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97
교랑의경 197화
이춘당 밖은 여전히 시끌벅적했다. 두칠 역시 다친 팔을 아랑곳하지 않은 채 목에 힘을 주고 구경을 왔다.
“정 낭자, 안에만 틀어박혀 있으면 좋을 게 뭐 있어? 신의 낭자의 얼굴을 보러 몰려든 사람들 좀 봐. 앞으로는 대청에 나와 진료를 받아야지 규방 여인처럼 들어앉아 있으면 못써. 어차피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여야 하잖아.”
두칠은 아침 일찍부터 찾아와 닦달했다. 여인이 곧 목숨을 잃을 거란 사실을 알고 있었지만, 두칠은 아무리 생각해도 분이 풀리지 않아 심기가 불편했다.
정교랑은 두칠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천천히 약포를 둘러봤다. 두칠은 그런 정교랑의 반응이 못마땅했다.
“약포가 꽤 괜찮지? 이제 정 낭자가 있으니 떼돈을 벌 수 있을 거야.”
“훌륭하네요.”
이번에는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정교랑이 약롱의 서랍을 열어 그 안에 있는 약재를 살피자 두칠은 콧방귀를 뀌었다.
“훌륭하든 안 훌륭하든, 낭자가 걱정할 일은 아니지.”
“난 걱정 안 해요. 누가 걱정한대요?”
정교랑이 서랍을 밀어 넣으며 대꾸하자 두칠은 속으로 침을 퉤 뱉었다.
뭐가 어째? 여기가 태평거인 줄 알아? 여기 주인은 네가 아니라고!
“그래? 아무튼 돈 많이 벌길 바랄게.”
두칠이 심두렁하게 대꾸했다. 정교랑은 더 이상 두칠을 상대하지 않고 다른 곳을 둘러봤다. 자신의 물건을 꼼꼼히 살피는 듯한 모습이었다. 두칠은 볼수록 속이 뒤틀려 비꼬는 말을 하려는데, 갑자기 밖에서 시끄러운 소리가 들렸다.
밖에서는 아직도 폭죽이 터지고 있었다. 그 시끄러운 폭죽 소리 사이로 마차 소리와 발걸음 소리, 시끄럽게 떠드는 소리가 들려왔다.
“어서 비켜요. 신의 낭자, 어서 구해 주십시오.”
소리가 점점 가까워지며 점점 또렷하게 들렸다. 두칠이 문가로 가자 거리에서 들것을 든 무리가 우르르 달려오는 모습이 보였다. 두칠은 절로 웃음이 났다.
“하하.”
두칠은 고개를 돌려 안을 보며 웃었다.
“정 낭자는 정말 복덩이야. 들어오자마자 목숨을 구해 달라는 사람이 찾아왔네!”
두칠은 안을 향해 소리친 후 밖으로 걸음을 내디뎠다.
“어떤 재수 없는 놈이 걸려들었나 모르겠네.”
싱글벙글 웃으며 인파를 살피던 두칠은 순간 얼굴이 싹 굳어 눈을 부릅떴다. 저 맨 앞에 있는 시종의 모습이 어째 낯이 익은데?
“비키시오, 비켜. 노야를 구해야 하오.”
사람들에게 길을 열라고 소리치던 유 교리 측근의 눈에 두칠이 들어왔다.
“두칠, 어서 정 낭자더러 노야를 구하라고 해라!”
“어느…… 노야요?”
두칠이 얼떨떨한 채 물었다. 양조부께서 관청에 나갔다가 손님을 물고 오셨나? 양조부의 지인이면 거기도 노야겠지. 두칠은 곧 들것 위에 누운 사람의 얼굴을 확인했다.
하도 여러 번 빨아 풀을 먹인 바람에 이미 나달나달해진 익숙한 관복이 눈에 들어왔다. 그런데 오늘은 깨끗하고 단정한 모습이 아니라 쭈글쭈글 구겨지고 오물이 여기저기 묻어 있었다. 그 위에 누운 노인 역시 다정하고 온화한 모습이 아니라 눈에 초점을 잃고 입이 돌아간 모습이었다. 몸 위에 올려 둔 손은 쉴 새 없이 떨려 혐오감을 자아냈다.
두칠은 두 다리에 힘이 풀리면서 온몸에 힘이 쪽 빠졌다. 귓가가 웅웅 울렸다. 주변 사람이 뭐라고 떠드는지 하나도 귀에 들어오지 않았다. 그저 눈을 부릅뜬 채 노인을 쳐다볼 뿐이었다.
