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93
교랑의경 193화
주육낭이 소리쳤다. 몽둥이로 주육낭을 매섭게 후려친 주 부인은 힘이 쪽 빠지기도 하고 그런 아들을 보고 있노라니 마음이 아프기도 해서 결국 몽둥이를 내던지고 얼굴을 가리며 대성통곡을 했다.
나머지 형제자매들이 주변을 에워쌌다. 여자들은 흐느껴 울고 남자들 역시 침통한 표정이었다. 삽시간에 집 안이 울음바다가 되자 여종들과 몸종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발을 동동 굴렀다.
노야께 일이 생긴 건 이미 숨길 수 없는 일이 됐지만, 집안 윗전들은 별일 아니라며 인맥을 통해 수습 중이라고 했다. 그런데 갑자기 울음바다가 됐다. 그냥 좌천 정도가 아니었나? 더 심각한 일이라도 벌어진 건가?
주육낭과 형제들은 곧 정신을 차리고 울음을 그치게 한 후 안으로 들어갔다.
“육낭, 이번엔 네가 지나쳤다.”
형들이 침통한 얼굴로 말했다. 몸종들은 뜨거운 물수건을 올려 주씨 가문 자매들이 얼굴을 닦도록 했다.
“맞아요. 그 여자 어디가 그렇게 좋아요? 지금 이 판국에도 그 애를 챙기다니!”
주 낭자가 물수건을 내던지며 앙칼지게 소리쳤다. 몸종들은 얼른 물수건을 챙겨 줄줄이 밖으로 나갔다. 그래도 들어올 때보다는 마음이 한결 편해진 터였다. 알고 보니 주 노야가 아니라 주육낭의 일 때문이었고, 더구나 여인에 관한 일이었기 때문이다.
안에 있는 윗전들은 분통을 터뜨렸지만 아랫것들은 평온한 모습이었다. 육공자가 매일 정 낭자의 집으로 달려가는 건 윗사람들만 몰랐을 뿐 아랫사람들은 훤히 아는 사실이었다. 몸종들이 나가자 형들도 주 낭자의 말에 동조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육낭, 누이가 너보다 더 철이 들었구나. 우리가 있으니 너까지 나설 필요는 없겠지만, 그래도 속을 썩이진 말아야지.”
주육낭은 들어온 이후 내내 말없이 앉아 있었다.
“육낭, 넌 아직 어리잖아. 세상에 여자가 얼마나 많은데, 하필 그런 애한테 마음을 빼앗겨!”
주 부인은 또다시 눈물을 닦으려 했다.
“그 애한테 마음을 빼앗긴 거 아닙니다.”
주육낭이 시무룩한 목소리로 툭 내뱉었다.
“그럼 매일같이 거기로 달려가는 이유가 뭐야?”
주 부인이 따져 물었다. 안에 있던 형제자매들의 시선이 주육낭에게 쏠렸다. 고개를 든 주육낭이 입술을 달싹이며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버지 때문입니다.”
“뭐라고?”
가까이 앉은 자매들은 그 말에 더욱 씩씩거리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그걸 말이라고! 그 바보가 아니었으면 이렇게 재수 없는 일이 우리한테 생길 일도 없었어! 그런데도 그 애를 찾아가다니, 대체 얼마나 더 재수가 없으려고 그래?”
“그 애는 바보가 아니에요.”
주육낭이 말했다.
바보가 아니다 뿐인가. 모두를 손바닥 위에 올려놓고 주무르는 사람인데.
“어머니, 오라버니 좀 보세요.”
누이들이 씩씩거리며 소리쳤다.
“됐다, 그 일은 그만 얘기하자. 지금은 네 부친의 일이 우선이야!”
“네.”
형들도 고개를 끄덕이며 근심 어린 표정으로 한숨을 쉬었다.
“상황을 보아하니 위에서도 처음 시작할 때처럼 강하게 압박하진 않는 모양입니다. 말투도 많이 누그러졌고요. 얘기도 못 꺼내게 하던 처음과는 다릅니다.”
그 여인이 그랬지. 지금이 가장 경계가 느슨할 때라고. 주육낭은 고개를 숙였다.
“그래. 그래도 은밀히 손을 쓸지 모르니 대비를 해야 해.”
주육낭은 형들을 보며 피식 웃었다.
이 자식이 전엔 이러지 않았는데, 왜 이렇게 생각이 없어졌지? 정말 여자한테 정신이 팔려 저러나?
“육낭, 웃긴 뭘 웃어?”
형들이 불쾌해하는데도 주육낭은 또 웃었다.
“걱정 마십시오.”
“뭐라고?”
형들은 이해할 수 없다는 표정이었다.
