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32
교랑의경 332화
정 대부인이 정 대노야를 찾으러 대청에서 나올 무렵, 정 이부인은 이미 정씨 저택 밖으로 나온 후였다.
정 이부인이 남정 골목 안으로 들어서는 것은 이번이 처음이었다. 그녀는 빠른 걸음으로 정교랑이 묵고 있다던 집으로 향했다. 공기 중에 떠다니는 정체를 알 수 없는 퀴퀴한 냄새와 울퉁불퉁한 골목길도 그녀의 발걸음을 늦출 수는 없었다.
하지만 정교랑의 거처 앞에 서 있던 주씨 가문의 시종들 때문에, 정 이부인은 걸음을 멈춰야 했다.
“교랑, 교랑. 나야.”
정 이부인이 다급하게 외치며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쳤다.
“네가 억울한 일을 당한 걸 알고 왔단다. 내, 내가 꼭 너를 위해 방법을 생각해 볼게.”
여유롭게 문에 기대어 있던 조 집사는 정 이부인의 모습을 심드렁하게 지켜보았다.
“부인, 저희 아씨께서는 그쪽 집안의 사람들을 만나지 않겠다고 하셨습니다.”
저희 아씨?
정 이부인이 조 집사를 보며 눈을 반짝였다.
“나는 이번 일에 대해 대노야와 의견이 다르고, 교랑의 아버지인 이노야와 의견을 같이하네. 자네는 일이 왜 이 지경까지 됐는지 알고 있는가? 이노야와 내가 교랑을 위해 더 좋은 혼담을 넣으려 하니까, 별안간 대노야 내외가 화를 내서 이렇게 된 것이야.”
정 이부인은 잠시 뜸을 들이다가 조 집사를 쳐다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이번 일에 대해서는, 자네 주씨 집안과 우리가 같은 의견이라는 말일세.”
정 이부인이 ‘주씨 집안’이라는 네 글자에 힘을 실어 말했다. 정 이부인의 말에 조 집사는 머리가 어지러워졌다.
혼사는 또 뭐고, 주씨 가문 이야기는 왜 나와? 어쨌든 아씨가 보지 않겠다는 사람이니 딱히 상대할 필요는 없지.
조 집사는 길게 생각하지 않고 귀찮다는 투로 말했다.
“부인, 됐으니 그만 돌아가세요. 아씨께서 보지 않겠다고 하면, 못 보는 겁니다.”
근처에 있던 시종들이 손에 쥐고 있던 곤봉을 손바닥에 두어 번 쳤다. 정 이부인과 그녀를 모시던 여종들은 화들짝 놀라 뒤로 물러났다.
듣기로는, 정 대노야가 억지로 앞으로 나서려고 하는 바람에 시종 하나가 화살에 맞은 거라던데.
“교랑, 홧김에 이러지 말거라. 네 아버지와 내가 널 꼭 도와줄게.”
정 이부인은 하는 수 없이 문밖에서 안을 향해 소리쳤다.
“그 돈은 다 네 것이니 잘 남겨 둬. 시집갈 때 혼수로 쓰면 되니까 홧김에 괜한 일 벌이지 말고. 거처는 걱정할 것 없어. 저들이 저택에서 지내지 못하게 하면, 우리가 밖에 집을 구해서 지낼 곳을 마련해 줄게.”
정 이부인이 목을 빼고 소리치고 있을 때, 장인으로 보이는 몇 사람이 문 앞에 도착했다.
“집사 어른, 저쪽 장인들과도 이야기를 끝냈습니다. 한번 가서 보시겠습니까?”
장인들이 조 집사에게 공손히 물었다. 조 집사가 아직 뭐라 대답하지 않았는데도, 정 이부인은 깜짝 놀라 소리쳤다.
“끝내긴 뭘 끝내? 허튼짓 좀 하지 말게! 어린아이야 철이 없어 장난을 친다지만, 어른들까지 이래서 되겠는가!”
