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34
교랑의경 234화
밖에서 노인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뒤엉켜 싸우던 부부가 밖을 쳐다봤다. 갈색 옷을 입은 노인이 침통한 얼굴로 서 있었다.
“아버지.”
동 낭자는 향칠을 밀치고 달려가 노인의 팔을 붙잡으며 대성통곡을 했다.
“아버지, 서 오라버니 형제들이 잡혀갔어요!”
향칠도 밖으로 나왔다.
“아버님, 방금 소식을 들었는데 강림 형님네가 잡혀갔답니다. 탈영죄로요.”
향칠이 난처한 표정을 지었다.
“그 사람들이 탈영한 걸 누가 알아? 관부에서 그 사람들을 신경이나 써? 그 사람들이 누군지 누가 아냐고! 관부 사람들이 밥 먹고 할 일이 없어서 그 사람들을 잡아갔겠어? 차라리 도적을 잡는 게 더 도움이 되지.”
동 낭자는 울고불고하며 삿대질을 했다.
“당신 짓이야. 당신이 남몰래 관부 사람들을 부추긴 게 틀림없어! 당신 말고, 서 오라버니네 형제가 누군지 아는 사람이 어디 있어!”
“내가 무슨 수로? 내가 관부에 가서 잡아가라고 하면 잡아가? 그리고 형님들을 찔러서 나한테 좋을 게 뭔데?”
향칠도 씩씩거렸다.
“뭐가 좋냐고?”
동 낭자가 다시 향칠에게 달려들었다.
“서 오라버니가 있으면 내가 당신이랑 이혼할 거 아냐! 서 오라버니만 있으면 당신은 없어도 그만이야!”
“서 형님 끌어들일 거 없어. 지금 당장 나가 주지!”
향칠이 버럭 소리를 지르며 동 낭자를 뿌리쳤다.
“입 다물어라!”
동 노야갸 호통을 치며 굳은 얼굴로 동 낭자를 나무랐다.
“망할 것, 그걸 말이라고 해!”
동 낭자는 손으로 얼굴을 가리고 돌아서서 통곡했다. 향칠의 눈에 언뜻 기쁜 눈길이 스쳤지만, 향칠은 곧 표정을 가다듬었다.
“어디서 그런 말을 해? 네 지아비고, 애들 아비가 되는 사람이 아니냐! 엄연히 혼례를 올리고 정정당당하게 동씨 가문으로 들어온 사람이야. 왜 아무 근거도 없이 생사람을 잡아!”
동 낭자는 얼굴을 가린 채 흐느껴 울기만 했고, 향칠은 고개를 숙였다.
“물론 근거가 있다면, 나 역시 널 용서치 않을 것이다!”
노인은 돌연 향칠에게로 화살을 돌렸다. 향칠은 뜨끔하며 고개를 들어 노인을 쳐다봤다.
“아버님, 아버님도 절 의심하세요?”
향칠이 섭섭하다는 투로 물었다.
“일이 너무 갑작스럽지 않느냐. 경성으로 와 지금껏 아무 일 없이 지내다가, 우리와 다시 만나자마자 잡혀가다니.”
노인이 향칠을 뚫어져라 쳐다보며 말했다.
“칠낭, 예전의 원한을 훌훌 털어버리는 게, 그리 쉬운 일은 아니지 않느냐.”
향칠이 쓴웃음을 지었다.
“아버님까지 그리 말씀하시니, 더 이상 드릴 말씀이 없습니다.”
“아버지, 서 오라버니가 잘못되면 저도 못 살아요!”
동 낭자가 울며 소리쳤다.
“입 다물어!”
노인은 동 낭자를 보며 호통쳤다.
“누가 그들이 죽도록 내버려 둔다 했느냐?”
노인이 돌아서며 말을 이었다.
“관아로 가서 확실히 물어보자!”
동 낭자는 얼른 네 하고 대답하며 노인을 따라나섰다.
