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33
교랑의경 233화
정교랑의 마차가 대문 앞에 멈춰 서자, 벌써 한참을 기다리고 있던 주육낭과 진십삼이 서둘러 달려왔다.
“또 어디 갔었어?”
주육낭이 마차에서 내리는 정교랑을 보며 물었다.
“병 걸렸어요?”
정교랑의 물음에 주육낭이 눈을 부라렸다.
“병 걸린 건 너지!”
정교랑이 주육낭을 힐끔 쳐다보며 물었다.
“병도 안 걸렸으면서 날 왜 찾아왔죠?”
하여간 진지하게 대하는 법이 없다니까!
“네 혼사 때문이잖아.”
주육낭이 씩씩거리며 대꾸했다. 말하는 사이 이들은 벌써 대문 안으로 들어섰다. 정교랑은 곧장 대청으로 향했고, 진십삼과 주육낭도 자연스레 따라 들어갔다.
“누나! 울었어?”
금가아가 시녀와 반근을 보며 깜짝 놀랐다.
시녀와 반근은 손을 들어 눈물을 닦았다.
“무슨 일이야?”
금가아가 놀라 물었다.
“이따 얘기해 줄게. 아씨 시중부터 들고.”
시녀가 말했다.
“어머니께선 동의하셨습니다. 조만간 강주로 사람을 보내신대요. 당장 마땅한 사람을 구하기가 어려워, 일단 나를 쓰기로 했죠. 최소한 낭자의 집안과 왕씨 가문의 혼사에 시간을 끌 순 있으니까요.”
“걱정 마. 아버지께서도 동의하셨어.”
주육낭이 굳은 얼굴로 말했다.
“자네 가문에 마땅한 사람이 있나? 설마 또 자네가 나서려고?”
진십삼이 씩 웃으며 물었다.
“내가 어때서? 자네가 그랬잖아. 일단 시간부터 끌고 보자고.”
주육낭은 이를 악물고 받아치며 곁눈질로 정교랑을 힐끔 쳐다봤다.
안으로 들어온 후 줄곧 말없이 있던 정교랑이 팔걸이 책상에 몸을 기댔다. 언제나 단정히 앉아 있던 모습과는 달랐다.
편하고 익숙한 사람들 앞에서야 나오는 자세겠지. 도와주고 챙겨 주는 사람이 생기니 편해진 건가.
시녀가 차를 내주며 주육낭의 시선을 가렸다.
“내가 적당한 사람을 몇 골라 놨어. 우리 집 누이들과 혼담이 오가서 여럿 골랐지.”
“자네 집안과 혼사를 맺으려는 이들이면 보통 대단한 이들이 아닐 텐데! 그 사람들이 자네 어머니처럼 자네 말을 들을 줄 알아?”
주육낭이 콧방귀를 뀌었다.
“어머니처럼 내 말을 잘 들어주진 않겠지. 그건 내가 그 사람들 눈에 별 볼 일 없어서야. 하지만 낭자는 아니잖아.”
진십삼의 말에 주육낭은 혀를 찼다.
“말만 들으면 뭐해.”
“그래서 내가 생각한 게 있는데, 일단 후보를 고르고 낭자가 직접 확인하는 게 어떨까?”
진십삼이 물었다. 정교랑이 돌연 자세를 바로 하고 입을 열었다.
“반근.”
차를 올린 후 한쪽 옆으로 물러나 있던 시녀가 얼른 대답했다.
“반근한테 간식 좀 내오라고 해.”
정교랑이 말했다.
태평거의 다과와 태평거의 편액, 그리고 태평 두부는 이제 태평거의 세 보물이란 뜻에서 ‘태평삼보(太平三寶)’로 불렸다.
모르는 사람들의 눈에 세 보물은 각기 다른 곳에서 온 것이었다. 솜씨 좋은 숙수를 청해 오고, 두부를 만들 줄 아는 도사를 거두었으며, 문객에게 귀한 글씨를 얻었으리라.
