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287
교랑의경 287화
마차 행렬이 점점 멀어져 까만 점이 될 때까지, 진 부인은 그 자리에 서서 오래도록 배웅했다.
“부인, 십 리 밖까지 나가서 배웅하지는 않았지만 이 정도면 충분하세요.”
여종이 웃으면서 진 부인에게 말하자 진 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참 이상한 낭자인데, 곰곰이 생각해 보면 퍽 재미있기도 해. 그러니 내 바보 아들이 저리 아쉬워하는 거겠지.”
진 부인은 몸을 돌리고 고개를 들어 성문 위쪽을 올려다보았다. 여종들이 진 부인의 시선을 따라가자, 성문의 꼭대기에 있는 소년의 모습이 희미하게 보였다.
어떻게 저렇게 뒤도 안 돌아보고 가? 왜 한 치의 아쉬움도 없는 거야? 그래도 하루 이틀 안 사이가 아닌데.
함께 잔도 들지 않을 정도로 무시하다가, 정면에서 대놓고 비웃다가, 음으로 양으로 힘을 합치기까지……. 그녀의 눈에는 전혀 달라진 게 없는 걸까?
끝이 보이지 않는 하늘을 올려다보며 진십삼은 작은 한숨을 토했다.
가문이나 인품은 별 차이가 없지, 다 똑같다고 했다. 왜 차이가 없다는 거지? 사람과 사람이 어떻게 같을 수가 있어? 사람과 사람이…….
진십삼은 돌연 성벽을 짚으며 한 걸음 앞으로 내디뎠다.
설마 그 사람이라는 게, 다른 사람이 아닌 자기 자신을 말하는 건가? 사람들이 자신을 어떻게 보고, 어떻게 대하는지.
– 내 세 번째 원칙을 미리 알았더라도, 내가 공자의 다리를 고치게 해 줬을 건가요?
진십삼의 눈앞에 정교랑의 미소가 떠올랐다. 진십삼은 웃으며 고개를 내저었다.
하긴, 다를 게 뭐 있나? 나조차도 남들과 똑같은데!
사실 정 낭자는 다른 이에게 독한 말을 내뱉는 매정한 사람이 아니라, 자기 자신에게 독한 말을 퍼붓는 사람이었다.
진십삼은 뒤돌아 성문을 내려가려 하다가, 어쩐지 발걸음이 떨어지지 않아 다시 고개를 들고 끝없는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까마귀 몇 마리가 시끄러운 울음소리를 내며 지붕 위를 날아갔다.
“이거 놔, 손 떼라고.”
뒤에서 어린아이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진안 군왕이 고개를 돌리자, 내시들의 살뜰한 부축을 받으며 이쪽으로 오는 이황자가 보였다. 이곳 전각은 이미 버려진 지 오래라, 오가는 사람도 없을뿐더러 잡초도 무성하게 자라 있었다.
“아이고, 전하. 어찌 거기에 올라가신 겁니까. 당장 내려오세요. 떨어지면 어쩌시려고 그럽니까!”
내시들이 진안 군왕을 알아보고는 당장 내려오라고 아우성쳤다. 진안 군왕은 그들을 향해 싱긋 웃어 보이고는 난간 사이로 다리를 빼고 여유롭게 다리를 흔들거렸다. 딱히 대꾸하지도, 내려오지도 않았다.
“형님, 여긴 왜 왔어요?”
내시들의 손길을 뿌리친 이황자가 장포를 들어 올리고 환하게 웃으면서 쪼르르 달려왔다. 진안 군왕은 놀라 소리치는 내시들의 말을 무시하고, 손을 뻗어 이황자를 데려다 자신의 옆에 앉혔다.
“우와, 여기서는 아주 멀리까지 보이네요!”
이황자는 전혀 무섭지 않다는 듯, 신이 나서 양손을 휘휘 저으며 외쳤다.
“맞아요. 여기는 황궁에서 가장 멀리 내다볼 수 있는 곳이에요. 어렸을 때도 자주 오고 싶었는데, 같이 와 줄 사람도 없었고, 여길 오라고 허락해 주는 사람도 없었어요. 이젠 다 컸으니까 혼자 올 수 있게 됐지요.”
진안 군왕이 먼 곳을 내다보며 말했다.
“형님은 뭘 보려고 여기에 오는 거예요?”
“나요? 친구를 배웅하러 왔죠.”
이황자의 물음에 진안 군왕이 씩 웃으면서 대답했다.
친구를 배웅하러 왔다고? 황량하고 외진 곳이라 까마귀 말고는 살아 있는 것이 없어 보이는데?
대낮인데도 불구하고, 내시들은 섬뜩함에 몸을 살짝 떨었다.
“전하, 전하. 어서 내려오세요.”
