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67
교랑의경 167화
날이 환히 밝았을 무렵, 시녀는 마당을 벌써 몇 번이나 들락거렸다.
“반근 누나, 뭐 기다리는 거 있어?”
금가아가 물었다.
“반근은 왜 아직도 안 오는 거지?”
시녀가 되물었다. 두 질문에 같은 이름이 등장했지만 금가아는 더 이상 헷갈리지 않았다.
“반근 누나는 방금 나갔잖아. 반 시진은 있어야 돌아오지.”
“왜 일찍 나가지 않고.”
금가아의 대답에 시녀는 주먹을 쥐고 서성거리며 초조하게 중얼거렸다.
“반근 누나는 늘 이 시간에 나갔잖아. 왜 일찍 나가야 하는데?”
깨엿을 입에 문 금가아가 웅얼거렸다.
“지금은…….”
시녀는 고개를 들고 무언가를 말하려다 말을 삼켰다. 그래, 지금 딱히 무슨 일이 있는 것도 아니잖아. 왜 내가 먼저 당황해서 이 난리야?
도련님들은 그날 밤 어둠을 틈타 한 번 다녀간 후로 다시 오지 않았고, 사람을 보내 말을 전하지도 않았다. 아씨도 금가아에게 태평거로 가 상황을 살펴보라는 말씀은 없으셨고, 반근은 여느 때처럼 장을 보러 나갔다.
식구들은 다들 평온한데 왜 나 혼자 이리 허둥대는 거야. 저 반근은 요리 솜씨가 날로 발전하고 있고, 이 반근은 거리거리 골목골목을 누비며 온갖 풍문과 뒷말을 수집해 오는데, 나 반근은 어째 진보는커녕 퇴보만 하는 것 같네.
명색이 아씨와 함께 늑대 떼와 싸워 살아남은 사람인데, 이만한 일로 정신이 나가 허둥대다니. 아니지. 어쩌면 사람이, 늑대보다 더 무서울지 몰라.
“반근 누나, 왜 그래?”
시녀가 말을 하다 말고 한참 동안 가만히 있자 금가아가 이해할 수 없다는 얼굴로 물었다. 반근이 금가아를 보며 웃었다.
“아씨 활쏘기 연습 하실 건데, 너도 같이 가서 할래?”
시녀가 물었다. 정교랑이 활쏘기를 좋아하는 것을 보고 서무수는 집 안에 과녁을 걸어 주었다. 매일 오전, 글씨 연습을 마치고 난 정교랑은 서무수가 준 작은 활과 화살로 다시 반 시진씩 활쏘기 연습을 했다.
사내아이에게 칼이나 활 같은 무기는 언제나 흥미를 끄는 대상이었다. 금가아는 조악한 솜씨로 활과 화살을 직접 만들어 정교랑을 따라 놀았다.
“도련님이 한가해지면 저도 하나 만들어 주신대요.”
금가아가 정교랑의 활과 화살을 부러운 듯 쳐다보며 말했다.
주육낭은 밤새 한숨도 못 잤다. 연무장에서 무예 연습을 끝낸 후에도 웃통을 벗은 채 수통 옆에 한참을 서 있었다. 시녀들이 보다 못해 주의를 준 후에야 정신을 차렸다.
주육낭은 시녀들이 땀을 닦아 주도록 몸을 맡긴 후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었다. 방 안을 이리저리 서성이던 주육낭이 결국 문을 나섰다.
인파로 북적이는 거리에는 호객행위를 하는 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울긋불긋 꽃이 만발한 가운데 웃음소리도 간간이 들렸다.
사실, 무뢰배 몇 명이 죽었을 뿐이다. 그것도 가장 밑바닥에 있는 무뢰배. 살아 있을 때는 여염집 백성보다 자유롭게 활개 치며 살았다지만, 죽고 나면 거리에서 얼어 죽은 비렁뱅이나 다를 게 없었다.
온 경성 사람들이 놀라 두려워 벌벌 떨기라도 할까 봐? 주육낭은 거리에 서서 실소를 터뜨렸다. 앞쪽으로 시선을 돌리자 낯익은 계집이 바구니를 들고 대문으로 들어서는 모습이 보였다.
“반근 누나, 왔구나.”
금가아가 손에 작은 활과 화살을 든 채 문을 열었다. 금가아가 반근을 보며 미처 웃기도 전에, 반근 옆에서 손 하나가 불쑥 튀어나오더니 문을 홱 열어젖혔다. 금가아와 반근이 놀라 비명을 질렀다. 주육낭은 벌써 이들 옆을 비집고 들어선 후였다.
작은 마당은 소박하면서도 정교하고 아름답게 꾸며져 있었다. 푸른 대나무와 아름다운 꽃은 물론 졸졸 소리를 내며 흐르는 물까지 있었다.
