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44
교랑의경 244화
옆쪽 감방에서 또 누군가가 끼어들었다.
“며칠 더 먹으면 이제 아마 못 먹을 거요. 여긴 다 판결을 기다리는 사람들뿐이지. 판결이 나면 풀려나서 계속 맛있는 밥 먹는 거고, 유배형을 받아 노역하러 가면 이만한 밥도 못 먹지 않겠소? 그도 아니면······. 죽기 전에 마지막으로 거하게 한 상 먹을 테고. 이후론 맛있는 밥이든 쉰밥이든 구경도 못할 거요.”
서봉추 외에 다른 이들도 전부 밥그릇을 가져가 밥을 퍼먹었다. 바닥에 앉기도 하고 쪼그려 앉기도 하면서 고개를 박은 채 묵묵히 먹기만 했다.
옆쪽 감방에 있던 사람의 말은 계속해서 들려왔다.
“댁들은 대체 뭐 하던 사람들이오? 엄청난 일로 엮여 들어왔지? 여기까지 들어온 신세인데 때리고 고문하기는커녕 욕 한번 하지 않으니, 원······.”
“댁들이 말 안 해도 알겠소이다. 댁들 같은 사람이 제일 위험하지. 아무 일 없거나 정말 큰일을 저지른 거거든.”
사내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발걸음 소리가 들리더니 맛있는 냄새가 훅 끼쳤다.
“어이, 거기. 그거 먹지 마라.”
옥졸이 또 다른 나무통 하나를 내려놓았다. 맛있는 냄새에 이끌려 일제히 고개를 돌리자 양고기로 가득 찬 통이 보였다.
서봉추가 와, 하는 탄성을 내뱉고는 달려들어 커다란 갈빗대 하나를 집어 들었다.
“어이, 어이. 일단 먹지 마시오. 그, 그거 목 잘리기 전 마지막 밥 아니오?”
옆쪽 감방에 있는 이가 소리쳤다. 그 말에 우르르 모여들던 다른 형제들도 멈칫했다. 하지만 옥졸은 별다른 말 없이 곧장 뒤돌아 나갔다.
“아닐 거요. 그렇다면 말을 했겠지.”
옆쪽 감방에 있던 이가 또다시 서봉추 쪽을 보며 말했다. 어두컴컴한 감방인 데다 수염이 덥수룩하고 땟국물까지 줄줄 흘러 표정을 확인할 순 없었지만, 다들 놀랐다는 걸 짐작할 수 있었다.
“어이, 댁들은 뭐 하는 사람들이오? 뭔데 이런 특별 대우를 받아?”
서봉추 등은 대꾸하지 않았다.
“그래요, 특별 대우 고맙소. 기왕이면 맛좋은 술도 한잔 주시구려.”
서봉추가 서둘러 자리를 뜨는 옥졸을 향해 두려움을 떨치며 소리쳤다. 다른 형제들도 따라 웃었다.
“그래요. 기왕이면 술도 한잔 주시오.”
형제들이 양고기를 들어 우걱우걱 먹었다. 범강림은 갈빗대 두 개를 들더니 벽 쪽으로 가져와 서무수에게 내밀었다.
“자.”
범강림이 옆에 앉아 우걱우걱 먹기 시작했다. 서무수는 받기만 하고 먹지 않았다.
“왜 그래? 한 번 죽다 살아났으면서도 겁나?”
범강림이 웃으며 물었다.
“겁나는 거 아닙니다.”
서무수는 한숨을 토하고 손에 든 양고기를 흔들었다.
“어차피 곧 결론이 날 텐데 겁날 게 뭐 있습니까. 다만 밖에서 많이 걱정하고 초조해할 누이가 걸립니다. 우리가 죽으면, 그 자존심 강한 성격에 평생 상처로 남을 텐데. 그걸 생각하면 마음이 꽉 막힌 것 같소. 누이한테 이런 폐를 끼치다니······.”
범강림은 고기를 먹으며 한동안 침묵을 지키다가 한숨을 토했다.
“다 운명이지.”
진 노태야는 벌써 마당을 몇 번이나 돌았다. 얇은 옷을 입은 등은 벌써 땀으로 흠뻑 젖어 있었다.
“노태야, 좀 쉬었다 하세요.”
뒤따르던 노복이 말했다. 진 노태야는 걸음을 멈추고 지팡이를 건넨 다음 한숨을 내쉬었다.
“노야는 돌아왔느냐?”
노복이 옆에 있던 사환에게 묻자 사환이 얼른 뛰어갔다가 곧 돌아왔다.
“돌아오셨습니다.”
진 노태야는 별다른 표정 없이 가만히 서서 손으로 허리를 두드렸다.
