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44
교랑의경 344화
조귀는 정교랑이 인색하지 않은 사람이기 때문에 남정 사람들에게 집 짓는 돈으로 일만 관을 내어줬다고 생각했었다. 하지만 오늘, 그는 자신의 생각이 틀렸다는 것을 깨달았다.
그럼 인색하지 않은 게 뭐냐고?
한 개, 두 개, 세 개 정도가 아니라 일만 관 어치의 재산을 생판 남에게 기꺼이 내어주는 것이야말로 인색하지 않은 것이라고 할 수 있지. 하지만 이 세상에서 그렇게 할 수 있는 사람이 몇이나 될까? 행동에 옮기기는커녕, 고려해 볼 사람조차 없을 것이야!
생판 남에게는 주기 아까우니까!
내가 그 재물에 대한 욕심을 내려놓아야만, 상대방도 그 재물을 얻을 수 없게 만들 수 있다.
제 것을 다 내어준다는데, 욕심내지 않을 자가 어디 있겠나? 정말 지독하군!
– 돈은 펑펑 쓰라고 있는 거 아니에요?
조 집사의 귓가에 정교랑의 담담한 목소리가 맴돌았다.
후당에서 밖으로 나가려던 송 지부는 뒤로 한걸음 물러나며, 휘장을 들어 올리려던 손을 거두었다.
어쩐지, 어쩐지. 이게 어딜 봐서 재판하려고 온 거야? 돈지랄을 하러 온 것이지!
이렇게 된 일이었군, 이렇게 된 일이었어!
정 대노야의 얼굴이 파랗게 질렸다. 그는 후당에 언뜻 보이던 옷자락이 다시 안으로 거둬지는 것과 통판이 경당목을 쥔 손을 천천히 내려놓는 것을 보았다. 주위 관리들의 굶주린 늑대 같은 눈빛에 등골이 오싹해졌다.
지부 대인을 찾아간 것도 나고, 공당까지 온 사람도 나야. 게다가 심혈을 기울여 열변을 토한 것도 난데! 내가 이렇게까지 했는데! 왜 저들은 말 한마디로, 고작 말 한마디로 내 모든 노력을 물거품으로 만들 수 있냐는 말이야!
처음부터 끝까지, 내 모든 노력은 남들 좋은 일을 위한 밑밥이었어.
단순 구타 사건을 이렇게 빨리 재판할 필요도 없었어. 열흘, 보름이 넘게 끌어도 됐는데, 내가 뭐에 홀려서 이렇게 빨리 판결을 내려 달라고 했지?
아니, 아니야. 난 뭐에 홀린 게 아니라,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어! 그 바보 때문에 이렇게 할 수밖에 없었다고!
그 바보가 날 공당까지 올 수밖에 없게 만들고, 혼수 목록을 꺼낼 수밖에 없게 만들고, 우리 가문의 재산을 남들 앞에 공개할 수밖에 없게 만든 것이야!
돈은 사람의 마음을 움직이고, 돈은 사람을 죽이는 무기가 될 수 있지.
만약 저들이 가산의 규모를 알지 못한 상태에서 저 계집의 궤변을 들었다면, 아무런 감흥이 없었을지도 몰라. 하지만 지금은 달라!
우리 집안의 가산은 더 이상 모호한 수치가 아니야. 좀 전에 혼수 목록을 봤던 사람들은, 속으로 구체적인 계산을 했겠지.
내가 내 손으로 먹잇감을 자처했어. 발가벗은 채로 저 굶주린 늑대들 앞에서 뜯어 먹히길 자처한 꼴이 됐다고! 그런데 그 바보는 아무런 힘도 들이지 않고, 심지어 공당에도 나오지 않고 목적을 달성하다니!
그 애가 할 일은 딱 한 가지야. 내가 모든 것을 준비해 두면, 손을 내밀어 저들에게 모든 것을 내어주는 것.
여러분, 근사한 연회를 마련했는데, 한번 즐겨 보시겠어요?
