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42
교랑의경 342화
오늘처럼 형제지간의 싸움을 공당까지 끌고 온 건, 정씨 가문 역사상 처음 있는 일이었다. 정 대노야는 바닥에 얼어 있는 여종을 쳐다보지 않았고, 공당에 서 있는 그 누구에게도 눈길을 주지 않았다.
“우리 교랑에 대해서는 여러분들도 익히 알고 계실 것이오. 그 아이는 태어날 때부터 바보였고, 사리 분별도 하지 못했소. 그런 아이가 시집을 갈 수 있겠소?”
당연히 못 가지. 바보를 원하는 신랑이 어디 있겠나.
“정 노야, 아씨께서는 다 나으셨습니다.”
조귀가 말했다.
“다 나았다고? 오늘 내가 이 자리에서 여러분에게 묻고 싶은 것이 있소. 바보라는 병이 나을 수 있는 병인지는 일단 차치합시다. 여기, 예전에 바보였던 사람과 혼례를 올리고 싶은 사람이 있소이까? 여러분 모두 가슴에 손을 얹고 양심껏 생각해 보시오.”
정 대노야가 공당 안의 사람들을 훑어보면서 물었다.
당연히 없겠지. 비웃음거리가 되고 싶은 사람이 어디 있겠어? 나중에 아이까지 바보를 낳으면 어쩌려고.
“대노야, 그런 식으로 물어보시면 너무······.”
통판 대인이 경당목을 두드리면서 조귀의 말을 끊었다.
“공당에서는 묻는 말에만 대답해야 하느니라!”
통판 대인이 이 절추를 흘겨보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원리원칙을 무시할 수는 없지요.”
이 절추는 말없이 통판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통판의 눈에는 그의 표정이 몹시 어색해 보였다.
꼴 좋다!
통판이 속으로 콧방귀를 뀌고는 정 대노야에게 시선을 옮겼다.
“정 노야, 계속 이야기하시지요. 혼수에 대해서는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통판이 물었다. 정 대노야는 말을 잇는 대신, 옷소매 속에서 문서 하나를 꺼냈다.
“대인, 이걸 한 번 보시지요.”
저게 뭐야?
관졸 하나가 정 대노야의 손에 있던 문서를 받아와 통판에게 전달했다. 문서를 펼치자마자 통판의 두 눈이 휘둥그레졌다. 흥분한 것 같기도, 놀란 것 같기도 했다.
“이게 바로 교랑의 모친이 남긴 혼수 목록입니다. 대인 두 분께서 살펴 주십시오.”
이어서 정 대노야는 사람들에게도 손짓했다.
“모두 한 번 돌려보시구려.”
모두 돌려보라고?
공당에 있던 이들은 문서의 내용을 궁금해하면서도, 서로 긴가민가한 표정으로 눈짓만 주고받았다.
정씨 가문이 부자라는 말은 익히 들었지만, 주씨 가문 낭자가 시집올 때 가져온 혼수도 만만치 않았다고 소문이 난 터였다. 하지만 정씨 가문의 사람이 아닌 이상, 주씨 가문 낭자가 가지고 왔던 혼수 목록에 대해서는 아무도 열람할 수 없었다.
사람들은 저도 모르게 목을 길게 빼며 문서를 구경하고자 했다.
통판 대인은 문서를 눈에 넣을 기세로 뚫어져라 쳐다보고 있었다. 그의 모습을 보다 못한 이 절추가 문서를 빼앗다시피 하여 가져왔다. 하지만 통판 대인의 반응과는 달리, 이 절추는 문서를 대충 훑어보고 별다른 표정 변화 없이 옆에 있던 관리에게 문서를 건넸다.
저 목수 놈, 놀란 척도 안 하네? 연기 한번 끝내주는군!
통판 대인이 입술을 삐죽이며 속으로 생각했다.
문서를 돌려 보던 사람들은 이 절추만큼 연기가 매끄럽지 못했다. 문서가 다음 사람의 손으로 전해질수록, 엄숙했던 공당은 점점 더 시끄러워졌다. 놀라서 감탄하는 이도 있었고 조용히 웅성대는 이들도 있었다. 문서를 보고 감탄하든 그렇지 않든, 그들의 표정에는 모두 하나의 공통점이 있었다. 바로 번쩍이는 눈빛이었다.
그 눈빛엔 금은보화로 만든 거대한 산을 봤을 때처럼 부러움과 질투가 뒤섞여 있었다. 이는 인간의 본능에 가까운 탐욕이었다.
사람들의 모든 반응을 눈에 담은 정 대노야는 무표정한 채로 묵묵히 서 있었다.
후당에서 몸을 일으켜 문가에 서 있던 송 지부는 나가려던 걸음을 멈추고 공당에서 웅성이는 사람들의 목소리에 귀를 기울였다.
“엄청나다. 돈이 진짜 많아.”
“게다가 저건 몇 년 전이니까, 지금 시세로 농토와 점포를 환산해 봐.”