“노야를 모셔 올까요?”
노복이 물었다. 진 노태야는 고개를 가로젓고 잠자코 있었다.
“노태야, 노태야.”
또 다른 사환이 달려왔다.
“교랑 아씨께서 오셨습니다.”
진 노태야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했다.
“결국 왔구나.”
진 노태야가 혼잣말을 했다.
한편 서재에 있는 진소도 속으로 같은 말을 했다. 거기에 부친보다 한마디 더 덧붙이면서.
빨리도 왔군!
오늘 아침에 결론이 난 일을 벌써 알았다고? 진소는 이 정보를 아는 자가 열 명이 넘지 않을 거라고 확신할 수 있었다. 그 자리에 있던 이들은 전부 보통 신분이 아닌데, 저 여인은 어디서 이리 빨리 정보를 알아낸 걸까?
진(秦)씨 가문? 오늘 진 시강은 비번이었는데······.
동 내한? 동 내한은 죽었다 살아난 뒤로 금석을 끊는 대신 도가에 더욱 심취해 있었다. 자신의 목숨을 살린 건 도교 이 진인이 직접 사사한 제자라 들었기 때문이었다. 그건 신선과 인연이 있다는 뜻이었다.
동 내한은 건강을 회복한 후에도 병가를 취소하지 않고 계속 집에 머물렀다. 요양을 위해서가 아니라 수양을 위해서.
주씨 가문은 고려할 필요도 없다. 중서문하성에도 못 들어오는 처지인데 하물며 황궁 내전은 어림도 없지.
저 여인이 경성에서 또 다른 거물을 알고 있나? 그게 아니라면, 내가 괜한 생각을 하는 걸지도 모르지.
사실 저 여인은 그저 도움을 청하러 온 것일 수도 있다. 며칠 전만 해도 사소한 일이라 여겨 주씨 가문에 부탁했지만, 오늘이 되도록 해결이 안 되고 있으니 날 찾아온 것이리라.
차를 올린 시녀가 물러간 후, 서재에는 두 사람만 마주 앉아 있었다.
“송구하게도 불쑥 찾아왔습니다. 오라버니들의 목숨이 걸린 일이라서요. 대인께서 살펴 주세요.”
정교랑은 바로 본론을 꺼냈다.
역시 내가 괜한 생각을 한 거였어. 진소는 고개를 가로저으며 자조적으로 미소를 지었다.
“나도 들었소.”
진소는 굳은 얼굴로 한숨을 내쉬었다.
“날 믿었기에, 일이 터진 후에도 날 찾아오지 않았겠지. 나도 도와주려고 했소이다. 다만 조정의 군사에 관한 일이고, 국법이 지엄하잖소.”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였다.
“알아요. 탈영병에 관한 일은, 얽힌 사람이 많죠. 제 오라비들을 처형하는 게 빠르고 깔끔할 거예요. 서둘러 군에 관한 일을 조사해야 하니, 지금 대인께서도 많이 초조하실 테고요.”
진소의 표정이 미묘하게 변하더니 곧 쓴웃음을 지었다.
“조정의 논쟁에 대해 낭자도 소식을 들은 거요?”
정교랑은 진소의 질문에 대답하는 대신 반문했다.
“그럼 패배를 인정하시겠어요?”
“패배를 인정해? 그럴 순 없지. 탈영병은 국법에 따라 처형하는 게 마땅하오. 관리 소홀 역시 엄히 조사해야 하지. 군의 기강이 해이해졌으니 탈영병이 나온 게 아니겠소. 조사하지 않으면 후환을 대비할 수 없소.”
진소는 진지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왕보당 일파는 군주를 기만하고 사사로운 이익을 위해 국사를 내팽개친 채 알력 다툼을 벌였으니 죽여 마땅하오. 이번 서북 전선의 패배는 오랫동안 쌓여 온 폐단 때문인데, 여전히 왕보당을 두둔하며 재기를 도우려는 자가 있소. 기자(箕子)는 주왕이 상아 젓가락을 쓰는 걸 보고 은나라가 망할 것임을 알았지. 왕보당 등은 군주를 기만하며 제멋대로 날뛰었소. 서북 전선에서 사사로운 이익을 취하며 군수품을 착복하고, 패배를 숨긴 채 승리라 고하며 오랫동안 조정을 속여 왔지. 그런 이들을 두둔하고 죄를 눈감아주는 것은 나라를 버려두는 일과 다름없소! 천자께서 그런 자들에게 속으시는 걸 지켜볼 순 없소이다. 그런 사특한 자는 기필코 제거해야 하오!”
점점 말투에 힘이 들어가더니, 방금 전 어전에서 맞서 싸울 때와 같은 목소리로 돌아갔다.