산석 옆에 있던 여인이 몸을 돌렸다. 수수한 옷차림에 소매를 동여맨 여인은 반짝이는 눈과 하얀 이를 가진 미인이었다. 여인이 손에 든 화살과 활로 주육낭을 겨눴다.
주육낭이 걸음을 멈춘 채 여인을 쳐다봤다. 투박하고 볼품없는 나무 활이었다. 현은 실을 꼬아 만든 듯했고, 윤이 나도록 다듬은 화살촉만 햇빛에 반짝였다. 화살은 금방이라도 활시위를 떠날 태세였다.
아무리 볼품없는 화살도 사람을 죽일 수는 있다. 그 무뢰배들이 그리됐듯이.
시녀와 금가아는 숨을 죽인 채, 마주 보고 서 있는 소년과 소녀를 멍하니 쳐다봤다. 정말로 쏘진 않겠지…….
정교랑이 시선을 거두고 몸을 돌리며 손의 힘을 풀었다. 텅 소리와 함께 활시위를 떠난 화살은 몇 장 밖에 있는 과녁의 정중앙에 안정적으로 꽂혔다. 마당에 박수 소리가 울려 퍼졌다.
“아씨, 정말 대단하세요.”
시녀가 웃으며 환호했다. 정교랑이 손을 거두고 몇 걸음 걸어갔다.
“금가아, 네 차례야.”
시녀가 웃으며 금가아를 불렀다. 여전히 문 옆에서 넋을 놓고 있던 금가아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얼른 대답하고 신이 나서 달려왔다.
개구쟁이와 시녀가 웃고 떠드는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반근은 한쪽에 서 있는 주육낭과 다른 쪽에 서 있는 정교랑을 차례로 쳐다본 다음 고개를 숙인 채 채소 바구니를 들고 부엌으로 걸어갔다.
금가아의 화살은 계속 과녁을 빗나갔다. 시녀는 몸을 젖혀가며 박장대소했다.
“넌 저리 가서 아씨께서 어떻게 하시는지 봐.”
정교랑이 다시 활과 화살을 들었다. 정교랑의 동작은 신중했다. 옷소매를 위로 올려 동여맨 탓에 팔이 드러났다. 살은 없지만 결코 허약해 보이지는 않았다. 주육낭이 선 쪽에서는 정교랑의 옆얼굴이 보였다. 햇빛을 받은 소녀의 오뚝한 코에는 땀이 송골송골 맺혀 있었다.
텅 소리와 함께 화살이 시위를 떠났다.
“아씨, 또 명중하셨어요.”
시녀가 환호했다.
“금가아, 금가아, 너 다시 한번 해 봐.”
주육낭이 뒤돌아 가 버렸다. 시종일관 말 한마디 없었고, 말을 건네는 이도 없었다. 애초에 주육낭이 안으로 들어온 적도 없다는 듯이.
“아씨, 저 사람 또 왜 저런대요?”
시녀는 수건을 들고 정교랑 얼굴에 맺힌 땀방울을 닦아 주면서 그제야 나지막이 속삭였다.
“내가 저 사람도 아닌데, 어떻게 알겠어.”
정교랑은 손에 들고 있던 화살을 시녀에게 건넨 다음 손을 털고 옷소매를 내린 후 안으로 들어갔다.
“반근, 오늘 거리에선 어떤 새로운 일이 있었는지 들려줘.”
물 한 잔과 정교하게 만든 찹쌀 정과 한 접시를 내려놓았다. 씻고 나서 깨끗한 옷으로 갈아입은 정교랑이 정과 하나를 들어 입에 넣었다.
“남쪽 거리에 있는 무뢰배들이 사고를 쳤나 봐요. 남의 기밀을 훔치려고 협박을 하다가 도리어 맞아 죽었대요. 관부에서 같은 패거리를 조사 중이고요.”
대청에 꿇어앉은 반근이 눈빛을 반짝이며 말했다.
“오늘 성문에서는 검문이 강화됐어요. 드나드는 사람이 많아 붐비다 보니 관부가 아무 쓸모도 없다며 원성이 자자했죠.”
정교랑은 담담한 표정이었지만 옆에 있는 시녀는 놀라움을 감추지 못하는 표정이었다.
정말, 죽인 거야? 그, 태평거에서…….
“오늘 시장에 싱싱한 생선이 들어왔는데, 제가 한발 늦어서 못 샀어요.”
반근은 아쉬운 목소리였다.
“성 밖에 있는 그 태평거에서 다 사 갔대요.”
거기까지 말한 반근은 문득 무언가 생각난 듯했다.