하지만 진십삼과 주육낭은 그 세 보물이 한 사람의 손에서 나왔다는 걸 잘 알았다. 이곳에 몇 번 와 봤지만 매번 차만 마셨을 뿐, 간식을 먹는 건 처음이었다.
“고맙습니다, 낭자.”
진십삼이 웃으며 말했다. 시녀는 네 하고 대답한 후 밖으로 나갔다.
“낭자의 뜻을 잘 알겠습니다. 정씨 가문더러 고르게 하고, 최종적으로 낭자가 골라요.”
진십삼의 말에 정교랑이 고개를 가로저었다.
“아니에요. 그 사람들한테 고르라고 한 건, 성가신 일을 줄이기 위해서예요. 별일도 아닌 일에, 내가 마음 쓸 필요 없잖아요.”
“이게 어떻게 별일이 아니야? 평생이 걸린 대사지.”
주육낭이 미간을 찌푸리며 말했다.
“당신들한테나 평생이 걸린 대사죠.”
정교랑의 말에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리며 반박하려 했지만, 반근이 간식을 들고 들어왔다.
“낭자의 간식은 차와 아주 잘 어울립니다.”
진십삼이 손을 뻗으며 말했다.
“챙겨요.”
정교랑의 말에 반근은 멈칫했다. 진십삼의 손도 허공에서 멈췄다.
“챙겨 가서 먹으라고요.”
정교랑이 두 사람을 보며 말을 이었다.
“난 일이 있어서, 두 사람과 놀아 줄 수 없어요.”
진십삼이 손을 거두고 정교랑을 보며 생각에 잠겼다.
“정교랑, 누가 누구랑 논다는 거야!”
주육낭이 눈을 부라렸다.
“본인들이 잘 알지 않나요?”
정교랑이 주육낭을 보며 말을 이었다.
“알았으니까, 이만 가요. 난 일이 있으니까, 돌아가라고요.”
그러면서 정교랑은 반근이 벌써 싸 놓은 간식을 가리켰다.
“저거 가져가서 먹어요. 마음은 고마운데, 다른 데 가서 놀아요.”
진십삼과 주육낭은 어리둥절한 채로 정교랑을 보고, 이어 어느새 건네받은 간식을 봤다.
– 그래, 그래. 사탕 줄게 가서 놀아.
– 옳지, 착하구나.
어릴 적 집안 어른들이 사탕을 쥐여주며 어르고 달래던 때 같았다.
내가 뭐랬어. 하여간 이 여인은 독설가라니까!
대문이 쾅 닫혔다.
“네가 시집가고 싶은 데로 시집가 버려!”
주육낭은 버럭 소리를 질렀고, 진십삼은 빙긋 웃었다.
“낭자는 원래부터 자기가 혼인하고 싶은 이와 혼인할 사람이었어. 우리가 이랬으면 좋겠다, 저랬으면 좋겠다 한 거지, 낭자가 원한 건 아니었잖아.”
고개를 돌려 진십삼을 쳐다보던 주육낭의 눈에 간식이 든 찬합이 들어오자 더욱 부아가 치밀었다.
“그걸 가져가란다고 진짜 가져오냐!”
주육낭이 손을 뻗어 빼앗으려 하자 진십삼이 얼른 몸 옆쪽으로 숨겼다.
“자네 가져가라고 준 건 안 가져와 놓고, 왜 내 걸 빼앗으려고 이래.”
주육낭이 진십삼에게 주먹을 날렸다.
“우릴 갖고 노는 게 그리 재미있어?”
진십삼은 씩 웃으며 간식이 든 찬합을 소중히 챙겼다.
“낭자가 우리를 갖고 논 게 아니야. 우리가 우릴 갖고 논 거지.”
진심삼은 걸음을 내디디며 말을 이었다.
“낭자가 그러는데 병이 나으면 사람이 달라진대. 시간이 꽤 흘렀으니, 나도 정상으로 돌아가야지.”
