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36
교랑의경 336화
사실 남정 사람들은 자신들이 지금 정확히 무엇을 하고 있는지 제대로 이해하지 못했다. 오직 정계만이 사람들 사이에 서서 복잡한 표정으로 이 광경을 지켜보고 있었다.
조 집사가 보통내기가 아니네. 선제공격을 해놓고, 곧바로 자세를 낮춰서 자수하다니. 재밌군, 재밌어. 게다가 고작 말 몇 마디로 사람들의 마음을 움직이기까지.
너무나도 분하지만 죄를 지었으니 어쩔 수 없이 자수하러 가는 모습을 보이고, 바짝 엎드려 사람들의 동정심을 샀다. 그런 다음 사람들에게 도움을 청하고, 부탁을 들어달라는 말을 했지. 맞아, 도움을 받을 때보단 도움을 줄 수 있는 상황이 사람의 가슴을 더욱 뜨겁게 만들지.
게다가 돈과 집 같은 물질적인 유혹뿐 아니라, 마음을 건드리고 인정에 호소하며 이 일이 도리에 어긋나지 않는 상황임을 강조했어. 누가 봐도 주씨 가문은 만만치 않은 강자로군.
강자는 끝까지 강자인 법. 잠시 자세를 낮춘다고 해서 그 지위가 바뀌지는 않는다. 도리어 사람들은 이 틈을 타서 강자를 도울 기회를 잡으려고 할 것이다. 강자를 돕는 일은 비단 심리적 만족감을 얻는 데 그치는 것이 아니었다. 언젠가 자신들에게 돌아올 이득이 보장된, 거부할 수 없는 거대한 유혹이기 때문이었다.
정계는 고개를 저으며 쓴웃음을 지었다.
이러니 하늘에서 복이 거저 떨어지는 일은 없다고 하는 거지. 누구든 얻고자 하는 게 있다면, 그만한 공을 들여야만 해. 다만, 공을 들일 만한 가치가 있는지는 자신이 알아서 잘 판단해야겠지.
정계는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남정 사람들의 뒷모습을 보며 깊이 심호흡을 했다.
해 보지 뭐!
“여러분, 여러분. 제 말을 좀 들어 보십시오.”
정계가 사람들 앞으로 나서며 외쳤다.
* * *
어제의 충격으로 인해 정 대부인은 한숨도 자지 못하고 새로 지은 경당에서 밤새도록 태평경을 읽었다. 아침이 되자마자 정 대부인은 직접 현묘관에 가서 향불을 올렸지만, 아쉽게도 손 관주는 만나지 못했다. 그래도 정 대부인은 속이 한결 편해진 것을 느꼈다.
정 대부인이 저택으로 돌아온 시간은 이미 점심때가 지나고 나서였다.
“밥은 차리지 말고, 탕약이나 좀 데워 오거라. 탕약을 마시고 낮잠이나 좀 자야겠다. 밥은 이따 저녁에 먹으마.”
정 대부인이 거처로 걸어가면서 여종에게 말했다.
정 대부인과 여종이 마당 안으로 들어서자, 두 여종이 대청에서 탁자 하나를 들고 나오는 것이 보였다.
저건 어젯밤에 새로 가져다 놓은 탁자인데?
정 대부인이 놀라서 물었다.
“왜 또?”
“노야께서 이게 별로라며, 창고에서 다른 탁자로 바꿔 오라고 하셨습니다.”
여종이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정 대부인은 여종이 말을 아끼고 있다는 사실을 눈치채고 한숨을 내쉬며 가 보라고 손짓했다.
정 대부인이 대청 안으로 들어가자, 여전히 이리저리 서성이고 있는 대노야의 모습이 보였다. 깔개 위에는 아직 마르지 않은 찻물의 흔적이 남아 있었다.
다시 생각해도, 어제 일은 열이 받아. 도관으로 가라는 말도 안 듣고 집을 나가더니, 남정으로 가서는 돈을 들여 집을 지어 주겠다고 하질 않나, 대노야를 향해 화살을 겨누질 않나. 거기다가 이부인까지 합세해서.
정말 가문의 불행이야, 가문의 불행!
정 대부인이 근심 섞인 한숨을 내쉬었다.
그래도 진인께서 보우해 주신다 생각하니, 마음이 한결 편해지네.
“노야, 그만하세요. 그 애 때문에 괜히 열 올리지 마시고요. 난리 치고 싶은 만큼 치라고 해요. 돈도 쓰고 싶은 대로 쓰라 그러고, 집도 짓고 싶은 대로 지으라고 하죠. 이제 겨우 한 달밖에 남지 않았는데, 걔가 또 무슨 일을 벌일 수 있겠어요. 다음 달에 서둘러 시집보내고 그만 치워 버리자고요. 그럼 세상 사람들도 우리가 걔한테 야박하게 굴지 않는다는 걸 알 테고, 유언비어도 잦아들 거예요.”
