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198
교랑의경 198화
이춘당은 울음바다가 되어 아수라장이었고, 이춘당 밖에 모인 구경꾼들 역시 소란스럽기는 마찬가지였다.
“병이 나도 어쩜 이렇게 시간대를 딱 맞춰 신의 낭자가 오자마자 났담.”
“그러니 운이 좋은 사람이지, 하하하.”
“대관절 누구기에?”
“관료들이 많이 온 걸 보니 거물이 틀림없어.”
시끄럽게 떠드는 인파 속에서 바구니를 들고 이야기에 귀를 기울이던 열두세 살쯤 된 여자아이가 인파를 비집고 안으로 들어갔다.
이춘당 밖은 아무나 접근하지 못하도록 벌써 병사들이 나와 질서를 유지하고 있었다. 여자아이가 이쪽으로 오는 게 보이자 병사들은 눈을 부라리며 호통을 쳤다. 아이는 겁을 먹으면서도 물러서지 않고 까치발을 들어 안을 들여다봤다. 그러더니 아는 사람이라도 본 듯 눈빛을 반짝였다.
“어서 가라. 어서 집에 가서 가져와.”
대청 안에서 여인이 울며 소리치는 소리가 들렸다.
“노야, 무사하셔야 해요.”
울음소리와 함께 소박한 옷차림에 딱히 눈에 띄지 않는 사내 둘이 뛰어나왔다. 사내들은 황망한 표정으로 야윈 당나귀를 타고 인파를 가로질러 떠났다.
여자아이는 다소 흥분한 듯 들고 있던 바구니를 미세하게 떨었다. 곧이어 아이도 뒤돌아 인파를 헤치고 빠져나갔다. 잽싸게 달음박질치는 아이는 행인들의 눈길을 끌었다.
“아니, 저거 덕승루(德勝樓) 주 낭자의 몸종 아니야?”
옆으로 비켜서던 행인들은 그 말에 고개를 돌려 쳐다봤다.
“덕승루가 어딘데요?”
말을 끌던 사환 하나가 물었다. 경성 땅을 처음 밟아 호기심이 넘치는 눈빛이었다.
시골 촌뜨기로군, 덕승루도 모르다니. 행인들의 얼굴에 비웃음이 서렸다.
“경성에서 제일 유명한 주점이라오.”
행인들이 대답했다.
“주 낭자가 연 곳이에요?”
사환의 물음에 행인들은 와하하 웃음을 터뜨렸다.
“아둔하긴. 주 낭자는 덕승루의 간판 기녀지.”
왁자지껄 웃는 소리에 사환의 얼굴은 붉어졌고, 옆에 있던 소년이 사환을 노려봤다.
“괜한 말 지껄이지 마라.”
소년이 삿갓을 벗으며 얼굴을 드러냈다.
“네, 공자님. 일단 묵어갈 곳부터 찾아보죠.”
정사낭이 주위를 둘러보며 고개를 끄덕였다. 경성은 역시 보통 화려한 곳이 아니구나.
“가자. 잠시 쉬었다가 장강주 선생을 찾아봬야지.”
정사낭과 사환 둘이 거리를 가로질러 떠났다.
날이 저물 무렵 마차 한 대가 주씨 저택의 대문 앞에 멈춰 섰다. 말에 탄 사환들이 굳게 닫힌 대문을 보며 소란스레 떠들었다.
“웬 소란이야!”
씩씩거리며 소리를 지르던 문지기가 문을 열어보고 멈칫했다.
“노야!”
노야께서 돌아오셨다! 그 외침에 쥐 죽은 듯 고요했던 주씨 저택은 삽시간에 떠들썩해졌다.
“노야…….”
주 부인은 눈물을 글썽이며 여종들의 부축을 받아 나왔고, 집에 있던 공자들과 낭자들 역시 흥분되면서도 수심에 잠긴 표정으로 뒤따라 나왔다. 대문 안으로 들어서는 주 노야는 먼 길을 오느라 고생했는지 피곤한 기색이 역력했고, 다소 얼떨떨한 표정이었다.
