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16
교랑의경 316화
북정의 저택 안에서는 정 대부인이 손님을 접대하고 있었다.
“경성의 진씨 가문이라고 했죠?”
정 대부인이 두 여인을 쳐다보며 호기심 어린 얼굴로 물었다.
입은 옷이며 장식은 꽤 괜찮아 보이네. 강주의 여인네와는 행동거지부터가 달라.
“네. 정 낭자의 백모님 되세요?”
여인 중 하나가 웃으면서 대답하고는 정 대부인을 쳐다보며 물었다. 정 대부인이 고개를 끄덕였다.
“내가 정씨 집안의 안주인이에요. 무슨 일로 왔죠?”
정 대부인은 무릎 위에 놓았던 손에 저도 모르게 힘이 들어갔다.
“아, 저희 부인께서 정 낭자를 위해 몇 군데 혼담을 더 넣었거든요. 정씨 가문에서는 이 혼담들에 대해 어떻게 생각하시나 해서요.”
여인은 단도직입적으로 말하고는 정 대부인 앞으로 상자 하나를 밀었다.
역시!
정 대부인의 심장이 두근댔다.
상자 안에는 사주단자 여러 개가 가지런히 놓여 있었다.
어떤 집안들일지 모르겠네. 주씨 가문이 준비한 것이기도 하고, 공주부 진씨 가문이 직접 나섰다니 분명 명문가들로 골라 왔겠지?
경성의 집안과 연을 맺는다니.
정 대부인은 손을 뻗어 사주단자들을 자세히 보고 싶은 마음이 굴뚝같았다. 그때 병풍 뒤에서 마른기침 소리가 들려왔다.
정 대부인은 화들짝 놀라 앉은 자세를 바르게 했다.
아무리 좋은 집안들이라고 해도, 우리 정씨 가문과는 아무 상관도 없는 사람들이야. 다 주씨 가문을 위해서 넣는 혼담들이겠지.
어쨌든 팔은 안으로 굽게 되어 있으니, 내 사람부터 챙겨야 해.
“말씀은 감사합니다만.”
정 대부인은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상자를 다시 여인 앞으로 돌려주었다.
“우리 교랑의 혼사는 이미 정해져서요.”
진씨 가문에서 온 사람들이 상자를 닫고 예를 표한 뒤 떠나가는 모습을 지켜보던 정 대부인은 어쩐지 기분이 얼떨떨해졌다.
“형님.”
왕 부인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곧이어 발걸음 소리와 함께 병풍 뒤에서 모습을 드러낸 왕 부인이 아직 정신을 차리지 못한 정 대부인을 보며 물었다.
“진짜 솔깃했던 건 아니죠?”
정 대부인이 웃었다.
“그럴 리가 있니. 다른 낭자라면 모르겠는데, 이건 그 아이의 일이잖아. 이렇게 자신을 위해 주는 사람이 누구인지를 걔가 분간해야 할 텐데. 그리고 그 가문 사람들이 정말 그 아이를 원해서 혼담을 넣는 거겠어?”
그 가문의 사람들은 정말 그 아이를 원해서예요.
왕 부인은 차마 이 말을 입 밖으로 꺼내지 못했다. 누구든 자신의 이익을 가장 우선으로 두기 마련이니까.
왕 부인이 어색한 웃음을 짜내며 말했다.
“정 낭자가 직접 우리 십칠이 좋다고 했잖아요.”
“당연한 말을. 우리 십칠이 얼마나 좋은 아이인데.”
정 대부인이 맞장구를 쳤다.
“그럼 이 일은 이렇게 마무리해요. 사주단자도 교환했으니까 나머지는 제가 돌아가서 며칠 내로 준비해 둘게요. 십일월에 혼례를 올리고, 십이월에 다 같이 새해를 보내는 거예요.”
왕 부인이 미소지으며 말하고는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힘들 텐데, 좀 쉬다가 가.”
정 대부인이 다정하게 왕 부인을 붙잡았다.
“아니, 아니에요. 시간이 이를 때 돌아가는 게 좋겠어요.”
“그래, 그럼 가 봐. 십칠이 애타게 기다리고 있겠네.”
왕 부인이 문턱을 넘다가 발을 헛디뎌서 몸을 휘청였다. 하마터면 넘어질 뻔한 그녀는 재빨리 문틀을 붙들었다.
십칠. 우리 십칠이 집에서 좋은 소식을 목 빠지게 기다리고 있을 텐데, 이를 어쩜 좋아.
“오 낭자, 이를 어쩌죠? 정씨 가문에서 거절할 줄은 생각지도 못했어요. 이건 부인께서 추측하신 바와 다른걸요?”
정씨 가문의 저택 밖, 여종 두 명이 다급하게 물었다. 사주단자가 든 상자를 들고 있던 여인도 표정이 좋지 않았다.
“고민도 하지 않다니.”
여인은 말하면서 고개를 돌려 정씨 저택의 대문을 쳐다보았다.