“아, 맞다. 그리고 보수사는 오늘 성 밖에서 태평 두부를 한 수레나 들여왔어요. 오늘 보수사에서 밥을 먹는 사람들은 다들 두부 맛을 보겠네요.”
시녀는 자리에 앉았다. 멍한 표정이던 시녀가 문득 깨달은 표정을 지었다.
“아, 아씨. 그래서 부처님은 성심을 본다고 하셨군요.”
시녀가 중얼거렸다.
음식 공양이라고 했을 때 가장 처음 떠올린 것은 이름을 알리는 일이었다. 그런데 뜻밖에도 떼돈을 벌게 됐다. 돈을 버는 일이려니 했더니 뜻밖에도 뒷배까지 얻게 됐다. 이다음엔, 또 뭐가 있으려나?
그깟 무뢰배 몇 놈들인데, 노태야까지 나서실 필요는 없지. 하긴, 그냥 무뢰배들인걸. 진작 그물을 펼쳐 놓고 기다리는데, 기세등등해서 횡포를 부리러 왔다가 도리어 황천길을 재촉하게 된 꼴이지. 별일도 아니야, 신경 쓸 것 없어.
경성 밖에서 하루 밤낮 사이에 일어난 이 일에 대해 백성들이 얻을 수 있는 정보는 그다지 많지 않았다. 여드레쯤 지난 후에야 사건의 진상이 밝혀졌다. 남쪽 거리의 시정잡배 주오가 태평 두부의 비법을 눈독 들이고 무뢰배들을 돈으로 사 보냈다가 도리어 목숨을 잃었다고 했다. 유일하게 퍼진, 정확하면서도 확실한 진상이었다.
“관두자고. 점점 더 맛이 떨어지네. 먹을 것도 이게 전부고. 재미없어, 그만 가세.”
대청의 탁자에 앉아 있던 손님들이 앞에 놓인 과로신선을 보며 떠들어댔다. 뜨거운 김이 모락모락 오르는 과로신선은 겨울철에 먹을 때처럼 별미가 아니었고 도리어 열이 올랐다.
“더워 죽겠네.”
다른 손님도 손을 내저었다.
“우리 차라리 태평거로 가세나. 거기 요리가 아주 끝내준다던데.”
“태평거? 며칠 전에 사람이 죽어 나간 태평거 말인가?”
나머지 손님들은 주저하는 눈치였다. 사람이 죽은 곳에서 밥을 먹는다는 건 왠지 께름칙했다.
“사람이 죽었으면 뭐? 감히 태평거에 와서 행패를 부리려 하다니, 죽으려고 환장한 게지. 거긴 부처님께서 지켜 주시는 곳이라고.”
“맞아. 그때 여러 사람이 봤다더군. 그 무뢰배들은 부처님의 빛을 받은 화살에 맞아 죽었대.”
“그래? 그럼 어서 가세. 어디 한번 가 보자고.”
이 손님들마저 계산을 마치고 자리를 뜨자 대청에는 사람이 거의 남아 있지 않았다. 문발 뒤에 선 두칠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연신 부채질을 해댔다.
주오가 죽었다. 자신을 따르는 이들이 실망하지 않게 하기 위해, 앞으로도 사람을 자신의 뜻대로 부리기 위해 두칠은 최대한 슬픈 모습을 연출했다. 그러면서 거금을 들여 주오의 부모와 처자식이 앞으로 근심 걱정 없이 살 수 있도록 해 주겠다는 약조를 지켰다.
사건은 일단락되었다. 이 사건을 매듭짓기 위해 두칠은 음으로 양으로 적잖은 돈을 썼다. 당초 이 사건을 일으킨 것도 자신인데 부랴부랴 매듭지은 것 또한 자신이었다.
안팎으로 들어간 돈을 셈해 보니 불과 며칠 만에 1만 관에 가까운 돈이 나갔다. 그 결과 식당에서 쓸 현금도 거의 바닥난 상태였지만 건물이나 땅을 파는 것 또한 불가능했다. 섣불리 움직였다가 누가 눈치라도 채면 큰일이었다. 결국 유 교리에게 고리로 빚을 얻는 수밖에 없었는데, 이 역시 뼈를 깎는 돈이었음은 물론이다.
금전적으로 막대한 피해를 보고 가산도 절반은 잃었다. 이게 누구 때문이지?
태평거!
마음이 불안하여 잠도 제대로 이루지 못하고, 식당도 점점 파리만 날리고 있다. 이게 누구 때문이지?
태평거!
자신은 피를 토하며 돈까지 쓰고 있는데, 태평거는 부처님이 지켜 주시는 곳이라는 명성을 얻지 않았는가!
그놈의 태평거!
두칠은 두 눈이 새빨개진 채 쥘부채로 벽을 쾅 쳤다. 이 원한은 무슨 일이 있어도 기필코 갚으리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