굴이 붉게 상기되었다. 아직 어린 이황자는 눈치채지 못했지만, 옆에서 시중을 드는 내시 둘은 바로 알아채고 서로 눈짓을 주고받으며 고개를 숙였다.
“궁 밖에서 바람 좀 쐬다 온 게 나쁜 일이라고 할 수는 없죠.”
진안 군왕은 표정을 수습하고 걸음을 내디뎠다.
“그건 그렇고, 오늘 할 공부는 다 마치셨습니까?”
한창 노는 걸 좋아할 어린 나이에 갑작스레 공부를 시작했으니, 이황자는 공부 얘기만 들어도 머리가 지끈거릴 지경이었다. 예상대로 이황자는 더 이상 진안 군왕의 일을 캐묻지 않고 울상을 지으며 진안 군왕의 옷자락을 잡고 늘어졌다.
“배우는 게 너무 많은데 그걸 어떻게 다 기억해요. 이따 밤에 황후마마께서 오늘 배운 걸 물어보신대요. 형님이 좀 구해 줘요.”
진안 군왕의 입에서 웃음이 새어 나왔다.
“도와주면, 뭘 해 줄 건데요?”
형제는 화기애애하게 웃으면서 같이 걸어갔다. 멀리서 걸어오던 사람들이 그 광경을 보고 걸음을 멈췄다.
“나보다 다섯 살이나 많은 위(瑋) 군왕이 아직까지도 아우와 함께 논다니.”
진안 군왕보다 한참 키가 작고 동글동글하게 생긴 소년이 말했다.
이제 막 열 살이 된 대황자는 아직 어린아이의 티를 벗지 못했지만, 엄격한 황궁의 가르침 덕에 비슷한 또래에게는 찾아볼 수 없는 존귀한 기품을 풍겼다. 곁에 있는 사람들에게 일거수일투족을 지적받다 보니, 대황자는 일부러 더 성숙한 척을 하곤 했다.
“군왕께서는 천성이 순진하고 고민거리도 없는지라 이황자님과 잘 어울려 노시죠.”
곁에 있던 내시가 웃으며 거들었다.
“음, 역시 군왕이 살기 편해. 나처럼 부황을 따라 정사를 돌볼 필요도 없고.”
대황자는 감탄하는 말투로 말했지만, 우월감을 드러내는 표정은 숨기지 않았다.
“전하, 조심해야 할 말씀이십니다.”
내시들이 웃으며 말하자 대황자가 손을 휙 내저었다.
“가자, 부황께서 기다리신다.”
말이 끝나자 대황자는 뒷짐을 지고 꼿꼿한 자세로 걸음을 옮겼다.
진안 군왕이 궁으로 돌아온 지 얼마 지나지 않아, 이 일은 태후의 귀로 들어갔다.
“어딜 갔었다고?”
“성 밖에 활을 쏘러 가셨답니다.”
내시가 웃으며 대답했다. 태후는 다른 내시를 보며 물었다.
“그게 어찌 허둥댈 일이더냐?”
이 내시는 조금 전 진안 군앙과 마주쳤던 이황자의 내시였다.
“마마, 잠깐 사고가 있었나 봅니다.”
내시가 예를 표하며 앞으로 나와 대답했다.
“소인이 군왕을 수행하는 시종에게 물어봤더니, 길목에서 어떤 낭자의 마차와 우연히 마주치셨답니다. 그러더니…….”
내시는 작은 소리로 대답하다 머뭇거렸다. 태후가 눈썹을 치켜뜨고 물었다.
“낭자? 그래서 어쨌단 게야? 어서 말하지 못할까!”
내시는 깜짝 놀라 황급히 무릎을 꿇고 앞으로 몇 걸음 기어갔다.
“활로 낭자의 마차를 쏘았다고 합니다…….”
내시가 거의 들리지 않을 크기로 말했다.
“그리고?”
태후가 재촉했다.
“그, 그리고는 군왕께서 도망치셨다 들었나이다.”
“그게 전부냐?”
내시는 들었던 이야기를 차근히 곱씹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어느 집안의 낭자라더냐?”
“진소 상공 댁의 낭자라고 합니다.”
태후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
“고의로 그런 것이냐? 아니면 실수로?”
“실수였을 겁니다. 그때 하필 제비 한 마리가 날아다녔는데, 군왕께서 반나절 동안 아무것도 잡지 못하자 마음이 초조해지셨는지 제비를 쏜다는 것이 그만……. 그 바람에 군왕께서 쏘신 화살이 진씨 가문의 마차에 꽂혔다고 들었습니다. 군왕께서도 크게 놀라셨는지, 낭자에게 사과하던 도중 도망쳐 버리셨다 합니다. 주변 시종들에게 이 일에 대해 입단속을 단단히 하라고 이르셨고, 특히 마마께는 더욱 비밀로 하라고…….”
내시가 태후의 눈치를 보고 웃으며 뒷말을 덧붙였다.
“군왕께서도 참 장난이 심하셨지요.”
태후는 잠시 멈칫하다가 미소를 보였다.
“어쩔 수 있나, 군왕의 성격인 것을. 됐다, 이 일은 다시 꺼내지 말거라.”
내시가 태후에게 예를 표하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마마, 군왕께서도 이제 적지 않은 나이시지요.”
태후 옆에서 시중을 들던 궁녀가 차를 올리며 나지막이 말했다. 의미심장한 말이었다. 태후는 아무 말 없이 차를 받았다. 실내에 잠시 적막함이 감돌았다.
“그나저나 진씨 가문의 몇째 딸인지 모르겠구나.”
잠시 생각에 잠겼던 태후가 갑작스레 웃음을 터트렸다.
“진 상공이 화가 단단히 났겠어.”
벌건 대낮에 감히 이부 진 상공 댁의 마차에 활을 쏘는 자가 있다니, 어찌 분통이 터지지 않을까.
“기필코 찾아내라! 어떤 몹쓸 놈이 감히!”
진소는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내던지며 호통을 쳤다. 마차에서 뽑아낸 문제의 우전(羽箭)이었다.
집사가 얼른 화살을 집어 들었다. 평범한 우전으로 보였지만, 자세히 보니 표식이 있었다. 집사가 네 하고 대답하며 물러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