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392
교랑의경 392화
조 집사의 눈이 더욱 커졌다.
“저희가 시험 삼아 철갑옷에도 쏴 보았는데.”
시종이 조 집사에게 조용히 속삭였다.
“삼백사십 보 밖에서 느릅나무를 반쯤 뚫었고, 칠십 보 밖에서 철갑옷을 뚫었습니다.”
놀란 조 집사는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엄청난 신병이기(神兵利器: 어마어마한 위력을 지닌 강력한 무기)잖아!
“아, 아씨께서 만드신 게냐?”
조 집사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시종들이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이, 이걸 만들어서 뭐에 쓰려고?”
조 집사가 말을 더듬거리면서 물었다.
군자의 육예 중 하나가 바로 활쏘기이니, 정교랑이 활을 만들어 과녁을 쏘는 것은 별일이 아니었다. 하지만 단순한 활이 아니라, 이런 강력한 쇠뇌라면 얘기가 달랐다.
시종들이 서로 눈빛을 주고받고는 최대한 목소리를 낮추어 대답했다.
“살인이요.”
쇠뇌를 건네받은 조 집사는 다시 한번 휘청였다.
그래, 살인. 아씨께서 사람을 죽이시는 거야 그리 신기한 일은 아니다만, 굳이 이런 쇠뇌까지 만들어서 상대해야 할 사람이 대체 누구지?
사람 하나를 죽이시려는 거였을까, 사람들 무리를 죄다 죽이시려던 거였을까?
“그 후로 아씨께서 양주 곳곳을 돌아다니시는 동안 몇 번 살의를 품으신 적이 있습니다. 진짜로요. 그런데 죽이려던 사람은 모두 우연히 만난 사람들이었고, 그중에는 노인들이나 어린아이들도 있었습니다.”
당시 상황을 떠올리자, 시종은 온몸에 소름이 돋는 듯했다.
주씨 가문의 시종들은 살인을 무서워하지 않았다. 하지만 생면부지인 데다 정교랑 일행을 살갑게 맞이해 주던 선량한 사람들에게 차마 손을 쓸 수는 없었다. 그런 사람들을 죽이는 것은 무고한 살인이기 때문이었다.
“아씨는 절대로 그러실 분이 아니야.”
조 집사는 단호하게 고개를 저었다. 조 집사가 생각하는 정교랑은 항상 원칙을 지키고 약자를 해치지 않는 사람이었다.
정씨 저택에서 정 대노야와 정씨 시종들에게 포위되었을 때도 그녀는 조 집사에게 무력을 쓰지 말라고 일렀다. 하인들과 싸워 봤자 체면만 깎인다고 했던 정교랑이었다. 그것은 일종의 거만함이기도 하지만, 다른 한편으로는 정씨 가문의 시종들에게 자비를 베푼 것이나 다름없었다.
그런 사람이 어떻게 아무런 이유도 없이 길 가다 만난 무고한 자를 죽일 수 있냐는 말이다.
“그렇긴 하죠. 나중이 돼서는 또 괜찮아지셨거든요.”
시종들은 여운이 남은 듯한 표정을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고는 밤낮을 가리지 않고 길을 재촉하여 다시 강주로 돌아왔어요. 그 이후의 일들은 집사 어른도 아실 테고요.”
성에 들어오자마자, 거리에서 정평을 마주쳐 그에게 울며불며 뭔가를 부탁했지.
조 집사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쇠뇌를 쳐다보았다. 쇠뇌를 보면 볼수록 놀라움을 감출 수 없었다.
이 활이 시종들이 말한 것처럼 그리 강력하다면 말이지. 이걸 조정에 바치는 것만으로도 엄청난 공을 인정받을 거야!
“집사 어른, 아씨께서 이걸 잘 간수하라고 하셨습니다.”
시종의 말에 퍼뜩 정신을 차린 조 집사가 시종들에게 지시했다.
“마차에 두지 말고 지하 비밀 창고에 넣어 두거라.”
