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05
교랑의경 205화
마차가 천천히 거리 사이를 지나갔다. 해가 차츰 서쪽으로 기우는 시간이었지만 거리는 여전히 인파로 북적였다. 경조부 관청에 다다랐을 때, 몰려있는 인파 때문에 길이 막혔다.
“무슨 일 있어요?”
시녀가 몸을 밖으로 내밀며 물었다.
“무슨 일 났소?”
마부도 얼른 행인들에게 소리치며 묻자 한 행인이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주 낭자가 경조부 관청 앞에 꿇어앉아서 억울함을 호소하고 있다오!”
주 낭자? 경성에 대해서 잘 아는 시녀였지만 처음 들어보는 이름이었다.
“주 낭자는 재작년에 덕승루에서 뽑힌 명기입니다. 재색을 겸비하여 천금을 줘도 얼굴 한번 보기 힘들다던 그 명기가 사람들 앞에서 무릎을 꿇고 억울함을 호소하다니! 무슨 억울한 일을 당했나 모르겠네요.”
마부도 흥분해서 목청을 높였다.
명기는 창녀가 아니라 기녀를 가리켰다. 기생들은 대부분 교방사 소속으로 그곳에 들어가서 몸을 파는 사람은 거의 없었다. 유배 가는 대신 들어간 여인들이 대부분이었기 때문이다.
가족 중 한 사람이 죄를 지으면, 집안사람 전부가 줄줄이 연루된다. 그런 여인들이니 억울함이 없을 수야 없겠지.
시녀는 다시 마차에 앉았다. 마차를 내팽개치고 당장이라도 달려가 구경하고 싶은 마음이 굴뚝 같은 마부에게, 시녀는 다른 길로 돌아가라고 명했다.
“우리랑 별 상관도 없잖아요.”
그런데 이번에는 시녀가 잘못 짚었다. 실은 그들과 아주 가까이 얽혀 있던 일이었다.
닷새 후, 주 노야는 옥대교 저택을 다시 찾았다. 지난번처럼 공손하면서도 다소 득의양양한 표정이었다. 대청에 앉은 주 노야는 대뜸 계약서 한 장을 정교랑 쪽으로 내밀었다.
“이게 뭐죠?”
“네 이춘당이다.”
정교랑이 손을 뻗어 계약서를 받아와 꼼꼼히 확인했다.
“이렇게 빨리요?”
정교랑의 표정은 변함없었지만 목소리에는 놀라움이 묻어났다. 예상치 못했던 일이라는 티가 났다.
“벌써 유 교리의 권력에 도전한 사람이 있다고요? 심지어 무너뜨렸고요?”
“예전에 유 교리가 한 관원의 집안을 모함한 적이 있어. 그 관리는 모함을 받아 남주로 귀양을 가게 됐는데, 가던 길에 숨을 거뒀지. 관리의 아내는 겁······ 큼큼, 목숨을 끊었고, 여덟 살 먹은 어린 딸아이는 교방사로 팔려갔어. 그런데 당시 관리의 부인이 혀를 깨물고 자결하기 전, 억울함을 호소한 혈서를 아이의 품에 증거로 남겨 줬다더구나. 유 교리가 방심한 탓에 화근을 남긴 게야. 그 아이는 그동안 복수만을 다짐하며 칼을 갈고 있었는데, 마침 좋은 기회가 찾아오자 북을 치며 억울함을 호소했지. 폐하께선 유 교리의 상태를 측은하게 여기셨지만, 어사대에서 이 일을 붙잡고 놓아주지 않으니 어쩔 수 없는 노릇 아니냐.”
주 노야는 신이 나서 득의양양한 투로 설명했다.
“아, 뭔지 알겠네요. 그날 거리에서 마주친 덕승루의 명기 주 낭자가, 그 아이였군요.”
시녀가 문득 그날 거리에서 본 광경을 떠올리며 말했다.
