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07
교랑의경 307화
“오늘은 누가 온 거예요?”
두 여인이 화제를 돌려 물었다.
“대부인의 친정 쪽 부인일세.”
집사 부인이 대답했다.
“왕 부인께서 오셨구나. 한동안 안 보이시더니.”
두 여인이 웃으면서 말했다.
“왕 공자가 경성에서 돌아와서 마중 나왔다네. 아마 오늘이면 도착할걸.”
집사 부인이 대수롭지 않은 듯이 말했다.
한 식구임에도 불구하고 북정의 저택에는 발도 못 들여본 두 여인이었지만, 북정 가문의 친척 관계에 대해서는 제 손금을 들여다보듯 훤히 알고 있었다.
“왕십칠 공자께서 출타했었어요?”
두 여인은 가볍게 웃으며 말했지만 어딘지 모르게 의아한 구석이 있었다. 왕 공자가 왜 곧장 왕씨 가문으로 가지 않고 여기로 왔지?
“왕 공자가 고모와 사이가 각별해서 인사드리려고 일부러 들르시나 보네.”
두 여인이 추측하듯이 말했지만, 집사 부인은 웃기만 할 뿐 별다른 대꾸를 하지 않았다.
아니라는 뜻이네.
정말로 왕 공자가 고모에게 인사하려고 이곳까지 온 것이라면, 분명 집사 부인이 공자의 지극한 효심에 대해 입이 닳도록 칭찬을 했을 터. 그렇다고 추측을 부인하지 않는 것으로 보아서는, 말 못 할 사정이 있는 듯한데.
두 여인이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그들은 눈빛에서 생기가 돌며 조금 흥분한 듯 보였다.
재미있는 이야깃거리가 또 생겼네.
“부인께서 작은 부엌은 예전에 하던 대로 준비해 달라고······.”
한 여인이 부엌으로 뛰어 들어오며 말하다가, 집사 부인의 눈짓에 말을 하다 말고 입을 다물었다. 눈치 빠른 두 여인은 각자의 옹기를 안고 서둘러 자리를 떴다.
집사 부인은 그제야 뛰어 들어온 여인에게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어느 쪽 부엌?”
“어느 쪽이겠어요. 그 바보 쪽 부엌이죠.”
집사 부인이 살짝 놀란 표정으로 여인을 끌어당겨 한쪽 구석으로 갔다.
“집에 남겨 둔대? 바로 도관으로 보낸다고 하지 않았어?”
집사 부인이 물었다.
“암만 그래도 도관에서 시집보낼 순 없잖아요.”
집사 부인의 눈이 커졌다.
“진짜로 한대?”
정 대부인의 대청 안.
“당연하죠.”
찻잔을 천천히 내려놓은 왕 부인이 정 이부인을 쳐다보고 미소를 지으며 말했다. 정 대부인도 음, 하는 소리를 내고는 따라 웃었다.
“정말 인연인가 보네요. 십칠이 직접 경성에서 정혼자를 데려오고 있다는 건, 상대가 마음에 들었다는 뜻이겠죠.”
바보한테 반했다고? 이게 욕이야 칭찬이야.
정 대부인이 언짢은 기색을 내비치며 대꾸했다.
“우리 십칠은 철도 들었고, 남을 위할 줄도 아는 착한 아이야. 누구처럼 골칫거리만 만들지는 않지.”
“에이, 형님. 지금 누굴 말씀하시는 거예요?”
정 이부인이 무미건조한 말투로 물었다. 정씨 가문 동서지간의 불화는 이미 표면적으로도 드러난 일이었다.
왕 부인이 마른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왕씨 가문은 대부인의 친정이니, 당연히 대부인의 편을 들었다.
“그럼 이부인이 보기엔 어떤데요? 아직도 이 혼사가 가짜인 것 같아요?”
왕 부인이 미소를 머금고 말을 이어갔다.
“하긴, 우리가 혼수를 탐내지 않는다니 영 가짜 같긴 하죠.”
혼수로 허영을 부리는 풍속은 강주에서도 마찬가지였다. 듣기로 어느 지역에서는 혼담을 넣기도 전에 혼수의 규모부터 알아본다는 소문도 있었다.
혼수 이야기를 꺼내는 것은 정 이부인의 약점을 찌르는 꼴인지라, 정 이부인은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내가 걱정할 게 뭐 있나요. 집에는 형님이 계시고, 밖에는 그 아이의 외숙이 있는 걸요. 나 같은 계모가 굳이 입을 열 필요는 없지요.”
정 이부인이 말하면서 몸을 일으켰다.
정 대부인이 말했다.
“입을 열 필요는 없어도, 해야 할 일은 해야지. 곧 있으면 그 아이가 도착하는데, 그 아이가 지내며 쓸 것들은 다 준비해 뒀어? 그 아이가 지내던 방이 빈 지 일 년이 넘어가는데, 불도 좀 지펴야 하지 않겠나. 말도 말이지만 할 일을 안 했을 때 남들한테 책잡히는 거야.”
