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78
교랑의경 178화
소란스러운 소리가 대부인 쪽까지 들렸다.
“어서 가서 살펴봐라. 주씨 가문은 무인이라 얼마나 사나운지 몰라. 괜히 일 벌이면 큰일이야.”
대부인이 회랑 아래에 서서 말했다. 마당에 있던 몸종들과 여종들이 얼른 대답하고 뛰어갔다. 대부인은 회랑 아래에서 밖을 쳐다보며 합장을 하고 염불했다.
“고모님, 정말 웃겨 죽겠습니다. 여긴 고모님 댁인데 여기서 어떻게 남한테 맞아 죽어요?”
안에서 몸종에게 안마를 받고 있던 십칠공자가 웃으며 말했다.
“뭘 안다고. 이쪽에서 먼저 틈을 줬으니 그렇지. 남을 탓할 수도 없어.”
대부인이 들어가 자리에 앉았다.
“주씨 가문 노야가 패 죽인다 어쩐다 난리를 칠 만도 하지. 그런 불치병에 걸린 이한테 교랑을 주려 했으니. 입장을 바꿔서 나였다 해도 동의 못 했을 거야.”
대부인이 한숨을 쉬는데, 십칠공자가 벌떡 일어나 앉았다.
“고모님, 정말입니까? 그 미인을 곧 죽을 사람한테 준다고요?”
“미인은 무슨!”
대부인이 눈썹을 치켜세우며 소리를 버럭 질렀다.
“냉큼 그 그림 가져다 태워 버려!”
십칠공자는 헤헤 웃어넘기고 대부인의 말을 아랑곳하지 않았다.
“차라리 잘됐지. 이제 이방 내외가 교랑의 혼사에 간섭하지 못하게 됐으니.”
대부인이 여종에게 말했다.
“간섭이요? 이혼이나 안 하면 다행이죠.”
여종이 웃으며 나지막이 속삭였다.
“방금 노부인 앞에서 억울하다며 울었어요. 화류병이 아니라 홍역인데 왜 그런 소문이 났는지 모르겠다나요.”
대부인이 부채를 흔들었다.
“뭐라 하든 이미 늦었어. 그러게 유곽의 기녀를 왜 들여?”
대부인은 냉담한 어조로 말을 이었다.
“이쪽에서 먼저 틈을 줬으니 남을 탓할 수도 없지.”
본인이 적당히 분수를 지켰다면 오늘 같은 처지로 떨어질 일도 없었을 것이다. 친정 사람을 데려다 그 바보와 혼인을 시키려 하다니, 자기들끼리 다 해먹겠다는 뜻 아닌가. 이부인 본인이 정씨를 자기 식구로 여기지 않는데, 나라고 이부인을 자기 식구로 여길 필요는 없지.
여종이 웃으며 차를 따랐다.
“부인, 이제 이노야는 교랑 아씨의 혼사에 개입할 수 없게 됐으니, 백부와 백모께서 나서시는 수밖에 없겠네요.”
대부인이 찻잔을 들었다.
“힘만 들고 좋은 소리 못 듣는 일이야. 애가 그 모양인데, 좋은 신랑감을 어디 가서 찾누?”
그 말을 들은 십칠공자는 손짓하여 몸종을 물린 후, 웃으며 앞으로 다가섰다.
“고모님, 제가 고모님의 근심을 덜어 드릴게요. 적당한 사람이 있습니다.”
대부인이 십칠공자를 힐끔 쳐다봤다.
“아유, 우리 십칠이 다 컸네. 이 고모의 근심을 덜어줄 줄도 알고. 그래, 누군지 들어나 보자.”
대부인은 웃으며 차를 한 모금 마셨다. 십칠공자는 또다시 웃으며 대부인 앞으로 바짝 다가앉았다.
“고모님, 저예요.”
십칠공자가 손으로 자신을 가리키며 말하자 대부인은 마시던 차를 내뿜었다.
마당에서 들리던 소란스러운 소리가 잠잠해지자, 이번에는 대청 안이 시끄러워졌다.