걱정 마십시오. 은밀히 손을 쓰든 뭐하든 신경 쓸 것 없습니다. 하나만 하면 충분하거든요. 앞길을 막는 장애물을 치워 버리는 겁니다. 깔끔하게 제거해야죠. 그 일을 할 사람이 모두가 바보라고 하는 그 여인이에요.
“아무것도 아닙니다.”
주육낭은 고개를 숙였다.
어둠이 내릴 무렵, 진 공자는 부친의 서재에 앉아 벌써 한참이나 책을 보고 있었다. 다른 쪽에 앉은 중년의 사내도 책을 보고 있었다. 등불 아래로 비치는 얼굴은 준수했고 기품이 묻어났다. 나이가 들었지만 여전히 남다른 분위기가 묻어났다.
중년의 사내는 진십삼의 부친인 승의랑 진안(秦安)이었다. 공주인 모친 덕에 음보의 혜택을 입어 관직에 진출한 후 부귀영화를 누릴 수도 있었지만, 그는 과거를 통해 진사에 급제하여 실력을 증명했다. 지금은 천자를 보필하며 천장각(天章閣)으로 파견되어 시강과 기거주(起居注:황제의 언행을 기록하는 관리)를 겸직하고 있었다.
진 시강이 서책을 내려놓고 시큰한 눈을 꾹꾹 누르며 아들에게로 시선을 돌렸다.
“요 며칠 무슨 일로 그리 바쁜 것이냐? 며칠 전엔 사관(史館)으로 날 찾아왔다며? 무슨 일 있느냐?”
부친의 질문에 진 공자가 책을 내려놓고 씩 웃었다.
“딱히 갈 데가 없어서 아버지께서 계신 곳엔 뭐 재미있는 일 없나 가 봤습니다.”
“내가 있는 곳의 일 말이냐? 아니면 정사당(政事堂)의 일 말이냐?”
“역시 아버지의 눈은 못 피하겠네요. 주육의 부친한테 요즘 일이 생겨서 알아보러 갔습니다.”
아들이 주육낭과 친한 건 진 시강도 잘 알았다. 자식들의 일이다 보니 굳이 나서서 알아보진 않았지만 그래도 눈여겨보고 있었다.
“그 일은 나도 안다. 박주(亳州)에 있을 때 군비와 군수품 사건에 대한 처리가 부당했다는 이유로 좌천되어 조사를 기다리고 있지. 그 사건은 나도 살펴봤는데 확실히 부당한 면이 있었어. 처벌은 피할 수 없을 거다.”
진 공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네, 저도 압니다.”
진 공자가 지팡이를 들며 일어섰다.
“그럼 이만 물러가겠습니다.”
아들은 늘 이랬다. 언제나 사리에 밝았고, 말하지 않아야 할 일은 말하지 않았다. 진 시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도 처벌이 무겁진 않을 것이다. 서쪽 변방의 오랑캐가 불안하고 연일 패퇴 중이라 폐하께서 진노하셨어. 시간이 지나면 좀 나아질 게야.”
진 공자는 한층 밝아진 얼굴로 고개를 끄덕인 후 부친에게 감사를 표했다.
“참, 아버지.”
문가까지 걸어갔던 진 공자는 무언가 떠올랐는지 고개를 돌렸다.
“이부시랑이 새로 임명되죠?”
진 시강이 미간을 찌푸렸다. 진 시강이 있는 사관은 중서문하성, 정사당과 가까웠기에 정사당의 관료 외에는 사관의 하급 관리들이 가장 소식에 정통했다. 아들은 그곳에서 하급 관리들이 떠드는 말을 들은 것 같았다.
“진소가 정사당 좌우복야(左右僕射)로 영전하면 이부시랑은 공석이 되니 아마 그렇겠지. 아직 미정이다.”
진 시강이 심드렁하게 말했다.
“고생스러운 자리죠.”
진 공자 역시 대수로운 일이 아니라는 듯 말한 후 바로 문을 나섰다. 진 공자가 나가자 곧 진 부인이 들어왔다.
“십삼이 도와달라고 사정해요?”
직설적인 진 부인의 질문에 진 시강은 웃으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당신 아들이 당신만큼 직접적이진 않잖소.”
진 부인 역시 웃음을 지었다.
“잔꾀를 부리는 거예요. 내버려 두세요. 어쨌든 가깝게 지내는 몇 안 되는 아이니, 주씨 가문의 일을 주의 깊게 보는 건 좋죠. 나설 수 있으면 나서서 편도 들고요.”
“지금은 도저히 그럴 상황이 아니오. 말해 봤자 불에 기름을 붓는 격이지. 어사대 쪽에서 칼을 갈며 벼르고 있소. 따지고 보면 운도 없지. 하필 이런 때에 옛날 일이 튀어나오다니.”
“일이 더 커지진 않겠죠?”
일이 이렇게 심각할 줄 예상 못 한 진 부인이 놀라 물었다.