“그래, 주 낭자는 교방사에서 불평 한번 없이 말 잘 들으며 얌전히 지냈다더구나. 칠현금, 서화, 가무 뭐 하나 열심히 배우지 않는 게 없었고 남들보다 몇 배는 더 노력했다지. 그날 그렇게 울며불며 하소연한 것은 다른 것 때문이 아니라, 이 일을 널리 알려 힘 있는 사람의 도움을 받아 부모의 복수를 하려고 했던 거야. 정말 강직한 여인이지.”
주 노야의 말투에 감탄이 묻어났다.
“강직함만으로는 부족했겠죠. 외숙부님께서 힘을 많이 쓰셨지요?”
죄를 지은 관원의 식솔이 명기의 유명세로 주목을 받을 수 있을진 몰라도, 황제의 측은지심까지 얻어내기에는 역부족이었을 것이다. 주 노야는 껄껄 웃으면서 더욱 어깨가 으쓱해졌다.
“유 교리도 뒤에서 수작을 부릴 줄 아는데, 나라고 못 할 게 뭐 있나? 내 편의 사람들을 선동해 폐하께서 못마땅해하시는 죄명을 덮어씌우면 그만이지. 풍질을 얻어 몸이 마비된 사람을 필요로 하는 사람은 없을 테니, 그자를 두둔하러 나설 사람은 더더욱 없어.”
정교랑은 미소만 지을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폐하께서 딱하게 여기시기도 하고 유 교리가 병중이기도 하니, 그자를 직접 단죄하긴 힘들다. 하지만 그자의 아들들은 벌써 하옥되어 조사를 기다리고 있고, 가산도 모조리 확인 절차에 들어갔어. 아니 글쎄, 그놈이 숨겨둔 재산과 땅이 그렇게 많을 줄은······.”
주 노야는 말을 이으며 눈을 반짝였다.
많은 재산을 숨겨두었다는 말에 주 노야처럼 눈을 번뜩이는 사람이 많았을 것이다. 그런 자들이 유 교리의 처지를 설상가상으로 만들었음은 물론이다.
“다만 난 그 숨긴 재산에 숟가락 얹을 정도의 직위가 못 된다. 그래도 내가 이춘당은 어떻게든 너한테 가져왔어.”
주 노야가 다소 멋쩍어하며 말하자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고 예를 올렸다.
“마음을 써 주셔서 감사해요, 외숙부님.”
“아니다, 아니야. 당연한 일이지, 내가 해야 할 일이야. 여긴 너한테 가는 게 제일 알맞아.”
정교랑은 다시 한번 예를 표하고 계약서를 시녀에게 건넸다. 시녀는 기쁘게 계약서를 건네받아 잘 보관했다.
“이번에 수확이 꽤 괜찮네요. 태평거 하나를 내주었더니 신선거를 덤으로 온 것도 모자라 약포까지 얻었어요.”
시녀가 싱글벙글 웃으면서 말하다가 고개를 갸웃거렸다.
“우리 태평거를 탐내는 사람이 누구 또 없으려나? 또 무슨 좋은 게 들어올지 모르겠네.”
주 노야는 시녀의 혼잣말에 내심 겁이 더럭 났다. 저택을 나와 마차에 올라탄 주 노야는 휘장을 들고, 천천히 닫히는 저택의 대문을 뒤에서 바라봤다. 소녀의 고운 뒤태와 소녀 옆에서 재잘재잘 떠드는 시녀의 모습은 더없이 평온하고 자유로워 보였다.
아무도 모르게 이리 많은 것들을 해내는 게 저 아이에게는 일도 아니었겠군.
이게 어디 신선거 하나와 약포 하나만의 일이더냐. 조정에서 수십 년간 일해 온 경성 관리의 앞길을 영영 끊어버렸다. 이 모든 일의 배후에 강주에서 온 바보가 있다는 사실을 그 누가 알고 그 누가 믿겠는가. 저 강주 바보가!
경성 남문에 위치한 보천루(寶泉樓)에서 여인들의 웃음소리가 흘러나왔다.
보천루는 경성의 유명한 식당들처럼 화려하지는 않지만, 성문 밖에 지은 건물이라 널찍하고 쾌적했다. 게다가 운치 있는 정원까지 있어서 여름날 피서에 제격이었다.