“고모님, 고모님. 때리지 마세요, 저 아직 아프다고요!”
십칠공자가 머리를 감싸 쥐고 요리조리 피하며 소리치는데도 대부인은 손을 들어 힘껏 내리쳤다.
“그냥 병이 아니네! 병이 들어도 단단히 들었어! 정신 차리도록 흠씬 패 줘야겠다! 어디서 그런 망발을 해! 어디서!”
십칠공자는 웃으며 대부인의 팔을 잡았다.
“고모님, 저 멀쩡해요. 멀쩡하다고요.”
대부인이 휙 뿌리쳤다.
“짐 챙겨서 당장 돌려보내고, 너희 노야와 부인한테 보름간 외출 못 하게 하라고 해라.”
대부인이 옆에 있던 여종에게 명하자 여종이 얼른 대답했다. 십칠공자는 딱히 대꾸하지 않고 그저 웃으며 일어났다.
“그럼 저 이만 갑니다, 고모님.”
십칠공자는 얼른 집으로 돌아가고 싶은 듯 냉큼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대부인이 소리를 질렀지만 십칠공자를 붙잡을 순 없었다. 화가 나는 한편 마음이 놓이기도 했다.
“가서 너희 부인에게 전해라. 저 아이 잘 감시하라고, 괜히 사고 치지 않게.”
대부인이 여종에게 다시 한번 당부하자, 여종은 알았다고 대답한 후 물러났다.
“부인, 노부인께서 잠깐 오시래요.”
문밖에서 여종 하나가 들어와 말했다.
“이제 다 싸웠나 보구나.”
대부인이 말했다.
“부인, 노부인께서 교랑 아씨의 혼사를 부인께 맡기실 거래요.”
여종이 웃으며 말을 전했다.
“집안 관리하는 게 어디 쉽나? 신경 쓸 일이 한두 가지가 아닌데. 애쓰고도 좋은 소리 못 듣고. 집안 자식들의 혼사를 다 합쳐도 그 애 하나 보내는 것보단 덜 힘들 것 같구나.”
“세상에 마음만 먹으면 못 할 일은 없다잖아요. 부인께서 마음을 쓰시면 다 잘 풀릴 거예요.”
여종들은 웃으며 대부인을 둘러싸고 밖으로 나갔다.
어둠이 내렸다. 진십삼은 자신이 줄곧 걷고 있는 것 같았다. 흔들리는 등불이 눈앞을 밝게 비췄지만, 어쩐 일인지 발걸음이 안 떨어졌다.
지금 꿈을 꾸는 거구나. 진십삼은 스스로에게 말하며 걸음을 멈춰 섰다. 등불이 사라지더니 사람들이 사방을 에워쌌다.
“이 절름발이.”
“저 절름발이 좀 봐.”
여기저기서 수군거리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십삼이 미간을 찌푸렸다. 이런 꿈을 꾸다니? 에라, 모르겠다. 내면의 어둠을 까발리는 걸지도 모르지. 그래도 진십삼을 막을 수는 없었다. 진십삼이 천천히 걸음을 옮기자 귓가에 울리던 수군대는 소리는 점점 환각으로 변했다.
진십삼은 현실을 알았고, 현실을 받아들였다. 현실에 겁내지 않고, 도리어 현실을 즐기려 했다.
“뭐하러 초연한 척 연기를 하죠?”
여인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진십삼은 돌연 걸음을 멈췄다. 한쪽 옆에서 여인이 나타났다. 짙은 색깔의 옷이 어두운 밤과 어우러져 하나가 된 듯 보였다.
“절름발이로, 평생 살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진십삼은 돌연 눈을 떴다. 동녘이 서서히 밝아오고 있었다. 진십삼은 한동안 조용히 휘장을 쳐다보다가 몸을 일으켰다. 지팡이는 침상 옆에 놓여 있고, 휘장 밖에는 사환이 곤히 잠들어 있었다.
지팡이를 짚고 몇 걸음 걷기도 전에 사환이 딱딱거리는 지팡이 소리를 듣고 잠에서 깼다. 진십삼 역시 걸음을 멈추고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지팡이를 쳐다봤다.