“어떻게 된 일이오?”
주 노야가 중얼거렸다.
“노야, 우선 진정하고 좀 쉬세요. 어떻게 된 일인지는 들어가서 얘기하죠.”
주 부인이 울며 말했다. 놀란 마음을 안고 먼 길을 쉴 새 없이 달려온 탓에 주 노야는 정신이 없어 보였다. 그 모습을 본 가족들은 더욱 마음이 아려 왔다.
“아니오, 벌써 알아봤소.”
주 노야가 손을 내젓자 안에 있던 가족들은 모두 멈칫했다.
“돌아오는 길에 곧장 관청부터 들렀는데, 아주 아수라장이 됐더군.”
주 노야는 얼떨떨한 표정으로 방금 본 일을 떠올렸다.
“몇 사람을 붙잡고 대체 누가 내 등에 칼을 꽂은 건지 물어봤더니, 다들 웃으며 고개를 가로젓더군. 하나같이 축하한다는 말만 했소.”
축하한다고?
“그 인간들이 사람을 놀린대요?”
주 부인이 눈물을 닦으며 소리쳤다.
“그게 아니오.”
주 노야는 단호하게 고개를 가로저었다.
“그럴 사람들이 아니오. 이 일은 이제 끝났다는 뜻이었소.”
안에 있던 가족들은 또다시 멈칫했다.
“무슨 말이에요?”
주 부인이 이해할 수 없는 듯 물었다.
“그러니까 난 아무 일 없단 거요. 며칠 후면 정리될 거라고 하더군.”
주 노야는 꿈을 꾸는 듯한 표정으로 말했다. 아무 일 없다고?
“그렇소. 지금 날 신경 쓸 겨를이 없다고 했소. 이부의 유 교리가 오늘 아침에 관청에서 갑자기 병을 얻어 다들 거기 신경 쓰기 바쁘다더군.”
대신들은 어서 돌아가라며 주 노야를 재촉했고, 어깨를 두드려 주며 며칠 후에 술이나 한잔하자는 말을 건네기도 했다.
술을 마시는 것은 그저 술을 마시기 위함이 아니다. 아무 일 없을 거라는 뜻이기도 했다. 주 노야한테 일이 생긴다면 행여 불똥이라도 튈세라 멀리 피했을 테니 말이다.
주 노야는 저도 모르게 수염을 쓰다듬었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지?
“유 교리는 언제나 근면 성실하고 유능한 분이잖아요. 그리 올곧은 분마저 갑자기 병을 얻으니, 조정에서 대신들을 배려해 사건들을 관대하게 처리하기로 했나 봐요.”
그러면서 주 부인은 대체 무슨 병이냐고 물었다.
어찌 보면 가장 합리적인 해석이고 전례가 없는 일도 아니었다. 조정에서는 사대부를 우대하여 나이가 많은 관료는 황제 앞에서도 자리에 앉을 수 있게 했다.
“이미 실려 나가서 무슨 일인지는 모르겠소. 같이 따라간 이들은 아직 안 돌아왔고.”
주 노야가 말했다. 솔직히 내 코가 석 자니, 무슨 병인지 알아보고 싶은 마음도 없었다.
“어쨌거나, 내 등에 칼을 꽂은 인간만 헛수고한 꼴이 됐군. 역시 계략이 아무리 뛰어나도 좋은 운엔 못 당하는 법이야.”
주 노야는 수염을 쓰다듬으며 껄껄 웃었다.
막 안으로 들어서던 주육낭이 그 말을 들었다. 주육낭은 기쁘면서도 여전히 얼떨떨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가족들을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쓴웃음이 절로 나왔다.
틀렸습니다. 제아무리 좋은 운도 훌륭한 계략엔 못 당하는 법이죠.
“아버지.”