관아로 간다고······. 향칠은 가슴이 덜컥 내려앉았지만 이렇게 된 이상 딱 잡아떼는 수밖에 없었다. 익명으로 보낸 투서이니 의심이 가더라도 증거가 없을 터였다.
향칠도 두 사람을 뒤따라갔다.
“유규!”
같은 시각 경조부 관아의 순성원에서 들린 고함 소리에 모두가 고개를 돌렸다. 어두운 안색의 경조부 부원 대인이 성큼성큼 걸어 들어왔다.
“부원 대인께서 여기까지 어쩐 일이십니까.”
유 대장은 나른한 듯 탁자를 한쪽 옆으로 밀치고 느릿느릿 일어나며 예를 표했다. 부원 대인은 예를 받지도 않은 채로 바짝 다가갔다. 표정이 일그러져 있었다.
“그렇게 할 일이 없어? 얌전히 순찰이나 돌 것이지, 탈영병을 왜 잡아!”
부원 대인이 나지막이 호통을 쳤다.
유 대장이 조소 어린 눈길로 웃음을 터트렸다.
이럴 줄 알았지. 원칙을 지킨다고? 벌써 뒷배를 찾았으면서 원칙은 무슨!
“살인 사건이 얽힌 탈영병들이라 비적에 못지않습니다. 그런 놈들을 체포하는 건 제 직무입니다.”
부원 대인은 여전히 조소 어린 눈길을 짓고 있는 유 대장을 쳐다보았다.
“자네에겐 체포할 책임이 있는 건 맞아. 하지만 내겐 가부 결정 권한이 있어. 조사해 보니 일곱 명의 죄명이 분명치 않더군. 그만 석방하게.”
유 대장이 발끈했다.
“부원 대인! 문서에 똑똑히 쓰여 있는데 어찌 진실을 외면하십니까!”
유 대장이 탁자 위에 놓여 있던 문서를 들어 탁탁 치자 부원 대인이 보며 씩 웃었다.
“그래서 내 명에 불복하겠단 건가? 순성갑기의 일개 대장 따위가 오품 부원한테 따지고 드는 게야?”
문관과 무관의 차는 현격했고, 무엇보다도 좌천되는 바람에 지위가 낮아진 유 대장이 자신보다 한참 위에 있는 문관에게 대드는 건 절대적으로 승산이 없었다.
원칙 좋아하네! 유 대장은 눈을 부릅뜬 채 이를 갈았다.
그때 문밖에서 누군가가 소리쳤다.
“대장, 병부에서 문서가 내려왔습니다!”
소교(小校) 하나가 문서 꾸러미를 받쳐 들고 소리치며 달려왔다. 그 말에 유 대장의 얼굴엔 화색이 돌았고 부원 대인은 멈칫했다.
무슨 문서가 내려왔단 거지? 설마······.
한 가지 가능성이 떠오른 부원 대인의 안색이 싹 변했다. 이미 문서를 펼친 유 대장이 웃음을 터트렸다.
“부원 대인.”
유 대장은 뒤돌아 손에 든 문서를 흔들었다.
“저 같은 순성갑기의 일개 대장 따위는 대인께 따질 수 없겠지만, 병부 관청에서 판결 문서가 내려왔습니다. 의심 가는 게 있거든 병부에 가서 따지십시오!”
보잘것없는 탈영병 때문에 병부시랑씩이나 되는 인물이 나서다니, 뭔가 수상하잖아! 역시 그랬군. 거물들이 뒤에서 힘겨루기를 하는 게야.
이렇게 된 이상 이대로 무마시킨 힘들겠군. 저들 뜻대로 하게 내버려 두는 수밖에.
얼마 전 서북 전선의 일로 왕보당(王步堂)이 물러나고 유준(劉俊)이 처형된 일이 떠올랐다. 그 이후 지금까지도 조정에서는 서북 군영의 일로 논쟁이 끊이지 않았고, 금방이라도 싸움을 벌일 태세였다.