이래서 집 밖을 나가면 예기치 못한 일투성이라는 말이 있나 보네.
“저희는 그럼, 이대로 돌아가나요?”
다른 여종이 물었다.
“안 되지. 한 게 아무것도 없는데 어떻게 돌아간단 말이냐.”
여인이 단호하게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그럼 우린 이제 누굴 찾아가야 하죠? 바로 정 낭자를 만나러 가는 건 어때요?”
여종들이 머리를 맞대고 물었다.
때마침 정씨 가문의 쪽문에서 시끌벅적한 소리가 들려왔다. 사람들 한 무리가 웃고 떠들면서 밖으로 걸어 나왔다.
“강주는 채구극(彩毬劇)이 유명해요. 집사 어른, 경성에서도 이만큼 재미있는 채구극을 본 적은 없으실걸요?”
금가아가 으스대면서 말하고는 눈썹을 올리면서 한 마디 덧붙였다.
“돈은 제가 냅니다.”
조 집사와 다른 이들이 호탕하게 웃으며 굳이 거절하지 않았다.
“좋다. 그럼 금가아한테 신세 좀 져야겠구나.”
“금가아!”
여인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혹시 정 아씨를 모시는 금가아니?”
조 집사와 금가아 일행은 멈칫하고 자신들을 향해 미소지으며 걸어오는 여인들을 쳐다보았다. 여인들의 뒤로 마차와 네 명의 기마 호위가 서 있었다.
“진씨 가문의 어멈들이오?”
조 집사가 단번에 마차에 붙어있던 표식을 알아보고 서둘러 예를 올렸다.
타지에서 고향 사람을 마주치니, 진씨 가문의 여인들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비록 이들과 직접적으로 알고 지내는 사이는 아니었지만, 여인들은 속으로 무한한 친근감을 느꼈다.
“이제 막 도착하신 겝니까? 아니면 이미 뵙고 나오시는 길입니까?”
조 집사가 정씨 가문의 대문을 가리키면서 물었다.
“뵙고 나오는 길이에요. 그래서 어찌해야 할지 갈피를 못 잡고 있던 참이죠.”
“이렇게 하시죠. 먼 길 오시느라 피곤하셨을 텐데, 찻집에 잠시 앉아 이야기나 나누는 건 어떻습니까?”
조 집사가 여인들의 상황을 대충 눈치채고 말했다. 조 집사의 초대에 여인들은 몸을 낮춰 예를 표하고는 미소 지었다.
“그럼 신세 좀 지겠습니다.”
“금가아, 여기서 가장 좋은 찻집이 어디더냐?”
조 집사가 몸을 돌려 입꼬리를 올리고 금가아에게 물었다. 금가아가 자신만만한 표정으로 가슴을 내밀면서 말했다.
“절 따라오세요.”
범가원은 강주성에서 가장 유명한 식당이었다. 시끌벅적한 거리 한가운데에 있지만, 고즈넉한 분위기가 일품인 곳이었다. 이 층으로 이루어진 범가원은 거리를 내다볼 수 있는 별실이 있을 뿐만 아니라, 뒤쪽 정원도 운치 있게 잘 꾸며 놓았다.
일개 사환 따위는 감히 들어올 생각도 못 하는 고급스러운 공간이었다. 귀한 집 공자의 사환이라면 윗전을 따라 들어올 수 있겠지만, 금가아는 공자님의 사환을 할 적에도 이런 곳에 발을 들여 본 일이 없었다.
금가아는 자신이 손님을 데리고 이곳에 들어오는 날이 오리라고 상상조차 못 했다.
이들이 범가원을 향해 다가가자, 말을 돌보는 점원이 뛰어와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리며 인사를 올렸다. 고개를 든 점원은 자신의 앞에 서 있는 사람을 보고 깜짝 놀랐다.
“어? 너 정씨 저택 뒷골목에 사는 금가아 아니야?”
점원이 놀란 얼굴로 물었다. 금가아가 점원의 얼굴을 보고는 그를 알아보았다.
“보가아, 정말 오랜만이네!”
금가아가 손을 뻗어 점원의 어깨를 툭툭 쳤다.
“듣기로는 어디 팔려갔다던데?”
점원이 금가아를 위아래로 훑어보면서 물었다.
범가원의 점원은 금가아가 입은 옷이 화려하지는 않지만, 값비싼 소재라는 것을 매의 눈으로 알아보았다. 금가아가 입은 옷의 옷감은 범가원 뒤편 정원에 앉아 차를 마시는 돈 많은 노야들이 입는 옷의 옷감과 같았다.
말도 안 돼.
“무슨 소리야. 헛소리하지 마. 얼른 제일 크고 좋은 별실로 안내해 줘.”
금가아가 말했다.
제일 크고 좋은 별실!
“금가아, 너 미쳤어? 그게 다 얼마인 줄 알아?”