“일 년에 최소 오만 관은 족히 벌겠지?”
일 년! 오만 관!
송 지부의 눈도 번쩍 뜨였다.
역시 엄청난 부자였어!
정 대노야가 입을 열었다.
“여러분, 이 정도 혼수라면, 바보와 혼례를 올릴 의향이 있소이까?”
정 대노야는 손을 들면서 좀 전과 같은 질문을 했다.
문서를 들고 있던 관졸이 아쉬워하면서 혼수 목록 문서를 정 대노야에게 다시 돌려줬다.
공당 안 분위기는 정 대노야가 좀 전에 같은 질문을 할 때와 판이하게 달라져 있었다.
저 혼수들만 있다면, 바보는 무슨, 죽은 사람이랑도 혼례를 올릴 수 있지!
물론 저 말들을 입 밖으로 내뱉는 사람은 없었다.
정 대노야는 사람들의 속이 훤히 보이지만 그런 건 전혀 개의치 않는다는 듯 웃었다. 정 대노야가 문서를 다시 소매 안으로 넣으면서 말했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는 법이지. 이 정도 혼수가 있는데도 우리 교랑이 시집갈 곳 하나 없겠소? 전혀 그렇지 않소. 하지만 그들이 원하는 게 무엇이겠소? 바로 이 돈 아니겠소이까!”
정 대노야가 갑자기 목청을 높이면서 말했다. 사람들은 갑작스러운 정 대노야의 목소리에 깜짝 놀랐다.
“돈을 위해서 우리 가문의 여식과 혼례를 올릴 수도 있단 말이오. 요즘은 혼수가 많을수록 좋으니까. 하지만 우리 가문의 여식은 다른 여인들과 다르잖소.”
정 대노야가 자리에서 일어나 천천히 걸음을 옮기면서 주위의 사람들을 훑어보았다.
“우리 가문의 여식은 바보요. 병이 있어서 정신이 온전치 못하고, 혼자서는 생활도 할 수 없소이다. 그런데 그런 아이를, 혼수만 보고 혼례를 올리려는 집안에 마음 편히 보낼 수 있겠소이까? 그 사람들이 우리 아이를 진심으로 대하겠느냔 말이외다!”
공당 안에 있던 사람들이 정 대노야의 시선을 회피하며 고개를 숙였다. 정 대노야가 깊은 한숨을 내쉬고는 헛웃음을 지었다.
“이런 아이를 낳고, 기르게 된 건 우리 정씨 가문의 몫이오. 도망칠 수도 없고, 떨쳐낼 수도 없는 운명이지. 하지만 다른 이들은?”
정 대노야가 사람들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아무 연고도 없는 다른 이라면 어떻겠소이까? 혼수만 보고 교랑을 데려가면? 시집간 딸은 출가외인이란 말도 있소이다. 얼마간은 우리가 시집간 저 아이를 보호해 줄 수 있을지 몰라도, 평생을 보호해 줄 순 없는 노릇이오. 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기도 하지만,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도 있지. 여러분이 한번 대답해 보시구려. 이런데도 내가 혼수를 공개할 수 있겠소? 이런데도 그 아이가 시집갈 때 이 혼수들을 줄 수 있겠소이까? 그건 그 아이에게 해가 될 뿐이오. 죽으라는 게지! 내가 뭐 때문에 이러겠소? 이게 다 혼수를 노리지 않고, 우리 가문의 여식을 오직 진심으로 대해 줄 집안을 찾기 위함이오!”
정 대노야가 앞으로 한 걸음 내디디며 말했다.
“이것도 잘못이라 할 수 있소이까?”
정 대노야는 목소리를 더 크게 해서 외쳤다.
“이게 무슨 잘못이란 말이오? 이게, 무슨 잘못이야!”
공당에 있던 사람들은 귀가 터질 듯이 아파 왔다.
맞아, 저 사람이 무슨 잘못이 있다고 그래. 잘못한 게 없는데.
어린아이가 저잣거리를 돌아다니는 것은 잘못이 없다지만, 돈을 한 아름 품고 저잣거리를 뛰어다니도록 둔다면 그건 부모의 잘못이지!
정 대노야는 절로 고개를 끄덕이는 사람들의 모습과 조귀와 시종들의 당황한 표정을 차례로 보았다. 그러고는 드디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감히 나와 싸우겠다고? 내가 괜히 네놈들보다 나이가 많은 줄 아는 것이냐? 먹은 소금도, 밥도 네놈들보다 훨씬 많아! 이 애송이들아, 정신 차려라!
하지만 정 대노야는 크게 기쁘지 않았다. 이런 진흙탕 싸움에서는 이긴 것도 진 것과 다름없었다. 그가 공당 안으로 발걸음을 내디딘 순간부터, 이 싸움은 이미 진 싸움이었다.