일개 경조부 부원은 천자 앞에서 상소를 올리는 조정 대신들과 비교가 되지 않았다. 쓸데없는 일에는 연루되지 않는 게 상책이라는 원칙에 따라 일이 커지는 걸 막고자 했을 뿐이지, 뒤엉켜 싸울 생각은 전혀 없었다. 더구나 진짜 칼이 오가는 싸움 아닌가.
“그렇다면 병부 소관이니 나도 더 이상 묻지 않겠네.”
깔끔하게 말을 자른 부원 대인은 문서도 살피지 않은 채 곧장 뒤돌아 나갔다. 유 대장은 퉤 하고 침을 뱉었다.
“하여간 문인들이란. 발 빼는 솜씨 하나는 기가 막히다니까.”
문서를 쳐다보는 유 대장의 얼굴에도 의혹이 번졌다.
“어쩌다 진짜로 허락한 거지?”
그저 찔러나 보자는 심산으로 문서를 올린 터였다. 서북의 작은 군영에서, 그것도 일개 보루에 주둔하던 병사가 도망친 일이었다. 이치대로라면 병부에서 거들떠보지도 않는 게 맞았다.
근데 외면을 안 했단 말이지? 게다가 이렇게 잽싸게 움직였다고?
유 대장은 고개를 가로저었다. 이럴 줄 알았다니까. 죄다 원칙을 안 지키고 있어.
한편 병부 관청의 한 방에서는 하급 관리가 홍포를 입은 관원에게 차를 올리고 있었다.
“대인, 정말 탈영병 일에 개입하시려고요?”
하급 관리가 나지막이 물었다.
홍포를 입은 관원은 차를 단숨에 비웠다. 전차(煎茶)의 정수는 한입에 털어 넣어 빠르게 온몸으로 퍼져나가게 하는 데 있었다.
“그자들 때문은 아니지.”
관원은 찻잔을 내려놓고 천천히 말했다. 네모지고 커다란 얼굴에 단정한 차림새의 관원에게선 높은 자리에 있는 자의 위엄이 느껴졌다.
“탈영병들이 너무 제멋대로 날뛰고 있어. 감히 경성으로 도망쳐 오다니. 서북 군영에선 대체 일을 어떻게 하는 거야! 엄히 조사해야 한다!”
이것 때문이었군. 하급 관리는 바로 알아들었다.
“왕보당이 파면되었다고는 하나 그 뿌리는 아직 건재해.”
홍포를 입은 관원은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고가 놈은 어떻게든 왕보당을 복권시키고자 애쓰고 있지. 전투에서 졌고 군의 기강도 흐트러졌다. 엄히 조사해야지, 그냥 넘어갈 순 없는 노릇이야!”
하급 관리가 고개를 끄덕였다. 조사를 당해낼 관료는 이 세상에 없었다. 핵심은 조사할 기회를 잡느냐는 데 있었다.
하급 관리는 그래도 미심쩍은지 고개를 숙이고 문서를 쓱 쳐다봤다.
문서는 급하게 쓴 티가 역력했다. 대필을 시키긴 했지만, 내용을 읊어준 무장이 명석하지 않아서인지 어딘지 모르게 조리가 없어 보였다.
이 글 속에 언급된 세 글자를 대인께서 제대로 보신 건지 모르겠네······.
“대인, 탈영병들이 태평거에 숨어 있었답니다.”
하급 관리가 못 참고 입을 열었다. 홍포를 입은 관원은 이미 눈을 감은 채 정신을 가다듬고 있었다.
“어디 숨어 있었든 무슨 상관이더냐. 태평거라······.”
대수롭지 않게 여기던 관원이 돌연 말을 끊으며 눈을 부릅떴다.
“태평거?”
하급 관리가 고개를 끄덕이며 문서를 보여 주었다.