정 대부인의 말을 듣자 정 이부인의 얼굴색이 붉으락푸르락해졌다.
“가르침에 감사드려요, 형님.”
정 이부인은 건성으로 예를 표하고는 곧바로 자리를 떴다. 회랑 아래서 기다리고 있던 여종들이 종종걸음으로 정 이부인을 따라갔다.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물러나자, 정 대부인은 콧방귀를 뀌었다.
“둘은 이제 얼굴만 봐도 싸우는 지경에 이른 거예요? 그러면 안 좋을 텐데.”
왕 부인이 물었다. 정 대부인이 찻잔을 들며 대답했다.
“그럴 리가 있나. 저 사람이 철이 없다고 해서, 나까지 그렇게 굴면 안 되지. 이번엔 그 아이 얘기가 나와서 그래. 그 외엔, 서로 얼굴 마주할 일도 별로 없어.”
왕 부인이 웃음을 터트렸다.
“정말로 그 아이를 이 집에 둬서는 안 되겠네요.”
암, 둬서는 안 되지. 처음부터 둘 생각도 없었는데.
정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왕 부인에게로 시선을 옮겼다.
“근데, 정말 이 혼사를 올리려는 거야? 우리 십칠한테 너무 못할 짓을 하는 건 아닌가 싶어서.”
정 대부인이 한숨을 쉬자, 왕 부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십칠이 좋아하면 됐죠. 그리고 십칠이 원한다면 또 다른 아내를 들이면 될 일이고요. 별일 아니에요.”
바보는 고치기 힘든 병이었다. 싫증이 나면 이혼해 버리고 먹여 살리기만 하면 될 일이다. 남자가 재혼하는 건 그리 대수로운 일도 아니니까.
정 대부인은 생각할수록 속이 불편한지, 고개를 끄덕이다 말고 말했다.
“우리 십칠은 이렇게 큰 손해를 보면서 혼례를 올리는데, 저쪽만 좋겠네.”
정 대부인이 고개를 들고 여종 하나를 불렀다.
“두 농토를 관리하는 관리인에게 가서 장부를 가져오너라. 하나도 빠짐없이 가져와.”
그 농토라면 이미 이부인의 손에 거의 넘어갔는데, 대부인께서 농토들을 다시 뺏어 오시려는 건가? 이부인이 그걸 가만히 뺏기고만 있을 사람이 아닌데, 집안에 또 한 번 난리가 나겠네.
여종은 복잡한 표정을 지었지만 아무런 말도 하지 않고 알겠다 대답한 뒤 물러났다.
하여간 이 집은 그 바보 얘기만 나오면 난리가 난다니까. 또 한바탕 큰 소란이 일어나겠어.
여종이 아직 마당을 채 나가지도 않았는데, 누군가가 마당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부인, 부인. 왔어요.”
왔다고?
왕 부인과 정 대부인이 일시에 기쁜 표정으로 자리에서 일어났다.
“십칠이 돌아왔다고?”
두 사람이 동시에 외쳤다.
“아마도요.”
여종이 우물쭈물하며 말끝을 흐렸다. 두 부인은 여종에 대답에 살짝 놀랐다.
아마도라니?
“그 사람 말로는, 우리 집 아씨께서 돌아오셨다고 하던데요.”
그게 그거지!
“내가 마중 보낸 사람은 어디 갔담.”
왕 부인은 서둘러 마당 밖으로 발걸음을 옮겼다.
“다 일러두지 않았느냐. 정문으로 들이는 게 불편하면 뒷문으로 들이라고.”
정 대부인이 여종을 흘겨보며 호통을 치고는 왕 부인의 뒤를 따라나섰다.
“아니, 아니, 그게 아니라요.”
여종은 해명하듯 말을 이었다.
“좀 이상해 보여서요.”
“도착했대?”
정 이부인에게도 소식이 도착했다. 그녀는 잠시 생각하더니 몸을 일으키고는 옆에서 손으로 고무줄놀이를 하고 있던 정칠랑을 쳐다보았다.
“칠랑, 네 언니 마중하러 가자.”
“어느 언니요? 언니들은 다 집에 있는데요?”
“네 그 바보 언니 말이야.”
정 이부인의 말에 정칠랑은 손에 쥐고 있던 고무줄을 바닥에 홱 내팽개쳤다.
“어머니! 걔 집에 들이지 마세요!”
정 이부인은 정칠랑의 머리를 한 대 쥐어박았다.
“그 애를 이 집에 들이지 않으면, 나중에 너도 이 집에서 못 나갈 줄 알아! 어서 따라오거라. 다 같은 식구인데, 그 사람들만 체면 살릴 일을 하게 둬서는 안 되지.”
정 이부인은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칠랑의 손을 이끌고 밖으로 나갔다.
문 앞에는 이미 많은 사람이 모여 있었다.
