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31
교랑의경 231화
서무수가 최대한 목소리를 낮춰서 말했다. 고개를 돌리려던 서봉추가 어색하게 멈칫했다. 서봉추는 어색한 자세 그대로 서무수를 따라서 또 다른 푸줏간 앞에 멈춰 섰다.
“이건 얼마요?”
서무수가 가게를 하나씩 돌며 잡담을 이어갔다. 두 사람은 골목을 이리저리 꺾은 뒤, 벽에 바짝 기대면서 조심스레 고개를 돌려 주변을 살폈다.
“형님, 따돌렸어요?”
서봉추가 속삭이자 서무수는 미간을 찌푸리며 대답했다.
“확실하지 않아. 만만치 않은 상대인 것 같다. 아주 노련한 놈이야.”
서무수가 손짓을 하자, 서봉추는 그의 뒤를 따라 빠른 걸음으로 저잣거리를 벗어났다. 하지만 말을 탄 무리가 정면에서 그들을 향해 다가오고 있었다.
“제법이구나. 내가 붙인 이들을 모조리 따돌리다니!”
무리의 우두머리로 보이는, 갑옷 차림의 사내가 외쳤다. 서무수와 서봉추는 그들을 보자마자 고개를 돌려 반대 방향으로 뛰려고 했지만, 그쪽은 이미 다른 병사들로 길이 막힌 상태였다.
“무엄하구나. 순순히 체포에 응해라!”
왁자지껄했던 거리에 사내의 우렁찬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형님. 어째 다 관부 쪽 사람 같아 보입니다.”
설마 유 교리 일에 차질이 생겼나?
누이가 말했었다. 자신이 옥에 들어가라고 한 게 아닌 이상, 절대로 하옥되면 안 된다고. 절대로 저들 손에 넘어가면 안 된다고. 사람을 죽여도 상관없으니 무조건 도망쳐야 한다고.
서무수는 말없이 병사들이 있는 쪽으로 냅다 뛰기 시작했다. 서봉추도 얼른 서무수의 뒤를 따랐다. 두 사람은 크게 힘을 들이지 않고도 병사들 사이를 뚫어 길을 텄다.
“무예가 대단하군!”
저도 모르게 감탄을 내뱉던 유 대장은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그리 뛰어난 무예를 닦았으면서, 적을 죽이는 일에 쓰지 않고 도망치는 데 쓰다니!”
유 대장이 손짓했다.
“궁수를 준비해라! 서무수, 서봉추! 순순히 투항하지 않으면 즉시 사살하겠다!”
이미 병사들에게 포위되어 서로 등을 맞대고 있던 서무수와 서봉추는 그 말에 표정이 굳어졌다. 서무수와 서봉추가 고개를 들어 이쪽을 쳐다봤다.
“형님, 궁수가 몇 놈 없으니, 각자 한 놈씩 붙잡아 방패 삼아 뚫고 갑시다. 열 걸음만 따돌리면 충분히 빠져나갈 수 있습니다.”
서봉추의 말을 들은 서무수가 고개를 끄덕였다. 두 사람은 유 대장의 명령이 떨어지기 무섭게 자신들을 둘러싸고 있는 병사 무리로 돌진했다.
병사들은 두 사람이 굴복하기는커녕 이쪽으로 돌진해오는 모습을 보고 뒷걸음질을 쳤다. 기합 소리가 몇 번 울리자, 서무수와 서봉추는 무기를 들고 있는 병사들 사이에서 각자 한 명씩 붙잡아 인간 방패로 삼았다.
“대장, 저, 저 두 놈, 너무 강합니다!”
두 사람이 고강한 실력을 보여 줄수록 유 대장은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썩을 놈들. 강하기는 무슨! 못난 놈들이지.”
말에서 훌쩍 뛰어내린 유 대장은 궁수의 활을 빼앗아 들고 서무수를 겨냥했다. 유 대장이 한 걸음 한 걸음 앞으로 다가서면서 외쳤다.
“못난 놈들아! 탈영할 배짱도 있고, 형제를 방패로 삼을 배짱도 있다면, 이리 나와서 나와 한 판 붙자!”
탈영? 서무수가 흠칫하고는 외쳤다.
“탈영이라니요? 사람을 잘못 본 건 아니시오?”
