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86
교랑의경 386화
경왕이 돌아왔다는 소식은 황궁 안에서 큰 파장을 일으키지 않았다. 몇몇 사람들은 소식을 듣고도 잠시 경왕이 누구인지조차 떠올리지 못했다. 경왕이 황궁을 떠난 시간은 고작해야 일 년이었지만, 황궁 안의 모든 것은 시간의 흐름에 따라 바뀌어 있었다.
사륜거가 바닥 위를 지나가면서 내는 소리가 황궁 안의 적막을 깨트렸다.
황궁에서 마차를 탈 수 있는 사람은 오직 친왕뿐이었다. 하지만 황제는 친형제가 많지 않고, 그나마 있던 몇 명도 모두 봉지로 나가 황궁에 자주 드나들지 않았다. 이 소리가 마지막으로 들렸던 때는 바로 일 년 전, 군왕이 경왕을 데리고 궁을 떠났을 때였다.
마차 안에 앉은 진안 군왕은 눈을 감은 채 정신수양을 하고 있었다. 말굽 소리와 마차 바퀴가 땅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오자, 그는 눈을 뜨고 휘장을 들어 올려 밖을 내다보았다.
주위에 있던 내시들이 서둘러 군왕에게 가까이 다가갔다. 진안 군왕의 시선은 마차를 끌고 있던 말에게로 향했다. 맑고 청량한 말발굽 소리가 박자감 있게 들려왔다.
“말굽에 뭐가 붙은 게냐?”
진안 군왕이 물었다.
“말편자입니다.”
내시가 웃으면서 대답했다.
“말편자?”
“전하께서 궁을 떠난 지 꽤 오래셔서, 경성의 새로운 소식들을 아직 모르시나 봅니다. 저건 군목감에서 새로 만든 것이온데, 쇠붙이를 말굽에 붙여 말굽을 보호하는 용도입니다. 전장에 나가는 말들에게 말편자를 달아 둔 덕에 말의 손상이 몹시 적어졌지요. 말편자라는 이름도 폐하께서 하사하셨어요. 황궁 안에 있는 말들에게도 편자를 붙이니, 말굽 소리도 더 듣기 좋아졌습니다.”
타고 다니는 말까지 변하다니, 일 년 사이에 변한 것이 참으로 많구나.
진안 군왕은 휘장을 내렸다.
태후궁에는 사람이 여럿 앉아 있었다. 사람들은 다소 긴장한 모습으로 문가를 쳐다보고 있었다.
“진안 군왕께서 도착하셨습니다.”
내시들의 목소리가 멀리서부터 전해져 오자, 태후궁 안에 앉아있던 사람들은 자세를 고쳐 앉았다.
문이 열리자, 키 크고 호리호리한 체형의 소년이 걸어들어왔다. 문을 지나기 전까지 느릿느릿했던 소년의 발걸음은 태후궁 안으로 들어오면서부터 조금씩 빨라졌다.
“태후마마.”
진안 군왕은 잰걸음으로 태후 앞에 다가가 바닥에 엎드려 큰절을 올렸다. 울먹이는 듯, 목소리가 떨렸다.
진안 군왕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태후는 눈물이 왈칵 쏟아져 나왔다. 태후는 서둘러 진안 군왕에게 일어나라며 손을 뻗었고, 주위의 비빈들도 눈물을 훔쳤다.
한참을 엎드린 자세로 있다가 몸을 일으킨 진안 군왕은 태후 앞에 무릎을 꿇고 앉았다. 태후는 그의 손을 잡고 이리저리 쳐다보다가 또다시 눈물을 흘렸다.
“왜 이렇게 야위었느냐.”
태후가 울먹이며 말했다. 한쪽에 서 있던 귀비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대황자의 등을 떠밀었다.
“형님.”
대황자가 앞으로 나서며 말했다.
진안 군왕이 그를 돌아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전하, 키가 부쩍 자랐군요.”
