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50
교랑의경 250화
다 운명이라고? 동 낭자는 고개를 숙이고 허리춤에 드리운 장식을 살폈다. 금도, 은도, 옥도 아닌 돌을 갈아 만든 것이었다. 동 낭자는 장식을 손으로 쓸어 보았다.
서 오라버니가 자신에게 선물한, 유일한 물건이었다. 아니, 선물했다고 할 순 없지. 강제로 빼앗은 거니까.
동 낭자가 잠시 멍하니 있는 사이, 갑자기 누군가가 달려와 부딪치며 넘어졌다. 동 낭자의 손에 들려 있던 돌 장식이 바닥으로 떨어지며 두 동강이 났다.
“이 녀석들!”
동 낭자가 인상을 쓰며 옆을 쳐다보았다. 어린 두 아들이 겁에 질려 뒤로 주춤주춤 물러섰다.
“어머니, 일부러 그런 거 아니에요.”
아이들이 기어들어 가는 목소리로 말했다. 아이들을 쳐다보던 동 낭자는 결국 한숨을 내쉬며 억지로 웃음을 짜냈다.
“아니다.”
동 낭자는 손을 뻗어 아이들을 양손에 하나씩 잡았다.
“어서 마차 타러 가자. 할아버지께서 우리 데리고 놀러 가신대.”
모친이 화를 내기는커녕 놀러 가겠다고 하자 두 아이는 기뻐 환호하고, 동 낭자의 손을 잡은 채 폴짝폴짝 뛰며 밖으로 나갔다.
분주하게 마당을 오가는 인파 속에서 바닥에 떨어진 돌 장식은 이리 차이고 저리 차여 어디론가 사라졌다.
“그 똥지게꾼 일가가 도망쳤어. 쫓아가서 붙잡아 올까? 아니면 거기서 해치워 버려?”
주육낭이 정교랑을 보며 말했다.
“알아서 해요.”
정교랑의 말에 주육낭은 미간을 찌푸렸다.
“네 일인데 왜 내가 알아서 해?”
정교랑이 손에 든 붓을 내려놓자 시녀가 종이를 펼쳐 그늘진 곳에서 말렸다.
“내 일이라면서, 뭘 그렇게 캐물어요?”
“좀 좋게 말할 순 없어?”
주육낭이 노려보며 대꾸했다. 정교랑이 자리에서 일어섰다.
“내게 좋은 말을 건네지 않는 건 그쪽이죠.”
또 생트집이네! 주육낭은 콧방귀를 뀌며 주먹을 부르쥐었다.
“그럼 진십삼은 너한테 좋은 말 해주냐?”
주육낭이 뒤에서 물었지만, 정교랑은 대꾸하지 않고 서재를 나왔다. 시녀는 오늘 쓴 글씨를 잘 걸어 둔 후 그 뒤를 따랐다.
정교랑의 오랜 습관은 여전히 변함없었다. 글씨를 쓰고 활을 쏘며 낮잠을 자는 생활을 이어 나갔다.
이런 일을 능히 해낼 수 있는 사람은 풍진 세상사를 다 겪은 노인뿐이리라. 그게 아니라면 본인 말마따나 마음이 없어서 그런 걸지도. 그저 할 일을 할 뿐 누군가를 위한 일이 아니니, 아무 감정도 없는 거겠지.
“진십삼이······ 너희 또 은밀히 무슨 짓을 꾸민 거야?”
주육낭이 따라오며 물었다.
“우린 그저, 대화를 나누었을 뿐이에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대화? 무슨 대화를 나눴기에 조정의 일이 뒤바뀐단 말이냐?”
“정말 우습네요.”
정교랑이 주육낭을 힐끔 보며 말했다.
저 눈빛! 그래, 저거야! 당초 정씨 저택에 앉아 있던 바보도 저런 눈빛으로 날 봤었어!
주육낭은 이를 악물며 눈을 부릅떴다.
“마차를 준비해.”
정교랑의 말에 금가아는 네, 하고 마차를 빌리러 나갔다.
“어디 가려고?”
“대장간에요.”
주육낭의 물음에 정교랑이 대답했다. 대장간? 그런 곳엔 뭐 하러?
“넌 그 탈영병들의 일이 조금도 걱정되지 않아? 그 사람들 아직 나오지도 않았잖아. 그렇게 자신만만하단 거야?”
정교랑이 다시 고개를 돌려 주육낭을 쳐다봤다.
“그쪽 아버지가 해결해 주기로 한 거 아니었어요?”