저 고약하고 악독한 것이!
정 대노야는 바닥에 엎드려 있던 반근을 가리키다가 옆에 있던 조 집사를 가리켰다. 두려움에 몸을 떨고 있던 이부인의 여종을, 손바닥 뒤집듯이 태도를 바꾸고 사건을 진행하려는 통판을, 후당에 숨어 모습을 드러내지 않는 지부 대인을, 그리고 공당에 나오지 않았지만, 모든 것을 배후에서 조종하는 그 바보와 주씨 가문을 향해 소리치고 싶었다.
고약하고 악독하도다!
입을 열고 소리치려던 찰나, 정 대노야의 목구멍이 뜨거워졌다. 그는 말 대신 울컥 피를 토했다.
공당 안에 여인들의 비명이 울려 퍼졌다.
정 대노야는 사람들이 자신을 향해 뭐라고 묻는 것 같았지만, 순간 시야가 흐려지면서 아무 소리도 들리지 않았다. 그는 가슴팍의 옷섶을 꽉 움켜쥐면서 뒤로 쓰러졌다.
정신을 잃은 채 사람들에게 둘러싸인 정 대노야를 본 조귀는 고개를 들고 입꼬리를 올렸다.
또 한 놈이······.
조귀가 속으로 말했다.
* * *
여인의 날카로운 비명이 정씨 저택의 적막을 깼다.
정 이부인은 정 대부인이 날린 따귀를 가까스로 피했다. 하지만 정 대부인이 그녀의 치맛자락을 밟은 통에 비명을 지르면서 바닥에 넘어지고 말았다.
“패가망신시키는 네년을 내 손으로 죽여주마!”
정 대부인이 정 이부인 위로 올라타 울부짖으면서 정 이부인의 얼굴을 할퀴고 머리채를 잡고 흔들었다.
정 이부인은 정 대부인의 손을 막으면서 바닥에서 몸을 일으키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이성을 잃은 정 대부인의 힘을 이기기엔 역부족이었다. 꼼짝없이 바닥에서 소리를 지르면서 발버둥 치는 수밖에 없었다.
마당에 있던 여종들도 합세했다. 물론 처음에는 여종들도 두 부인의 싸움을 말리기 바빴다. 하지만 정 이부인의 얼굴에 피가 나는 것을 본 정 이부인의 여종들은 그만 눈이 뒤집혀 윗전이고 뭐고 할 것 없이 정 대부인을 향해 달려들었다. 이를 본 정 대부인의 여종들도 화들짝 놀라 정 이부인의 여종들에게 달려드는 통에 마당은 아수라장이 되어버렸다.
방문 앞에 서 있던 정칠랑은 정 이노야가 집으로 오면서 특별히 사다 준 토기 인형을 품에 안고 있었다. 한 손으로 문틀을 잡고 있던 정칠랑은 아수라장이 된 마당을 보고는 잔뜩 겁을 먹고 소리를 지르며 울음을 터트렸다. 공포에 질린 정칠랑은 머리를 감싼 채 바닥에 쪼그려 앉았다. 그 순간, 정칠랑이 안고 있던 토기 인형이 바닥에 떨어지면서 산산조각이 났다.
정 대노야의 마당에는 사람들이 잔뜩 서 있었다. 대청 안으로 하나둘 모여든 의원들은 조용히 머리를 맞대고 논의하거나 어두운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며 생각에 잠겼다.
대청의 다른 쪽에는 집안의 모든 자녀가 모여 앉아 있었다. 정 대부인은 축 늘어진 채 여종의 품에 기대 누워 있었다. 방금 전 정 이부인과 머리채를 잡고 싸운 통에, 머리카락이며 옷은 꼴이 말이 아니었다. 하지만 지금은 그런 걸 신경 쓸 겨를이 없었다. 정 대부인은 정리해 주려는 여종들의 손길도 거부했다.
“조금 이따가 내가 노야와 같이 죽거든, 입관할 때 정리해 다오. 괜히 지금 헛수고하지 말고.”
