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50
교랑의경 150화
한편, 반근은 바구니를 팔에 걸고 저잣거리로 나섰다. 벌써 반근과 인사를 주고받는 상인들이 생겼다.
“오늘 싱싱한 배추가 들어왔는데 반근 낭자 주려고 특별히 남겨 놨어요.”
“반근 낭자, 여기 양고기도 좀 와서 봐요.”
“반근 낭자, 저번에 말한 심장이랑 간, 허파 같은 것들도 다 구해왔어요.”
반근이 웃으며 일일이 대답하고는 장 볼 것들을 골라 바구니에 담았다. 이번이 고작 네 번째 방문이라는 걸 알아보기 힘들 정도였다.
푸줏간 앞에 모인 사람 중에 비교적 좋은 원단으로 옷을 지어 입은 두 여자가 대화하고 있었다.
“장 주인.”
반근이 푸줏간을 향해 외치며 걸어왔다.
두 여자가 오만한 얼굴로 고개를 돌렸다. 장을 보러 나오거나 허드렛일을 주로 하는 큰 부잣집의 여종들은 집안에서는 한없이 겸손하지만, 밖으로 나오기만 하면 우쭐하며 기세등등해졌다.
기름이 잔뜩 묻은 앞치마를 두른 거대한 몸집의 사내가 안에서 걸어 나왔다. 반근을 본 사내가 헤헤 웃었다.
“낭자 왔어요? 물건은 준비해 뒀습니다. 근데 낭자는 차림새도 말끔해 보이는데, 어찌 이런 걸 구해 달라고 해요?”
“약에 쓸 수 있거든요.”
반근이 자연스럽게 두 부인을 슬쩍 훑으며 말했다.
“약에 쓴다고요? 심장이니 간이니 하는 것들로 무슨 약을 지어요?”
사내가 놀라 물었다. 반근은 웃기만 할 뿐 대답하지 않았다.
“반근 낭자, 지금 날 놀리는 거죠?”
사내가 웃으며 반근을 쳐다봤다.
“주인장을 놀려서 뭐해요. 정말 약에 쓰는 거라니까요.”
“뭐에 좋은데요?”
“뭐, 별거 없어요, 몸을 튼튼히 하고 하얗게 센 머리카락도 까맣게 만드는 거죠.”
사내가 눈을 크게 뜨고 반근을 쳐다보다가 크게 웃었다.
“그런 약이 어디 있다고.”
사내와 반근이 이야기하는 모습을 점포 밖에서 말없이 지켜보던 두 여자가 다시 반근을 유심히 쳐다봤다.
“다른 집엔 없지만 우리 집엔 있죠.”
반근은 더 이상 말을 덧붙이지 않고, 손을 뻗어 점원이 종이로 싸둔 꾸러미를 받아 바구니에 넣고 점포를 나섰다.
“저게 누구예요?”
반근이 나가자 한 여자가 물었다. 막 안쪽으로 들어가려던 주인장이 고개를 돌려 말했다.
“옥대교에 사는데, 정씨 집안이래요. 집에 몇 명이 사는지는 잘 모르겠는데, 하여튼 매일 장을 많이 봐 가요. 무슨 심장, 간, 폐 같은 것도 사가고······.”
사내가 말하다 말고 멈칫했다.
“설마 진짜 약에 쓰는 건가?”
두 여자가 서로 마주 보았다. 정씨라면······.
정씨 성에 대해서는 집에서도 자주 이야기가 나왔기에 윗사람 아랫사람 할 것 없이 모두가 알았다. 노야와 부인이 매일 입에 달고 살았기 때문이다. 특히 완치된 동 내한이 손님으로 방문하여 그 유능한 낭자에 대해 말한 후로는 더욱 그랬다. 노야는 입맛을 다지면서 병이라도 얻고 싶다고 했다.
그나마 부인이 옆에서 말리며 정 낭자는 이제 병을 치료하지 않는다고, 진짜 불치병이라도 걸렸다간 정말 목숨을 잃을 거라고 말렸으니 망정이지. 근데, 그 정 낭자는 주씨 댁에 산다지 않았나?
두 여자는 잠시 망설이는가 싶더니, 한 명이 무언가 결심한 듯 바구니 가득 장을 보고 돌아가는 여자애를 쫓아갔다.