진안 군왕이 말했다. 다른 공주들도 서둘러 진안 군왕에게 다가가 안부를 물었다. 소녀들의 떠들썩한 목소리가 금세 태후궁을 메웠다. 진안 군왕은 공주들에게도 일일이 인사를 건넸다.
태후가 그를 붙잡고 문밖을 내다보면서 물었다.
“경왕은······.”
태후가 말끝을 흐리며 묻자, 진안 군왕이 뒤로 두 걸음 물러서서 말했다.
“배를 타고 오느라 힘들었는지, 환궁하자마자 잠들었습니다. 우선은 거처에서 쉬도록 했습니다.”
진안 군왕이 예를 올렸다.
“마마, 경왕을 깨우지 않은 신을 용서해 주십시오. 경왕은 더 이상 예전의 육가아가 아닙니다. 부디 마마께서도 경왕을 평소와 같은 기준으로 대하지 마시고, 넓은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진안 군왕의 말을 들은 태후는 손수건으로 입을 가리며 하염없이 눈물을 흘렸다. 태후는 진안 군왕을 일 년간 보지 못한 데서 비롯된 거리감이 일순간에 사라지는 것을 느꼈다.
전각 앞.
태후가 앞장서서 성큼성큼 걸음을 옮기고 있었고, 그 옆으로 귀비와 진안 군왕이 난색을 보이며 태후를 따라가고 있었다. 그들 뒤로 화려한 색상의 두봉을 걸친 비빈들이 있었고, 대황자와 공주 두 명, 그리고 한 살배기 공주까지 주 현비의 품에 안겨 태후를 따라 어디론가 향하고 있었다.
“마마, 오늘은 날씨도 쌀쌀한데, 다음에 가시지요.”
귀비가 다시 한번 조용히 태후를 만류했다.
“맞습니다, 마마. 육가아가 그리 오래 자는 편도 아니니, 조금 뒤에 일어나면 제가 직접 데리고 마마를 뵈러 가겠습니다.”
진안 군왕도 태후를 말렸다.
“법도대로라면, 애가(哀家: 과부가 된 태후가 자신을 일컫는 말)는 태후고 육가아는 황손이니, 황손이 태후를 만나러 오는 것이 맞다. 하나 너도 말하지 않았느냐. 육가아는 더 이상 예전의 육가아가 아니라고. 그러니 애가도 육가아를 더 이상 황손으로 대하지 않을 것이야.”
태후는 걸음을 멈추지 않고 울먹이면서 앞으로 나아갔다.
“애가가 원칙대로 하지 않을 것이란 뜻이다. 그러니 애가가 직접 육가아를 보러 갈 것이니라.”
귀비는 더는 태후를 말리지 않았고, 진안 군왕도 슬픈 표정으로 나지막이 말했다.
“마마께 심려를 끼쳐 송구할 따름입니다.”
그걸 이제야 알았어? 이게 바로 네놈이 원하던 바 아니더냐.
귀비가 손수건으로 눈물을 훔치면서 곁눈질로 진안 군왕을 흘겨보았다. 전각 문 앞에 다다르기도 전에, 태후는 내시 두 명이 허둥지둥 뛰어나오는 것을 보았다.
“전하께서 깨어나셨습니다. 깨어나셨어요!”
내시들은 무슨 끔찍한 일을 본 사람들처럼 당황한 모습이었다.
저놈들이 감히 경왕을 불쾌히 여기는 게야? 경왕이 더는 정상적인 아이가 아니라고, 지금 저놈들이 경왕을 불쾌히 여기는 게 아니더냐!
태후가 내시들을 향해 벌컥 화를 냈다.
“저놈들의 따귀를 매우 쳐라! 감히 저런 잡것들에게 경왕의 시중을 들게 한 것이냐!”
화들짝 놀란 내시들이 태후 앞으로 달려와 이마를 땅에 찧으며 사죄하자, 진안 군왕이 태후의 앞을 막아서고 말했다.
“마마, 이들은 그런 뜻이 아닐 겁니다. 육가아가 저와 오랜 시간을 지내다 보니, 낯선 사람을 만나면 겁을 냅니다. 마마께서 부디 이들에게 아량을 베풀어 주십시오. 제가 먼저 들어가 보겠습니다.”