정 대부인의 말에 여종과 자녀들이 울음을 터트렸다. 울음소리는 대청 문밖에서도 울려 퍼졌다.
“어머니, 소자는 그런 적 없습니다. 소자는 형님을 해친 적이 없습니다!”
정 이노야가 무릎을 꿇은 채 앞으로 기어갔다. 정 이노야는 노부인의 치맛자락을 붙잡고 이마를 수차례 땅에 찧으며 외쳤다.
“소자는 몰랐습니다. 정말로 부인이 그런 짓을 했을 줄 몰랐습니다!”
창백한 안색의 노부인이 정 이노야의 손을 홱 뿌리쳤다.
“천 번, 만 번을 막아도 집 안에 있는 도둑은 못 막는다더니! 우리 정씨 가문은 바로 네놈의 손에 망한 것이야!”
노부인이 손으로 가슴팍을 치면서 소리쳤다. 그러더니 손에 쥐고 있던 지팡이로 정 이노야를 사정없이 내리쳤다.
“이제 속이 시원하더냐? 이제 만족하냐고!”
바닥에 엎드려 있던 정 이노야는 노부인이 휘두른 지팡이에 맞으며 눈물을 흘렸다.
억울합니다. 무슨 만족을 한단 말입니까!
분가한 것도 아닌데, 이런 사건에 휘말려서 제가 좋을 게 뭐가 있습니까! 재판에 쓰이는 가산은 곧 제 가산이나 다름없는걸요. 저도 그 돈이 아까워 죽겠단 말입니다!
아, 아니지. 집안에 이런 일이 생기다니, 정씨 가문의 사람으로서 마음이 아파 죽겠다고요! 더구나 저는 관직에 있는 사람입니다!
이런 일에 휘말리면 집안도 제대로 다스리지 못하고, 증언으로 친형을 분통 터지게 한 사람이라는 낙인까지 찍힌다고요!
아이고, 억울해 죽겠네!
정 이노야가 바닥에 엎드린 채로 대성통곡했다.
“대노야께서 깨어나셨습니다!”
방 안에서 다급한 목소리가 들려오자,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서둘러 방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노부인은 정 이노야를 때리다 말고 지팡이를 던져 버린 후, 여종들의 부축도 없이 방 안으로 뛰어 들어갔다.
“아들아!”
정 대노야의 방 안에는 의원들의 당부에 따라 몇 사람만 남아 있었다. 정 대부인은 침상에 엎어진 채 우느라 몸을 일으키지도 못했다. 노부인은 눈물을 훔치면서 정 대부인을 다독였다.
“어서 뚝 그치거라. 네가 울면 큰애도 마음이 안 좋을 것이야.”
노부인이 울먹이면서 말하고는 눈물을 참으며 정 대노야를 쳐다보았다.
“얘야, 몸은 좀 괜찮니?”
정 대노야의 안색은 잿빛에 가까웠고 눈빛은 혼탁했다. 정 대노야는 자신이 어디에 있는지 잘 모르는 듯, 천천히 눈동자만 움직일 뿐 아무런 말도 하지 않았다.
그 모습을 본 정 대부인이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형님, 형님.”
문가에 꿇어앉아 있던 정 이노야가 외쳤다. 그의 눈빛에는 슬픔과 두려움이 혼재해 있었다.
형님, 절대로 죽으면 안 됩니다. 형님이 죽으면, 내 관직 생활도 여기서 끝이라고요!
정 이노야의 목소리를 듣자, 정 대노야의 눈이 번쩍 뜨였다. 그러나 정 대노야는 입을 벌린 채 아아아 소리만 낼 뿐, 제대로 된 말을 하지 못했다. 어떻게든 일어나 앉으려고 안간힘을 썼지만, 갑작스럽게 힘을 쓰는 통에 숨이 막히면서 얼굴까지 새빨개졌다.
방 안은 순식간에 아수라장이 됐다.
“형님을 죽이지 못해서 안달이 났지? 안달이?”
