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92
교랑의경 192화
정교랑은 다친 이대작의 오른손을 붙잡고 힘껏 잡아당겼다. 옆에 있던 사람들은 자기 몸이 아프고 시큰거리기라도 한 듯 헙 하고 숨을 들이마시며 시선을 피했다.
“아파요?”
정교랑이 물었다. 이대작은 눈이 벌게진 채 목멘 목소리로 고개를 끄덕였다.
“아픕니다.”
며칠간 하도 울어 이미 눈물이 말라 버린 송씨댁이 옆에서 또다시 눈물을 훔쳤다. 아프면 됐다, 아프면 됐어.
“사흘 후에 약을 갈죠. 아파도, 손을 움직여야 해요.”
정교랑이 일어서자 이대작과 송씨댁이 엎드려 머리를 조아렸다.
“주인어른들께선…….”
고개를 든 이대작이 목멘 목소리로 말했다.
“저 때문에 일어난 사달입니다. 그때 주인어른들께 숨기지 않았다면…….”
“자책할 필요 없어요. 화와 복은 함께 오는 법이죠.”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며 말했다.
“아씨, 두칠의 뒤엔 유 교리가 있습니다. 주인어른들께서 그런 일을 벌이셨으니, 두칠이 가만있을 리 없죠. 듣자니 경조부 감옥에 들어가면 죽음뿐이랍니다. 아씨, 이 일을 어쩌면 좋습니까.”
“맞아요, 아씨. 저희는 염려 마시고, 주인어른들을 구할 방법부터 생각하셔요.”
송씨댁도 울며 흐느꼈다.
“감옥은, 나도 도리가 없어요. 못 도와요. 각자 자기가 할 수 있는 일을 해야죠. 이를테면 치료 같은 거요.”
못 돕는다? 어찌 이리 딱 잘라 말씀하시지? 이대작과 송씨댁은 놀라 고개를 들었지만, 정교랑은 이미 문을 나서고 있었다.
“역시 혈육이 아니다 보니…….”
송씨댁이 중얼거렸다. 결국은 관료 가문에서 자란 규방 여인이구나. 일을 저질러 놓고 막다른 길에 몰리자 몇 사람을 희생양 삼아 내주려는 거겠지.
“세상살이라는 게,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니야.”
이대작도 중얼거리며 고개를 숙여 자신의 손을 쳐다봤다. 이 모든 게 지독한 악몽이기를 바라고 또 바랐다. 깨고 나면 비 온 뒤 맑게 갠 하늘이 보이기를.
밤이 지나고 해가 뜨면서 새로운 하루가 시작됐다. 유 교리는 손에 들고 있던 서책을 내려놓고, 안으로 들어오는 첨 의원을 초조한 얼굴로 바라봤다.
“어떻던가?”
유 교리가 물었다.
“대인, 대인. 신묘합니다, 신묘해요.”
첨 의원은 실핏줄이 벌겋게 선 눈으로 흥분하여 말했다.
“고쳤어?”
유 교리가 물었다. 기쁨을 감출 수 없는 표정이었다. 가짜를 가져왔을 리 없다고 짐작은 했지만, 언제나처럼 신중한 태도를 유지하고자 했다.
“네, 밤까지 애를 먹다가 아침에 붙였습니다.”
옆에 있던 측근이 말했다.
“정말 붙였다고?”
유 교리가 첨 의원을 보며 다시 묻자, 첨 의원이 고개를 세차게 끄덕였다.
“벌써 감각이 돌아왔습니다. 예전으로 돌아가려면 시일이 필요하겠지만, 팔은 건졌습니다.”
첨 의원의 목소리에는 감격이 묻어났다. 첨 의원의 의술은 유 교리도 인정할 정도였다.
“그 비술이 진짜였군.”
“네, 맞습니다.”
첨 의원은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의 시선이 탁자 위로 향했다. 비술이 쓰인 종이는 여전히 그 위에 놓여 있었다.
“이 비술이 정말 죽은 사람도 살릴까요?”
첨 의원은 부러운 눈길을 감추지 못하며 물었다.
“그야 시험해 보면 알겠지.”
그 말에 첨 의원은 고개를 들어 유 교리를 쳐다봤다.
“대인, 감방에서 아무나 하나 데려다 시험해 보시죠. 시험을 끝내고 죽여 버리면, 아무도 모르잖습니까.”
유 교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손을 내저었다.
“그럼 자네부터 수고해 주게.”
첨 의원은 기뻐하며 얼른 대답하고는 비술이 쓰인 종이를 들고 밖으로 나갔다. 그런데 자네부터 수고해 달라는 게 무슨 뜻이지? 유 교리도 직접 해 보려고 그러나?
“대인…….”