주육낭은 안으로 들어와 꿇어앉고 주 노야를 쳐다봤다.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어찌 된 사정인지는 알 수 없었으나 소식을 막 받았을 때처럼 위급한 일은 아니라는 건 확신할 수 있었다. 집에 있던 부인과 자식들이 사정을 몰라 일을 떠벌렸던 건가? 아니면 다른 뭔가가 있나?
주 노야는 여전히 영문을 알 수 없었지만 어쨌거나 한시름 놓게 됐다. 차를 한 잔 마시며 걱정 어린 가족들의 얼굴을 찬찬히 살폈다. 환히 밝힌 등불과 고요한 여름밤의 정취는 불안하고 초조했던 마음을 어루만져 주었다.
“육낭, 왔구나. 어서 앉아라. 요 며칠 너도 많이 놀랐지?”
주 노야는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주육낭은 잠자코 있었지만 어린 낭자들이 입을 삐죽였다.
“아버지, 그런 말씀 마세요. 오라버니가 놀라긴요.”
미인의 환심을 사러 다니느라 바빴던걸요. 낭자들은 고자질을 하려 했지만 주 부인이 막았다.
“그 얘긴 그만해라.”
남도 아니고 가족끼리 서로 미워하고 원망하게 할 순 없었다.
“아버지와 어머니께 따로 드릴 말씀이 있습니다.”
주육낭의 말에 주 노야와 주 부인은 눈을 마주쳤다. 주 부인은 짚이는 게 있는지 안색이 변했다.
“육낭, 네 아버지는 이제 막 돌아오셨어. 뭐가 중요한 일이고 뭐가 중요하지 않은 일인지, 잘 판단해.”
주 부인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그 천것이 요 며칠 주육낭을 또 어떻게 꼬드겼기에, 이렇게 한시라도 빨리 말하지 못해 안달인지, 원.
“알고 있습니다.”
주육낭이 예를 표했다. 형제와 자매가 모두 물러가고, 대청에 있던 몸종들과 여종들도 자리를 피했다. 대청에는 주 노야 내외와 주육낭 세 사람만 남았다.
“아버지, 유 대인은 풍질을 얻으셨습니다.”
주육낭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풍질? 거 안타깝게 됐군! 그런 병을 얻었다면 끝났다고 봐야지. 어차피 시간만 끌 뿐이야.
“세상에, 유 대인처럼 좋은 분이 어쩌다 그런 병에 걸렸누. 네 아버지를 해치려 했던 사람이나 그리돼야 할 텐데.”
주 부인은 안타까운 표정으로 손을 모아 합장했다.
주육낭이 실소를 터뜨렸다.
“어머니, 소원을 이루셨네요.”
주 부인은 이해가 안 가는 듯 물었다.
“무슨 소원을 이뤄?”
주육낭은 부모를 보며 심호흡을 했다.
“어머니, 금족령이 내려 제가 요 며칠 집에만 있었는데, 유 대인이 무슨 병에 걸렸는지 어찌 이렇게 잘 아는지 아십니까? 관청에 다녀오신 아버지도 모르는 일을요.”
주육낭은 대답 대신 질문을 던졌다.
“넌 발이 묶여 있었지만, 네 아랫것들은 자유롭게 돌아다녔잖아.”
주 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어미인 내가 그만한 사정도 모를까 봐? 모르는 척 눈감아줬을 뿐이야.
“네, 제 아랫것이 계속 소식을 알아봤습니다. 유 대인에 관한 소식을 알아봤죠.”
주 부인이 무언가 더 말하려는데, 잠자코 듣고 있던 주 노야가 멈칫하며 무언가 눈치챈 듯 손을 들어 주 부인을 제지했다.
“네 말은, 그 사람이란 거냐?”
주 노야가 물었다.
그 사람? 그 사람은 또 누군데? 주 부인은 어리둥절한 눈치였지만, 남편과 아들을 보며 잠자코 있었다.
“교랑은 두 병자를 치료했죠.”
주육낭은 대답 대신 다른 말을 꺼냈다.