놀란 점원은 입을 너무 크게 벌려 하마터면 턱이 빠질 뻔했다. 점원이 금가아의 팔을 잡고 조용히 속삭였다.
금가아가 품에서 돈주머니 하나를 꺼내어 점원에게 던져주려는 찰나, 대기 중인 손님을 맞이하는 점원 하나가 허리를 펴고 이쪽으로 다가왔다. 문가에서 금가아 일행을 맞이하려다가, 말을 돌보는 점원이 한발 앞서 금가아에게 말을 거는 통에 잠자코 기다리고 있던 터였다.
“손님, 저를 따라오시지요.”
다가온 점원이 목청을 높였다. 그는 허리를 숙이고 금가아를 안내하며 말을 관리하는 점원을 한쪽으로 밀쳤다.
금가아가 스무 명 남짓한 사람들을 이끌고 안쪽으로 들어가는 것을 넋을 놓고 보고 있던 점원은 자신의 본분도 잊은 채 멍하니 서 있었다.
미친 건가?
아무것도 안 먹는다 해도, 제일 크고 좋은 별실에 들어가는 자릿값은 내 일 년 치 품삯인데. 차나 다과라도 먹으면 그 돈이 다 얼마야? 내가 평생을 뼈 빠지게 일해도 못 만져 볼 돈이겠지? 그것도 내가 범가원에서 평생 일을 할 수 있다는 전제하에 말이야.
금가아가 반쯤 죽도록 얻어맞고 쫓겨나는 건 아닐까?
바깥에 있던 점원의 걱정을 전혀 모른 채, 금가아는 별실 안에 자리했다. 범가원은 돈이 많은 손님들이 찾는 곳이긴 하지만, 이렇게 많은 손님이 한꺼번에 한자리에 앉는 경우는 드물었다. 범가원의 점원들이 일사불란하게 움직이기 시작했다.
관리인이 직접 별실로 찾아와 손님들을 접대하고 냉채와 말린 과일, 차를 먼저 내오라고 부엌에 지시했다. 음식이 담긴 그릇과 접시들이 부엌에서부터 차례로 옮겨졌다. 손님들의 술잔에 술을 채워주던 기녀들도 각자 칠현금을 품에 안고 별실 안으로 천천히 들어왔다. 사람들은 모두 분주히 움직였지만, 그들의 움직임은 한 치의 흐트러짐 없이 질서정연했다.
관리인은 자신이 지시한 것들이 모두 갖추어졌음을 확인한 후, 점원과 함께 예를 올리고 별실에서 물러났다. 별실 안의 사람들은 다과와 차를 즐기고 기녀들의 감미로운 노랫소리를 들으며 서로를 소개했다.
진씨 가문의 오 낭자가 조 집사를 향해 목례를 했다.
“부인의 명을 받고 온 것인데, 정 대부인이 그 부탁을 단칼에 거절하셔서 어찌할 바를 모르겠습니다. 그러니 집사 어른께 조언을 듣고 싶습니다.”
오 낭자가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저희 아씨와 연관된 일입니까?”
조 집사가 묻자 오 낭자가 고개를 끄덕였다.
“부인께서는 굳이 정 낭자를 귀찮게 할 것 없이 직접 정씨 가문의 가장을 찾아가면 될 것이라고 단언하셨는데, 이를 어쩌면 좋지요?”
조 집사가 입꼬리를 올리고 금가아를 쳐다보았다.
“이건 금가아에게 물어봐야겠네요.”
어찌 됐든, 조 집사와 시종들은 모두 주씨 가문의 사람들이었다. 이들 중에 정교랑을 최측근에서 모시는 사람은 금가아가 유일했다.
모든 시선이 금가아에게로 향했다.
“무슨 일인데요? 혹시, 저희 아씨를 괴롭히는 사람이 있는 거예요?”
금가아가 웃음기를 거두고 물었다.
“낭자의 혼사와 관련된 일이에요.”
오 낭자가 곧바로 대답했다. 갑자기 금가아가 웃음을 터트리더니 손을 휘휘 저었다.
“그런 사소한 일은 아씨를 찾아뵙지 않아도 돼요.”
사소한 일? 역시 제대로 찾아왔군. 부인께서 말씀하시던 것과 비슷해.
“그럼, 저희가 또 뭘 할 수 있을까요?”
오 낭자가 몸을 앞으로 기울이면서 공손하게 물었다.
“대부인을 찾아뵈었다고 했죠?”
금가아가 간식을 씹으면서 차를 한 모금 들이키고 우물거리며 말했다.
“아직 이부인은 안 찾아갔잖아요.”
이부인?
오 낭자는 강주 사람이 아니었기에, 정씨 가문의 안주인에게 거절을 당한 상황에서 또 다른 부인을 찾아가는 것이 어려운 일임을 잘 알고 있었다.
오 낭자가 웃으면서 금가아를 향해 허리를 숙이고 예를 올렸다.
“금가아, 그러면 우릴 위해 말 좀 전해 줄 수 있을까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