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96
교랑의경 196화
날이 훤히 밝자, 누군가가 주 부인의 마당으로 뛰어 들어왔다. 아침상을 물리던 여종들이 황급히 비켜섰다.
“어머니, 큰일 났습니다.”
사내 두세 명이 대청으로 들어서며 소리쳤다. 식사를 마친 후 몸종이 올린 약을 먹던 주 부인은 약이 목에 걸려 기침을 했다. 주 부인은 안으로 들어서는 이들을 가리키며 얼굴이 벌게진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오라버니들, 무슨 짓이에요. 어머니 놀라셨잖아요!”
안에서 주 부인과 함께 있던 여동생들이 소리쳤다. 주 부인은 한참 만에 가까스로 숨을 골랐다.
“너희 부친의 일이더냐?”
주 부인은 몸종이 올린 물을 받을 새도 없이 물었다.
“아니요.”
주씨 가문 공자들은 쭈뼛거리며 대답했다.
“그, 그게, 그 바보가…….”
주 부인은 성을 벌컥 내며 찻잔을 들어 내던졌다.
“그 바보가 뭐? 너희도 바보가 됐느냐! 그런 일로 뛰어 들어오게!”
“어머니, 그 바보가 이춘당에서 진료를 시작한답니다!”
공자들은 시선을 피하며 대답했다.
뭐가 어째? 주 부인은 씩씩거리며 자리에 앉았다.
“네, 맞습니다. 저희가 방금 거리에 갔다가 봤어요. 폭죽을 마구 터뜨리며 이춘당이라는 간판도 크게 해 달았습니다. 죽은 사람도 살리는 신의 낭자가 왔다며 구경하는 사람이 거리를 꽉 채웠더라고요. 얼마나 북적북적한지 모릅니다.”
공자들이 대답했다. 주 부인은 깃발이 나부끼고 폭죽이 팡팡 터지는 가운데 부러운 눈길로 쳐다보는 사람들의 모습이 눈에 보이는 것만 같았다. 그 계집은 득의양양한 표정을 짓고 있겠지.
하필 이런 때에! 집안에 어려움이 닥친 이런 때에! 모두가 근심에 잠겨 밥도 못 먹고 잠도 제대로 못 이루는 이런 때에! 그 계집은…….
“뻔뻔한 계집! 우리 주씨 가문이 망하게 생긴 걸 보고, 서둘러 제 살길 찾아간 게야!”
욕을 해대던 주 부인이 고개를 홱 돌렸다.
“육낭은? 그 애는 알고 있었던 거 아니냐? 구경하러 나간 게야?”
주 부인은 눈썹을 치켜세우며 다그쳤다.
“아니에요, 아니에요. 육공자께선 요 며칠 출타하지 않고 집에 계셨어요.”
“뭐 하고 있는데?”
주 부인이 물었다.
주육낭이 붓을 거두자 옆에 있던 몸종이 목을 빼고 들여다봤다.
“구(九).”
글씨를 읽은 여종은 무언가 떠오른 듯 빙긋 웃었다.
“‘구구귀일(九九歸一: 돌고 돌아 원점으로 되돌아가다)’의 뜻이에요? 노야께선 내일 저녁쯤이면 경성에 당도하시겠네요.”
주육낭은 잠자코 고개만 가로저었다.
“뭘 하시려고요?”
책상을 정리하던 몸종은 창가 앞에 선 소년을 보며 급히 물었다. 주육낭은 금족령이 내려 집에 갇혀 있었다. 책도 읽고 글씨도 썼으니 이제 연무장에 가려나? 소년은 몸종을 등진 채 천천히 내뱉었다.
“기다린다.”
같은 시각 오전 공무를 마친 유 교리는 붓을 내려놓고 시큰한 눈을 꾹꾹 누르며 숨을 내쉬었다. 수하 관리가 차를 올리며 별다른 뜻 없이 물었다.
“대인, 오늘은 어째 기분이 안 좋아 보이십니다.”
유 교리는 고개를 들어 수하 관리를 보며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만졌다.
“기분이 안 좋아 보인다고?”
유 교리는 반문을 하며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예의 온화한 표정을 유지하고 있었지만 어딘지 모르게 억지스러워 보였다. 수하 관리가 웃음을 지었다.
“너무 고생이 많으십니다, 대인. 남이 해도 될 일은 남한테 시키세요. 대인께서는 대인이 되실 분 아닙니까.”
대인은 대인이 될 사람이다……. 그 대인은 상공 대인을 말할 테지. 상공 대인이야말로 이부 사람들 눈에 진정한 대인이니까.
유 교리는 웃음이 터져 나올 것만 같았다. 아직일세, 아직이야. 직첩을 받기 전까지는 진짜라 할 수 없지. 찻잔을 쥔 유 교리의 손에 툭 핏줄이 섰다가 한참 만에 들어갔다. 뭘 말하기엔 이미 늦은 때였다. 수하 관리는 이미 나간 후였기 때문이다.