쇠뇌와 함께 마음을 추스른 조 집사는 다시 바깥으로 걸어 나와 강가에 앉아 낚시를 하고 있는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좌선하는 노승처럼 평온한 얼굴의 정교랑을 본 조 집사는 미간이 절로 찌푸려졌다.
어떤 일에도 감정이 동요하지 않는다는 건 좋지 않은데. 죽을병에 걸려서 곧 세상을 뜨게 된다고 해도, 저리 평온할 것만 같단 말이지. 저렇게 어린 나이에 벌써 감정이 메마르다니. 이를 어쩌면 좋을꼬?
사람이 살면서 바라는 것 하나 정도는 있어야 좋을 텐데. 정평이라는 그 이상한 놈도 돈 백 문을 벌겠다는 목표를 가지고 있는데 말이야.
영화 2년 4월.
용곡성 거리 위로 말 서너 마리가 달려오더니 어느 민가 앞에 멈춰 섰다.
소박하지만 깨끗하게 정리된 민가에는 빨간색과 초록색의 화려한 장식들이 여기저기 걸려있었다. 언뜻 보아도 혼례를 치른 지 얼마 안 된 집처럼 보였다.
“넷째 형님, 너무 늦게 온 거 아니오? 벌주 마셔요, 벌주!”
술 주전자를 높이 치켜든 서봉추가 술 냄새를 풍기며 외쳤다.
“큰형님, 제가 출타했던 터라 이 좋은 경사를 놓쳤습니다.”
서사근이 미안한 기색을 내비쳤다. 환한 미소를 지으며 마중 나온 범강림은 금방이라도 큰절을 올릴 기세인 서사근의 팔을 붙잡았다.
“괜찮다. 관리의 몸이니 어쩔 수 없지.”
“맞아, 맞아. 넷째 형님은 관리시고, 우리는 일개 병사지.”
서봉추가 눈치 없이 외치자, 서무수가 그의 등짝을 한 대 후려쳤다.
“네 색시는 애를 업고 널 찾고 있는데, 넌 여기서 주정이나 부리고 있어? 관리는 아무나 하는 줄 아느냐. 불만 있으면 너도 말을 돌보러 가든가.”
“아유, 그럴 바에는 그냥 병졸이 훨씬 낫죠.”
서봉추가 머리를 긁적이면서 헤벌쭉 웃었다. 그러고는 서무수의 말을 듣고 순순히 안으로 들어갔다.
마당에 서 있던 형제들이 서로 마주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방 안으로 들어온 일곱 형제가 동그랗게 모여 앉았다. 서봉추의 품에 안겨 있는 몇 달 된 아이까지 합하면 모두 여덟이었다. 아낙들이 부엌과 방을 오가면서 술과 음식을 내왔다.
“눈 깜짝할 사이에 벌써 2년이 다 되어 가네.”
서사근이 눈앞의 형제들을 둘러보며 말을 이었다.
“봉추 아우의 아들이 벌써 이렇게 컸고, 큰형님도 장가를 드셨고.”
“그러게. 이제 너희 몇 명만 남았다. 어서 가정을 이뤄야지.”
범강림이 서사근의 말을 받아치면서 손가락으로 몇 사람을 지목했다.
“우리는 아직 세워야 할 공이 많습니다. 자, 넷째야, 이 술 한 번 맛보거라.”
서무수가 웃으면서 술잔을 들어 올렸다.
“맞소, 맞아. 형님, 관주랑 이 술 중에 어느 게 더 맛있는지 말해 봐요.”
서봉추가 끼어들면서 말했다.
“이게 누이가 강주부에서 보내온 술이야?”
서사근은 말을 마치자마자 곧바로 술을 벌컥벌컥 들이마시고는, 좋은 술이라고 감탄했다.
“감탄부터 해대지 말고, 누이가 뭐라고 했는지는 안 궁금해?”
형제 중 하나가 웃으면서 물었다.