“아, 생각지도 못했네요. 여기 들어온 첫날, 처음으로 받는 병자가 유 대인일 줄이야.”
무뚝뚝한 여인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크지 않은 목소리였지만 두칠의 귀에는 천둥이 내리치는 소리로 들렸다. 몸이 굳은 채로 두칠이 고개를 돌리자, 여전히 무표정한 여인의 얼굴이 눈에 들어왔다.
“이건 복이 많은 걸까요? 재수가 없는 걸까요?”
정교랑이 천천히 고개를 돌리고 두칠을 보며 물었다.
“유 교리가 실성을 해?”
놀란 진 노태야가 서책을 내려놓으며, 방금 급히 돌아온 진소를 보며 물었다.
“네, 방금이요. 다들 약포로 달려가 봤습니다.”
진 노태야는 순간 어떻게 반응해야 할지 모르는 눈치였다.
“매사 신중하고 자신을 끔찍이 위하는 사람 아니더냐. 식사는 변변치 않게 챙겨 먹어도 몸은 튼튼했는데. 아니, 어쩌다 갑자기 실성을 해?”
“실성이라고 볼 순 없고, 방금 진단한 바로는 풍질이랍니다.”
진소는 여전히 복잡하고 얼떨떨하다는 표정으로 말했다. 풍질이라면 실성만도 못한데. 진 노태야는 더욱 할 말을 잃은 얼굴이었다.
실성하여 아무것도 인지하지 못한다면 남들 눈엔 웃음거리로 보일지 몰라도 자신은 기쁨도, 슬픔도 모르는 채로 지낼 수 있다. 하지만 풍질이라면 속으로 정신은 멀쩡한데 몸만 움직이지 않는 것이니 속이 끓고 애가 닳는 것 역시 자신이었다.
“그 여인이, 그런 것이냐?”
진 노태야가 머뭇거리며 물었다. 그건 불가능하지 않나? 천신도 아니고 사람의 생사를 관장하다니? 황당한지고.
“그 여인은, 아무것도 안 했습니다.”
그러면서도 진소는 복잡한 표정이었다.
“이춘당 약포로 들어가 의원까지 된걸요.”
그 일은 진 노태야도 알고 있었다. 진 노태야와 진소 역시 사태의 추이를 눈여겨보고 있었기 때문이다.
유 교리와 화해하고 태평거를 배상했으며 의술로 협업을 하자고 제안한 것 역시 자발적인 일이었다. 두 부자는 혼란스러운 눈길로 상황을 지켜봤다. 어린 낭자가 가엾긴 했지만 차라리 잘된 일이라는 생각도 들었다. 그러면서도 어딘지 모르게 찜찜한 기분이 들어 지난 일을 여러 번 곱씹던 차에 느닷없이 풍질 소식이 전해진 것이다.
실내는 침묵에 잠겼고, 두 부자는 얼떨떨한 채로 있었다.
“한 가지가 더 있다.”
진 노태야가 불쑥 입을 열자 진소가 고개를 들어 쳐다봤다.
“풍질은 불치병이지.”
진 노태야가 말했다. 그래, 그건 누구나 아는 사실이었다. 진소는 고개를 끄덕이면서도 부친의 말이 무슨 뜻인지 이해하지 못했다. 진 노태야가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정 낭자는, 죽을병에 걸린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친다.”
진소가 말뜻을 퍼뜩 깨달았다. 순간 온몸에 소름이 끼쳤다. 모든 게 이토록 공교롭다니, 모든 게 이토록 완벽하다니.
풍질은 불치병이지만 바로 죽는 병은 아니면서도 되돌릴 수 없는 병이었다. 차라리 그 무뢰배들처럼 단번에 목숨을 잃으면 속이라도 시원하지! 죽느니만 못한 삶 아닌가. 유 교리의 앞길과 미래는 연기처럼 사라질 것이다.
풍질에 걸린 사람은 폐인이다. 일개 폐인이 그 누구에게 위협이 될 수 있을까.
진 노태야는 고개를 돌려 자신의 서가를 바라봤다. 거기에도 글씨가 걸려 있었다.
구(九).
“구 일째구나.”
진 노태야가 중얼거렸다.