그 대단한 정씨 가문의 가장이 손아랫사람인 조카 때문에 공당에 선 것만으로도 치욕스러운데, 혼수 목록까지 공개하게 됐으니, 이는 가히 가문의 망신이라고 할 수 있었다.
자신이 가진 재물을 밖으로 드러내지 말아야 한다는 것은 천고의 진리거늘. 내가 내 입으로 가산을 만천하에 떠벌린 셈이 되었으니, 앞으로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 재물을 탐낼는지!
정 대노야는 어금니를 꽉 깨물었다.
이게 다 그 바보 때문이야! 그리고 둘째 녀석! 집으로 돌아가면, 절대로 가만히 두지 않을 테다!
정 대노야는 악에 받친 눈빛으로 공당 위를 올려다보며 물었다.
“대인! 소생에게 죄가 있습니까?”
통판과 절추가 정신을 차리고 정 대노야를 내려다보았다.
“없습니다.”
통판이 말하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없지.”
통판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다시 한번 자신의 말을 되뇌었다. 통판이 퇴정을 알리기 위해 경당목을 내리치고자 손을 높이 들었다.
“잠시만요!”
조귀가 외쳤다.
조귀의 목소리에 공당 안에 있던 사람들은 숨이 턱 막혔고, 이 절추는 다행이라는 듯이 한숨을 내쉬었다.
“내쫓거라!”
통판은 조귀의 속셈을 뻔히 알고 있었기에 아예 말할 기회를 주지 않으려 했다. 통판이 눈썹을 치켜뜨고 손에 쥔 경당목을 내리쳤다.
“퇴······.”
이때, 이 절추가 필사적으로 경당목 아래로 손을 뻗어 경당목이 울리지 않도록 막았다. 통판이 내리친 경당목에 손등이 찍힌 이 절추는 고통으로 얼굴이 일그러졌지만, 그 와중에도 다급하게 조귀를 향해 물었다.
“불복하는 게 있는가?”
찍힌 손등이 너무 아팠던 나머지, 이 절추는 비명을 지르다시피 소리쳤다. 그 목소리가 퇴정을 알리려는 통판의 목소리를 덮었다.
이 절추의 일그러진 표정과 목소리만 봐서는, 조귀에게 화를 내는 것처럼 보였다. 그러나 자리에 있던 사람들은 이 절추가 무슨 의도로 조귀에게 질문했는지 알고 있었다.
“대인, 지금은 구타 사건에 대한 판결을 내리는 게 아닙니까?”
조귀가 의아한 얼굴로 물었다.
생각해 보니 그렇네. 우리가 구타 사건에 대해서 논의한 적이 있나? 한데 당신들이 진정으로 원한 건 혼수 사건에 대한 판결이잖아?
사람들이 속으로 생각했다. 통판과 정 대노야가 냉소를 지었다.
아무것도 모르는 척, 판결을 질질 끌겠다는 게지?
“지금은 혼수에 대해 말하고 있네. 그러니 조귀, 자네가 한 말은 의미가 없어. 더 할 말이 남았는가?”
이 절추가 진지한 표정으로 묻자, 조귀는 그제야 깨달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 그 얘기를 하고 있었습니까? 대인, 그렇다면 판결을 내리기엔 아직 이릅니다.”
통판이 경당목을 세게 내리치면서 고함을 질렀다.
“조귀, 네놈이 그래도 불복한다는 게냐!”
“대인, 혼수 사건에 대해서는 소인이 죄를 인정할 수 없습니다. 구타 사건은 소인이 주범이니, 대인께서 무슨 벌을 내리시든 달게 받겠습니다. 하지만 혼수 사건은 소인이 고소한 게 아닙니다. 제가 아니라, 저희 아씨께서 고소장을 올린 것이지요. 사건의 원고가 아직 한마디도 하지 못했는데, 어찌 피고의 말만 듣고 판결을 내시겠다는 겁니까?”
조귀의 말에 사람들은 어리둥절해졌다.
엉? 이게 무슨 말이야?
“대인, 만약 혼수 사건에 대해 판결하시려는 거라면, 저희 아씨를 모셔오겠습니다.”
조귀가 문밖을 가리키며 말했다. 정 대노야를 비롯한 사람들은 놀란 얼굴로 조귀가 가리키는 쪽을 쳐다보았다.
그 여인이 정말로 여길 왔다고? 더 이상 재판을 진행해서는 안 돼!
무언가 결심한 통판이 눈썹을 치켜뜨고 말했다.
“혼수는 가산이니, 가문 내에서 알아서 결정해야 할 일일세! 이 사건은 이대로 마무리 짓고, 다시는 혼수에 대해 언급하지 말게!”
통판이 경당목을 향해 손을 뻗던 찰나에, 통판보다 한발 빨랐던 이 절추가 경당목을 쥐고 세게 내리쳤다.
탁!
“여봐라! 원고 정씨를 들이거라!”
이 절추가 통판에게 뒤지지 않는 기세로 눈썹을 치켜세우며 외쳤다.
드디어 때가 왔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