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21
교랑의경 221화
“미쳤어? 그 집에 가서 뭐 하려고?”
범강림이 눈을 크게 뜨면서 소리쳤다.
태평거에 점심 손님들이 빠지고 식구들끼리 식사를 하고 있을 때였다. 방 안에는 서무수와 일곱 형제가 둥글게 모여 앉아서 술과 요리를 먹고 있었다. 서무수는 대답하지 않은 채 밥그릇을 들고 묵묵히 밥만 먹었다.
“미친 거 아닙니다.”
서봉추가 젓가락으로 채소를 집으며 한스러운 듯 덧붙였다.
“그리워했던 여인을 소중히 여기는 것뿐이죠.”
서무수가 밥그릇을 탁 내려놓으면서 서봉추를 노려봤다.
“그런 말은 어디서 배웠어? 가르쳐 준 건 기억도 못 하면서.”
다른 형제들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됐어, 그만해.”
범강림이 손을 내젓자 형제들이 다시 웃음을 참으며 밥을 먹었다.
“동 노야와 동 낭자는 모두 좋은 사람이지. 문제는 향칠인데…….”
범강림의 말에 서봉추가 맞장구를 쳤다.
“맞습니다, 형님. 형님들은 그때 못 보셨죠? 향칠이 녀석, 눈빛으로 아주 셋째 형님을 잡아먹을 기세였다니까요.”
형제 중 하나가 젓가락을 높이 치켜들고는 웃으며 동조했다.
“동 낭자도 눈빛으로 셋째 형님을 잡아먹을 수 있을 텐데.”
방 안은 다시 웃음소리로 가득 메워졌다.
“그만들 해.”
서무수가 호통치자 형제들은 다시 고개를 숙이고 웃음을 참았다.
“나도 다 알아.”
서무수가 심호흡을 한번 하고는 천천히 말했다.
“알면서 간다고 했어?”
범강림이 인상을 찌푸리며 서무수를 나무랐다.
“셋째, 넌 사람이 참 좋아. 우리 중에서도 사리 분별도 제일 잘하고, 배운 것도 많고. 근데 그게 너무 과해도 별로야. 너무 체면을 차린단 말이지.”
“당초에 동 노야께서 우리를 잘 대해 주셨잖소. 우리가 여기 있는 걸 모르신다면 굳이 찾아가지 않겠지만, 이제 알게 된 이상 한 번은 꼭 찾아뵈어야죠. 그게 도리지 않습니까.”
범강림이 서무수의 말을 듣고는 한숨을 쉬었다.
“그 일이 없었으면 자네가 나서기 전에 우리가 벌써 찾아뵈었을 거야. 근데 이제 와서 가 봐. 향칠 그놈은 그릇도 작은데, 괜히 부부지간이 서먹해지면 우리만 동 노야께 면목이 없어지잖아.”
서무수가 잠시 침묵했다가 입을 열었다.
“한 번은 찾아뵙고, 동 노야께 사실대로 잘 설명드려야지요. 노야께서는 우리를 이해해 주실지도 모르겠다는 생각이 듭니다. 사실 달리 방법이 없잖습니까. 숨을 수도 없고. 경성이 크다면 크고 좁다면 좁은 곳인데, 어디로 숨겠어요? 괜히 숨었다가 오해만 늘어나면 더 큰일입니다. 차라리 직접 가서 까놓고 이야기하는 게 낫지.”
나머지 형제들도 서무수의 말에 동의하는지 고개를 끄덕였다.
“말이 잘 풀린다면 별일 아니게 되니까.”
서무수가 이어 말하며 다시 밥그릇을 들었다.
“어서 밥이나 먹읍시다. 이게 무슨 큰일이라고. 마음에 담아 둘 것 없어요.”
서무수의 말에 형제들도 맞장구치며 말했다.
“맞는 말이야. 무슨 큰일이라고. 우리가 먼저 동 노야를 알고 지냈잖아. 향칠보다도 훨씬 더 일찍부터. 우리가 뭣 하러 그놈 눈치를 보느라 동 노야를 뵙지도 못해?”
방 안 분위기가 다시 활기차졌다.
“선물도 준비해 갑시다.”
“제일 좋은 거로요!”
“그래야지! 향칠이 우리를 쫓아내려고 눈치껏 쥐여준 돈보다 더 비싼 걸로 말이야.”
범강림이 고개를 내저으며 다시 젓가락을 쥐고 밥을 먹기 시작했다.
터놓고 말하면, 별일 아니겠지?
신선거를 떠난 마차 안에서 시녀는 계속 웃음을 참지 못했다.
“셋째 도련님같이 답답하신 분에게도 옛 정인이 있었다니.”
젊은 여인이 서무수를 대하는 모습은, 바보가 보더라도 예사로운 사이가 아니라는 걸 눈치챌 정도였다.
“셋째 도련님은 그 정도로 답답하신 분이 아니야. 셋째 도련님은 아주, 아주…….”
반근은 일순간 서무수를 형용할 단어를 떠올리지 못했다.