또 무슨 일을 벌일 수 있겠냐고?
정 대부인의 말이 정 대노야의 정곡을 찔렀다. 이제야 좀 진정된다 싶었던 정 대노야의 속이 다시 뒤집혔다.
“또 무슨 일을 벌일 수 있겠냐고? 당신은 걔를 너무 얕보고 있는 게야!”
정 대노야는 소리를 지르며 뭐라고 더 말하려다가, 마당을 가로질러 뛰어오는 사람들을 보고 입을 닫았다.
“노야, 노야.”
소리를 듣고 고개를 돌린 정 대부인은 깜짝 놀랐다.
점포의 주인장들이 갑자기 이 시간에 웬일로?
“부인.”
몇 사람이 멈춰 서서 예를 올렸다. 정 대부인이 그중 두 사람을 흘겨보며 냉소를 지었다.
“자네 둘은 무슨 일로 여길 왔는가? 이부인에게 장부를 보여주느라 바쁠 텐데?”
농토 주인장 두 명이 얼굴을 붉히고 고개를 푹 숙였다.
“부인, 크, 큰일 났습니다.”
두 사람이 말을 더듬으면서 말했다.
“큰일이 나?”
정 대부인이 그들의 말을 듣다 말고 웃음을 터트렸다.
“큰일이 나면 우리를 찾아오고, 별일 없을 때는 다른 사람한테 가서 아부를 떠나?”
“그만하시오! 아무리 그래도 다 같은 식구잖소. 지금 모든 게 다 남의 손에 넘어가게 생겼소. 말장난이나 하고 있을 때가 아니란 말이오!”
갑작스러운 정 대노야의 호통에 정 대부인은 화들짝 놀라 할 말을 잃었다.
“어떻게 됐어? 묶어서 데려왔느냐? 그럼 그 계집을 반 죽을 지경까지 때려서 경성으로 돌려보내거라!”
정 대노야가 정 대부인을 쳐다보지도 않은 채 주인장들에게 물었다. 임구가 고개를 숙인 채 대답했다.
“아, 아니요.”
일순간 정 대노야의 화가 머리끝까지 치솟았다.
“이 아무짝에도 쓸모없는 놈들! 네놈들이 거느리고 있는 사람이 몇인데, 타지인 몇 놈 앞에서 설설 기는 거냐! 내가 이 쓸모없는 놈들한테 기대를 걸었다니. 썩 비켜라, 내가 직접 가겠다!”
사람들이 다급하게 정 대노야를 막아섰다.
“노야, 그자들이 관청으로 갔다고 합니다.”
임구가 말했다.
관청?
“잘못을 저질러 놓고, 먼저 관청으로 가서 고자질하는 놈이 어디 있느냐?”
정 대노야가 버럭 화를 냈다.
“아니, 그게 아니라, 그자들이 먼저 죄를 인정하고 자수하러 갔다고 합니다.”
임구는 정 대노야에게 이 일을 알리면서도 무언가 이상하다는 것을 느꼈다.
죄를 인정하고 자수하러 갔다고?
놀란 정 대노야의 눈이 커졌다.
무슨 죄? 무슨 자수?
같은 시각. 강주부의 절도추관(節度推官)도 어리둥절하기는 마찬가지였다.
“자수하러 왔다고?”
추관이 탁자 위에 놓인 명첩을 다시 한번 들여다보았다.
조금 전, 하급 관리 하나가 명첩을 들고 와 고소장을 올리겠다는 사람이 있다고 알렸다. 작년에 새로 부임한 절도추관은 명첩에 쓰인 귀덕낭장 주씨 가문이라는 글씨를 보고는 벌떡 자리에서 일어나 그들을 맞이하려고 했다.
무관이라고는 하나 경성 관리가 아닌가. 경성에 있는 관리가 강주까지 와서 고소장을 올리려 하다니, 설마 강주부에서 무슨 사고라도 당했나?
추관 옆에 앉아 있던 늙은 관리가 그를 제지했다.
“대인, 당황하실 필요 없습니다. 강주에서는 귀덕낭장 주씨 가문이 그리 낯선 이들도 아닙니다. 사고를 당한 건 아니고, 일이 있다 해도 기껏해야 집안 간의 싸움일 겁니다.”
늙은 관리가 주씨 가문과 정씨 가문 사이의 일들을 절도추관에게 말해 주었다.
“주씨 가문에서 시집온 부인의 상을 치를 때, 주씨 가문과 정씨 가문이 서로 멱살 잡고 싸우느라 난리도 아니었습니다. 두 가문 모두 관청으로 찾아와서 나서 달라고 청하긴 했었지만, 관청에서 사사로운 집안일에 개입할 수야 없잖습니까. 그저 눈 감고 못 본 척할 수밖에요.”
추관이 늙은 관리의 말을 듣고는 안도의 한숨을 쉬며 고개를 끄덕였다.