유 대장은 땅에 침을 탁 뱉고는 활시위를 당긴 채 한 걸음씩 내디뎠다.
“위주(渭州) 개석보(介石堡) 수비군 소속 갑대(甲隊) 감용(敢勇) 서무수, 서봉추는 명을 받들라!”
유 대장이 목청을 높여 소리쳤다. 서무수는 이런 칭호를 일 년이 넘도록 듣지 못했다.
– 감용들이여, 앞으로 나아가 적을 죽이자!
서무수의 귓가에 군령이 울려 퍼지고, 선두에 있는 병사들의 우렁찬 기합 소리가 들려왔다. 서무수의 몸이 뻣뻣하게 굳으면서, 병졸을 붙잡고 있던 손이 떨렸다.
“감용이란 무엇이더냐? 용맹하고 싸움에 능하여 장수의 기대를 한몸에 받는 자 아니더냐! 너희가 지금 뭘 하고 있는지 보아라.”
유 대장이 호통을 쳤다.
“지금 네놈들은 형제를 방패 삼고 있다. 제길, 나더러 네놈들을 죽이라고 해도 내 손이 더러워 차마 못 죽이겠다! 네놈들을 살려 줄 테니, 썩 꺼지거라! 여봐라, 모두 무기를 내려놓고 감용들을 공손히 보내 주어라!”
유 대장의 말을 들은 병사들은 정말로 무기를 거두고 비웃음 가득한 얼굴로 서무수와 서봉추를 쳐다보았다. 두 사람의 손에 목덜미가 잡힌 병졸들조차도 그들을 보며 히죽대고 웃었다.
“감용, 꽉 붙잡으시오. 내 비록 보잘것없는 병졸이라지만, 죽을지언정 목숨을 걸고 싸울 거요. 절대 댁한테 살려 달라고 무릎 꿇고 빌거나 도망칠 리 없소.”
순간 서무수는 맥이 탁 풀렸다.
의지를 잃은 서무수의 머릿속에 온갖 생각이 떠올랐다. 서봉추 또한 유 대장의 말에 얼굴이 새빨개져서는 씩씩대고 있었다.
“우리는 탈영병이 아니오! 우리는 빌어먹을 탐관오리한테 모함당한 거란 말이오!”
서봉추가 눈을 부릅뜨고 외치자 유 대장도 눈을 크게 뜨고 소리쳤다.
“모함이든 아니든, 난 관심 없다. 내가 아는 건, 네놈들이 바로 추포 명단에 이름이 오른 탈영병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니 이 몸이 해야 할 일은 바로 네놈들을 체포하는 것뿐이야! 억울한 일은 네놈들이 알아서 해결해! 구차하게 이리저리 숨어 살면서 사내대장부라 할 수 있느냐!”
서무수가 깊이 심호흡을 하고 말했다.
“단지 탈영병을 잡으러 오신 겁니까?”
유 대장이 뭐라고 외치자, 부하 병사 하나가 앞으로 나와 손에 들고 있던 문서를 펼쳤다.
“그렇다면!”
서무수가 문서를 펼치는 부하를 보며 외쳤다.
“형님.”
서봉추가 고개를 돌려 서무수를 보며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서무수는 조금씩 좁혀져 오는 포위망을 둘러보고는 한숨을 내쉬었다.
“탈영의 죄는 용서할 수 없지요. 여기 있는 형제들을 모조리 죽이고 도망칠 수도 없는 노릇이고요.”
서무수가 손을 풀자, 서봉추도 그를 따라 병졸을 놓아주었다. 목덜미를 오래 잡혀있던 두 병졸은 연신 캑캑대며 기침을 했다.
유 대장이 손짓하자, 병사들이 서무수와 서봉추를 에워싸며 창을 겨눴다.
“이제야 좀 사내대장부답구나!”
서무수를 향해 가까이 다가가던 유 대장이 놀란 표정으로 멈칫했다.
“응? 자네, 였나?”
서무수와 유 대장은 서로의 얼굴을 알아볼 수 있을 정도로 가까이 섰다. 유 대장의 반응에 서무수도 멈칫했다.
“그때 그……!”
유 대장이 눈앞의 서무수를 보며 난감한 표정을 지었다.