“겸손하고 예의 바른 군자라고?”
시녀의 물음에 반근이 연신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니 그리 못 잊은 거겠지. 셋째 도련님 정도라면 그럴 만도 해.”
시녀의 말에 반근이 웃음기를 거두면서 걱정스러운 듯 말했다.
“하지만 그 낭자는 벌써 시집을 간 모양인데, 어쩜 그렇게 조심성 없이 행동했을까. 뒤에 서 있던 남편 얼굴이 아주 흙빛이었어.”
시녀도 미간을 찌푸렸다.
“우리 셋째 도련님을 미워하는 건 아니겠지?”
그러게. 반근은 복잡하고 불안한 표정을 지었다.
반근과 시녀가 잡담을 나누는 사이, 마차가 저택 대문 앞에 멈춰 섰다. 두 사람은 대화를 멈추고 서둘러 마차에서 내려 정교랑을 부축했다.
“아씨 생각은 어떠세요?”
반근이 물었다.
“뭐가?”
“셋째 도련님이요.”
“오라버니는 좋은 사람이지.”
시녀와 반근은 쿡 하고 웃었다. 아씨와 대화할 땐 우리가 같은 이야기를 나누는 게 맞나 싶단 말이지.
“그 부부는…….”
시녀가 또 물어보려는데 정교랑이 말을 끊고 마차에서 내렸다.
“그, 부부가, 또 뭐?”
반근도 무언가 더 말하려 했지만, 시녀가 반근의 팔을 잡아끌며 말렸다.
“아무것도 아냐.”
시녀가 정교랑을 부축하며 물었다.
“아씨, 오늘 저녁은 뭘 해 먹을까요?”
갑자기 먹는 얘길 한다고? 반근이 아리송한 표정을 지었다. 하지만 반근은 고민을 깊이 파고드는 성격이 아닌지라, 이해되지 않는 문제들은 금세 잊고 자신이 알아들을 수 있는 일에만 집중했다.
“냉면 어때?”
정교랑이 대답했다. 세 사람이 막 대문으로 들어서려는 찰나, 뒤에서 누군가가 정교랑을 불렀다.
“정 낭자.”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자 다리 끝에서 진십삼이 저택을 향해 천천히 걸어오는 모습이 보였다.
진십삼은 여름용 비단으로 지은 도포를 입고 유유히 걸어왔다. 느긋한 걸음걸이 덕분에 다리가 불편한 것이 어느 정도 숨겨지며 한껏 여유로워 보이기까지 했다. 거기에 준수한 용모까지 더해지자, 호리호리한 미소년이 따로 없었다. 거리의 뭇 여인들이 부채 사이로 진십삼을 몰래 훔쳐볼 정도였다.
정교랑이 예를 표했다.
“또 낭자를 귀찮게 하러 왔습니다.”
진십삼도 예를 올리며 웃었다.
“그래요.”
문 앞에 멈춰 선 세 사람과 대문을 열고 있던 금가아까지, 다들 진십삼을 멀뚱멀뚱 쳐다보기만 할 뿐 안으로 들이려는 이는 아무도 없어 보였다. 진십삼이 이런 식으로 옥대교 저택을 방문하는 것은 벌써 보름이 다 되어 갔지만, 오늘따라 이런 식의 방문이 낯설게 느껴졌다.
진십삼이 혼자 웃음 짓고는 정교랑에게 물었다.
“내가 술을 마셔도 될까요?”
“아니요.”
“거참 아쉽네요.”
진십삼이 웃으며 대답했다.
“먹고 마시는 것에는 금기가 있어요. 그건 이미 모친께 다 말씀드렸으니, 어머니께 여쭤봐요.”
대답을 마친 정교랑은 곧바로 예를 표하고 걸음을 옮겼다. 진십삼이 재빨리 앞으로 한 걸음 다가서며 이어 물었다.
“그럼 내가 낭자께 술 한번 사는 건 어떻습니까?”
정교랑이 고개를 돌려 진십삼을 쳐다봤다.
“좋아요.”
이렇게 쉽게? 정교랑의 망설임 없는 흔쾌한 대답에 진십삼은 잠시 넋을 놓았다가 입을 열었다.
“나는 왜 모든 게 다 변한 것 같죠? 다리가 나아 똑바로 설 수 있게 되다 보니, 내 시야도 달라진 걸까요?”
“병이 나은 지 얼마 안 됐을 때는, 다 그래요. 시간이 조금 더 지나면, 괜찮아질 거예요.”
정교랑의 말에 진십삼이 웃음을 터트렸다.
“오늘은 너무 늦었으니 더는 폐를 끼치지 않겠습니다. 내일 낮에 연회로 대접하겠습니다.”
말을 마친 진 공자가 몸을 숙여 예를 올리자 정교랑도 다시 예를 표하고는 저택 안으로 들어갔다.
밤이 깊어 점포들이 영업을 마치고 문을 닫을 때쯤, 덕승루의 등불은 환히 밝혀져 있었다. 감미로운 현악기 소리를 타고 노랫소리와 웃음소리가 대청 중앙으로 흘러들었다.