“아니, 이런······.”
문서를 낚아채 자세히 들여다보던 관원의 낯빛이 미묘하게 변했다.
역시 주의 깊게 안 봤군. 탈영병과 앞으로의 계획에만 너무 집중한 게야. 하급 관리가 근심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태평거는 진(陳) 대인과 연줄이 있는 듯했습니다.”
하급 관리가 나지막이 말했다.
“유규 이 자식! 어찌 이리 경솔해!”
홍포를 입은 관원은 문서를 탁자 위로 내팽개치며 벌떡 일어섰다가 도로 앉았다.
“관두자. 이렇게 된 이상, 지켜보는 수밖에.”
“그랬군.”
동 노야가 중얼거렸다.
“유 대장의 손에 넘어갔던 거였어.”
“유 대장이 병부에 고한 거지. 아주 오래전에 서북에서 내려온 문서를 지금까지 기억하고 있었지 뭐요. 적을 죽여 나라에 충성할 순 없지만, 변절한 장병들은 기필코 없애겠다는 각오였지.”
거기까지 말한 말단 관리가 입을 삐죽였다.
“유 대장이 저 잘난 맛에 나선 거 아니겠소이까. 누가 이런 일을 시키겠냐고.”
“아무튼 누가 고발해서 이렇게 된 거잖아요.”
동 낭자가 다급한 목소리로 끼어들었다. 말단 관리가 동 낭자를 힐끔 보며 미소를 지었다.
“조카님, 고발이 들어왔다고는 하나 어디까지나 말뿐이지. 그런 탈영병 조무래기들의 일에 누가 신경이나 써?”
말단 관리는 감히 헤아릴 수조차 없다는 말투였다. 동씨 부녀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윗선에서 끼어든 거죠.”
말단 관리가 손가락으로 위쪽을 가리켰다.
“부원 대인께서 살펴 주고 싶으셔도 역부족이에요.”
그리 심각하다고? 동씨 부녀가 흠칫 놀란 표정을 지었다.
두 사람의 뒤에 서 있던 향칠도 놀란 표정을 짓긴 했지만, 그보다는 주체할 수 없는 기쁨에 얼굴 근육까지 씰룩거렸다. 향칠은 옆으로 늘어뜨린 손으로 주먹을 꽉 쥐며, 마음속 흥분을 가까스로 억눌렀다.
이 세상에 믿을 사람 하나 없다고 가르쳐 준 게 누군데! 보잘것없는 익명의 투서가 그 일곱 놈을 사지로 몰아넣을 줄이야! 허점도 전혀 없이 이리 완벽하게!
이미 병부에서 나섰고 순성갑기의 대장이 비분강개하여 나선 꼴이니, 성문이나 지키는 말단 관리를 떠올릴 사람은 없었다. 이 하찮은 말단 관리가 당긴 불씨라고 믿을 사람이 어디 있으랴. 그 불씨는 바람을 타고 거센 불길이 되어 타올랐다.
운이 좋아도 너무 좋았어! 하늘이 무심하지 않으시네!
그러게 누가 경성으로 오래? 저 죽을 길 찾아온 게지!
그래, 죽어라! 내 자릴 노리고 내가 가진 걸 빼앗으려 들었으니 죽어야지!
“탈영의 죄가 이 정도로 무겁진 않지 않나? 우리가 돈을 낼 테니 보석은 안 될까?”
동 노야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물었다.
“돈이요? 이건 돈 문제가 아니오.”
말단 관리가 웃으며 말했다.
“노야, 저들은 돈이 없는 줄 아시오?”
“그 사람들한테 무슨 돈이 있어요?”
동 낭자가 말을 빼앗자, 말단 관리가 껄껄 웃었다.
“그 사람들, 가진 건 돈뿐이야. 태평거와 신선거의 주인이니, 돈밭에 구르는 거나 다름없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