“운에 달렸소.”
하늘의 뜻을 기다려야 한다니. 미소를 머금고 있던 진 부인의 얼굴에 근심이 서렸다.
“그래서 십삼이 요 며칠 이리저리 뛰어다녔군요. 그런 곳은 통 안 가던 애인데.”
그런 곳? 어디? 진 시강이 물었다.
“나도 구체적으로 묻진 않았는데 경조부 같은 곳까지 가는 것 가더라고요.”
진 부인이 말했다. 여기저기 청탁을 넣으려나 보군. 진 시강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래도 늘 분수를 알고 영민한 아들이니 걱정할 건 없었다. 두 부부는 이 일을 더 이상 신경 쓰지 않기로 했다.
날이 밝을 무렵, 유 교리는 손을 들어 두칠의 팔을 힘껏 내리쳤다. 두칠이 처절한 비명을 내질렀다.
“훌륭하구나, 훌륭해.”
유 교리는 고개를 끄덕이며 흡족한 듯 웃고는 손을 거두고 몸을 곧추세웠다.
“아프단 말은 괜찮단 뜻이다.”
“할아버님, 괜찮긴요. 제 꼴을 좀 보십시오.”
두칠은 억울한 듯 이를 갈았다.
“그놈들은 감방에서 아직도 안 죽었습니까?”
관리인이 얼른 나서서 대답했다.
“어제 흠씬 두들겨 팼는데 워낙 튼튼한 놈들이라 버텨 냈습니다.”
“사람 잡는 경조부 감옥의 몽둥이에도 살아남았단 말이냐?”
유 교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물었다.
“모르시는 말씀입니다. 놈들은 군졸 출신이라 몸을 무예로 탄탄하게 다졌어요. 태평거에서 식당을 운영하면서도 날마다 몸을 단련했으니 일반인과 비교할 수야 없지요. 그래도 걱정하실 것 없습니다. 어쨌든 앓아누웠거든요. 눕긴 쉬워도 일어나긴 힘든 법이죠.”
유 교리는 그러면 그렇지 하는 표정으로 듯 고개를 끄덕였다.
“기껏해야 며칠 더 사는 겁니다.”
관리인은 기쁜 표정으로 두칠을 보며 말을 이었다.
“이리 빨리 죽이기엔 아깝지.”
유 교리가 말을 끊자 두칠과 관리인이 멈칫했다.
“할아버님, 저들을 남겨 두시려고요?”
두칠은 믿을 수 없다는 눈길로 소리쳤다.
“그 자식들을 남겨 둬서 뭐하시게요? 죽여 버리는 게 낫죠.”
“어차피 조만간 죽을 건데 서두를 게 뭐 있느냐.”
유 교리가 말을 끊었다.
“그저 잠깐 속시원한 것만 생각하지. 속시원한 거 말고 남는 게 뭐야?”
속시원한 거 말고 남는 게 뭐냐고? 두칠은 어리둥절한 채로 눈을 동그랗게 떴다.
당연히 실익을 남겨야지, 이 아둔한 것아.
유 교리가 관청에 들어섰다. 언제나 그렇듯 오늘도 가장 일찍 왔다. 수십 년 동안 지켜온 한결같은 습관이었다. 날이 밝자 나머지 관료들과 하급 관리들도 속속 도착했다.
이부주사(吏部主事)는 공무로 바쁜 관직이 아니었지만 유 교리는 다른 관료들처럼 잔꾀를 부리지 않고, 어제 처리한 공무를 진지하게 검토한 후 오늘 할 일을 점검했다. 오전 내 바쁘다가 점심시간이 되어서야 잠시 쉴 틈이 생겼다.
유 교리는 집으로 돌아가거나 다른 관료들과 함께 밖으로 나가 맛있는 음식을 사 먹지 않고, 집에서 챙겨온 작은 찬합을 꺼냈다. 밥과 나물들을 꺼낸 후 관청에서 제공하는 차를 한 잔 곁들이자 점심이 해결됐다.
밥을 거의 다 먹어 가던 무렵, 밖에서 소곤대며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함께 밥을 먹으러 나갔던 하급 관리들이 시시콜콜 수다를 떠는 소리였다. 목소리가 높아졌다 낮아졌다 하는 걸 보니 어디선가 주워들은 소식을 전하는 게 틀림없었다. 중서문하성 정사당에서 흔히 있는 일이었다.
한담을 나누는 일에 동참한 적 없는 유 교리는 여유롭게 식사를 이어 갔다. 그 말이 귓가로 들리기 전까지는.
“진 상공의 일이 확정됐다고 하오. 중서문하성 평장사(平章事)라더군. 그럼 이부시랑은 공석이 될 텐데, 누가 갈 것 같소?”
“이력으로 가장 뛰어난 분은 유 교리지요.”
이부시랑!