“자네였군. 일면식의 인연이 있으니, 체면만은 지켜주겠네.”
유 대장이 손을 휘휘 저으며 부하에게 명했다.
“사지를 부러트릴 필요는 없고, 밧줄로 묶어 데려가라.”
거칠기 짝이 없던 두 사람이 순순히 굴복하는 모습에, 병사들이 서둘러 그들을 밧줄로 묶고 등을 떠밀면서 앞으로 걸어갔다. 유 대장은 도리어 좀 전의 흥분이 가신 듯 보였다.
한바탕 소리를 지르고 나니, 오랫동안 가슴속에 쌓여 있던 응어리가 풀린 듯했다.
하필 저 사내라니. 유 대장은 미간을 좁히며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그는 손이 잘렸던 사내를 한동안 쭉 지켜봤다. 손을 붙이기는 했지만, 그래도 손을 못 쓰게 된 것은 매한가지였다. 유 대장은 그 사내가 더 이상 오른손을 쓰지 않고 왼손을 쓰는 모습을 태평거에서 직접 목격했다.
태평거는 돈이 있으니 그 사내가 천천히 기술을 다시 연마하도록 기다릴 수 있겠지만, 군에는 그만한 돈이 없다. 손이나 발이 절단된 병사가 생기면, 손발을 이어붙인다고 한들 모든 걸 처음부터 다시 익혀야 한다. 더군다나 궁술, 검술, 창술 같은 것은 하루아침에 다시 연마할 수 있는 것도 아니었다.
유 대장은 더 이상 그 숙수를 지켜보지 않았고, 일부러 태평거를 찾아가는 일도 없어졌다.
애초에 불가능하다는 걸 알고 있었어.
사상자가 발생하는 사건은 모두 경조부 소관이었다. 유 대장도 괜히 오지랖 떨고 싶은 마음이 없어 그날 밤의 사건을 잊고 없던 일로 쳤다. 그런데 오늘 다시 만날 줄이야. 그것도 이런 상황으로.
저 사내, 태평거에서 신선거로 옮겨갔구먼.
“나머지는 못 봤느냐?”
유 대장은 무언가가 생각난 듯 옆에 있던 부하에게 물었다.
“예. 신선거에서 나온 건 저 둘밖에 없었습니다.”
유 대장이 익명의 투서를 다시 펼쳤다. 종이에는 일곱 명의 이름만 쓰여 있었고, 이들이 숨어 있는 장소로 지목한 곳은 신선거뿐이었다.
“설마 태평거에 있는 건가?”
유 대장이 무의식적으로 툭 내뱉었다.
“대인, 저희가 가서 체포하겠습니다.”
부하의 말에 유 대장이 고개를 끄덕였다.
“샅샅이 뒤져라! 한 놈도 놓쳐선 안 된다!”
유 대장은 매섭게 소리친 후 훌쩍 몸을 날려 말에 올라탔다.
* * *
정오가 가까울 무렵, 관아 앞은 한산했다.
“이보시오, 지금 뭐 하는 거요?”
누군가가 소리치자 향칠은 서둘러 시선을 거두고, 관청에서 나오는 말단 관리들을 쳐다봤다. 점심을 먹으러 삼삼오오 나오는 듯 보였다.
“저는 감문 관아 소속입니다. 문서를 가지러 왔습니다.”
“됐고, 오후에 다시 오게나.”
말단 관리들이 귀찮다는 듯 향칠에게 손을 내젓자 향칠이 머리를 조아리며 알겠다고 했다. 웃으며 말단 관리들을 배웅한 향칠은 고개를 돌려 관아를 힐끔 쳐다봤다. 관아의 바로 옆은 경성의 감옥이었다. 요 며칠 내내 저곳을 지켜봤지만, 새로 하옥되는 이는 보지 못했다.
이래서 익명의 투서를 넣어 봤자, 망망대해에 돌을 던지는 꼴이라고들 하는구나.
어차피 향칠도 예상했던 바였다. 본인도 말단 관리인지라, 관아에서 거들떠보지 않는 것 중 제일이 익명의 투서라는 사실도 잘 알고 있었다. 그중에서도 가장 쓸모없는 고발이 바로 탈영병 고발이었다.
