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
교랑의경 3화
“우리 아씨께서 편찮으시든 말든 무슨 상관이죠? 그리고 의원이 제 병 못 고친다는 말도 몰라요?”
문 안에 선 몸종이 문가에 있는 서슬 퍼런 사내를 보며 따져 물었다. 위축된 기색은 전혀 보이지 않았다.
“병 고쳐 달라고 부탁하는 건 댁들이지 우리가 아니에요. 우리가 뭐 빚진 거라도 있어요? 고치기 싫음 말든가!”
몸종은 콧방귀를 뀌며 문밖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문에서 비켜서요. 남의 집 문 막지 말고!”
지금껏 부친 말고는 누군가로부터 이런 꾸중을 들어 본 일이 없는 사돈댁 대소야는 기가 차서 눈을 부라렸다.
“사돈댁, 그만 고집부리시오. 운랑의 치료가 지체되면, 그게 누구 잘못이겠소?”
노부인이 옆에서 말했다. 사돈댁 대소야는 더욱 말문이 막혔다.
누구 잘못이냐고? 그럼 누이가 이렇게 된 게 사돈댁 대소야 잘못이란 말인가?
“나도 같이 들어가야겠습니다.”
이를 악물고 말했다.
“그건 안 되지. 진랑을 들여보내는 게 나을 것 같소.”
노부인이 말했다.
뒤에 있던 아들이 얼른 앞으로 나서며, 검은 천으로 덮은 관을 들고 있는 네 사내를 재촉해 안으로 들어가려 했다.
“안 됩니다. 두 분은 누이와 한 핏줄이 아니잖습니까. 내 누이이니 내가 같이 들어가는 게 맞죠.”
사돈댁 대소야가 냉소하며 말했다. 저쪽에 있던 정 낭자의 몸종이 몸을 돌려 먼저 들어가며 말했다.
“딱 한 사람만 같이 들어갈 수 있어요. 환자를 본채로 옮긴 후 모두 물러나세요.”
* * *
분명 여름인데도 마당에 들어서니 서늘한 기운이 엄습했다. 나막신을 신은 사돈댁 대소야는 자갈 깔린 길 위의 이끼에 미끄러지기라도 할세라 조심조심 걸었다.
관이 안채로 들어가자 몸종이 얼른 사람들을 내쫓고는 안으로 들어서려는 사돈댁 대소야 앞을 막아섰다.
“밖에서 기다리세요. 저희 아씨께서 치료하실 땐 아무도 보면 안 돼요.”
이런 경우가 어디 있단 말인가! 사돈댁 대소야가 눈을 부라렸다.
대소야는 눈만 부라렸는데 몸종은 손을 양 허리에 대고 고개까지 쳐들며 눈을 부라리더니, 안으로 들어가서는 쾅 문을 닫아 버렸다.
명색이 군자란 사람이 무턱대고 들어갈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더구나 여인의 거처가 아닌가.
방 안에서는 부스럭부스럭 움직이는 소리만 들릴 뿐, 말소리는 들리지 않았다.
정상이 아니야, 무당인지 의원인지.
사돈댁 대소야는 뒷짐을 진 채 마당 안을 서성거렸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야!
노부인 일행도 문 밖을 떠나지 않고 있었다.
“어머니, 말씀하신 게 참입니까?”
아들이 나지막이 물었다.
노부인은 코로 한숨을 내쉬고는 대꾸하지 않았다.
“마님.”
유모가 안절부절못하며 바짝 다가오더니 부채를 펼치고 소리 죽여 물었다.
“이게 잘 될까요? 실패하는 날엔…….”
“실패라니?”
노부인은 작은 나무문을 쳐다봤다. 문 안에는 시선을 가리는 가림벽이 세워져 있어서 내부의 정경이 보이지 않았다. 노부인은 지팡이를 움켜쥐고 잇새로 말을 내뱉었다.
“실패하면 저 돌팔이를 살인죄로 발고해야지!”
외지 출신에 주인과 몸종 딱 둘이다. 낯설고 물선 곳에서 저들이 뭘 어찌하겠는가. 누굴 탓할 필요도 없다. 튀는 행동을 했으니 화를 입는 게지.
사돈댁 대소야가 마당 안을 두 바퀴쯤 돌았을 때, 문이 열렸다.
“사람을 불러 모셔 가세요.”
몸종이 나오며 말했다.
“어떠하냐?”
사돈댁 대소야가 다급하게 물으며 방 안을 살폈다. 관은 그대로 안채 한가운데 놓여 있고, 다른 사람은 보이지 않았다.
이 안에 정말 정 낭자가 있긴 한 건가? 처음부터 저 몸종 혼자 꾸민 짓 아냐?
그 의문에 답이라도 하듯 방 안에서 나막신을 끄는 소리가 들리는가 싶더니 병풍 뒤로 사람의 형체가 나타났다. 여인의 모습이었다. 품이 큰 옷을 입은 관계로 체형이나 나이가 바로 분간되지는 않았다. 여인은 잠시 서 있다가 자리에 앉았고, 곧이어 몸종이 그의 시선을 가렸다.
“이봐요, 사람을 부르라고요.”
몸종이 툴툴거렸다. 자기 윗전을 엿본 일로 기분이 상한 것 같았다. 사돈댁 대소야가 시선을 거두며 물었다.
“치료는 끝났느냐?”
“기본적인 치료는 끝났는데, 보조 약재가 필요해요.”
몸종이 대답했다.