“어릴 땐 몰래 빠져나와 놀러 가곤 했어.”
“여종과 몸종은 침상 옆에서 죽은 듯이 잠들어 있었지.”
“실컷 놀고 돌아와도 다들 전혀 몰랐다니까.”
주육낭이 웃으며 했던 말들이 떠올랐다. 재미있게 들리는 사소한 일들이었지만, 진십삼은 영원히 경험할 수 없는 재미였다.
절름발이로, 평생 살고 싶은 것도 아니면서.
“공자님, 일어나셨어요?”
사환이 눈을 비비며 졸린 눈으로 물었다. 진십삼이 응, 하고 대꾸했다.
“잠시 나갔다 오마. 따라올 필요 없어.”
진십삼이 지팡이를 짚으며 앞으로 걸어갔다.
“날이 밝긴 했지만 아직 이른데, 어디 가시려고요?”
사환이 눈을 비비며 물었다.
“그냥 좀 나가겠다는데 네가 웬 참견이야?”
진십삼이 버럭 소리를 지르자 사환은 놀라 잠이 싹 달아났다. 늘 온화하고 기품이 있으며 항상 미소를 머금고 있던 공자께서 갑자기 화를 내시다니…….
진십삼은 지팡이를 잡은 손을 꽉 쥐며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잠이 안 와서 마당이나 둘러볼까 한다. 넌 따라올 필요 없다.”
진십삼이 다시 부드러운 목소리로 말했다. 사환은 더 이상 뭐라 말하지 않고 고개를 끄덕이며 네 하고 대답했다. 진십삼은 딱딱 소리를 내며 멀어져 갔다.
날이 훤히 밝았을 무렵 이대작이 문을 나섰다. 송씨댁은 벌써 나귀를 끌고 나왔다.
“요 며칠은 찬거리 안 싸 와도 돼요. 집에 있는 것도 못다 먹었어요.”
“못다 먹겠으면 친정에 갖다 주구려. 여름이라 채소며 고기며 오래 둘 수 없으니.”
이대작이 말했다. 송씨댁의 친정은 평범한 집안이었다. 이대작이 별 볼 일 없었던 과거에는 친정에서도 무시를 받았지만, 지금은 이대작이 태평거에서 잘나가고 가정 형편도 하루가 다르게 좋아지는 상황이었다. 아직 돈은 못 벌지만 돈을 쓰지 않으니 돈을 버는 것과 진배없었다.
집에 있는 찬거리를 친정으로 가져가면서 송씨댁도 면이 서고, 형제자매들 앞에서 당당할 수 있게 됐다. 친정에 가서도 전처럼 쭈뼛거릴 필요가 없으니 목에 힘이 들어갔다.
이대작이 나귀를 타고 대문을 나서자 이른 아침부터 나와 밭일을 끝낸 마을 사람들이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마을 촌장까지도 걸음을 멈추고 이대작과 인사를 나눴다. 이대작이 이십여 년을 사는 동안 꿈도 못 꿨던 일이었다.
“우리 집 여섯째가 이제 만 열 살인데, 집에서는 딱히 할 일이 없어. 태평거에 심부름꾼이 필요하거든 데려다 써.”
촌장이 웃으며 말하자 이대작이 웃으며 호쾌하게 대답했다.
“제가 알아보겠습니다.”
이대작은 태평거의 숙수에 불과했지만 보수사의 불상 앞에서 솜씨를 뽐낸 숙수는 많지 않았다. 마을 사람들은 태평거의 주인이 얼마나 대단한 사람이든 별 관심이 없었다. 그들 눈에는 이대작 역시 태평거에서 남다른 지위에 있는 듯 보였다.
특히 태평거에서 점원을 구할 때 이대작이 이웃집 아이를 데려간 후로, 그 지위는 더욱 탄탄해졌다. 태평거의 품삯이 적지 않았을 뿐더러 집에서는 밥이나 축내는 이들이었으니 돈은 얼마가 됐든 상관없었다.