첨 의원이 유 교리에게 물으려고 고개를 돌렸을 때였다. 누군가가 옆에서 바짝 다가서는가 싶더니 목이 서늘해졌다. 첨 의원은 순간 눈을 부릅뜨고 손을 뻗어 목을 부여잡으며 신음 소리를 냈다. 측근이 손을 풀자 첨 의원은 뒤로 넘어갔다. 피는 순식간에 바닥을 붉게 물들였다.
자리에서 일어난 유 교리는 낡은 손수건으로 코와 입을 막고 몸을 굽혀 떨어진 종이를 주운 후, 여전히 경련으로 몸을 움찔거리는 첨 의원을 쳐다봤다.
“자네도 알겠지만 죽은 사람만이 비밀을 지킬 수 있거든.”
유 교리는 천천히 말을 이었다.
“그래도 고마운 줄 알게. 이런 비술을 지니고 염라대왕을 뵈러 가면, 아마 저승에서도 떼돈을 벌 수 있을 게야. 그거면 됐지.”
첨 의원은 마지막으로 두 번 움찔거리더니, 두 눈을 부릅뜬 채 더는 움직이지 않았다.
“멀쩡히 잘 살다가 강도의 손에 살해당하다니, 가엾어라.”
유 교리는 손을 뻗어 첨 의원의 두 눈을 감겨 주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집안의 기둥인데, 이리 떠나면 남겨진 처자식은 어찌 사누? 어쨌든 우리 약포의 의원이니 남들한테 무시 안 당하게 잘 도와주도록 해라. 친척들이 처자식의 가산을 넘보지 않도록 적당히 으름장도 놓고.”
측근은 알았다고 했다. 일어선 유 교리는 손에 든 종이를 툭툭 턴 다음 품속에 넣고, 여느 때처럼 온화한 표정으로 문을 나섰다.
정교랑은 붓을 들어 종이에 커다랗게 ‘이(二)’라는 글자를 쓴 후 붓을 거뒀다.
“오늘 서 대형의 형제가 장형 이십 대를 맞았습니다.”
진 공자의 말에 옆에 있던 시녀의 얼굴이 일그러졌다.
“공자님, 셋째 도련님은 큰병을 앓고 나은 지 일 년도 안 되셨어요. 더 고생하면 몸이 못 버틸 거예요.”
진 공자의 시선은 벽에 걸려 있었다. 그곳에 걸린 종이에 곧은 글씨로 ‘일(一)’이라고 쓰여 있었다. 시녀는 새로 쓴 종이를 툭툭 턴 후, 옆에 걸었다.
일, 이……. 이틀이 흘렀다.
“유 교리는 신중한 사람이라 티 나게 움직일 수 없었습니다. 괜히 저쪽에서 눈치채면 큰일이거든요. 몸은 좀 고생하겠지만, 목숨엔 지장 없을 겁니다.”
“이틀 버텼으면 충분해요.”
정교랑이 말했다. 누가 중간에서 손을 쓰지 않았다면, 무원산 형제들은 이틀 사이에 죽어도 몇 번은 죽었을 것이다.
“유 교리가 낭자를 믿는단 말입니까?”
진 공자가 물었다. 정교랑은 빙긋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 사람은 날 믿는 게 아니에요. 자기 자신을 믿는 거죠.”
* * *
주육낭이 마당에서 대나무 통을 쳐다보고 있는데, 사락사락 옷자락 소리와 지팡이 소리가 들렸다. 고개를 돌리자 정 교랑과 진 공자가 서재에서 나오고 있었다.
“그럼 나머지 일은, 부탁할게요.”
정교랑이 살짝 예를 표하자 진 공자가 정중하게 답례했다.
“소생 최선을 다하겠습니다.”
지팡이 소리와 함께 진 공자가 걸어왔다. 정교랑을 힐끔 보던 주육낭은 자신과 대화할 의사가 없음을 확인하고 역시 휙 돌아섰다.
마차 한 대와 말 한 마리가 나란히 거리를 지나갔다. 진 공자는 웃고 떠들기를 좋아하는 사람이었다. 평소였다면 한창 신이 나서 떠들었을 텐데, 오늘은 어째서인지 가는 내내 침묵을 지켰다.
주육낭은 다시 진 공자를 힐끔 쳐다봤다. 진 공자는 손으로 머리를 괴고 생각에 빠져 있었다.
“어이, 뭘 하려는 건데?”
주육낭의 물음에 진 공자는 정신을 차리고 주육낭을 보며 씩 웃었다.
“낭자가 말한 대로.”
난 서재로 초대도 안 됐는데, 둘이 무슨 얘기를 나눴는지 어떻게 알겠냐고.
“그래서, 이제부터 뭘 하라고 했는데?”
주육낭은 콧방귀를 뀌면서도 궁금증을 못 참고 물었다.
“그러니까…….”
진 공자가 주육낭을 보며 씩 웃었다.
“자네한테 말하지 말래.”