정 대부인이 울면서 정 이노야를 향해 달려들었다.
하늘에 맹세컨대, 나는 단 한 번도 형님이 죽었으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 본 적이 없습니다. 형님이 죽어서 내게 득이 될 게 뭐 있다고!
정 이노야는 울음을 터트린 채 바닥에 엎드려서 정 대부인이 때리는 대로 맞고 있었다.
잠시 뒤, 숨을 고른 정 대노야의 혈색이 돌아왔다. 정 대부인은 문가에서 정 이노야를 때리고 욕하면서 가라고 외쳤다.
“일단 내보내지 마시오.”
정 대노야가 힘겹게 숨을 몰아쉬면서 말했다. 정 대부인은 정 대노야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쥐고 울먹였다.
“여보, 지금 보면 밉기도 하고 화도 나니까, 몸이 좀 좋아진 뒤에 다시 얘기해요. 오늘은 일단 동생한테 화내지 말아요. 저런 사람 때문에, 화낼 가치도 없어요!”
노부인도 옆에서 눈물을 훔쳤다.
비록 모두 같은 피붙이라지만, 이번 일은 확실히 둘째의 잘못이야.
이런 짓을 저질렀으니, 당장 족보에서 둘째의 이름을 뺀다고 해도 큰애를 나무랄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야. 큰애가 관청에 가서 입만 뻥끗해도, 둘째는 벼슬길이 끊기겠지.
그런데 둘째의 벼슬길을 끊는다고 해서 우리 정씨 가문에 좋을 게 있나? 하지만 둘째를 혼내지 않으면, 큰애는 정씨 가문 가장의 역할을 소홀히 한다고 비난받을 거야.
노부인은 차라리 자신이 죽었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 늘 충효를 강조하고 형제 자매간의 우애가 끈끈하다고 소문난 정씨 가문이 이 지경까지 될 줄은, 꿈에도 몰랐다. 게다가 무엇보다도 집안 문제로 관청을 찾아가지 않았던가.
청렴결백한 정씨 가문이 남도 아니고 자식한테 고소를 당하다니!
관졸들이 정 대노야를 집으로 모셔오고 있으며 이 일이 온 동네에 구경거리가 됐다는 사실을 들었을 때, 노부인은 너무 창피해 그 자리에서 죽어버리고 싶었다.
수백 년을 이어져 내려온 정씨 가문이었다. 가난할 때도 있고 부유할 때도 있었지만, 오늘만큼 망신스러운 일은 처음이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야? 어쩌다가 일이 이렇게 된 거지?
“우선 저놈부터 때려 죽어라! 그리고 나도 저놈을 따라 죽어 버려야겠다! 창피해서 조상님들을 볼 면목이 없어!”
노부인이 침상 위로 엎어지면서 울부짖었다. 방 안은 또다시 난리가 났다.
“아직도 여기 있어요? 형님이 숨을 거두는 것을 눈으로 직접 보고 싶어서 이러시나?”
정 대부인은 울면서 정 이노야를 밖으로 내쫓으라고 명했다.
“아우한테 잠시만······.”
정 대노야가 쉰 목소리로 말했지만, 정 대부인이 그의 말을 끊었다.
“노야, 지금은 저 사람과 상종할 때가 아니에요. 몸이 좀 좋아진 뒤에 벌해도 늦지 않아요.”
정 대부인의 말에 정 대노야는 고개를 저었다. 정 대노야가 어떻게든 몸을 일으키려고 하자 정 대부인과 여종들이 그를 부축하여 자리에 앉혔다.
정 이노야는 정 대노야가 공당에서 혼절해 들것에 실려 왔다는 소식을 들은 뒤, 처음으로 그의 얼굴을 보았다.
반나절도 되지 않은 시간 만에 정 대노야는 완전히 다른 사람이 된 듯했다. 혈색 좋고 얼굴에 윤기가 흐르던 부잣집 노야는 반나절 만에 고된 농사일로 야윈 농부가 된 것 같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