낚싯대를 휙 들어 올리자, 진십팔랑 주변의 몸종들은 기뻐서 손뼉을 치며 환호했다.
“또 한 마리 잡았어요, 또 한 마리.”
진십팔랑이 팔딱거리는 물고기 한 마리를 도자기로 된 대야에 넣었다. 대야 안에는 이미 크고 작은 물고기 두세 마리가 헤엄치고 있었다.
진단랑이 발을 굴렀다.
“시끄러워. 너희 때문에 정 언니의 물고기들이 놀라서 도망가 버렸잖아.”
몸종들은 손으로 입을 가리고 웃음을 삼키면서 정교랑 쪽을 쳐다보았다.
낚시하자고 제안한 사람은 정교랑이었다. 하지만 정교랑은 반 시진이 지나도록 단정히 앉아 있기만 할 뿐 낚시대는 한 번도 들어 올리지 않았다.
“정 언니, 아니면 우리 다른 데로 자리 옮길래요? 여기 있는 물고기들은 다 배가 부른가 봐요.”
진단랑이 작은 소리로 속삭였다.
“괜찮아.”
정교랑이 대답했다. 진단랑은 이리저리 왔다 갔다 하며 텅 빈 대야를 보다가 진십팔랑 옆에서 웃고 떠드는 몸종들을 쳐다봤다.
“근데 십팔랑은 물고기를 많이 잡았잖아요.”
진단랑이 다시금 입을 열었다.
“난 물고기 잡을 생각 없어.”
정교랑의 말에 진단랑은 미간을 찌푸리고 고개를 갸웃거렸다.
“언니가 낚시하자고 하지 않았어요?”
바위 옆에서 앉아 실뜨기를 하던 반근이 손을 멈추고는 웃음을 보였다.
“아씨께서 낚시를 하시는 건 물고기를 잡기 위해서가 아니에요. 낚싯대를 드리우기 위해서죠.”
시녀가 반근의 실뜨기를 이어받아 꽃 모양을 만들며 물었다.
“아씨께서 전에도 이렇게 낚시하신 적 있어?”
반근이 쿡 웃음을 터트렸다.
하셨다마다. 집안의 공자 하나는 아씨께서 귀신인 줄 알고 죽을 뻔하기도 한걸.
반근과 시녀가 이야기를 나누는 사이, 저쪽에서는 또 한 번 환호 소리가 들려왔다. 진단랑이 분한 듯이 발을 탕 구르고는, 고개를 돌려 정자에서 차를 마시던 형제자매들을 쳐다봤다.
“십육 오라버니!”
진단랑이 무언가 생각난 듯 정자를 향해 외쳤다.
검은 장포를 입은, 청량하고 준수하게 생긴 소년이 담소를 멈추고 이쪽으로 시선을 돌렸다. 진단랑과 함께 그 옆에 돌아앉아 있는 정교랑이 시야로 들어왔다.
“십육 오라버니, 와서 우리 좀 도와줘요.”
진단랑이 자그마한 손을 흔들며 외쳤다. 소년이 머뭇거리자 주변에 있던 형제자매들이 놀렸다.
“십육, 얼른 가봐. 정 낭자가 있는데도 십구랑이 도와달라는 걸 보면, 아주 큰 골칫거리가 생긴 모양이야.”
소년은 그제야 진단랑을 향해 걸어갔다.
“무슨 일인데?”
소년이 몇 걸음 떨어진 곳에서 걸음을 멈추고 묻자, 진단랑은 소년의 손을 붙잡고 연못 근처로 끌고 갔다.
“오라버니는 낚시를 잘하잖아요. 그러니까 우리 좀 도와줘요. 오늘 물고기들이 좀 이상해요. 하나도 안 낚인다고요.”
소년은 어쩔 수 없이 진단랑의 손에 끌려와 정교랑 옆에 섰다. 인기척을 느낀 정교랑이 고개를 돌렸다.
