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19
교랑의경 319화
정씨 여종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았다. 여종 중 한 명이 정교랑 가까이로 다가갔다.
“아씨, 부인께서 찾으세요. 일단 돌아가시죠.”
“아직 할 일이 있어. 일이 끝나면 뵈러 가겠네.”
정교랑이 대답했다.
어디서 감히!
여종들은 경악했다.
정씨 가문의 여식일 경우, 말귀를 알아듣는 아이라면 몇 마디 더 재촉하여 집으로 데려가고 말귀를 못 알아듣고 떼를 쓰는 아이라면 아예 양쪽 팔을 붙잡고 힘으로 끌고 가야 했다. 지금의 경우는 후자에 속하지만, 그녀 주위에서 삼엄하게 호위를 하는 주씨 가문의 시종들 때문에 섣불리 움직일 수가 없다.
여종들은 확신했다. 자신들이 저 아씨의 털끝 하나라도 건드렸다가는, 이 시종들이 분명히 자신들을 산 채로 잡아먹으리라.
여종들은 제자리에 서서 이도 저도 못 하고 있었다. 물론 정교랑 일행은 여종들의 걱정에 대해 전혀 신경 쓰지 않았다.
뿔뿔이 흩어진 사람들은 정평이라는 자를 찾기 위해 온 동네를 뒤지고 다녔다. 골목 사이에서 사람들의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하지만 안타깝게도, 석양이 질 무렵까지 정평이라는 자를 찾아낸 자는 없었다.
“낭자, 그놈은 분명 어딘가에 숨어 있을 거요. 예전에도 이런 적이 있었습니다. 쫓기는 게 익숙한 놈이라 숨는 데에는 아주 도가 텄을 테니, 오늘은 일단 돌아가시지요. 저희가 계속 찾아보겠습니다.”
노인이 말했다.
“맞아요, 아씨. 일단 돌아가시지요.”
이때다 싶은 여종들이 거들었다. 정교랑이 몸을 일으켰다.
“좋아요. 그럼, 그 사람을 계속 찾아주세요.”
정교랑은 이 말을 남긴 채 망설임 없이 발걸음을 옮겼다.
조 집사가 손에 있던 돈주머니를 노인에게 던져 주었다. 해가 떨어진 시간이라 사위가 어두웠지만, 노인은 양손으로 정확하고 잽싸게 돈주머니를 받아냈다.
“만약 찾게 된다면, 돈을 더 드리겠소. 이건 수고비요!”
조 집사가 말했다.
이 주머니만 해도 족히 일 관은 되겠지? 이렇게 많은 돈을 수고비로 쓰다니! 손이 엄청 크시네!
골목 안이 시끌벅적해졌다.
컴컴해진 저녁이 되어서야, 커다란 두봉을 두른 소녀는 시종들의 호위를 받으며 성큼성큼 골목을 벗어났다.
“저 사람은 누구요?”
노인이 물었다.
“대부인과 이부인의 여종들이 깍듯이 모시는 걸 보니, 분명 중요한 귀빈 아닐까요?”
누군가가 대답했다.
사람들은 정평이라는 자를 찾는 데에 혈안을 올리느라 뒤늦게 도착한 여종들을 알아보지 못했다. 설령 여종들을 알아본 사람이 있었다고 한들, 그들에게 다가가 말을 걸 새도 없었을 것이다. 상황이 진정되고 나서야, 사람들은 소녀의 뒤를 따라가고 있는 여종들을 알아봤다.
“생각났어! 이틀 전에 돌아온 정씨 가문의 바보야! 분명히 저 옷을 입고 있었어!”
누군가가 외치자, 이틀 전의 광경을 떠올린 다른 사람들도 그 바보의 모습을 생각해 냈다.
“맞아, 맞아. 나도 기억하네. 저 시종들!”
“그렇네. 그 낭자가 확실해! 그때 내가 선녀 같다고 생각했던 그 여인!”