향칠은 사정을 뻔히 알면서도 분풀이라도 하기 위해 익명의 투서를 넣었다. 향칠은 고개를 휙 돌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큰 길가에서 갑자기 말발굽 소리와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비켜라, 썩 비켜!”
선두를 달리던 병사가 채찍을 휘두르며 길을 트자, 사람들은 재빨리 길을 비켜서며 병사들을 쳐다보았다.
인파 사이에 끼어 있던 향칠은 중심도 잡지 못하고 이리 치이고 저리 치였다. 모자가 떨어져 바닥을 나뒹굴었지만, 전혀 눈치채지 못했다. 향칠은 믿기지 않는 눈길로 입을 떡 벌린 채, 병사들 사이에서 압송당하고 있는 두 사내를 쳐다보았다.
길을 비켜섰던 사람들이 하나둘씩 모여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도적이겠지?”
“행색을 봐서는 아닌 것 같던데.”
압송을 당하고 있던 두 사람 중 한 명이 인파를 훑어보다 갑자기 눈빛을 번뜩였다. 향칠은 재빨리 사람들 뒤로 숨어 들어갔다.
소란스럽던 병사 무리가 금세 지나갔다. 경성에서는 흔한 광경인지라, 모여 있던 구경꾼들도 금방 흩어졌다.
향칠은 미동도 없이 제자리에 서 있었다. 심장이 튀어나올 듯 쿵쾅거렸다.
진짜, 진짜 잡혔어!
향칠은 가쁜 숨을 몰아쉬더니 침을 꿀꺽 삼켰다. 두리번거리며 주위를 살핀 향칠은 바닥에 떨어진 모자도 잊은 채 서둘러 자리를 떴다.
경조부 관아. 시끌벅적한 소리가 정오의 적막을 깨뜨렸다.
“이게 웬일이냐. 너희 대인이 도둑을 다 잡고…….”
공조(功曹) 서리(胥吏)들이 웃으면서 병사가 건네는 문서에 서명하려고 했다. 하지만 체포된 사람이 달랑 둘인 걸 보고 다시 입을 열었다.
“한데, 고작 두 명이 전부냐?”
“걱정하지 않으셔도 됩니다. 나머지는 조금 뒤에 도착할 겁니다. 어서 서명이나 좀 해 주십시오. 빨리 감옥에 넣어야 우리도 병부에 보고하러 가죠.”
서리가 문서를 훑으면서 의아한 듯이 물었다.
“병부? 병부엔 뭐하러 보고해? 고작 도둑 몇 놈 잡은 거 가지고.”
“탈영병입니다.”
병사는 서두르라며 다시금 서리를 재촉했다.
“어서요, 어서. 당장 대장을 도와 나머지 놈들도 체포하러 가야 합니다.”
병사의 재촉에 못 이긴 서리는 더 이상 캐묻지 않고 재빨리 서명해 주었다. 병사들은 서명한 문서를 들고 감옥으로 우르르 몰려갔다.
탈영병이라……. 어디서 들어 본 거 같긴 한데.
관청에 앉아 있던 서리는 한참을 되짚으며 생각했다.
역시 나이를 먹으니, 기억력이 예전 같지가 않네.
서리는 생각을 떨치고 몸을 돌려 차를 우렸다.
역시 쉴 때는 좋은 차가 있어야 해.
잠시 뒤, 향긋한 차향이 올라왔다. 서리가 찻잔을 들어 입가로 가져다 대려는데 갑자기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치며 관청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형님! 큰일 났습니다!”
하마터면 찻잔을 놓칠 뻔한 서리는 언짢은 기색으로 고개를 들었다. 관청으로 뛰어 들어온 자는 감옥을 관리하는 옥리였다.
“무슨 일인데 그래?”
서리가 찻잔을 내려놓으며 물었다.
“형님, 태평거에서 또 무슨 일이 난 겁니까? 그자들이 왜 또 하옥된 거예요?”
“태평거?”
서리가 화들짝 놀랐다.
오늘날 태평거는 경성에서 유명한 식당이 되었다. 단지 맛있는 음식만으로 경조부 관아에까지 소문이 나기는 힘들고, 태평거의 명성이 경조부 관아와 감옥까지 전해진 이유는 따로 있었다.