고 통사는 염치가 없었다. 막무가내로 생트집을 잡으며, 말로 이길 수 없으면 이것저것 붙잡고 늘어지면서 왕보당이 군주를 기만했다는 죄를 인정하지 않았다. 나이든 노신임을 내세우거나 외척의 신분임을 내세워 거리낌 없이 행동했다. 황제 앞에서 주청할 자격이 안 되는 이들을 수하로 데리고 있다 보니, 커다란 조당에서 홀로 맞서 싸우는 일이 많았다.
진소는 심호흡을 몇 번 하고, 무뚝뚝한 표정으로 앉아 있는 어린 낭자를 바라봤다. 자신이 추태를 보였음을 깨달은 진소가 가볍게 헛기침을 했다.
“이 일은, 낭자처럼 어린 사람이 나설 일이 아니오.”
진소의 말에 정교랑이 예를 표했다.
“대인의 진심은 잘 알겠습니다.”
정교랑이 고개를 들었다.
“다만 오랜 폐단이 쌓인 일이라면, 몇 사람을 죽인다 한들 도움이 될 게 없죠. 목숨을 살려 뒀다가, 공을 세워 속죄하게 하면 어떨까요?
진소가 가볍게 기침을 했다.
“군법을 어겼으니 죽여 마땅한 죄요. 낭자, 율법을 마음대로 어쩔 순 없소이다.”
“죄를 지었다고는 하나, 사정이 있잖아요. 한 번만 너그러이 용서하고, 아량을 베풀어 주시면 안 될까요?”
“정 낭자.”
진소는 가볍게 기침을 한 후 말을 이었다.
“하늘의 뜻이 지엄하니, 더 말할 것도 없소. 서북 전선의 패배는 모두가 아는 사실이오. 나 역시 좌시할 수 없소이다. 폐하께서 윤허하시면, 조정의 중신이 가서 소상히 조사하고, 사특한 무리의 죄를 물을 거요. 그럼 억울한 이들은 누명을 벗을 수 있겠지.”
“그 자리에 있지 않으면, 주제넘게 나서지 말라(不在其位, 不謀其政)고 했죠. 다만 이해가 안 가네요. 그 억울함을 밝히기 위해, 꼭 사람을 죽여야 하나요?”
진소는 잠시 침묵하며 정교랑을 바라봤다.
“정 낭자, 무릇 천지는 만물이 와서 머물다 가는 곳이요, 세월은 영원한 나그네와 같으니, 덧없는 인생은 꿈과 같다는 시(이백의 ‘춘야도리원서春夜宴桃李園序’)도 있잖소.”
진소는 온화한 표정을 지었다가 곧 굳은 얼굴로 탄식했다.
“누가 됐든 이 덧없는 인생을 살며 바라는 바를 구할 수 있다면, 헛된 삶은 아니라 하겠지.”
“영명하세요, 대인.”
정교랑이 진소를 빤히 보며 말했다.
“그럼, 대인의 뜻은, 꼭 죽여야 한다는 건가요?”
처음부터 끝까지, 정교랑의 질문은 하나였다. 여기서 그만둘 수는 없는지.
실내에 침묵이 흘렀다. 시간이 한참 흐른 것 같기도 하고, 찰나의 순간인 것 같기도 했다.
“그렇소.”
진소가 단호한 표정으로 천천히 말했다.
실내는 다시 침묵에 잠겼다.
가을바람이 창문으로 쏟아져 들어오는 가운데, 어디에선가 피리 소리가 들려 왔다. 아득하면서도 처량한 소리였지만, 마음을 뒤흔들 정도는 아니었다. 풋내기라 손에 익지 않았기 때문이리라.
피리 소리가 뚝 그쳤다.
“십팔랑, 왜 이래?”
진씨 저택의 작은 화원에서 피리를 빼앗긴 어린 낭자가 불쾌한 듯 소리쳤다.
“여기서 불지 말고 다른 데 가서 불어.”
진십팔랑은 잠시 생각하다가 말을 이었다.
“아니, 다른 데서도 불지 마. 오늘 말고 다음에 불어.”
“왜? 맨날 불던 건데 오늘은 왜 안 된다는 거야?”
어린 낭자가 미간을 찌푸리며 진십팔랑을 노려봤다.
“왜 며칠째 외출도 안 하고 교랑 언니네 가서 글씨 쓰는 것도 안 해?”
진십팔랑은 몸을 돌리며 걸음을 옮겼다.
“조부님이 집에서 경서 필사를 도와달라고 하셨어.”
“피리 이리 줘.”
어린 낭자는 진십팔랑의 뒤를 따랐고, 그렇게 둘은 자리를 떴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