“어딜 봐서 바보라는 거야? 북정 사람들 눈이 삔 거 아니야?”
오늘 있었던 일 때문에 남정의 밤도 꽤 소란스럽겠지만, 북정의 밤 또한 남정 못지않게 시끄러웠다.
“도대체 누구래?”
집으로 돌아온 정 대부인은 앉을 힘도 나지 않아서 줄곧 침상에 앓아눕고 밥도 삼키지 못했다.
뒤늦게 정교랑 일행을 따라 돌아온 여종들을 향해 정 대부인이 물었다.
“어떻게 된 일이더냐?”
“어떻게 된 건지는 잘 모르겠습니다만, 찾고 있는 남자는 작년에 강주로 온 사람이라고 합니다.”
여종이 대답했다.
“작년?”
정 대부인이 힘겹게 몸을 일으키고는 화를 냈다.
“그럼 우리 정씨 가문 사람이 아니라는 게야? 그런데 어떻게 여기 살고 있어? 냉큼 내쫓아 버려라!”
“소인도 자세히 알지는 못합니다. 듣기로는 촉주(蜀州)에서 온 사람이라는데, 노야께서 그 사람이 여기 사는 걸 허락하셨대요. 허구한 날 하는 일 없이 거리를 돌아다니면서 사기 치는 것을 업으로 삼고 있고, 이집 저집 헛간을 전전하며 지내는 사람인지라 남정 쪽에서도 성가신 존재라고 합니다. 심지어는 어린아이들 코 묻은 돈까지 떼먹는다고.”
여종이 말했다.
그런 놈을?
정 대부인이 미간을 찌푸렸다.
“교랑한테도 사기를 친 게야?”
“아니요, 부인. 아씨는 이곳으로 온 지 이제 사흘밖에 되지 않았고, 오늘이 첫 출타신걸요.”
여종이 단호하게 부인했다.
하긴, 그렇지.
정 대부인은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눈을 내리깔고 물었다.
“생김새는 어떻디?”
여종은 의아한 표정을 지었다.
응? 꼭, 꼭 정교랑이 무슨 중요한 사람이라도 된 것처럼 물어보시잖아?
“부인, 그런 놈의 생김새가 어떻든 그게 무슨 상관이겠습니까.”
여종이 실소를 터트리면서 대답했다. 정 대부인이 콧방귀를 뀌었다.
그런 놈이면 뭐 어때? 바보인데. 지금 아무리 나아졌다고 한들, 바보는 바보야. 보통 사람과는 분명 차이가 있을 테니, 깊이 생각하지 못하겠지. 겉보기에만 좋으면 좋다고 생각할 거 아니야?
“잘 지켜보거라. 또 밖에 나가서 우리 가문의 이름에 먹칠할 일 없도록.”
정 대부인이 말했다.
지켜보는 건 문제가 아니지만, 우리의 뜻대로 움직일 수 없다는 게 문제인데.
여종이 복잡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숙이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정 대부인이 손짓하자, 여종들은 서둘러 물러났다.
휘장을 내리고 등불을 끈 실내는 어두컴컴하고 조용했다.
그러나 정 대부인은 눈을 감고 있으면서도 잠을 이루지 못하고 이리저리 뒤척이기를 반복했다. 며칠 동안 일어났던 일들이 끊임없이 뇌리에 스치자, 정 대부인은 짜증이 솟구쳤다. 그녀는 피곤함이 가득 담긴 한숨을 내뱉고는 등을 돌렸다.
이제 막 대문을 넘어서던 정 이부인도 오늘 낮에 있었던 일을 전해 들었다. 하지만 정 대부인과는 다르게, 정 이부인은 정교랑의 이야기를 들어도 시종일관 웃으며 아무렇지 않은 듯 행동했다.
“사람을 찾는대? 그럼 찾으라고 해. 우리 교랑이 찾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당연히 찾아야지.”
여종들이 웃었다.