길에서 시간을 지체한 후에야 이대작이 마을을 빠져나왔다. 막 마을 어귀를 나오다가 다른 마을에서 오던 사내와 마주쳤다. 두 사람은 서로를 보고 멈칫했다.
“류 관리인.”
이대작이 먼저 인사를 건넸다. 상대는 신선거의 관리인이었다.
“이씨였군.”
류 관리인은 선웃음을 짓고 눈빛을 반짝이며 쳐다봤다. 땅까지 돌려주겠다는 걸 단칼에 거절한 후에도 두칠은 사람을 시켜 이대작을 두 번이나 찾아왔었다. 두칠은 당초 할아버지의 약조대로 지분을 배당하겠다고 했지만 이대작은 결국 거절했다.
옛 상사와의 만남인지라 어색할 수밖에 없었다.
“일찍부터 바쁘신가 봅니다.”
이대작이 인사를 건넸다.
“바쁘기는. 바쁘기로 따지면 이씨가 요즘 많이 바쁘겠지.”
관리인이 선웃음을 지었다. 이대작 저자는 늘 과묵했는데, 이제는 반어법을 쓰며 비웃을 줄도 아는군.
이대작은 자신의 말에 딱히 잘못된 게 없다는 듯 웃음을 지었다.
“그럼 일 보십시오. 전 이만.”
관리인은 이대작이 나귀를 몰며 멀어져 가는 모습을 보며 콧방귀를 뀌었다.
이대작은 여전히 예전처럼 수척한 모습인 데다 차림새도 소박했다. 그런데 어째서인지 관리인은 이대작과 이야기를 나누며 기가 눌리는 듯한 기분이 들었다.
나귀를 타고 있어서 그런가? 아니지, 나한텐 말이 있는데!
관리인은 침을 퉤 뱉고 고개를 돌렸다. 말을 끄는 사환이 멀리 뒤처져 있었다.
“서둘러라!”
관리인이 호통을 쳤다.
말을 타고 질풍처럼 내달린 끝에 해가 높이 떴을 무렵, 성으로 들어왔다. 거리가 북적북적한데도 신선거는 여전히 한산했다. 대청에 손님 몇 명이 앉아 있긴 했지만, 이들 앞에 놓인 음식은 과로신선이 아니었다.
“여긴 음식이 이게 다요? 너무 적은 거 아니오?”
“다른 건 없고?”
손님이 점원에게 하는 말들이 들려왔다. 관리인은 더 듣고 싶지도 않았다. 들어 봤자 좋은 말이 나올 리 없었다. 결국 욕하며 나가 버리거나 마지못해 요리 두세 개 시켜 먹을 테지.
관리인은 곧장 후원으로 갔다. 일이 잠잠해지자 두칠은 성 안에 있던 저택을 팔고 신선거에 들어와 살고 있었다.
“제길! 역시 그놈들이었어!”
관리인이 막 문을 열고 들어서는데, 두칠의 욕설이 들렸다.
“주인어른, 무슨 말씀입니까?”
두칠이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탁자를 걷어차자 그 위에 놓여 있던 종이 몇 장이 바닥으로 떨어졌다.
“태평거! 그놈들이었어! 내가 뭐랬냐고, 이 세상엔 좋은 사람이 없다니까. 똑똑하거나 아둔한 사람만이 있을 뿐이지! 이 두칠이 두 애송이들 손에 놀아나다니! 그때부터 놈들의 계략에 당한 거야!”
두칠은 길길이 날뛰며 몸을 흔들어댔다.
“주인어른, 무슨 일인데요?”
관리인은 더럭 겁이 났다. 두칠이 충격을 못 견디고 아예 미쳐 버린 건가?
“태평거의 주인이 누군지 알아냈다고!”
두칠이 고개를 돌려 관리인을 쳐다보며 소리쳤다.
알아냈다고?
“누군데요?”
관리인이 얼른 물었다.
“귀덕낭장 주씨 가문!”
두칠이 이를 갈며 소리쳤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