“우린 저 애를 위해서······.”
“자네는 어떤지 모르겠지만.”
진십삼이 걸음을 멈추고 돌아보며 말을 이었다.
“난 아니야. 낭자를 알고 낭자의 은혜를 입었어. 낭자와 서로 알아가면서 내가 낭자의 친구란 생각이 들었지. 도와줘야 할 것 같고, 내가 도움이 될 것 같았어. 도와주면 낭자가 좋아하고 고마워하겠지. 그러니 내가 돕는 건 낭자가 아니야. 바로 나 자신이지. 나도 은혜라는 걸 베풀어 보고 싶어. 전에는 본인이 한 일에 스스로 감동하는 이들을 비웃었는데, 병이 나아 정상인이 되고 보니, 나도 그 꼴이더라고.”
주육낭은 걸음을 멈추고 진십삼을 쳐다봤다. 진십삼은 한숨을 내쉰 후 손에 든 찬합을 던지려다가 다시 손에 꼭 쥐었다.
“됐어. 내가 낭자의 마음속에서 아무것도 아니라는 걸 스스로 인정하려니 좀 잔인하긴 하지만, 그렇다고 진짜 어린애처럼 매달리며 떼를 쓸 순 없는 노릇이지.”
진십삼이 씩 웃었다.
“가자.”
진십삼은 천천히 마차에 올라 휘장을 내렸다. 마차가 꾸물꾸물 움직여 차츰 멀어질 때까지, 주육낭은 그 자리에 선 채 미동도 않고 있었다.
주육낭은 고개를 돌리고 굳게 닫힌 저택의 대문을 쳐다본 다음, 손가락을 구부려 휘파람을 불었다. 한쪽 옆에서 버들잎을 먹고 있던 말이 즉시 다가왔다. 훌쩍 몸을 날려 말에 올라탄 주육낭은 질풍처럼 말을 내달렸다.
정교랑의 대청은 여느 때와 다름없이 조용했다. 조심스레 다구와 쟁반을 정리해 밖으로 나온 시녀와 반근은 회랑 아래에 멍하니 앉았다.
“대체 무슨 일인데?”
기다리다 지친 금가아가 냉큼 다가와 소리 죽여 물었다. 말을 안 하고 있을 땐 그래도 괜찮았는데, 말이 나오자 반근은 또다시 눈물이 나왔다.
“도련님들이 잡혀가셨어.”
금가아가 화들짝 놀라 소리쳤다.
“왜?”
“탈영병이었거든. 이미 감옥에 갇히셨어.”
금가아에게 감옥은 무시무시한 곳이었다. 지난번 서무수 등이 감옥에 들어갔다 나왔을 때, 몸에 남아 있던 상처를 보며 몸서리친 기억이 생생했다. 진 공자가 뒤에서 힘을 써 줬는데도 그 정도였으니 소름이 끼칠 수밖에.
“그럼 방금 진 공자께서 계실 때, 왜 도와달라고 안 하신 거야?”
금아가가 무언가 떠오른 듯 소리쳤다. 시녀와 반근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오는 내내 정교랑은 말이 없었다. 신선거에 들렀을 때도 오 관리인을 만나 서무수가 잡혀간 과정을 물었을 뿐이었다.
“사실 그리 큰일은 아니야. 살인이나 방화처럼 엄청난 일도 아니고, 벌써 한참 된 일이니까. 전장에서 도망친 것도 아니고, 도련님들이 무슨 조정 중신이나 이름난 명장도 아니잖아. 일개 졸병이었다가 싸움이 벌어져 도망쳤을 뿐이야. 조정 대신들이 신경 쓸 리 없어. 사람을 찾아가 사정을 설명하면 아무 일 없이 무마될 거야.”
시녀의 말에 반근과 금가아가 시녀를 쳐다봤다.
“정말?”