“고 어멈, 아까 달라고 한 양고기 여기 나왔어요. 응? 어디 갔지?”
점원이 문앞에 서서 두리번거렸다.
하늘색이 점차 어두워지자, 정교랑과 시녀는 태평거에서 나와 마차를 타고 흔들흔들 저잣거리를 지나갔다.
“아씨, 저기 신선거 좀 보세요.”
시녀가 휘장을 들어 올리고 작은 소리로 쿡 웃었다.
정교랑이 휘장 밖을 내다보았다. 신선거의 오색찬란함은 여전했지만, 가게 앞으로 나와 호객행위를 하는 점원이 부쩍 늘어나 보였다. 마차가 그 앞을 유유히 지나갔다.
“뭐가 보여?”
정교랑이 묻자 시녀가 헤헤 웃었다.
“불과 며칠 만에 인기가 예전만 못하네요.”
“또?”
“또요? 음, 사람은 됨됨이가 훌륭해야 해요.”
“또?”
정교랑이 다시 묻자, 시녀가 갸우뚱하며 골똘히 생각하더니 고개를 저었다.
“또 뭐가 있죠?”
“또.”
정교랑이 다시 한번 밖을 내다보았다. 경성에서 가장 번화한 곳은 아니었지만, 경성에서는 손에 꼽는 저잣거리라 양쪽으로 점포가 빽빽하게 들어서 있었다.
“힘겨움이지.”
“힘겨움이요?”
시녀가 이해하지 못한 듯 되물었다.
“일을 하나 하려면, 일을 제대로 해야 해. 자리를 잡으려면, 자리를 제대로 잡아야 하지. 힘겨운 일이고, 쉽지 않은 일이야.”
두칠의 신선거는 며칠 만에 눈에 띄게 썰렁해졌다. 경쟁자가 한둘이 아니라 무리로 맞서니 운이 나빴다고 해야 할지. 본래 경쟁자들이란 평소에는 웃으며 술잔을 건네지만, 뒤에서는 호시탐탐 짓밟을 기회를 엿본다. 드디어 기회가 왔으니 합심하여 확실히 짓밟아 버린 것이다.
사람이 착하거나 못된 것을 떠나서, 천지의 도리는 무정하고, 세상살이는 힘겨운 법이다.
시녀는 정교랑의 시선을 따라 마차 밖을 내다보았다.
온 거리의 사람들이 웃고 떠들며 쉼 없이 지나다녔다. 옆에 보이는 주점에서는 호객꾼 몇 명이 나와 얼굴 가득 웃음을 띠고 친절하게 손님을 맞이하고 있었고, 화려한 장식과 옷으로 꾸민 기녀들이 술 단지를 안고 지나가는 손님들에게 교태 가득한 미소를 던지고 있었다.
세상살이가 이토록 쉽지 않으니, 만사 조심해야지.
“아씨, 이제야 보여요. 마음속에 깊이 새겨 둘게요.”
시녀가 정교랑을 향해 진지하게 말했다.
마차는 해가 다 지고 나서야 옥대교 저택에 도착했다. 정교랑이 목욕을 마치고 나오자, 반근이 식사를 들여왔다.
“아씨, 팽씨 성을 가진 사람이 아씨께서 만드신 약을 사고 싶대요. 듣기로는 동 내한 가문과 교분이 있다는데, 그 집 어르신도 금석 단약을 드신다고 하셨어요.”
“팽씨? 세 왕조를 거치며 재상을 역임했던 팽연 집안?”
시녀가 물었지만 반근은 이런 것들에 무지했다.
“최근 여기저기 다녀봤는데, 몇 사람이 그 가문 이야기를 해서 장 보러 나오는 여종들을 찾아냈어요. 대화하는 걸 들어보니, 그 집 주인어른께서 하루도 빠짐없이 이 태의를 찾아가서 제발 치료할 수 없다고 말해 달라고 한대요. 아씨의 비방을 처방받고 싶다면서요. 그래서 제가 그들 근처를 무심한 척 맴돌았더니 오늘 저를 따라와서는 말을 흐리며 어느 집 시녀인지 묻더라고요. 딱히 숨기지 않고 대답했더니, 기뻐 어쩔 줄 몰랐어요. 아, 아씨께서 지금은 몸이 좋지 않아 아직 치료를 직접 하실 수는 없어서 남는 시간에 약을 만드신다고 했더니, 무슨 약을 만드냐길래 저도 모른다고 얼버무렸어요. 그랬더니 더 이상 묻지 않고 싱글벙글하며 급히 돌아갔어요. 아마 며칠내로 찾아올 거예요.”