순간 모두가 정 이부인을 쳐다보았다. 장인들도 불안함과 망설임이 섞인 눈빛으로 조 집사를 쳐다보았다.
그러게. 남정 사람들은 죄다 비렁뱅이 아닌가. 갑자기 그렇게 많은 집을 무슨 돈으로 짓는다고.
“꺼지시오!”
조 집사가 눈썹을 치켜뜨고 정 이부인을 향해 호통쳤다. 정 이부인과 여종들은 또 한 차례 놀라 뒷걸음질 쳤다.
주씨 가문의 시종들이 곤봉을 허공에 휘두르면서 그녀들 가까이로 다가갔다. 그 모습을 본 정 이부인과 여종들은 비명을 지르며 냅다 뛰기 시작했다.
길이 평평하지 못한 탓에, 여종 몇 명은 뒷걸음질을 치다가 그만 뒤로 넘어지기도 했다. 넘어진 여종들은 주씨 가문 시종들이 휘두르는 곤봉에 된통 얻어맞고는 울부짖으며 도망쳤다.
집을 짓는다는 소식을 듣고 정교랑의 거처를 찾아오던 정 대노야 부부가 때마침 정 이부인의 여종들이 얻어맞는 장면을 목격했다.
“고약한 것, 아주 눈에 뵈는 게 없구나!”
놀란 정 대노야가 호통을 치면서 앞으로 사람을 보내려는 찰나, 신발 한 짝을 잃어버린 채 여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도망치던 정 이부인은 갑자기 눈이 뒤집혔다.
일만 관! 저 바보한테 일만 관이 있었다니! 다 저 사람 때문이야, 지금 저 사람 때문에 일만 관을 잃게 생겼어!
“우리 교랑을 해친 사람이 바로 당신이야! 교랑이 집을 나가게 만든 사람이 바로 당신이라고! 내가 가만두지 않을 거야!”
정 이부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두 팔을 뻗고 정 대노야를 향해 덤벼들었다. 정 이부인의 여종들과 정 대노야의 하인들 모두가 소스라치게 놀랐다.
문을 닫고 집 안에서 싸우는 거라면 그러려니 하겠지만, 바깥에서 윗전들끼리 싸우는 것은 절대 있을 수 없는 일이었다. 정씨 가문의 체면과 직결된 문제인지라 정 이부인의 여종들은 온 힘을 다해 정 이부인을 끌어안고 막아섰다.
그러나 아무리 막는다 한들, 주위의 시선을 피할 수는 없었다. 어느새 몰려온 구경꾼들이 정씨 가문의 사람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며 왈가왈부하기 시작했다.
정 대노야 부부의 안색이 흙빛으로 변했다.
“돌아갑시다. 일단 돌아가서 얘기해요!”
정 대부인이 몸이 부들부들 떨릴 정도로 화가 난 정 대노야를 토닥이며 말했다.
망신도 이런 망신이 없지!
“너, 너도 꺼지거라!”
정 대노야가 정 이부인을 가리키며 소리치고는 옷소매를 힘껏 털고 왔던 길로 성큼성큼 되돌아갔다. 정 대부인은 여종들의 부축을 받으며 울부짖고 있는 정 이부인을 죽일 듯이 쏘아보고는 정 대노야를 뒤쫓아 갔다.
“당신이 뭔데! 당신이 나더러 꺼지라고 하면, 내가 그래야 해? 퉤! 당신이 그렇게 대단해? 합당한 이유도 없이 날 쫓아내면, 바로 관아로 가서 당신들을 고발할 거야! 우리 팽씨 가문에는 사람 없는 줄 알아?”
정 이부인이 악을 쓰며 소리쳤다.
“부인, 부인. 자중하세요. 여긴 밖입니다!”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여종들이 서둘러 정 이부인을 제지했다.