햇빛이 나뭇잎 사이를 비추면서 얼룩덜룩 그늘이 졌다. 큰 눈망울이 햇살에 반짝이자, 소년은 급히 시선을 돌렸다.
“이, 이걸 어떻게 도와? 별거 없어. 그냥 인내심 있게 기다리는 거지.”
정교랑이 손으로 낚싯대를 들어 올렸다. 진단랑은 신나서 소리를 질렀지만, 낚싯대의 끝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진단랑은 곧 아쉬운 듯 한숨을 쉬었다.
“인내심은 있는데, 어떻게 해야 물고기를 낚아야 할지, 잘 안 되네요.”
정교랑이 낚싯대를 소년에게 건네며 말했다. 소년은 상기된 얼굴로 낚싯대를 받으며 대답했다.
“사실 요령 같은 건 없어요. 물고기가 모이게 먹이를 던진 후, 낚싯대를 드리우면 되는데······.”
진십육낭은 몸을 숙여 먹이를 한 움큼 쥐어서 연못에 세차게 흩뿌리고는 바로 낚싯대를 휙 던져 갈고리를 연못 속으로 넣었다.
진단랑은 신이 나서 웃음을 터뜨렸고, 정교랑도 진지하게 쳐다봤다.
날 보는 게 아니라 낚싯대를 보는 건데 뭘 긴장하고 그래. 소년의 콧잔등에 땀이 송골송골 맺히기 시작했다. 관음보살님, 한 번만 도와주십시오.
“우와.”
진단랑의 환호가 들리자 진십팔랑이 웃으며 이쪽을 향해 시선을 돌렸다. 소년이 들어 올린 낚싯대에는 커다란 물고기 한 마리가 펄떡이고 있었다. 정교랑도 미소를 지었다.
“역시 대단해요.”
소년이 긴장한 기색을 숨기고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보잘것없는 재주일 뿐이죠.”
흥분한 진단랑은 몸종이 물고기를 대야에 넣는 것을 빤히 쳐다봤다.
“우리 진짜 잘한다, 우린 진짜 대단해.”
진단랑이 손뼉을 치면서 외쳤다. 그러고는 우쭐하며 진십팔랑을 향해 손을 흔들었다.
“우리 물고기 한 마리가 언니네 다섯 마리보다 더 커.”
“거긴 세 명이고 나는 혼자인데, 혼자보다는 대단해야지.”
진십팔랑이 웃으면서 받아쳤다.
“그건 아니죠. 이 공자가 대단한 거예요.”
정교랑이 눈앞에 서 있는 소년을 물끄러미 쳐다보며 말했다.
진씨 저택에 몇 번 가 본 일은 있지만, 진 노태야만 보고 나오느라 진십팔랑의 형제자매에 대해서는 잘 알지 못했다. 소년을 어떻게 호칭해야 할지 모르는 건 당연한 일이었다.
“사노야 댁의 십육공자예요.”
옆에 있던 몸종 하나가 영리하게 말했다. 십육공자가 얼른 고개를 숙여 예를 표하자 정교랑도 평절로 예를 올렸다.
진씨 집안의 자녀들에게는 결코 낯설지 않은 예절이었다. 평소에 부모에게 가정교육을 받기도 했고, 소년기에 접어들어서는 스승에게 따로 가르침을 받으며 수많은 종류의 예절을 배웠기 때문이다.
예의범절에 대한 풍습은 대갓집의 풍모를 갖추기 위해서도 필요했다. 사람을 대할 때나 물건을 받을 때 각각 갖춰야 할 예의범절이 따로 있기에, 그에 맞는 예절을 몸에 밴 듯 행동하는 건 아무나 해낼 수 있는 일이 아니었다.
그런데 어렸을 때부터 바보였다던 이 여인은 사람을 대하거나 물건을 주고받을 때의 예절을 아주 잘 알고 있었다. 그녀의 일거수일투족은 진씨 가문 자제들이 일상으로 접촉하는 사람들과 별반 차이가 없었을뿐더러, 심지어는 더 기품 있어 보이기도 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