그러니 믿는 거예요. 우리 외숙부님이 곧 해결하실 테니까.
주육낭의 얼굴이 굳어졌다.
“내가 뭐랬어요. 나한테 좋게 말하라니까요.”
정교랑은 한마디 툭 내뱉고는 뒤돌아 가 버렸다.
결국 쓸데없는 말밖에 안 하는군. 아무 필요도 없고, 쓸모도 없는 말. 저 강주 바보가!
주육낭은 이를 갈며 여인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어이, 진십삼이랑 대체 무슨 짓을 한 거냐고!”
주육낭이 정교랑의 뒤를 쫓아갔다.
같은 시각, 진 시강은 막 문을 나서려던 진십삼을 불러 세웠다.
“십삼, 이번엔 또 무슨 일을 꾸민 것이냐?”
진 시강이 물었다.
“무슨 일이라니요?”
진십삼은 이해할 수 없다는 듯 되물었다.
“관청에 몇 번이나 가지 않았느냐.”
진 시강은 아들이 시치미를 떼는데도 아랑곳하지 않고 수염을 쓰다듬으며 말을 이었다.
“또 주씨 가문의 일 때문이더냐?”
진십삼이 웃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네, 아버지. 태평거가 주씨 가문과 관련이 있거든요. 그 탈영병들은 문서상 태평거와 신선거의 주인이잖습니까. 혹여라도 일이 생기면, 주씨 가문도 연루될 수밖에 없죠. 딱히 다른 일을 한 건 아니고, 조정 대인들의 소식을 좀 알아봤을 뿐입니다.”
거기까지 말한 진십삼이 불안한 표정으로 물었다.
“아버지, 제가 아버지께 누를 끼친 건 아니죠?”
진 시강은 고개를 가로저으며 아들을 쳐다봤다.
“누를 끼친 건 없다. 다만······.”
“다만 무엇입니까? 말씀하십시오, 아버지.”
진십삼의 목소리가 사뭇 진지해졌다. 진시강은 아들을 빤히 쳐다보며 이해가 가지 않는 듯 뜸을 들였다.
“대체 어떻게 한 것이냐?”
진 시강이 불쑥 물었다. 밑도 끝도 없는 질문에 진십삼은 멈칫하여 물었다.
“무얼 어떻게 했느냔 말씀입니까?”
영문을 모르는 듯한 아들의 모습에도 진 시강은 아랑곳하지 않았다.
“분명 승부가 날 일이었는데, 왜 갑자기 장강주 선생이 개입하여 승부가 안 나게 만든 거지?”
진십삼이 부친을 쳐다보며 입을 열었다.
“아버지, 제게 물으시는 겁니까?”
진십삼은 눈을 껌뻑이며 진지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제 생각엔 모든 게 폐하의 뜻인 것 같습니다.”
진 시강은 아들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정말 이상하구나. 지난번엔 네가 주씨 가문의 일로 관청에 몇 번 드나들더니, 유 교리가 갑자기 풍질을 얻었지. 이번에도 주씨 가문의 일로 네가 관청을 몇 번 드나들더니, 진소와 고능준이 오랫동안 별러 왔던 일이 갑자기 뜻밖의 방향으로 결론이 났으니······.”
진 시강이 아리송한 표정으로 미소를 지었다.
진십삼도 따라 웃었다.
“아버지, 우연일 뿐입니다. 매일 관청을 드나드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요. 그렇게 따지면 그런 능력이 있는 이가 한둘이 아니잖습니까.”
진 시강도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말이 안 되는 소리지. 우연이라고 할 수밖에는.
“주씨 가문은 운이 좋은 건지, 나쁜 건지.”
진 시강이 고개를 가로저으며 중얼거렸다. 운이 좋다고 하기엔 번번이 사건이 일어났고, 운이 나쁘다고 하기엔 매번 아슬아슬한 위기를 무사히 넘겼다. 그런 생각을 하던 진 시강은 저도 모르게 미소를 지었다.
“그렇게 따지면 넌 주씨 가문엔 행운을 가져다주고, 조정 대신들에겐 불운을 가져다주는 존재로구나. 이러다간 관청 사람들이 너더러 오지 말라고······.”
진 시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십삼은 표정을 바꾸며 말을 잘랐다.
“아버지!”
진 시강도 자신이 실언을 했음을 깨달았다. 내 아들이 조정 대신들에게 불운을 가져다주는 존재라니. 말이 새어 나가기라도 하면, 아들의 벼슬길이 평생 막힐 터인데! 조정 대신은 귀신에 관한 일을 금기시하는 이들이었다.