두 사람이 기대에 찬 눈빛으로 물었다. 시녀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렇다니까. 육공자 혼자 나서도 충분히 해결할 수 있는 일이야. 유 교리 때와는 비교할 수도 없이 간단한······.”
시녀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안에서 정교랑의 목소리가 들렸다.
“봐. 아씨께서 벌써 대책을 세우셨나 보네.”
시녀가 소곤거리며 자리에서 일어나 안으로 들어갔다. 반근과 금가아도 얼른 문가로 다가갔다.
“출타해야겠어.”
“네. 곧장 외숙을 찾아가시겠어요? 아니면 육공자께 가시겠어요?”
“외숙부님한테 가야지. 넌 너희 노태야께서 돌아오셨는지 알아봐.”
장 노태야도 뵙겠다고? 시녀가 눈을 동그랗게 뜨고 허리를 곧추세웠다. 장 노태야께서 나서실 정도란 말이야?
지금껏 숱한 어려움 속에서도 장 노태야를 찾아가겠다고 한 일은 없던 아씨였다. 그런데 이 별것도 아닌 탈영병 일에 장 노태야의 도움을 청한다?
그리 간단한 일이 아니었나?
* * *
안에서 우당탕거리는 소리가 저택의 마당까지 새어 나왔다.
“부인, 그만하시오! 그만!”
사내가 나지막이 소리치는 목소리도 들렸다. 마당에 있는 여종과 몸종은 이미 익숙한 광경인 듯 신경도 안 쓰고 각자 할 일을 하러 갔다.
“대답해. 당신이 그런 거 아니야?”
동 낭자는 한 손에 도자기를 높이 들고 한 손으로 향칠에게 삿대질을 했다. 매섭게 소리소리 지르는 동 낭자의 눈은 빨갛게 충혈되어 있었다.
대청 안은 난장판이었다. 화분대며 깨진 도자기 파편 등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그게 무슨 말이오! 내가 그랬으면, 이리 서둘러 달려와 알렸겠소? 다들 죽든 말든 내버려 두지!”
향칠은 억울하다는 얼굴로 버럭 소리를 질렀다.
“그리고 어쨌거나 내 형제기도 한데, 내가 그런 일을 했겠소?”
동 낭자가 냉소를 지었다.
“어떻게 그런 일을 하냐고? 진작부터 하고 싶어 안달이었잖아. 서 오라버니를 죽여야 당신이 발 뻗고 자지 않나? 우리 집에서 쫓겨날까 걱정도 안 하고? 향칠, 분명히 말하지만, 서 오라버니가 아니었으면 당신 같은 인간은 내쫓아도 진작 내쫓았어!”
사내로서 참고 넘길 수 있는 말이 아니었다.
“나도 분명히 말하지만, 날 내쫓더라도 서 형님은 당신 안 쳐다봐!”
향칠도 얼굴이 붉으락푸르락하며 버럭 소리쳤다. 휙 소리와 함께 동 낭자 손에 있던 도자기가 허공을 날았다. 향칠은 잽싸게 몸을 피했고, 문밖으로 날아간 도자기는 바닥에 떨어져 산산조각이 났다.
“나랑 당장 관부로 가. 당장 관부로 가자고! 내가 가서 물어볼 거야. 당신이 한 일이 맞는지, 아닌지! 당신이 한 일이면 당신 절대 용서 안 해!”
동 낭자가 눈물을 쏟으며 향칠의 멱살을 잡고 소리쳤다. 물론 향칠이 순순히 응할 리 없었다.
“무슨 억지를 부리는 거요!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
향칠이 억울하다는 듯 씩씩거렸다. 두 부부는 대청에서 밀고 당기며 실랑이를 했다.
“아니, 사람을 잡아도 분수가 있지! 그 사람들이 경성에 와서 우릴 찾아오지 않은 것도 내 잘못이고, 경성에 왔다가 잡혀간 것도 내 잘못이라니! 이건 뭐 죄다 내 잘못이잖아! 사람을 이렇게 무시해?”
“웬 소란이냐!”