내시들은 더 이상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어떻게든 이황자를 데려가려고 했다. 진안 군왕은 그런 내시들의 모습을 보고는 이황자를 양손으로 훅 들어 올렸다. 갑작스러운 돌발행동에 내시들은 경악하면서 양손으로 얼굴을 가린 채 비명을 질러댔다.
진안 군왕은 내시들의 비명을 들으며 난간에서 여유롭게 폴짝 뛰어내린 뒤, 이황자를 땅에 안전하게 내려주었다.
“형님, 형님. 한 번만 더요!”
이황자가 잔뜩 흥분한 얼굴로 외쳤다.
“한 번 더 날래요!”
다급하게 뛰어온 내시들이 이황자를 진안 군왕으로부터 멀리 떼어놓고는 진안 군왕을 죽일 듯이 노려보았다. 내시들의 무례함에도 진안 군왕은 아무렇지 않은 듯 하하 웃으면서 걸음을 뗐다.
“가자, 가.”
“정말로 갔다고?”
같은 시각, 진(陳)씨 가문에서는 일상복을 입은 진소가 편안한 자세로 앉아 사환의 보고를 듣고 있었다.
“그럼 가짜로 가게? 그 낭자는 체면 차리고 가식 떠는 게 뭔지도 모를걸? 있는 그대로 행동하고 말하는 거지.”
진 노태야가 진소를 흘겨보며 나무라자, 진소가 멋쩍은 듯 웃었다.
“정 낭자를 데려왔을 때도 딱 이맘때였는데, 벌써 이렇게 일 년이 지났네요.”
웃으며 이야기하던 진소는 정교랑이 경성에 온 지 이제야 겨우 일 년이 되었다는 것을 문득 깨달았다.
왜 이렇게 오래 있었던 것 같지? 돌이켜 생각해 보니, 정 낭자가 경성에 들어온 뒤로 조용했던 날이 하루도 없었네.
정교랑 때문에 진소가 놀랐던 일은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다. 진소는 고개를 돌려 진 노태야의 뒤에 세워진 병풍을 쳐다보았다. 병풍 위에 남아 있는 동그라미 몇 개의 흔적이 유난히 선명해 보였다.
사람 목숨. 저게 다 그 여인의 손에 죽은 사람들의 목숨이라지. 정 낭자는 이제 겨우 만 열다섯일 텐데.
확실히 불길한 사람이었기에, 진소는 진씨 가문의 절름발이가 했던 말을 인정할 수밖에 없었다. 내심 꺼리는 게 있었는지, 떠났다는 소식을 듣자 마음이 한결 편해진 게 사실이었다.
돌아가시게나. 가서 좋은 사람한테 시집가고, 지아비를 섬기며 아이들을 가르쳐야지. 그게 보통 여인네들의 삶 아니겠는가.
여기까지 생각이 닿자, 진소는 쓴웃음을 지으며 고개를 저었다.
어린 낭자 하나 때문에 그토록 근심했다니. 신중하고 조심성이 있다고 해야 할지, 겁이 많다고 해야 할지.
“내가 아직 담량이 부족하군.”
진소가 자조적으로 웃었다.
* * *
구월 중순인데도 서북에는 벌써 한기가 엄습했다.
반나절이 다 되어 가도록 서무수는 언덕에 엎드려 있었다. 다리가 저릴 때 즈음, 누군가가 엎드린 자세로 천천히 기어왔다.
“어떻습니까?”
서무수가 속삭이듯 그에게 물었다.
“불구덩이에 아직 열기가 남아 있어.”
범강림이 낮은 목소리로 대답했다.
“한 사람도 남지 않고 모조리 떠나다니, 이유가 뭐지?”
낮게 읊조리던 서무수가 고개를 조금 들어 앞쪽의 산골짜기를 내다보았다.
산골짜기의 나무는 몇 그루를 제외하고는 모두 베어버렸다. 적들의 기습에 대비하고, 수비의 편의를 위해서였다.
멀리서 보니, 천막과 짐들은 그대로였지만 인기척은 전혀 없는 채로 적막하기만 했다. 오직 새들의 메아리 소리만 들려올 뿐이었다.
무언가 떠오른 듯, 서무수가 미간을 찌푸렸다.
“여기서 용곡성(龍谷城)이 그리 멀지 않은데.”
“그게 왜?”
범강림이 물었다.
“용곡성을 기습하기엔 퍽 좋은 위치 아닙니까.”
서무수가 목소리를 최대한 낮춰서 말하자 범강림이 눈을 부릅떴다.
“기습? 복강부(伏江部)의 우두머리가 용곡성에 있어. 그자가 미쳤다고 배반을 해?”
“다른 사람이 미쳤다면요?”
서무수는 무언가를 더 말하려는 범강림을 손짓으로 제지했다.
“일단 돌아가서 대인들께 말씀을 올려 봅시다. 그분들이 결정해야죠.”