“웬 사람이 이렇게 많아?”
정 이부인이 놀란 얼굴로 말했다.
주변의 여종들은 이부인을 보자 길을 터주었다. 정 이부인은 얼굴을 가린 채 서 있는 정칠랑의 손을 잡아끌며 앞으로 걸어 나갔다.
정 대부인과 왕 부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말없이 문 앞에 서 있는 모습이 이부인의 눈에 들어왔다.
“왕씨 가문 귀한 아드님이 오신 거 아니야? 왜 앞에 나가서 반갑게 맞이하지 않고?”
정 이부인이 입술을 삐죽이며 투덜댔다. 모두가 쳐다보고 있는 곳을 향해 시선을 돌리던 정 이부인도 곧 깜짝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문 앞에 새까맣고 커다란 마차 두 대가 서 있었다. 초겨울의 흐린 날씨에도 불구하고, 먼 길을 달려온 마차는 먼지 한 톨 보이지 않았고 갓 기름칠을 한 듯 매끈하게 광이 났다. 마차 옆에 서 있는 호위의 말들은 건장하며 갈기에서 윤기가 흘렀고, 호위들 또한 말들 못지않게 키가 크고 다부진 근육질이었다. 제대로 엄선된 말과 호위들이었다.
말끔한 옷을 입고 가장자리에 금실로 수를 놓은 두봉을 걸친 호위들은 두 열로 깔끔하게 줄을 맞춰 서 있었다. 그들이 걸친 두봉이 바람에 따라 휘날렸다.
주위에서 구경하던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감탄했다.
“위풍당당하네.”
“지부 대인께서 출타하시는 행렬보다 더 위엄있어.”
“관패와 휘장만 더하면 딱이겠네.”
“저게 누구래?”
“정씨 가문에 또 으리으리한 친척이 왔나 본데?”
거리와 강가에서부터 마차 행렬을 구경하러 온 사람들이 점점 더 많이 모여들었다.
“십칠?”
왕 부인이 정신을 차리고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외쳤다. 그녀는 의아해하며 좌우를 살폈다.
어제 마중 나간 아랫것들은 어디에 있지? 노복과 시종들도 안 보이고. 그런데 이 사람들은 다 뭐 하는 사람들이야? 돈 주고 산 호위들인가?
“부인, 부인.”
시종 하나가 구경꾼들 사이를 비집고 나왔다. 먼 길을 떠나온 고됨이 그대로 묻어나는 행색에, 땀으로 범벅이 된 얼굴을 하고 있었다. 위풍당당한 마차 행렬과 대비되는 그의 모습은 측은하기까지 했다.
왕 부인은 그 시종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이전에는 미처 몰랐는데 오늘따라 이 시종이 자신의 시종이라는 것이 너무나도 창피했다.
“공자님은 먼저 댁으로 가셨습니다.”
시종이 말했다. 왕 부인과 정 대부인은 귀를 의심했다.
“먼저 돌아갔다고?”
두 사람이 동시에 물었다.
“예. 공자님은 오늘 이른 아침에 도착하셨는데, 죽어도 여기 있기 싫고 꼭 집으로 가겠다고 하셔서요.”
시종이 대답했다.
꼭 집으로 가겠다고 했다고?
두 부인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마차를 향해 시선을 돌렸다.
그럼, 저건 누구야?
“부인.”
조 집사가 옷소매를 한 번 탁 털고는 앞으로 나가 읍을 올렸다. 정 대부인이 놀란 눈으로 조 집사를 쳐다보았다.
이 사람, 어디서 본 적이 있는 것 같긴 한데.
“누구······.”
“저는 주씨 가문 사람입니다.”
조 집사가 입꼬리를 살짝 올리며 대답했다.
주씨 가문! 그, 그럼 이 마차에 있는 사람은!
휘장이 들어 올려지고 반근이 먼저 마차에서 내렸다. 반근은 고개를 들어 마차 행렬을 슥 보고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조 집사가 몸을 옆으로 돌리고 손으로 뒤를 가리키며 말했다.
“제가 아씨를 호송해 돌아왔습니다.”
주씨 가문의 시종들이 조 집사의 손짓에 따라 일제히 뒤로 돌았다. 반근이 휘장을 들어 올리더니 정교랑이 마차에서 내리는 것을 부축했다.
시끌벅적했던 주위가 일순간 조용해졌다. 모든 사람의 시선이 두봉을 두른 채 마차에서 내리는 소녀에게로 향했다.
마차의 뒤에 있던 사람들에게는 소녀가 걸친 커다란 두봉이 땅에 끌리는 것이 보였고, 옆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매끈하고 볼록한 이마와 오뚝한 콧대가 보였으며, 정면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는 그녀의 긴 눈썹과 깊고 반짝이는 두 눈이 보였다.
어느 방향에서 보든, 그녀를 본 사람들은 모두 같은 생각을 했다.
정말 대단한 미인이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