유 교리는 무거운 짐을 벗은 듯 책상에 기대 숨을 토했다. 가슴이 쿵쾅댔다. 밖에서 시끌벅적하게 웃고 떠드는 소리가 들렸다. 정사당과 중서문하성이 가까운 이곳은 오가는 관리가 많아 늘 시끄러웠다.
유 교리는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예상대로 진소에 대해 이야기하는 소리가 들렸다. 진소의 영전은 이론의 여지가 없는 기정사실이었다. 그렇다면 이부시랑의 자리가 공석이 되는 것도 확정됐을 테지…….
“유 교리가 틀림없어.”
그런 말이 귓가에 들리는데도 유 교리는 전처럼 흥분하지 않았다. 은밀히 알아본 바에 의하면 단순한 풍문이 아니었다. 수십 년간 준비해 온 일이니 망상일 수 없었다. 이제 좋은 소식이 들릴 일만 남았다.
인맥이면 인맥, 자질이면 자질, 인품이면 인품, 어느 것 하나 빠질 게 없는데 이보다 적임자가 어디 있겠는가. 자신을 밟으려는 자가 있다면 장담컨대 말로가 좋지 않을 것이다. 조만간 무슨 일로든 경성에서 멀리 떨어진 곳으로 유배될 테지.
유 교리는 이를 악물다가 통증에 정신을 차린 후 다시 차를 마셨다. 벌써 차가 식었는데도 웃고 떠드는 소리는 계속 들려왔다. 유 교리는 일어나 밖으로 나갔다.
정사당 쪽으로 향하는 통로는 바람이 잘 통하고 서늘해서 여름이면 더위를 피하려는 이들이 많이 몰려 있었다. 유 교리가 나오는 모습이 보이자 다들 웃으며 인사를 건넸다.
“교리 대인, 이쪽으로 앉으십시오.”
“오늘은 뭘 드세요? 그러지 말고 저희와 함께 나가시죠. 만날 장아찌만 드시지 말고요.”
“안 갚으셔도 됩니다. 거저 얻어먹는 거 아니에요.”
유 교리는 언제나 상냥했고 아랫사람과도 농담을 잘했기에 놀리는 말도 웃어넘겼다. 그런 한담을 나누고 있는데, 나무 막대 소리가 들리더니 사관 쪽에서 지팡이를 짚은 소년이 사환의 부축을 받아 나왔다.
준수한 외모에 기품이 느껴지는 소년이었지만, 손에 든 지팡이는 수려한 산수화에 떨어뜨린 먹물 한 방울처럼 안타까움을 자아냈다.
“진씨 가문 절름발이가 요즘 자주 보이네.”
“귀덕낭장의 일을 수소문하려는 거겠지.”
“그 ‘아둔 주씨’ 가문의 공자와 친하다던데.”
그랬군. 그럴 만도 하지. 유 교리는 태연한 표정을 유지하며 속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주씨 가문의 아들과 진씨 가문의 아들이 가까운 사이인 건 유 교리도 알고 있었다. 치밀한 계획을 세우던 당시 예상했던 일이므로 놀랄 것도 없었다. 안 오는 게 더 이상하지.
알아본들 어쩔 텐가? 합당한 근거가 있고 마침 폐하께서 격노하신 상태인데. 필사적으로 두둔해야 할 친 부자지간이 아닌 이상 선뜻 나서서 도울 이는 없었다. 무슨 불똥이 튈지 모르는 일에 누가 감히 나서겠는가.
물론, 방법이 하나 있긴 했다. 조사를 시작한 이가 더 이상 물고 늘어지지 않는 것이다. 당시 관련자 중 하나를 희생양으로 삼아 일을 매듭지으면 된다. 근데 과연 그렇게 될까? 아무튼 난 그럴 생각이 없는데.
유 교리의 얼굴에 옅은 웃음이 번졌다. 그러니 아둔 주씨는 내 눈에 거슬리지 않도록 경성 바닥에서 사라져야 한다. 의심의 여지가 없는 일이고 난 기필코 해낼 것이다.
오늘 강주 바보가 이춘당으로 왔고 태평거도 유 교리의 재산이 됐다. 물론 태평 두부도 이제 정씨의 것이 아니다. 손을 대자마자 재산이 줄줄이 넘어오니 실로 통쾌했다. 호시탐탐 노리던 놈들에게도 경계가 됐을 것이다. 이 세상엔, 건드려선 안 되는 인물도 있는 법!
이제 승진의 기회가 왔고, 매사가 순조로울 것이다. 좋은 소식이 끊이지 않겠지.
“저거 봐, 이쪽으로 오네.”
“당연히 와야지. 사람이 이리 많은데 놓칠 수야 없지 않겠소.”
관리들은 이쪽으로 걸어오는 진십삼을 보고 웃으며 수군거렸다.