그런데 벼슬길이라······. 아들의 벼슬길.
진 시강은 진십삼을 바라보았다. 다리가 나아서인지 키도 훌쩍 큰 것 같고, 똑바로 서면 꽤 늠름한 모습이기도 했다.
“십삼, 네가 올해 몇이지?”
진 시강의 갑작스러운 질문에 진십삼이 웃으며 대답했다.
“아버지, 소자 팔월이 지나면 열일곱이 됩니다.”
“열일곱이라, 과거를 치를 때가 됐구나.”
진 시강은 고개를 끄덕였다.
“공부한 내용을 가져와 보거라.”
전에는 진십삼이 불구인 탓에 관직에 나갈 수 없다고 여겨, 과거를 대비한 공부를 하지 않았지만 이제는 사정이 달라졌다. 진 시강의 아들은 준수한 외모에 영민하고 가세도 번듯하니 앞길은 탄탄대로일 터였다.
진십삼이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네, 아버지.”
진 시강은 고개를 끄덕이고, 돌아서는 아들의 모습을 바라보았다.
“십삼.”
진 시강이 다시 아들을 불러 세우자, 진십삼이 돌아봤다.
“정말 네가 한 거 아니지?”
진 시강의 물음에 진십삼은 억울하다는 듯 웃음을 터트렸다.
“아버지! 소자한테 그런 능력이 있겠습니까?”
없겠지. 아들은 관두고 나한테도 없는 능력인데. 진 시강은 또다시 실소를 터뜨리며 고개를 가로젓고는 아들을 향해 손을 내저었다.
사흘 후, 주 노야는 탈영병에 관한 새로운 정보를 알아 왔다.
“사건을 대조 확인했다. 범강림 형제가 사람을 죽이지 않은 게 맞더구나. 그자는 싸우다가 저 혼자 발을 헛디뎌 죽은 거래. 기껏해야 과실 치사 정도지.”
주 노야가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었다.
“그러니 사람을 죽이고 도망쳤다는 죄는 씻게 됐다.”
“그럼 탈영한 죄는요?”
정교랑이 물었다.
“살인죄의 누명을 벗은 마당에 탈영병이든 아니든 알 게 뭐냐. 밖으로 나오면 더 이상 병사가 아니니, 탈영병이고 할 수도 없지.”
주 노야의 표정이 갑자기 굳어졌다.
“망할 유규 놈. 사리 판단을 못 하고, 감히······.”
“유규요? 그 사람이 또 어쨌는데요?”
정교랑이 물었다.
“아니다, 교교. 그 일은 신경 쓰지 마라. 윗선에서 덮는다는데, 일개 대장 나부랭이가 뭘 어쩌겠느냐. 내 따끔하게 혼쭐을 내줄 것이야!”
비록 외조카처럼 쥐도 새도 모르게 사람을 죽이는 건 못 한다지만, 일개 순성갑기 대장 하나를 혼내는 건 쉬운 일이었다.
“그들이 탈영죄를 시인했는데, 서북으로 돌려보내진 않나요?”
정교랑이 물었다. 주 노야가 고개를 끄덕이며 무언가를 말하려는데, 정교랑도 고개를 끄덕이며 먼저 치고 나갔다.
“그 사람 말이 맞아요. 도망친 건 엄연한 사실이죠. 그럼 서북 군영으로 돌려보내도록 하죠.”
주 노야가 멈칫했다.
“그럴 필요 없다, 교교. 이건 아무 일도 아니야. 얼마든지 빼낼 수 있어.”
이 외조카가 날 너무 깔보는 것 같은데?
“아니에요. 서북 군영으로 돌려보내요.”
정교랑의 단호한 말에 주 노야는 다시 멈칫했다. 서북 군영으로 돌려보내려면 경성을 떠나야 할 터. 그들을 내쫓으려던 거였군. 주 노야는 퍼뜩 깨달았다.
하긴, 이런 사고를 쳤는데 여기 붙잡아 두면 뭘 하나. 그들을 구한 일로 체면을 지키고 도의도 다한 셈이니, 안 보고 사는 게 속 편하지. 아주 먼 곳으로 썩 쫓아내는 게 나아.
“그래, 교교. 어떻게 해야 할지 알겠다.”
주 노야는 무슨 심정인지 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정교랑이 고개를 숙여 감사 인사를 올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