역시 그 계집 얘기였어! 주 부인이 화를 벌컥 냈다.
“그 바보가 또 뭐!”
“어머니, 그 애는 바보가 아닙니다. 바보는 어머니와 저, 그리고 유 교리죠.”
주육낭도 버럭 소리를 질렀다. 지금껏 크면서 모친에게 이렇게 소리를 지른 건 처음 있는 일이었다. 주 부인은 놀라 입을 떡 벌린 채 말을 잇지 못했다.
“소자가 무례했습니다. 아버지, 어머니, 일단 제 말씀을 끝까지 들어주십시오. 다 듣고 나서 판단을 내려 주세요.”
주육낭은 모친을 향해 예를 표한 후 고개를 들었다.
“교랑은 두 병자를 치료했습니다. 그 일로 진씨 가문에서는 저택을 얻었고, 동씨 가문에서는 1만 관을 얻었죠.”
그건 다 알고 있는 일 아닌가. 그 얘길 왜 하는데? 주 노야 내외는 미간을 찌푸리면서도 잠자코 듣기만 했다.
“어머니께서는 동씨 가문에서 받은 1만 관을 대신 관리하려 하셨습니다. 교랑은 거절했고요.”
주 부인의 안색이 어두워졌다.
“교랑이 거절한 건, 돈을 써 버렸기 때문입니다.”
주육낭은 모친이 말할 기회를 주지 않고 바로 말을 이었다.
“그 돈으로 주점을 사들였죠.”
주점? 주 노야가 흠칫 놀랐다. 돈을 굴릴 생각이었나 보군. 그런데 연약한 여인 혼자서 주점을 연다고? 말도 안 되는 소리!
옆에 있던 주 부인은 무언가 떠오르는 게 있는지 아, 하는 소리를 내며 자세를 고쳐 앉았다.
“태평거!”
주 부인이 쉰 목소리로 소리쳤다.
태평거? 주 노야는 잘 모르는 눈치였다. 경성을 떠나기 전 그 이름을 들어 본 적이 없었기 때문이다.
“유명한 곳이오?”
주 노야가 부인의 놀란 표정을 보며 물었다.
“아주 유명하죠…….”
중얼거리던 주 부인은 다시 주육낭을 보며 눈썹을 치켜세웠다.
“이러고도 날 안 속였대?”
주육낭은 대꾸하지 않고 말을 이었다.
“왜 태평거를 열었는지에 대해서는, 더 이전의 얘기부터 시작해야겠네요. 그 애를 진씨 저택에서 데려온 후 얼마 안 됐을 때, 한번은 제가 밥을 사 주겠다고 데려간 일이 있습니다.”
주 부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때였네. 허구한 날 그 계집을 데리고 밖으로 싸돌아다니더니, 대체 나 몰래 얼마나 많은 짓을 한 거야! 일단 끝까지 들어나 보자. 다 듣고 따져야지!
“그땐 경성 밖에서 신선거가 막 떠오르기 시작할 때였어요. 그래서 데려갔죠.”
“그건 그래야지. 누이가 경성에 처음 올라와서 가 본 곳이 없을 테니, 견문을 넓혀 주는 게 당연해. 신나게 먹더냐?”
주육낭이 웃음을 지었다.
“신이 났는지는 모르겠고, 신선거의 주인과 숙수가 신이 났던 건 확실합니다. 과로신선을 알려 준 지나가던 신선이 바로 정교랑이거든요.”
뭐야? 주 노야 내외가 멈칫했다. 무슨 말인지 못 알아들은 눈치였다.
“과로신선의 내력에 대해서는 두 분도 아실 겁니다.”
알다마다. 그때 집안 식구들도 다 같이 가서 먹었잖아. 과로신선의 내력에 대해서는 신선거 벽에 큼지막하게 글도 쓰여 있고 그림도 걸려 있었으니 알지. 말은 신선이라지만, 그 말을 누가 믿누?