뜨락을 둘러싸고 쭉 이어진 외랑(外廊: 집채의 바깥쪽에 달린 복도)에는 족히 백 명은 넘어 보이는 여인들이 웃고 떠들고 있었다. 아름다운 나비들이 너울너울 춤을 추고 있는 듯하여, 보는 이의 눈이 어지러울 정도였다.
물론 이런 나비 떼에 익숙한 사람들은 헷갈리지 않고 자신이 원하는 나비를 정확하게 찾아내곤 했다.
“저기 좀 봐, 저 두 사람 지금 어딜 가는 거야?”
한 사내가 고개를 쳐들고 손으로 위를 가리키면서 외쳤다.
주변에 있던 사내들이 사내가 가리키는 곳으로 시선을 돌리자, 반대편 회랑 다리를 건너는 두 젊은이의 모습이 보였다. 그들은 주 낭자의 거처가 있는 방향으로 걷고 있었다.
아래쪽에서 두 젊은이를 지켜보고 있던 사람들이 일순간 시끌벅적해졌다.
주 낭자는 아버지의 억울함을 푸는 일에 몰두하느라 손님 접대를 하지 않은 지 꽤 오래되었다. 하지만 사람들은 이에 대해 반감을 갖거나 불만을 터뜨리기는커녕, 도리어 그녀를 존경하고 치켜세웠다.
이전의 주 낭자는 사실 재색을 겸비한 명기에 불과할 뿐, 그 이상이 될 수 없었다. 하지만 지금의 그녀는 억울한 누명을 벗은 데다 관료 집안의 여식이라는 높은 신분임이 밝혀진 상태였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주 낭자 스스로 자신을 불결하다 여기며 기적에서 이름을 빼지 않았기에 사람들은 그녀를 더할 나위 없이 고결한 존재로 여기게 되었다.
주 낭자가 다시 접대를 받는 시기는 내년으로 미뤄졌다고 들었는데, 저 둘은 어떻게 주 낭자를 만나러 가는 거지? 누굴까? 누가 저렇게 운이 좋길래 주 낭자가 직접 불러들인 거야?
대청에 모여 있던 사람들의 시선은 계속해서 두 청년을 좇았다. 이때 두 젊은이 중 하나가 아래를 향해 손짓했다.
“헤헤. 이야, 여기서 아래를 내려다보니, 덕승루가 더없이 아름답구나. 꼭 신선계에 오른 것 같네.”
그 젊은이는 웃으며 더욱 목청을 높였다.
“당신들 같은 일개 속물들은 오르지도 못할 곳이니, 이 몸이 먼저 신선이 되어 올라가 보겠소.”
정사낭은 가뜩이나 이런 자리가 거북하고 불편했다. 그러던 차에 왕십칠이 갑작스레 소리를 지르자 아래에 있던 사람들이 펄펄 끓는 기름 솥에 물 한 방울을 떨어트린 듯 아우성을 쳤다. 그 모습을 본 정사낭은 당장이라도 덕승루를 뛰쳐나가고 싶은 심정을 간신히 꾹꾹 눌렀다.
“뭐 하는 거야!”
정사낭이 왕십칠에게 소리치며 다리 안쪽으로 끌고 들어왔다.
“장난 좀 치는 건데 뭐.”
왕십칠은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이 아래를 내려다보면서 풉 웃었다.
“저것 좀 보라고. 아래에 있는 놈들은 질투로 배알이 꼴려 죽을 지경이야! 하하하. 이 몸이…….”
아직 성에 차지 않았는지 왕십칠이 다시 한번 손을 들어 올리자 정사낭은 급히 팔을 꽉 쥐며 말을 막았다.
“그만해. 살아서 나가기 싫어서 이래?”
정사낭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말했다. 앞에서 길을 안내하던 몸종도 고개를 돌려서 비웃음 섞인 표정으로 말했다.
“맞아요, 공자님. 저 사람들을 화나게 했다가는, 진짜 주먹질 싸움이 난다니까요? 사람이 죽어 나간다 한들 이렇게 많은 사람이 한꺼번에 저지른 것이니, 관아에서도 달리 도리가 없죠.”
왕십칠은 몸종의 말을 듣고 나서야 정사낭 옆으로 바짝 붙어서 웃는 얼굴로 말했다.
“고맙다. 주 낭자를 만날 수 있다니까 내가 너무 기뻐서 그랬어.”
주 낭자가 본격적으로 독자 행보를 걷게 된 후로, 몸종은 이런 사람들을 익히 봐왔던 터라 기분 나쁜 기색을 숨기지도 않았다. 대화를 나누며 회랑 다리를 건넌 이들은 조금 더 걸어가 어느 방문 앞에 멈춰 섰다.
“언니, 왕 공자와 정 공자께서 오셨어요.”
몸종의 말에 안에서 여인의 목소리가 들렸다.
“어서 안으로 모시거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