진안 군왕은 태후의 대답을 듣기도 전에 몸을 돌려 궁 안으로 걸어갔다. 그의 걸음이 점점 더 빨라지더니 이내 뜀박질로 바뀌었다. 진안 군왕의 다급한 뒷모습을 보고 있노라니, 태후는 다시금 코끝이 찡해졌다. 태후는 깊은 한숨을 내쉰 뒤, 천천히 궁전 안으로 걸음을 옮겼다.
궁 안에서는 이따금 기괴한 외침 소리가 들려왔다. 날카롭고 건조한 목소리가 각기 다른 높낮이로 울려 퍼졌다.
두 공주는 겁이 난 듯 몸을 뒤로 조금 내뺐다. 대황자는 제자리에 가만히 서 있었지만, 소매 속에 감춰져 있던 손은 벌써 주먹을 꽉 쥐고 있었다.
모두가 궁 안에 서서, 들어 올려진 휘장 너머로 침상에 앉아있는 아이를 쳐다보았다.
일 년 전, 사고가 발생한 후 얼마 되지 않아 이황자는 곧바로 황궁을 떠났기에 사람들은 그의 다친 모습을 제대로 본 적이 없었다. 또 사고가 난 직후는 사람들이 이황자가 어떤 모습을 하고 있을지 어느 정도 마음의 준비가 되어 있었지만, 일 년이 지난 지금은 이황자가 사고를 당했다는 사실조차 기억 속에서 흐릿해진 시점이었다.
황궁 안에 있던 사람들은 사고를 당한 이황자의 모습이 아니라, 생기 있는 얼굴에 환한 미소, 밝은 두 눈동자를 가진 장난스럽고 귀여운 이황자의 모습만을 기억하고 있었다. 그렇다 보니 지금 침상 위의 어린아이를 본 사람들은 마치 꿈을 꾸는 것 같다고 느꼈다.
저 아이는 누구지? 설마 내가 알던 그 이황자인가? 저건 어린아이라고 할 수도 없겠는데? 저렇게 못생기고 소름 끼치게 생긴 아이는 처음 봐!
침상 위에는 살이 뒤룩뒤룩 찐 아이가 아무렇게나 팔을 휘저으면서 고개도 가누지 못한 채 입을 벌리고 아아 소리만 내고 있었다. 콧물과 침을 끊임없이 흘리던 아이는 한쪽에서 자신을 쳐다보고 있는 시선을 느꼈는지, 사람들을 향해 고개를 홱 돌리고 눈을 뒤집었다.
공주 하나가 악 소리를 내지르면서 겁에 질린 모습으로 사람들 뒤에 숨었다.
“썩 나가거라!”
태후가 공주를 향해 호통을 쳤다.
비빈이 재빨리 공주를 꿇어 앉히고 태후에게 빌었다.
“빨리 잘못했다고 해, 어서!”
비빈은 떨리는 목소리로 공주의 목덜미를 잡고 억지로 공주의 머리를 땅에 박으면서 읊조렸다. 경왕에 이어 갑작스러운 비빈의 행동에 연달아 놀란 공주는 새하얗게 질린 얼굴로 울음을 터트렸다.
“못 알아들은 게냐? 냉큼 꺼지래도!”
태후가 다시 호통을 쳤다.
덜덜 떨면서 무릎을 꿇고 있던 비빈을 향해 귀비가 손짓하자, 비빈은 고개를 푹 숙인 채 눈물을 닦으면서 공주와 함께 밖으로 나갔다.
“저 아이가 두려운 사람이 있거든, 전부 여기서 나가라.”
태후가 천천히 말하면서 몸을 돌려 뒤에 서 있던 비빈과 공주들을 훑어보았다. 다행스럽게도, 그 정도 말조차 알아듣지 못하는 바보는 없었다.
“마마, 무슨 말씀이십니까. 두려워하다니요. 저 아이는 육가아입니다. 저희는 육가아가 자라는 모습을 지켜본걸요.”