“공자, 오셨소?”
관리들이 인사를 건네자 진 공자도 웃으며 예를 표한 다음 유 교리를 보며 환하게 웃었다.
“유 대인.”
진 공자가 지팡이를 짚으며 가까이로 걸어오자 유 대인이 얼른 부축했다.
“공자, 이리 앉으시구려.”
유 대인은 상냥하게 인사를 건넸지만 진 공자는 유 대인의 팔을 잡았다.
“유 대인, 경하드립니다.”
경하라……. 이 절름발이는 제 아버지의 관청에서 나왔으니 아버지에게 가장 먼저 소식을 들었을 터, 그럼 확정된 건가?
유 교리의 심장이 멎을 뻔했다가 곧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공자, 농담도 잘하시오. 갑자기 경하라니?”
유 교리는 손을 내저으며 웃었다.
“다들 이 늙은이를 놀리는구먼. 당치 않소이다, 당치도 않아.”
그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멀리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유 교리! 교리 대인 계십니까?”
다들 웃음을 멈추고 소리가 나는 쪽을 쳐다봤다. 중서문하성 관청에서 하급 관리 하나가 손을 흔들며 뛰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유 교리, 검정 대인께서 유 교리를 모셔 오라십니다. 어서요, 어서.”
하급 관리가 멀리서 웃으며 손을 흔들었다. 검정 대인! 중서문하성 검정 대인이 부르다니! 무슨 일로? 평소 공무로 왕래할 일도 없는데 갑자기 부른다고? 인사와 관련된 일이 아니고서야 본인을 부를 리가…….
유 교리의 귓가에 소리가 웅웅 울렸다.
“대인, 경하드립니다!”
진 공자는 유 교리의 팔을 세게 내리치며 유 교리의 귓가에 대고 웃음을 터뜨렸다.
경하드립니다! 이제 이부시랑이 되는구나! 시랑이 된다고!
유 교리의 가슴속에서 맹렬한 기세가 솟구치는가 싶더니 눈앞이 흐릿해지면서 귀가 울렸다. 여러 사람이 떠드는 것 같은데 소리가 제대로 들리지 않았다.
유 교리는 웃음을 터뜨리고 싶었다. 웃음이 터져 나왔지만 문득 웃어서는 안 된다는 생각이 들었다. 다른 사람 앞에서 본심을 드러내는 건 절대 안 되니까. 유 교리는 가슴을 쓸어내리고자 손을 뻗었다. 그 초조하고 답답하고 흥분되는 마음을 애써 누르려 했다. 손을 뻗으려는데 손이 말을 듣지 않았다.
“하! 하! 내가 시랑이 됐다! 시랑이 됐어!”
유 교리는 말도 채 끝맺지 못하고 털썩 주저앉아 손뼉을 치며 웃음을 터뜨렸다.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우르르 몰려들었다.
“유 대인!”
사람들은 어찌할 바를 몰라 우왕좌왕하며 태의를 부르라고 소리쳤다.
“의식이 흐려지는 것 같습니다! 어서 흔들어 깨우세요!”
진 공자가 소리쳤다. 가장 가까이에 있던 하급 관리가 그 말에 곧바로 손을 들어 유 교리의 따귀를 후려쳤다. 유 교리는 순간 손뼉 치는 것을 멈추고 웃음도 뚝 그쳤다. 하지만 그대로 쓰러지면서 입이 돌아가고 눈에 초점이 흐려졌다. 입에서는 계속 침이 흘러나왔다.
관리들은 속수무책이었다. 태의원까지는 너무 멀었고 사람을 부르러 갔다 한들 시간이 오래 걸릴 터였다. 다들 유 교리의 모습을 보며 속으로 판단을 내렸다.
풍질(風疾: 중풍)이구나! 이건 태의가 온다 해도 소용없어!
순간 주위가 고요해졌다. 소식을 듣고 달려오는 이들의 소리와 유 교리의 측근들이 내는 울음소리만이 들릴 뿐이었다.
“이춘당으로 가십시오!”
진 공자가 소리쳤다.
“죽은 사람도 살린다는 신의 낭자가 이춘당에서 진료를 시작했다고 들었습니다. 어서 그리로 모셔 가세요!”
진 공자는 울고 있는 유 교리의 측근을 향해 소리를 질렀다. 이춘당은 유 교리의 숨겨진 재산이었고, 이제 그곳엔 신의 낭자가 있으니 그곳이 제일 안전했다.
“이춘당으로 가자! 이춘당으로!”
측근도 울며 소리쳤다. 그래, 그래. 거긴 신의 낭자가 있어!
사람들이 다시 웅성거리기 시작했다. 어쨌거나 인간관계가 좋았던 유 교리였기에 갑자기 병을 얻었으니 다들 초조해하며 어떻게든 도우려 했다. 들것을 구해 오고 하급 관리들이 유 교리를 옮겼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