“보나마나 뻔하지. 누이는 분명히 이 술이 별로라고 했을 거야. 마땅한 술이 없으니, 이걸로라도 흥을 돋우라고 보냈겠지.”
서사근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방 안이 웃음바다가 되자, 문밖에 있던 아낙들이 안을 슬쩍 쳐다보았다.
“역시 형제들이 다 모이니까 즐거워 보이네.”
아낙 하나가 말했다.
“누이 얘기만 나오면 더 즐거워 보인다니까요.”
새댁으로 보이는 아낙이 대꾸했다.
앞서 말을 건넨 아낙이 새댁 같은 아낙의 손을 잡으며 반짝이는 금팔찌를 쳐다보았다. 그러고는 소매를 살짝 걷어 자신의 손목에 걸린 금팔찌를 내보였다.
“언제쯤 일곱 개가 다 채워질까.”
“시누이가 어떤 사람인지 참 궁금해요. 답례로 뭘 보내야 할지 고민했는데, 남편 말로는 누이한테 부족한 게 없다고 하더라고요. 그래서 신을 직접 만들어서 보냈는데 싫어하진 않을까 걱정이에요.”
새댁이 창피해하며 말했다.
“에이, 그럴 리가. 바느질 솜씨 한번 구경해도 돼?”
아낙들은 다른 방으로 들어가서 바느질 공예를 하나씩 꺼내 보면서 손재주에 관한 이야기를 이어갔다. 옆방에서는 간간이 사내들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들려왔다.
이때, 갑자기 거리에 울려 퍼진 다급한 딱따기 소리가 형제들의 즐거움을 깨트렸다.
“무슨 일 났나?”
형제들이 밖으로 나와 물었다.
“무슨 일이겠소. 서쪽 오랑캐 놈들이 또 이 몸한테 공 세울 기회를 바치러 온 거겠지.”
서봉추가 아들을 아내에게 건네고는 외쳤다.
“이번 공만 세우면, 우리도 다 명실상부한 장군이 될 수 있어!”
* * *
무슨 일이 난 거야?
하루 뒤, 사람들의 마음속에 같은 질문이 떠올랐다.
따뜻한 집을 떠난 서무수 형제들은 취기를 잃은 지 오래였다. 그들은 성보(城堡: 적을 방비하기 위하여 만든 소규모 요새)의 가장 높은 곳에 서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서무수는 성보 아래에 빽빽하게 서 있는 적군들을 쳐다보았다.
알록달록하고 이상한 글씨가 쓰인 깃발이 바람에 나부끼고 있었다. 변방의 병사들은 그 깃발들이 낯설지 않았다. 그 깃발들은 서쪽 오랑캐 왕의 친숙부가 총괄하는 정예병 부대의 것이었다.
“저게 바로 그 늙다리의 부대구나.”
서봉추가 한쪽에서 침을 뱉으며 말했다. 그의 얼굴은 피와 흙이 한데 섞여 몹시 우스꽝스러웠다.
“우리도 드디어 견문을 좀 넓히겠네.”
서봉추가 이를 드러내고 웃었다.
그래, 드디어 견문을 좀 넓혀볼 기회가 생겼구나.
성보 군영에 있는 병사들은 오랑캐 정예병들과 맞서 싸운 적이 한 번도 없었다.
서무수는 무거운 표정으로, 빽빽하게 서 있는 적군들의 수를 세기 시작했다.
물밀 틈 없이 메워진 적군 진영은 그야말로 온천지를 뒤덮을 정도였다. 말과 사람이 셀 수 없을 정도로 많았고, 제자리에서 대기 중인 병사들 외에도 오랑캐 기마병들이 먼지 바람을 일으키면서 말을 타고 사방으로 뛰어다녔다. 오랑캐들이 내는 말굽 소리는 금방이라도 쏟아질 것 같은 폭우 소리와 같았다.
셀 수 없어도 세야 해!
서무수는 눈을 부릅뜨고 적군의 수를 헤아렸다.
“몇이야?”
범강림이 물었다.