주 현비가 눈물을 훔치면서 공주를 품에 안은 채 앞으로 한 걸음 나섰다.
“숙녕(淑寧), 잘 보렴. 네 오라버니야. 어서 오라버니라고 불러 봐.”
이제야 겨우 한 살이 된 어린 공주가 말을 할 리는 만무했다. 어린 공주는 경왕의 모습이 무서운 건지도 모른 채, 해맑게 옹알이를 하면서 팔을 이리저리 휘저었다.
그 모습을 본 태후의 기분이 한결 나아졌다. 태후는 고개를 돌려 침상을 쳐다보았다. 아이는 여전히 침상 위에 앉아 팔을 높이 들고 기괴한 소리를 질러 댔다.
진안 군왕은 아이에게 가까이 다가가 다정하게 아이의 손을 잡아 옷을 입히고, 한쪽 무릎을 꿇고 앉아 아이의 신발 끈을 묶어 주었다. 진안 군왕은 아이에게 나지막이 무어라 말한 뒤, 고개를 들어 아이를 보며 환한 웃음을 지었다.
옷을 입히고, 신발을 신기고, 손수건으로 얼굴을 닦아주고, 물을 먹이기까지, 진안 군왕은 혼자서 그 많은 일을 능숙하게 해냈다. 태후는 주위에 멀뚱히 서 있는 내시들이 괜히 걸리적거리는 느낌까지 들었다.
저런 능숙함은 위낭이 오랜 시간 육가아의 곁에서 수발을 들었기 때문에 가능한 거겠지.
아이에게 물을 먹이고, 손으로 아이의 얼굴을 쓰다듬으며 미소 짓는 소년의 얼굴을 보고 있자니, 태후는 눈시울이 붉어졌다.
“육가아는 착하기도 하지.”
진안 군왕이 고개를 숙여 어린아이와 머리를 맞대며 웃었다.
– 육가아가 정말 대단하네!
황궁 안, 소년과 어린아이가 머리를 맞대면서 웃음을 터트렸다. 어린아이가 소년의 팔을 잡고 늘어지며 보챘다.
– 형님, 형님. 저랑 더 놀아요, 네?
옛날 생각이 떠오른 태후는 한 손을 뻗으며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갔지만, 걸음을 내딛는 동시에 눈앞의 환상이 깨져버렸다. 맑고 명랑했던 어린아이의 웃음소리는, 아무런 의미 없이 내지르는 기괴한 소리로 바뀌었다.
내가 알던 육가아는 영영 볼 수 없는 게로구나.
태후가 울음을 참지 못하고 손으로 얼굴을 가리며 눈물을 흘리자, 뒤에 서 있던 비빈들도 함께 울먹였다.
무뚝뚝한 표정으로 멀뚱히 서 있던 대황자는 귀비의 눈짓을 알아보았다. 지금 시점에는 울어야 마땅하다는 것을 잘 알고 있는 대황자였지만, 아무리 노력해도 도통 눈물이 나오지 않았다.
대황자는 바보가 된 아이가 전혀 무섭지 않았다. 그는 그저 아이의 모습이 놀랍기만 했다.
저게 누구야? 저건 절대로 육가아가 아니야. 나보다 귀엽고, 똑똑하고, 부황의 총애를 독차지하던 그 아우가 아니잖아. 그 아우는 이제 없어. 다시는 돌아오지 않아.
그런데, 지금도 꽤 지낼 만할 것 같은데?
대황자는 궁전 안의 사람들을 한 명씩 훑어보았다. 모두가 경왕을 위해 슬퍼하고, 가슴 아파하는 듯했다.
이것도 나쁘진 않잖아? 다들 아직 저 아이를 좋아하고, 아껴 주고, 저 아이가 하고 싶은 대로 하게 놔두고. 얼마나 좋아?
저 아이도 지금이 좋은 거겠지? 그렇지 않고서야, 어찌 저렇게 환하게 웃어?
대황자가 입꼬리를 살짝 올렸다.
얼마나 좋아, 지금이 제일 좋을걸.