“부인, 부인께서는 오늘 진씨 가문에서 온 여인들을 찾으셨나 보네요.”
정 이부인이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아니 뭐, 근처 점포에 새로 들어온 옷감이 있나 보러 간 건데, 그 사람들이 날 붙잡고 반나절 동안 이야기를 하지 뭐야.”
정 이부인은 어쩔 수 없었다는 투로 말했지만, 얼굴에 핀 웃음꽃은 숨길 수가 없었다.
“그래서 어떻게 됐는데요?”
정 이부인을 따라가지 않고 집에 남아 있었던 여종이 물었다. 정 이부인이 풉 하고 웃었다.
“나 같은 여인네가 뭘 할 수 있겠느냐. 그 사람들이 한 말이 진짜인지 가짜인지도 모르는걸. 노야께서 돌아오시면 얘기해 봐야지. 어쨌든 노야의 맏딸 혼사잖아. 난 끼어들지 않는 게 더 나아.”
정 이부인은 ‘노야의 맏딸’이라는 다섯 글자에 힘을 실어 말했다. 여종들은 정 이부인의 말뜻을 눈치채고 웃으면서 허리를 숙였다.
“미리 축하드려요, 부인.”
여종들이 조용히 웃으면서 말했다.
“어허, 헛소리하지들 말거라. 저리 가, 가거라.”
정 이부인은 일부러 언짢다는 듯한 손짓을 하고, 곧바로 웃음을 터뜨렸다.
정말 예상치도 못한 일이야. 주씨 가문이 이렇게 손이 클 줄이야! 어쩐지 혼수 가지고 쩨쩨하게 굴지 않는다 싶었어. 그들은 인맥을 더 중요하게 여긴 거야!
내 평생 구경도 못 할, 그런 지체 높은 집안과 맺어져 봐. 그런 인맥만 생긴다면 우리 집안도 급이 달라지는 거야. 그깟 돈 몇 푼이 얼마나 한다고. 이 어마어마한 인맥만 잘 맺어 둘 수 있다면, 아무도 교랑의 혼수를 노리지 못하겠지!
내 손에 들어오는 건 혼수뿐만이 아니야. 내 자식의 혼삿길도 훨씬 나아지겠지! 공주부 진씨 가문이 나으려나? 아니면 그 무슨 봉례랑(奉禮郎: 나라의 큰 의식이 있을 때, 이를 관장하던 집사관) 가문이 더 나으려나? 아니지. 관찰 판관 댁은 어떨까?
여종들의 시중을 받으며 비녀를 빼고 일상복으로 갈아입은 정 이부인은 잠이 오지 않았다.
이 상황에 잠이 올 수가 있나! 얼른 내일이 와서, 되도록 빨리 노야가 이 일을 결정하셨으면!
밤잠을 설치는 사람은 정씨 가문 사람들뿐만이 아니었다. 먼 길을 달려 집에 도착한 왕 부인은 온몸이 쑤시도록 피곤했지만, 도통 잠이 오지 않았다. 싱글벙글한 얼굴로 자신을 반기는 아들의 모습을 보고 있자니, 왕 부인은 머리가 깨질 듯이 아파 왔다.
“역시 어머니께서는 절 위해서 뭐든 해 주실 줄 알았어요.”
왕십칠이 환하게 웃으면서 말했다.
“뭐 그리 큰일도 아닌데.”
왕 부인이 미소를 쥐어짰다.
“그러니까요.”
연신 고개를 끄덕이던 왕십칠이 왕 부인의 얼굴을 보고는 놀라며 물었다.
“아이고, 어머니. 안색이 왜 이렇게 안 좋으세요?”
왕 부인은 무의식적으로 얼굴을 매만졌다. 아들에게 거짓말을 하기는 처음인지라 분명 빈틈투성이일 텐데, 이대로 사실이 탄로 나기라도 한다면.