우악스러운 여인 넷이 아씨를 침상 위로 옮겨 놓고 자리에서 물러났다. 노부인과 사돈댁 사내들이 침상에 있는 여인을 에워싸고 바라봤다. 수의를 입은 여인은 새끼줄에 손과 발을 묶인 채 조용히 눈을 감고 있어서 관 속에 있을 때와 별반 다르지 않았다.
안에 있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몸을 떨었다.
“옷을…… 갈아입힐까요?”
누군가 못 참고 물었다.
갈아입히긴. 그러다 안 살아나면 염을 또 해야 하는데!
노부인은 대꾸하지 않고 몸을 돌려 사돈댁 대소야를 보며 물었다.
“보조 약재라고 했소?”
“운랑이 자주 쓰던 화장 거울이랍니다.”
사돈댁 대소야가 인상을 쓰며 말했다. 무슨 표정을 지어야 할지 모르겠다는 얼굴이었다.
노부인으로서는 보조 약재가 무엇이든 상관없었다. 죽은 사람을 치료하겠다고 말도 안 되는 말을 내뱉었는데, 더 놀랄 일이 뭐 있겠는가.
한 여종이 즉시 운랑이 애용하던 거울을 가져왔다. 둥근 달 모양에 연꽃 문양을 조각하고 테두리에 점취 공예(点翠工艺, 물총새의 깃털로 만드는 공예)를 한 구리거울이었다.
“가슴 위에 대고 누르랍니다.”
사돈댁 대소야가 말했다. 초조하면서도 어이가 없다는 말투였다. 두 여종이 서둘러 구리거울을 여인의 가슴 위에 조심스레 올려놓았다.
“거울 면을 아래로 가게 해라.”
사돈댁 대소야가 무언가 떠올랐는지 한마디를 보탰다. 두 여종이 얼른 방향을 바꿔 거울 면이 아래를 향하게 하여 부인의 가슴 위에 눌러 놓고는 얼른 물러났다. 죽은 사람을 지키고 있노라니 온몸이 서늘해지는 기분이었다.
방 안은 고요했다.
“그다음은요?”
누군가 못 참고 물었다.
“기다려라.”
사돈댁 대소야가 퉁명스레 대꾸했다.
집 안이 또다시 고요해졌다. 거의 숨소리조차 들리지 않을 정도였다. 모두의 시선이 침상 위에 있는 여인의 몸으로 집중됐다.
일각쯤 지났을까. 숨죽이고 있던 사람들이 더는 못 참겠는지 단체로 숨을 토해냈다. 침상 위의 여인은 여전히 미동도 하지 않은 채로 누워 있었다.
“숨이 붙어 있는지 살펴봐라.”
사돈댁 대소야가 말했다. 여종 하나가 잠시 망설이다가 두려움에 떨며 침상 옆으로 쭈뼛쭈뼛 다가가서는 떨리는 손을 조심스레 뻗어 부인의 코 밑에 가져다 댔다.
“없는데요…….”
여종이 손을 거두고 창백한 얼굴로 고개를 흔들며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안에 있던 사람들 모두의 안색이 바뀌었다.
“안사돈 어른! 이제 됐습니까?”
사돈댁 대소야가 소리쳤다. 쌓아왔던 분노가 폭발한 듯 찻잔을 들어 바닥으로 내팽개치려 할 때였다.
여인이 숨을 내쉬는 목소리가 들렸다. 숨소리는 무겁고도 길었으며, 오랫동안 막혀 있던 숨을 토해내는 듯했다.
“아이고, 답답해 죽을 뻔했네! 이게 뭐야, 얼른 치워! 눌려서 숨도 못 쉬겠다!”
여인이 숨을 토해낸 후 잠긴 목소리로 말했다.
침상 근처에 서 있던 여종은 숨을 내쉬는 소리에 온몸에 소름이 돋은 채 그대로 굳어 버렸다. 그러다가 급기야 말소리까지 들리자 뒤도 안 돌아보고 비명을 내지르며 허둥지둥 밖으로 달려 나왔다.
“시신이 움직여요!”
* * *
정 낭자의 몸종이 발걸음을 옮겨 안으로 들어갔다. 실로 짠 신발로 나무판을 밟은 탓에 소리가 크게 울리지는 않았다.
“아씨, 정말 깨어났대요.”
몸종이 놀람과 기쁨을 숨길 수 없는 말투로 소리쳤다.
동시에 몸종은 병풍 쪽을 쳐다봤다. 작은 탁자에 몸을 기댄 채 병풍을 넋 놓고 바라보는 여인이 눈에 들어왔다. 그 여인의 표정을 본 순간, 몸종의 얼굴에 있던 기쁨이 순식간에 걷혔다.
여인은 사실상 소녀였다. 열네다섯 쯤 된 나이에 어두운색 치마저고리를 입고, 먹색의 커다란 웃옷을 걸치고 있었다. 옷이 온몸을 감싸고 있는 듯 볼수록 왜소해 보였다. 흰 피부는 옥처럼 깨끗하고, 머리카락은 먹처럼 새까매서 얼핏 봐도 눈부신 미모였다.
다만 검은 눈동자가 지나치게 작고 흰자위가 지나치게 넓었다. 게다가 멍하니 병풍을 보고 있는 탓에 영혼이 없는 헝겊 인형처럼 보였다.
“아씨!”
몸종은 얼른 바닥에 무릎을 꿇고 바닥을 덮고 있는 여인의 옷자락을 붙잡은 채, 머리를 조아리고 흐느껴 울었다.
“아씨, 정신 차리세요. 아씨, 절 놀라게 하지 마세요!”
그 울음소리와 함께 소녀의 눈동자가 천천히 움직였다. 흐리멍덩한 눈에 약간의 생기가 돌았다.
“난…… 누구지?”
소녀가 조용히 읊조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