주육낭은 낯빛이 싹 변하여 진 공자를 보며 말고삐를 휙 챘다. 말이 놀라 히이잉 소리를 내며 내달렸다. 진 공자가 멀어져 가는 주육낭을 보며 어이, 어이 하고 소리쳤다.
“농담이라고.”
진 공자가 실소를 터뜨렸다.
“예전에도 저랬나. 성격이 왜 저리 급해졌어?”
진 공자는 한숨을 내쉬며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고, 고개를 돌려 온 길을 돌아봤다.
“그러게 뭐랬어. 가엾네, 가엾어. 뭐하러 그랬냐고, 뭐하러.”
곧장 집으로 달려온 주육낭은 사환에게 말고삐를 내던지듯 넘기고 씩씩거리며 걸어갔다.
“육낭!”
여인의 앙칼진 목소리가 들리자 주육낭이 걸음을 멈췄다. 고개를 들어 보니 자신의 거처 마당 입구에 모친이 분노한 얼굴로 서 있었다. 옆에 있는 형제, 자매들도 하나같이 못마땅한 표정이었다.
“이 못난 놈 같으니라고! 어딜 다녀오는 길이냐?”
주 부인이 눈물을 흘리며 소리치자 주육낭은 시선을 피했다.
“그, 그게 십삼하고 일이 있어서…….”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주 부인이 호통을 치며 말을 잘랐다.
“이 불효막심한 놈을 어서 쳐라!”
옆에 시립해 있던 사환들이 몽둥이를 들고 쭈뼛거리며 걸어왔다. 주육낭은 꼼짝도 않고 선 채 말없이 있었다.
“공자님, 죄송합니다.”
사환들이 몽둥이를 들어 때리기 시작했다. 사환 둘이 좌우 양쪽에서 주육낭의 등을 후려쳤다.
“밥들 안 먹었느냐!”
주 부인의 호통에 놀란 사환들은 손에 든 몽둥이에 힘을 실었고, 주육낭은 이를 악문 채 버텼다.
“집안에 어려움이 닥쳤고 네 부친은 아직 돌아오시기 전이다.”
사환들이 휘두르는 몽둥이에 맞춰 주 부인이 꾸중했다.
“네 형들은 이리저리 뛰어다니고 누이들은 매일같이 불경을 외며 부처님께 빌고 있는데, 넌? 뭘 하고 다니는 게야?”
주 부인은 생각할수록 열이 받는지 여종과 몸종을 밀치고 직접 몽둥이를 빼앗아 주육낭을 매섭게 후려쳤다.
“그 계집을 보러 가? 허구한 날 거기 가 있어? 그러고도 거짓말로 어미를 속여? 이런 불효막심한 놈! 네 아버지가 널 얼마나 아끼셨는데…….”
주 부인은 몽둥이를 휘두르며 눈물을 흘렸다.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매를 맞던 주육낭이 주 부인을 쳐다봤다. 모친의 슬픈 얼굴이 보이자 주육낭은 갑자기 털썩 꿇어앉아 주 부인의 다리를 끌어안았다.
“어머니, 다 소자의 잘못입니다!”
그렇다. 모두 주육낭의 잘못이었다. 의기양양하게 정씨 저택을 찾아가 무심히 보고 별 뜻 없이 물었던 질문이 이렇게 엄청난 여파를 몰고 올 줄이야.
대청에서 눈을 들어 자신을 보던 여인의 모습이 눈앞에 떠올랐다. 정말 우습구나, 우스워. 그때 눈여겨봤더라면…….
“오라버니.”
그 회랑 아래에서 웃으며 ‘오라버니’ 소리를 들을 사람은 서 대형인지 뭔지 하는 무리가 아니라 나였겠지.
“말하자면, 좀 억지스럽지만 낭자는 그런 사람이야. 물 한 방울의 은혜에도 넘치는 샘물로 갚지. 그런 연민이 있는 사람이니 감상적인 거고.”
전부 내 잘못이다. 전에 그러지 않았다면, 그러지 않았다면……. 피 한 방울 안 섞인 남은 나서서 돕고, 어엿한 사촌 오라비인 난 바보처럼 멍하니 지켜볼 수밖에 없는 상황은 안 왔을 것이다.
전부 내 잘못이다. 전에 그러지 않았다면 온 집안이 화기애애했겠지. 병을 고치든 식당을 열든, 함께 상의하고 함께 경계하고 함께 대비했을 것이다. 부친 역시 자신도 모르는 사이에 누군가의 원수가 될 일도 없었을 테지. 원수 취급을 받는 건 별일 아닐지 몰라도 최소한 정면으로 맞설 수 있지 않은가. 아무 대비도 않고 있는 사이 갑작스러운 일격을 당하는 것보다는 훨씬 낫다.
모두 내 잘못이야!
“어머니, 때리십시오. 전부 제 잘못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