“요 며칠 제 일 때문에 제대로 쉬지도 못하고 분주하게 다니시느라 힘드신 거죠? 어머니, 어서 좀 쉬세요.”
왕십칠이 속상함 가득한 얼굴로 무릎을 꿇어앉아 왕 부인에게 예를 올렸다. 왕 부인은 안도의 한숨을 내쉬고 더욱 어색하게 미소를 지었다.
“너도 어서 가서 쉬거라.”
왕 부인의 말에 왕십칠이 곧바로 웃으면서 말했다.
“그럼 소자도 쉬러 가겠습니다. 제대로 된 잠을 못 잔 지 한참 됐거든요.”
왕십칠은 날개라도 달린 듯 가벼운 걸음걸이로 펄쩍펄쩍 뛰면서 밖으로 나갔다.
“푹 자야겠다. 아주 단잠을 자겠어.”
왕십칠의 생기 넘치는 목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그의 목소리가 점점 멀어지자, 안에 있던 왕 부인의 입꼬리가 확 내려갔다.
옆문이 열리는 소리가 들리더니, 왕 노야가 안으로 들어왔다.
“십칠한테 언제까지 숨길 셈이오?”
왕 노야가 고개를 저으며 물었다.
“숨기지 않으면 어쩌려고요. 우리 십칠이 기뻐서 날뛰는 것 좀 봐요. 사실을 알기라도 한다면, 저 애는 진짜 미쳐 버릴 거예요.”
왕 부인이 한숨을 내쉬면서 한 손으로 관자놀이를 지그시 눌렀다.
“그래도 바로 다음 달이면 혼례를 올릴 텐데, 신랑이 이 사실을 아는 건 시간문제 아니오. 싫다고 해도 밧줄에 꽁꽁 묶어다가 신방에 밀어 넣으면 그만일 새색시도 아니고.”
“숨길 수 있을 때까지는 숨겨요.”
왕 부인이 짜증 섞인 투로 말했다.
“너무 걱정하지 마시오. 그저 놀란 것일 뿐이니, 며칠만 지나면 다 잊겠지. 때가 되면 어르고 달래서 혼사를 성사시키면 그만이야. 목숨을 내놓으라는 것도 아니고, 혼례를 올리고 아내를 맞이하라는 것뿐이잖소.”
왕 노야는 별일 아니라는 듯 만족스러운 미소를 지었다.
제발 그러길 바라요.
왕 부인은 아예 양손으로 관자놀이를 꾹꾹 누르며 쓰게 웃었다.
“이게 다 당신이 오냐오냐 키워서 그런 거잖소. 생각 그만하고 쉬시오. 당신도 피곤할 텐데.”
왕 노야가 먼저 침실 안으로 들어갔다.
이 상황에 잠이 와?
왕 부인은 한숨을 내쉬고는 앉은 자리에서 꼼짝도 하지 않았다.
일이 어쩌다 이렇게 꼬인 거야?
아무리 생각해도 왕 부인은 이해가 되지 않았다.
밤이 깊어지고 만물이 고요해졌다. 연못 주위에는 석가산과 산석이 많은 탓에, 다른 곳과 다른 바람 소리가 들렸다.
흐느끼는 바람 소리가 창가를 스치자, 반근의 눈이 떠졌다.
연못가에 있는 이곳은 겨울을 나기에 썩 좋지 않은 곳이야. 아씨께서 오래 계실 예정이라면, 다른 거처를 알아봐야겠어.
겉옷을 걸친 반근은 등불을 켜고 휘장을 살며시 들어 올렸다. 시선이 침상에 닿자, 반근은 화들짝 놀라 하마터면 소리를 지를 뻔했다.
이 시간쯤이면 언제나 편안한 모습으로 눈을 감은 채 잠들었을 정교랑이 옆으로 돌아누운 채 반근과 눈이 마주친 것이다. 반근이 들고 있던 등불로 정교랑 쪽을 비추자, 정교랑의 두 눈은 별처럼 은은하게 빛났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