“육천입니다.”
서무수의 대답을 들은 주위 사람들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썩을 놈의 새끼! 그 조가 놈, 우리한테 후방에서 포위 공격하라며, 오랑캐 놈들의 혼을 쏙 빼놓겠다더니. 에라이, 대체 누구의 혼을 빼놓겠단 거야? 대체 어디에서 들어온 정보야? 오랑캐의 주력군이 왜 여기 나타났느냔 말이야!”
장수 하나가 욕을 해대며 불안한 듯 이리저리 서성였다.
“도대체 무슨 일이야! 일부러 나 엿 먹이려고 그런 거 아니야? 오랑캐의 주력이 왜 여기에 와 있냐고! 대체 왜!”
장수는 계속해서 같은 말을 반복했다.
“대인, 지금은 그런 걸 따질 때가 아닙니다. 대인께서 결정을 내리셔야 합니다.”
서무수가 앞으로 한 걸음 다가가 말했다.
장수는 걸음을 멈추고 뒤쪽을 쳐다보았다. 자신이 데려온 병사 수백을 제외하면, 성보 안에는 채 천 명도 안 되는 병사들만 남아 있었다. 성보 안에 있는 잡역부들 이백 명까지 다 합쳐 봤자, 고작 이천이었다. 좀 전에 서무수가 말한 육천 명의 적군이 떠오르자 장수의 안색은 점점 잿빛으로 변해 갔다.
“봉화에 불을 붙였느냐?”
장수의 물음에 수하가 예, 하고 대답했다.
“그럼, 그럼 철수하자.”
장수가 말했다.
“하지만 대인, 지금 철수한다면 후방에 있는 부대가 준비할 시간이 충분치 않을 겁니다.”
서무수 형제들이 지키고 있는 성보는 용곡성의 요충지였다. 만약 적군이 이곳을 뚫는다면, 용곡성 전체를 뚫는 것 또한 시간문제였다. 지금 철수할 경우, 잘못된 정보를 듣고 다른 방향을 향해 응전 태세를 갖추고 있을 부대들로서는 발가벗은 등을 적에게 보이는 것이나 다름없게 될 터였다.
물론 장수도 그런 끔찍한 결과를 충분히 예상했지만, 여기에 남는다고 해도 끔찍한 결과를 마주할 게 뻔했다.
“그건 다 조성(趙成) 그자의 판단 착오로 빚어진 결과다.”
장수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어차피 여기서 도망간다고 해도, 모든 잘못은 명령을 내린 조성에게 있었다.
서무수가 머뭇거리다가 입을 열었다.
“대인, 그래도 저희가 여기 남아 좀 더 버텨야 합니다. 전령병도 돌아왔고 봉화도 올렸으니, 조 장군의 부대도 한 시진 정도라면 준비를 끝낼 수 있을 겁니다.”
서무수가 앞으로 몇 걸음 나아가 성보 밖을 가리키면서 말했다.
“그리고 우리는 성을 두고 방어하며 싸우는 것이니, 절반의 승산은 있지 않습니까.”
그렇긴 하지. 말을 타고 미친 듯이 뛰어다니는 오랑캐들이라 공성전에는 매우 취약해.
이건 무모한 도전이자 엄청난 공을 세울 기회이기도 했다. 용곡성을 지켜낸 주 대인이 그랬던 것처럼.
장수의 눈빛이 반짝였다.
“그래. 주 대인께서도 이천 명 남짓한 병력으로 용곡성을 지켜내셨는데, 우리라고 못 할 게 뭐 있나! 우리가 수적 열세라고는 하나 딱 한 시진만 막아내면 돼. 오랑캐 놈들한테 똑똑히 알려주자고! 우리 진영은 절대로 뚫리지 않고, 우리가 지키는 성도 절대 함락되지 않는다는 걸!”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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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작가의 말:
정교랑이 만든 쇠뇌는 송나라 때의 신비궁(神臂弓)을 참고했습니다. , 제16권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