“밖? 밖이니까 말하는 게야. 세상 사람들도 다 알아야 해! 저 사람들이 우리를 얼마나 괴롭히는지! 우리 교랑을 내쫓는 것도 모자라서, 나까지 내쫓아?”
정 이부인이 울부짖으며 외쳤다. 말이 통하지 않자 여종들은 아예 정 이부인을 질질 끌다시피 하여 남정 골목을 벗어났다.
한바탕 소란이 지나가자, 조 집사가 입을 벌리고 넋을 놓은 채 서 있던 장인들을 쳐다보며 씩 웃었다.
“아직도 내가 가서 봐야겠소?”
조 집사가 물었다. 장인들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쭈뼛쭈뼛 대답했다.
“아, 아닙니다.”
정씨 가문 부인도 때릴 수 있는 사람들이라니. 집을 짓는 일은 확실히 이 사람들이 주관하는 일이로군. 돈을 내는 사람이 누군지 확실해졌으니, 이제 돈 버는 일만 남았어! 벌 수 있는 돈을 안 버는 사람이 바보지.
장인들은 허리를 굽히고 머리를 조아리며 물러났다. 문밖에서 이 모든 광경을 지켜본 남정 사람들도 뛸 듯이 기뻐하며 각자의 집으로 흩어졌다.
진짜야. 하늘에서 집이 떨어진다는 게 사실이었어!
조 집사는 시종들에게 문을 잘 지키라는 당부를 한 뒤, 마당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당과 방안은 조금 전 바깥에서 벌어졌던 소란의 영향을 하나도 받지 않은 것처럼 보였다.
반근은 회랑 아래서 무릎을 꿇은 채 걸레질을 하고 있었다. 열린 문 사이로 정교랑이 안에서 책을 읽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아씨, 사람들은 다 내쫓았습니다.”
조 집사가 회랑 아래에 서서 공손하게 말했다. 정교랑이 읽고 있던 책을 내려놓고 그를 쳐다보았다.
“거기 앉게.”
조 집사는 자신에게 처음으로 앉으라는 정교랑의 말에 황송하여 어쩔 줄 몰라 하며 답례를 올렸다. 그는 회랑 아래에 무릎을 꿇고 앉아, 감격스러운 얼굴로 정교랑의 분부를 기다렸다.
“자네는, 이름이 뭐지?”
정교랑이 물었다. 자신의 이름을 묻는 말에 조 집사는 잠시 멈칫했다.
하긴, 주 노야께서 일개 하인의 이름을 아씨께 알려줬을 리 없지.
조 집사가 자신의 이름을 말하려던 찰나, 머릿속에 다른 생각이 스쳤다.
내 충심을 보여드리기 위해 아씨께 이름을 하사해 달라고 하는 것도 괜찮겠군. 출발하기 전, 주 노야께서도 앞으로 아씨를 내 유일한 윗전이라 여기고 모시라고 분부하신 바 있으니.
“소인의 이름이 여간 촌스러운 게 아닙니다. 아씨께서 이름을 하나 지어 주시는 건 어떠실지요.”
조 집사가 웃으며 물었다. 정교랑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회랑 아래서 걸레질을 하던 반근이 헛기침을 했다.
이제 반근은 알았다. 아씨는 자신의 주변을 오가는 사람에 대해 특별히 관심을 가지지 않고, 그들의 이름 또한 궁금해하거나 기억하려고 하는 법이 없었다. 어떤 사람이든 간에, 얼마나 오고 가든 간에, 아씨에게는 연기처럼 사라지는 부질없는 것이기 때문이었다.
아씨께서 이름을 궁금해하는 자들은 오직 본인이 생각하기에 물어볼 가치가 있는 사람이거나, 보은해야 할 사람이거나, 인정해 줄 만한 사람이었다. 여태껏 아씨께서 먼저 이름을 물어본 사람은 손으로 꼽을 수 있을 정도로 수가 적었다.
아씨께서 노비 신분이 아닌 사람의 이름을 묻는 건 그럴 수 있다고 쳐도, 노비 신분인 자의 이름을 묻는다는 건······.