시녀가 잠시 생각하더니 손뼉을 쳤다.
“이 태의를 붙잡고 그런 무례한 말을 할 수 있는 사람인 데다가 동 내한과 교분이 있는 걸 보면, 팽연 집안이 분명해!”
시녀가 반근을 보면서 기쁘게 말했다.
“세상에, 반근 언니. 정말 제대로 된 사람을 물었네.”
비록 팽연은 이미 세상을 떴고, 그 자손들도 조정에서 높은 자리에 있진 않았지만 결코 만만히 볼 수 없는 집안이었다. 사람들이 흔히 말하는 명문대가로, 황제는 여러 번 바뀌어도 이런 집안은 망하는 법이 없었다.
반근이 쑥스러워하며 웃었다.
“나, 난 별로 한 게 없어. 그냥 사람들이 하는 쓸데없는 말이나 주워듣는 것뿐인걸.”
동네방네 소문내지도 않으면서도, 짧은 시간에 새로운 손님을 정확히 찾아오는 능력은 쉽다면 쉽고, 어렵다면 어려운 일이었다.
“물고기에겐 물고기만 다니는 길이 있고, 새우에겐 새우만 다니는 길이 있는 것처럼 각자의 길이 있지.”
시녀가 감탄했다.
물고기와 새우에게도 각자 다니는 길이 있다. 최하층 말단 여종의 입에서 나온 말은 아주 빠른 속도로 주인어른 귀에까지 들어갔다.
“정말이더냐?”
배 나온 중년 사내가 외쳤다. 팔걸이 책상을 짚으며 일어나려던 사내는 순간 기력이 딸려 넘어질 뻔했다. 옆에 있던 부인과 시첩들이 얼른 부축하자, 사내는 불쾌한 얼굴로 밀어냈다.
사내는 무의식적으로 옆에 있던 단약 병을 손에 쥐려 했지만, 부인이 저지했다.
“노야, 안 돼요.”
부인은 눈물을 보이며 말했다.
“정 낭자라는 사람이 환자도 안 받고 있잖아요. 이걸 드셨다가 행여 잘못되면 어쩌시려고요.”
사내가 어두운 표정으로 손을 거뒀다.
“정 낭자 댁에서 장을 보는 시녀가 직접 말한 거예요. 제가 따로 알아보니, 얼마 전 정 낭자가 한밤중에 주씨 댁을 떠났다고 합니다. 주씨 집안 사람들이 나서서 이야기하지는 않았지만요.”
대청 안에 꿇어앉아 있던 집사는 땀을 닦으며 말을 이어갔다.
“정 낭자가 옮겨갔다던 저택에도 저희가 찾아가 봤어요. 원래는 진 상공 댁의 저택이었기에 진씨 가문에 알아보니, 쉬쉬하는 눈치였지만 정 낭자에게 판 게 분명했습니다.”
“그럼 진짜가 맞네! 노야, 우리 어서 가요.”
부인이 몸을 일으키며 소리쳤다.
“어딜 가잔 거요? 아직 죽을 때가 된 것도 아닌데, 가 봤자 헛걸음이지.”
사내가 언짢은 듯 인상을 썼다.
“약이요!”
부인이 다시 외쳤다.
“약?”
“그 시녀가 말하기를, 지금은 정 낭자가 치료를 직접 하는 건 아니지만 남는 시간에 약을 만든다고 했대요. 바로 치료해 달라고 하는 것도 아니고, 약 하나 지어 달라는 것뿐이니 괜찮잖아요?”
부인의 말에 집사가 한마디 덧붙였다.
“아, 그리고 연습 삼아 만들어보는 약이라 많지 않다고 했습니다.”
“그럼 빨리 가야지! 늦었다간 우리 몫이 없을 수도 있잖아!”
사내가 이번에는 손을 정확히 짚고 일어나 밖을 가리키며 외쳤다.