두 사람은 언덕을 미끄러져 내려와 한쪽에 세워 두었던 말을 타고 자리를 떴다.
오 리쯤 떨어진 곳에 위치한 영지는 한결 가벼운 분위기였다. 서북까지 가는 길에 큰 어려움이나 고난은 없었지만, 먼 길을 떠나는 것은 그 자체로 사람을 여간 지치게 하는 일이 아니었다.
그래도 목적지까지 수십 리밖에 남지 않았다는 생각이 들자 장병들은 편안한 잠자리와 맛있는 밥을 먹을 상상에 기뻐했다.
“뭐라고? 용곡성이 위험하다고?”
한 지휘관이 눈앞의 두 사내를 보며 표정을 일그러뜨렸다.
지휘관은 행군의 관례에 따라 항상 앞쪽으로 정찰을 보내고 뒤쪽으로 보초를 두었지만, 이는 사실상 형식에 불과했다. 조정의 무장 깃발을 휘날리며 행군하고 있는데, 어느 눈먼 놈이 감히 소란을 일으킨단 말인가.
조금만 더 가면 드디어 요새에 도착하는데, 정찰을 보냈던 두 명이 요새가 위험하다고 하니 지휘관은 기가 찰 노릇이었다.
용곡성은 서북 전선의 가장 큰 요새인지라, 늘 병력을 많이 두고 완벽하게 수비해 온 덕에 서쪽 오랑캐들도 함부로 넘보지 못했다.
“용곡성의 병력이 비어 있다면, 아예 불가능한 건 아니라고 보입니다만.”
서무수의 말에 지휘관은 즉시 호통을 치며 성가시다는 듯 손을 휘휘 저었다.
“네놈이 알긴 뭘 안다고. 썩 꺼지거라.”
“대인, 저희는 용곡성에서 지낸 적이 있어 압니다. 용곡성에 그런 기습 공격이 아주 없었던 건 아닙니다.”
범강림이 말을 덧붙였다. 주위에 있던 군관들이 논쟁을 듣고는 가까이 다가와 물었다.
“뭔데 그래?”
서무수가 고개를 돌리자, 가까이 다가온 사람 중에 주육낭이 보였다. 하지만 주육낭은 모르는 사람을 대하듯 이들에게 눈길조차 주지 않았다.
지휘관이 서무수와 범강림의 말을 옮겼다.
“그럴 리가? 귀순한 번부(藩部:복속한 지방이나 지역을 일컫는 말)의 사람들이 없어졌다고 해서 기습이라 단정하기는 어렵지. 사냥하러 나간 걸 수도 있잖소.”
서무수와 범강림은 자신들이 공연한 생각을 했을지도 모르겠다고 생각했다. 어쨌든 간에 그들이 서북을 떠난 지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으니.
서무수와 범강림은 서로 눈을 마주치고는 고개를 숙이고 물러났다.
“어차피 할 것도 없는데, 일단 가서 확인해 보죠.”
누군가가 불쑥 말했다.
서무수가 목소리를 따라 고개를 들었다. 목소리의 주인공은 주육낭이었다. 그는 여전히 서무수와 범강림을 쳐다보지 않은 채 말을 이었다.
“두 대인께서 모두 계시니, 조심한다고 해서 나쁠 것은 없어 보입니다.”
주육낭은 두 대인이라는 단어에 힘을 주어 말했다.
그가 말한 대인들은 겉으로는 사이가 좋은 것처럼 보이지만, 암암리에 기 싸움을 벌이느라 행군이 진행되는 데 많은 시간을 할애하게 했다. 혹여나 누군가가 이 일을 두 대인에게 보고하게 된다면, 분명 별일 아니었던 일도 커지게 될 터였다.
군관들은 재빨리 논의를 마치고 서무수에게 사람을 데리고 용곡성에 먼저 가 보라고 명했다.
“난 동의할 수 없네!”
유규가 서무수를 노려보면서 외쳤다.
“대인, 이건 다 쓸데없는 짓입니다.”
쓸데없는 짓?
군관 몇 명이 미간을 찌푸렸다.
“그들이 정말 기습을 하러 간 거라면, 이미 멀리 간 지 오래일 겁니다. 우리의 기마부대로 그자들을 따라잡기엔 턱도 없습니다.”
유규가 콧방귀를 뀌면서 말했다.
장거리 이동은 말들의 말굽에 큰 손상을 입혔다. 이제 막 행군을 시작할 때도 아니고, 목적지에 다다르기 직전인 지금으로서는 말들이 빠르게 뛸 수도 없는 상황이었다. 더군다나 그냥 쫓아가는 게 아니라, 다시 되돌아와서 상황을 보고하기까지 해야 하는데.
그걸 못한다면 이 일은 확실히 쓸데없는 짓에 불과했다. 군관들의 표정이 암담해졌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