구구귀일, 모든 게 처음으로 돌아갔다. 이게 어떻게 된 일이지? 운이 좋았던 걸까? 아니면 계략이 뛰어났던 걸까?
“정 낭자, 유 대인은 어떠시오?”
관리들 중 우두머리가 나서서 물었다. 이춘당의 대청은 사람으로 가득 차 있었다. 관리도 있고 소식을 듣고 달려온 유 교리의 가족들도 있었다. 흐느껴 우는 소리가 대청에 끊이지 않았다.
정교랑이 들것에서 눈을 떼고 몸을 돌리자, 모두의 시선이 정교랑에게 집중됐다.
수수한 옷을 입은 소녀는 머리를 묶은 채 무뚝뚝한 표정으로 모두를 쳐다봤다. 이 무겁고 침통한 분위기에 잘 어울리는 모습이었다. 인파 뒤로 밀려 한쪽 벽 모퉁이에 있는 두칠도 귀신처럼 창백한 얼굴로 몸을 떨며 사람들의 시선을 따라 정교랑을 쳐다봤다.
이건 우연이 아니야, 결코 우연이 아니야.
“괜찮아요, 괜찮아.”
정교랑의 말에 모두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가족들은 더욱 기쁨에 겨워 울음을 터뜨렸다.
“목숨엔 지장 없어요.”
정교랑이 말을 이었다.
“그럼 어서 치료해 주십시오, 낭자.”
가족들이 소리치자 정교랑은 가족들을 보며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건, 내가 못 고쳐요.”
모두가 놀라 멈칫했다.
“다른 고명한 의원을 찾아가 보세요.”
정교랑은 살짝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한 후 걸음을 옮겼다. 정교랑이 자리를 뜨려 하자 가족들이 퍼뜩 정신을 차리고 붙잡았다.
“낭자, 낭자는 도조 이 진인의 제자가 아닙니까. 낭자보다 고명한 사람이 어디 있겠습니까!”
누군가가 소리쳤다. 중요한 사실이 떠오른 듯 소리치는 이도 있었다.
“낭자, 치료비는, 치료비는 걱정하지 마십시오. 얼마든지 내겠습니다. 1만, 2만, 아니 3만 관이라 해도 상관없습니다. 당장 가져오겠습니다.”
병이 중하면 마음이 급할 수밖에 없고 마음이 급하면 만 관도 아깝지 않은 법, 이상할 일이 아니었다. 다만 대청에 있던 사람들은 유씨 일가의 말에 고개를 갸웃거렸다.
늘 검소하고 시집가는 여식의 혼수조차 마련하지 못하여 사위에게 혼수를 외상으로 달아 놓던 유씨 가문에서 지금 당장 3만 관을 가져오겠다고?
유씨 일가는 아우성을 쳤지만 정교랑의 표정엔 변함이 없었다.
“첫째, 난 이 도조인지 뭔지의 제자가 아니에요. 그건 풍문일 뿐이죠.”
“누구의 제자든 상관없어요. 죽은 사람도 살린다면서요? 어서 우리 노야 좀 구해 줘요.”
유씨 일가의 사람이 초조한 목소리로 소리쳤다. 이들이 어쩔 줄 몰라 하며 발을 동동 구를수록 눈앞의 여인은 더욱 침착하고 태연해 보였다. 여인은 법도를 지켜 다시 한번 천천히 예를 표한 후 대답했다.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고칠 수 있는 건 맞아요.”
고개를 든 정교랑은 가족을 쭉 훑어보고 다시 고개를 돌려 들것 위의 유 교리를 보며 말했다. 유 교리는 실려 올 때의 모습에서 눈만 꼭 감은 채 계속 침을 흘리고 있었다.
“하지만, 유 대인의 병은 죽을병이 아니에요. 죽을 사람이 아니면 안 고치는 게 내 원칙이죠. 그러니, 난 고칠 수 없어요. 정말 죄송합니다.”
목숨에 지장이 있을 정도는 아니라 괜찮다고 한 것이었다. 하지만 동시에 괜찮기에, 그녀는 고칠 수 없었다.
이건 풍질이다. 풍질을 고칠 사람이 어디 있겠는가! 뭔가 다행이긴 한데, 거참 낭패로군. 운이 좋다고 해야 하나, 재수가 없다고 해야 하나.
사람들의 표정은 복잡했지만, 속으로 하는 생각은 다들 똑같았다.
죽을병에 걸린 것만도 못하게 됐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