“아마 이번에도 집안 간의 다툼 때문에 온 게 아닐까 싶습니다. 대인께서도 그자들을 보면 웃으며 몇 마디 대꾸해 주고 돌려보내십시오.”
하지만 추관과 늙은 관리의 예상과는 달리, 주씨 가문의 사람들은 관청에서 나서 달라고 으름장을 놓으며 삿대질을 하러 온 게 아니었다. 죄를 지어 자수하러 왔다고 했다.
이건 또 무슨 상황이지? 인정에 호소하러 온 건가?
추관과 늙은 관리가 서로 눈짓을 주고받았다.
“무릇 자식은 부모의 잘못을 묻지 않는다는 말이 있지요. 설령 부모가 잘못을 저질렀다 해도, 자식은 부모와 말싸움을 해서는 안 되고, 폭력을 써서는 더더욱 안 됩니다. 이번에 아씨의 혼수 문제로 정씨 가문과 다툼이 좀 있었습니다. 제가 그 사람들을 잘 타이르거나, 관청의 대인들을 찾아와 중재를 요청해야 했는데, 그만 충동적으로 사람을 때려 다치게 하고 말았습니다.”
조 집사는 진지한 표정을 하고 바른 자세로 무릎을 꿇고 앉아 있었다. 그런 그의 모습에서 경성 관리 집안의 건방짐이라고는 찾아볼 수 없었다.
조 집사가 겸손하게 예를 올리며 말을 이었다.
“다른 사람들은 하인인 제 행실이 곧 아씨의 뜻이라고 생각할 겁니다. 하지만 제 불찰로 아씨를 곤란하게 만들었을 뿐, 모든 잘못은 제게 있습니다. 그리하여 대인께 벌을 청하러 왔습니다.”
그렇단 말이지?
추관이 복잡한 표정을 지었다. 옆에 있던 늙은 관리는 조 집사의 말에서 무언가 짚이는 게 있었지만, 그게 무엇인지 확실치가 않았다.
“자네들이 잘못을 충분히 인정하고 있고, 따지고 보면 두 가문 사이의 집안일이니, 본관은 자네를 벌하지 않겠네. 두 가문끼리 알아서 잘 해결하시게나.”
추관이 말했다. 그러자 조 집사가 허리를 숙여 예를 표하고 입을 열었다.
“도리에 어긋난 일을 했으니 벌을 청할 뿐입니다. 마찬가지 이치로, 도리에 맞는 일이 있다면 그 도리를 지키기 위해 맞서 싸워야겠지요. 이 일은 이제 더 이상 단순히 두 가문 사이의 집안일이 아닙니다. 저희는 받을 벌이 있다면 마땅히 받고, 청을 드릴 것에 대해서는 청을 드리려 합니다.”
“무슨 청을 올리겠다는 말인가?”
추관이 미간을 찌푸리고 물었다.
“대인, 저희 아씨께서는 관청에서 모친의 혼수에 대한 판결을 내려 주시기를 바라고 계십니다.”
조 집사가 고개를 살짝 들며 말했다. 놀란 추관이 앉은 자세를 바로 했다. 늙은 관리는 좀 전에 자신이 느꼈던 의혹이 단번에 해결됨을 느꼈다.
그 낭자의 혼수 때문이구먼! 단순한 말싸움에서 그치는 게 아니라, 아예 혼수 문제를 관청으로 들고 왔어.
“자식은 부모의 잘못을 묻지 않는다고 하지만, 아씨께서는 집안의 어른을 관청에 고발하시려 합니다. 이것 자체가 도리를 어기는 중죄로 여겨짐을 잘 알고 있지만, 저희 아씨께서는 더는 방법을 찾지 못해 벼랑 끝으로 몰리게 되셨습니다. 그래서 이렇게 청을 드리러 온 것입니다.”
조 집사가 다시 정중하게 예를 올리며 말했다.
“대인, 부디 아씨의 무례를 너그러이 봐주시기 바랍니다.”
예를 올린 조 집사가 종이 한 장을 앞으로 내밀었다. 추관과 늙은 관리는 그 종이가 무엇인지 보기 위해 눈을 게슴츠레 떴다. 그들은 조 집사가 건넨 종이가 비전 증서라는 것을 단번에 알아보았다.
자녀가 집안의 어른을 고발하면, 보통은 관청에서 절대로 수리해 주지 않았다. 심지어 고발한 자녀를 그 자리에서 즉시 매질하여 쫓아내도, 관청에서 가볍게 대응한 것으로 여겼다. 하지만 가산이나 재물이 연관된 내용이라면, 협상의 여지가 조금은 있었다.
다만, 그 여지가 얼마나 있을지는 관청 관리의 손에 달린 것이었다.
추관은 꿇어앉아 예를 올리는 사내와 그가 내민 비전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추관은 그가 무슨 일로 찾아왔는지에 대해 머릿속으로 정리를 마쳤다.
자수는 개뿔. 돈을 써서 고발하러 온 거겠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