언제부터였을까? 감옥에 몇 사람이 들어올 테니, 잘 좀 부탁한다고 누군가가 했을 때부터였나?
감옥에서 잘 부탁한다는 말은, 좋은 술과 음식으로 잘 대접하라는 뜻이 아니라 곤봉으로 사정없이 매우 쳐 달라는 뜻이었다. 그러나 그 사람들은 끝끝내 감옥에 들어오지 않았고, 오히려 잘 부탁한다고 했던 사람이 죽었다는 소식만 들려왔다.
그 일이 우연이었다면, 그저 그들의 운이 좋았다고 할 수도 있다. 하지만 그 사건이 있고 난 지 얼마 지나지 않아 두 번째 사건이 터졌다. 그때는 그 사람들이 정말로 옥에 잡혀 들어왔다. 그 사람들을 잘 부탁한다는 사람도 있었고, 적당히 알아서 봐달라는 사람도 있었다.
실제로 감옥까지 잡혀 오는 사람들은 대체로 졸개에 불과한 법이었다. 졸개의 뒤에는 항상 든든한 뒷배가 있으며, 뒷배들끼리 이와 같은 기 싸움을 하는 것은 감옥 관리들에게 매우 흔한 일이었다.
역시나 얼마 지나지 않아 그들은 아무 일도 없었다는 듯 풀려났다. 이번에 그들을 잘 부탁한다고 했던 사람은 전처럼 죽진 않았지만, 죽은 사람과 다름없게 되었다.
이것도 과연 우연이었을까? 정말 우연일 수도 있다. 하지만 이걸 단지 우연이라고 믿는 자라면, 지금껏 경성 바닥에서 살아남지도 못했을 것이다. 그자들의 이름은 물론이고 연루된 사건까지도 관리들은 똑똑히 기억하고 있었다.
태평거. 범강림, 범석두, 서무수, 서사근, 서납월, 범삼축, 서봉추.
서리는 감옥 관리가 건넨 문서를 다시 들여다보며 그 이름들을 손가락으로 짚었다.
서무수, 서봉추!
“생각났다!”
서리가 문득 깨달은 듯이 소리쳤다.
“그걸 굳이 기억해 낼 필요가 있습니까? 형님, 우리 모두 똑똑히 기억하고 있잖습니까. 어떻게 그걸 잊어요?”
감옥 관리가 말했다.
“아니, 탈영병 일이 어찌 된 건지 알겠다고!”
서리가 말하면서 다급하게 문서 더미를 파헤쳤다. 서리는 탁자 위를 다 뒤지고 서랍을 하나하나 열어 젖히면서 무언가를 찾아댔다. 서두르는 통에 찻잔이 엎어졌지만, 그는 전혀 개의치 않고 문서 몇 개를 찾아내 탁자 위에 펼쳤다.
감옥 관리도 가까이 다가가 문서들을 보았다. 전부 익명의 투서였다.
– 대인, 또 익명의 투서입니다.
– 언젠 없었나? 신경 쓰지 말게나.
– 대인, 그때 그 태평거 사람들의 이름이 있습니다.
– 태평거? 그럼 더 신경 쓰지 말아야지. 고래 싸움에 새우 등 터지고 싶지 않으면, 가만히 있어.
– 역시 대인께서는 현명하십니다. 태평거는 정말 불운 덩어리군요. 살짝만 스쳐도 불구가 되거나 죽임을 당하지 않습니까. 유 교리를 좀 보세요.
– 맞아. 태평거는 조심해야 해. 자칫하면 패가망신이라고.
– 익명의 투서들은 신경 쓰지 않아도 돼. 누가 그걸 거들떠본다고.
이 익명의 투서들을 보면서 했던 대화가 서리의 귓가에 메아리쳤다. 그때는 웃자고 했던 말들인데, 설마 정말로 누가 이걸 가져다 볼 거라고는! 심지어 태평거 사람들이 잡힐 거라고는! 게다가 자신이 서명한 문서 때문에 하옥될 거라고는 생각지도 못했다.
또 한 번 거친 풍랑이 일겠구나!
“도대체 또 무슨 일이길래.”
서리는 문서를 손에 쥔 채 부원 대인의 관청으로 뛰어갔다.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