“어서, 마차를 준비해라!”
밤이 가까워지자, 정교랑의 방문이 열렸다. 회랑 아래 앉아있던 여종들은 서둘러 몸을 일으켜 부인이 방에서 나오는 것을 지켜보았다.
“조심히 가세요.”
시녀가 뒤따라 나오며 인사했다.
“나오지 않아도 돼.”
팽 부인이 품 안에 소중하게 넣어둔 약병을 꼭 쥐며 말했다. 세상에서 제일 진귀한 보물을 얻은 듯 감격에 가득 찬 얼굴이었다.
“부인, 저희 아씨의 당부를 잊지 마세요.”
시녀가 미소를 지었다.
“그럼, 그럼.”
부인의 대답을 듣자 시녀는 예를 표하고 더 이상 걸어 나가지 않았다.
팽 부인이 문가에 다다르자, 금가아가 밖을 이리저리 두리번거리고는 조심스레 문을 열었다. 짙어진 밤하늘 때문에 등불 없이는 주변이 잘 보이지 않았다.
여종 하나가 먼저 문을 나가 구석에서 대기하고 있던 아무 표식 없는 마차를 불러왔다.
팽 부인은 그제야 두 여종의 부축을 받으며 마차에 급하게 올라탔다. 여종은 부인이 제대로 앉기도 전에 마부에게 서둘러 출발하라고 재촉했다.
마차가 바로 내달리는 바람에 팽 부인은 중심을 잡지 못하고 벌러덩 뒤로 넘어갈 뻔했다. 두 여종이 깜짝 놀라 부인을 붙잡았지만, 부인의 신경은 온통 약병에 쏠려있었다.
“다행이다, 멀쩡하구나.”
팽 부인이 약병을 소중하게 쓰다듬으면서 말했다.
“이건 노야의 명줄이야.”
여종들도 약병이 무사한 것을 확인하고 한숨을 내쉬었다. 오늘 밤엔 꼭 도둑이 된 기분이네.
“돈을 그렇게나 많이 받고 팔면서, 사람들 몰래 오라고 한다는 게······.”
여종 하나가 투덜대자 부인이 말을 잘랐다.
“아휴, 뭘 안다고. 정 낭자는 아직 몸도 성치 않은데, 이 일이 여기저기 소문이라도 나 봐라.”
“소문이 나면요?”
여종이 물었다.
“어쩜 이리도 뭘 모를까!”
팽 부인은 어쨌든 원하던 보물을 얻었으니 기분이 좋았다.
“생각해 봐라. 정 낭자가 왜 이 일이 알려지지 않았으면 하겠어?”
이 조그만 약병 하나에 오천 관이나 달라고 하다니, 무려 오천 관을! 이게 약을 파는 거야? 장사하는 거잖아! 돈을 찍어내도 저리 빨리 찍어내긴 힘들지.
근데 왜 사람들이 알면 안 되지? 돈이 너무 많이 들어올까 봐?
“그 시녀가 한 말 못 들었어? 정 낭자는 아직 병중이라 이 약들은 오랜 시간을 들여 겨우 만든 거라고 했잖아. 소문이 나서 사람들이 몰려와 약을 달라고 하면 정 낭자가 그걸 어떻게 다 상대해? 정 낭자도 참 보살이지. 치료할 수 있으면서도 치료하지 못하는 꼴을 두고 볼 수 없으니 아예 주씨 저택에서 나와 따로 지내며 요양에 힘쓰는 거야.”
여종들은 그제야 깨달았다.
“그랬군요, 그랬던 거였어요.”
한 가지 이유가 더 있었지만, 팽 부인은 말하지 않았다. 득의양양한 얼굴로 품 안에 있는 약병을 쓰다듬을 뿐이었다.
정 낭자가 만들어내는 약의 양은 정해져 있어. 이번에는 우리 팽씨 가문이 운이 좋아 간신히 얻었지만, 조금 구한 것이니 언젠가는 다 먹을 날이 오겠지. 입소문이 나버린다면 다음번에 정 낭자가 만든 약은 우리 차지가 안 될 수도 있어.
소문내지 말아야지, 아무도 모르게. 오직 우리 팽씨 가문만 알면, 얼마나 좋아. 좋고말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