“아씨, 아씨.”
반근은 무릎을 꿇은 자세로 방문 앞까지 가까이 갔다. 반근이 웃으면서 안에 있던 정교랑을 쳐다보며 말했다.
“더 많아지면 구분하기도 어렵고, 남자가 이 이름으로 불리는 것은 좀······.”
무슨 말이지? 뭘 구분하기 어렵다는 거야?
의아한 얼굴로 반근을 쳐다보던 조 집사가 퍼뜩 정신을 차렸다.
아, 반근! 그 많던 반근은 다 이런 식으로 붙여진 거였구나!
조반근······.
조 집사는 저도 모르게 몸을 살짝 떨었다.
“아씨, 아씨. 소인은 조(曹)씨 성을 가졌고 이름은 귀(貴)입니다. 집안에서 넷째라 편하게들 ‘조사’라고도 하지요. 촌스러운 이름이라 부끄럽습니다.”
조 집사가 숨도 한 번 쉬지 않고 속사포로 말을 뱉어냈다. 정교랑이 진땀을 빼는 조 집사를 쳐다보며 입꼬리를 올리고 웃었다.
“조귀.”
조 집사가 서둘러 고개를 끄덕이며 예, 하고 대답했다. 그는 난생처음으로 자신의 이름이 전혀 촌스럽지 않다고 느꼈다.
“자네가 일을 잘하네.”
조 집사가 쑥스러운 듯 헤헤 웃으며 머리를 긁적였다. 심부름꾼 일을 했던 옛날로 돌아간 것만 같았다. 주인의 칭찬 한마디에 하늘을 나는 듯한 기분을 느끼던 그때로.
“아씨, 분부만 내려주십시오. 제가 또 뭘 하면 되겠습니까?”
조 집사가 물었다.
“내 어머니께서 남긴 혼수가 쭉 정씨 가문의 손에 있다지?”
정교랑의 물음에 조 집사가 눈을 번뜩였다.
혼수!
생각도 하지 못한 일이었다. 조 집사는 정교랑이 정씨 저택을 나가고, 밖에서 소동을 벌이고, 남정에 집을 짓는 선에서 일을 마무리할 거라고 생각했다.
정씨 가문의 체면을 바닥으로 끌어내려 교훈을 주려는 것인 줄 알았는데.
– 저깟 아랫것들과 싸워 봤자 무슨 재미가 있나. 뼈를 다치거나 근육을 상하는 것도 아니고.
조 집사는 정교랑이 했던 말을 떠올렸다.
그래, 그렇게 끝나면 무슨 재미가 있겠나. 진짜는 지금부터야. 아예 손대지 않으면 몰라, 기왕 손을 댈 거면 급소에 일곱 치 깊이의 치명상 정도는 입혀 줘야지.
이거야! 이게 바로 저 낭자의 본모습이지!
* * *
“여보, 여보. 더는 이렇게 못 살겠어요.”
저택으로 돌아온 정 이부인이 눈물을 삼키며 분개했다.
“주씨 가문이 그토록 진심으로 교랑을 대할 줄이야.”
침묵으로 일관하던 정 이노야가 한 마디를 내뱉었다.
일만 관! 내 몇 년 치 녹봉과 맞먹는 돈을! 주씨 가문은 아주 돈이 차고 넘치나 보지, 그런 큰돈을 바보한테 내다 버리다니.
“정말로 그 사람들한테 집을 지어 준다고 하오?”
정 이노야가 물었다.
“그 사람들한테 줄지 안 줄지는 잘 모르겠는데, 집은 정말 짓는 것 같아요.”
대답하던 정 이부인이 갑자기 이를 악물며 외쳤다.
“집을 짓긴 무슨 집을 지어! 남는 게 집인데, 그 돈으로 점포 하나 정도는 샀어야지!”
일만 관! 무려 일만 관이야!