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00
교랑의경 400화
주육낭은 숨기지 않고 그렇다고 대답했다. 조성이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내 예상이 맞았어. 이래서 세상만사는 자신과 관련이 없을 때만 온갖 도리의 잣대를 갖다 댈 수 있는 거지. 자신과 조금이라도 관련이 있다면, 앞으로 나서게 될 수밖에 없어.
조성이 관청 안에서 천천히 걸음을 옮기며 왔다 갔다 했다.
“그럼, 자네 생각에는 그 부상병의 말이 사실이다?”
조성이 멈춰 서며 물었다.
“거짓말을 할 자가 아닙니다.”
그 뜻은, 방중화가 거짓말을 하고 있다는 거야? 아무리 아는 사람이라 해도, 이렇게 명확히 단정 지을 수가 있나?
보통은 머뭇거리면서 ‘저도 잘 모르겠으니, 부디 대인께서 옳은 결정을 해 주십시오.’라고 하지 않나? 그다음 내가 잠시 고민하다 주육낭에게 이 일은 파고들지 않는 게 좋다고 다독이고, 후에 다시 내게 간청하면 나는 그때가 되어서야 주육낭의 체면을 봐줄지 아닐지를 결정하는 게 순서인데.
일반적인 방식과는 전혀 다른 주육낭의 부탁 방식에 조성은 당황하여 말문이 턱 막혔다.
“그리고 당시 상황에서 그 형제들은 절대 성을 버리고 도망가지 않았을 겁니다. 분명 마지막 순간까지 성을 지켰을 테지요.”
주육낭이 엄숙한 표정으로 말을 이었다. 양옆으로 떨어뜨렸던 그의 두 손은 언제부턴가 주먹이 꽉 쥐여 있었다.
“육낭.”
다시 이리저리 걸음을 옮기던 조성이 별안간 멈추어 서서 주육낭을 쳐다보다가 의미심장하게 말했다.
“전장에서는 생사를 예측할 수 없고, 칼과 화살에는 눈이 달려 있지 않는 법이야. 전장에서는 어떤 일이든 발생할 수 있지.”
주육낭이 고개를 끄덕이며 공수의 예를 표했다.
“그러니 부디 대인께서 범강림을 심문하시기 바랍니다. 방 대인의 말이 맞는다면, 조사를 통해 방 대인의 누명을 씻을 기회이기도 하니까요.”
조성은 말없이 주육낭을 쳐다보았다. 주육낭도 허리를 숙인 채 공수한 자세 그대로 멈춰 있었다.
관청 안에 적막감이 흘렀다.
사실 이번 일을 조사하게 된다면 내게 좋을 것이 없어. 나는 전투 직전에 내린 잘못된 판단에 대해 책임을 져야 할 거야. 지금처럼 숨길 걸 숨기고, 다들 기뻐하고 있을 때 얼버무리고 넘길 수 있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은 결말일 텐데.
조성은 자신의 앞에서 허리를 숙인 채 꿈쩍도 하지 않는 주육낭을 가만히 쳐다보았다.
그냥 아는 정도가 아니라 꽤 깊은 관계였나 보군. 지난번에 꼭 지원군을 보내야 한다고 했던 것도, 아마 그자들을 위해서였겠지.
그럼 주 감찰이 내게 했던 그 말들은 사실 별게 아니었나? 하지만 그러기엔 진 상공까지 나서서 당부했다는데.
눈 딱 감고, 한 번만 더 도박을 해 볼까?
“좋다. 그럼 그 부상병을 불러 한번 심문해 보지. 이렇게 계속 소문만 파다한 건 방 대인에게도 딱히 좋은 일이 아닐 테니.”
조성은 생각 끝에 고개를 끄덕이며 말했다.
“대인께 감사드립니다!”
주육낭은 이를 악물고 허리를 더욱 숙여 예를 올렸다.
감사드립니다! 대인! 정말 감사드립니다!
대문을 열자마자 관청 병졸들이 서 있는 것을 본 범강림의 아내는 덜컥 겁부터 났다.
결국 관청 관리들의 성질을 긁은 건가? 남편은 이제 잡혀가는 건가?
“날 찾는 거요?”
마당에서 지팡이를 짚으며 몸을 일으킨 범강림이 담담한 표정으로 묻고는 부인을 쳐다보았다.
“일단 당신은 짐을 챙겨서 넷째네로 가 있으시오.”
범강림이 일을 키우기로 결정했을 때, 두 형제 사이에 의견 충돌이 있었다.
“좋은 일이 있으면 같이 기뻐하고, 고난이 있으면 같이 겪기로 했잖소. 그런데 왜 이 일은 내가 나서면 안 되는 겁니까? 내가 괴롭힘을 당했을 때도, 형님들은 한 번도 관리를 무서워하며 피한 적이 없었소. 그때도 다들 날 위해 기꺼이 발 벗고 나섰는데, 왜 난 안 된다는 겁니까? 형제들이 그렇게 됐는데도 내 관직 때문에 나서지 못한다면, 이 관직을 얻어서 뭐에 쓰라고!”
서사근이 말했다.
“넷째야, 네 관직은 분명히 나중에 크게 쓰일 날이 올 거다. 나는 말단 병졸일 뿐이니, 내가 소란을 피워야 사람들의 주목을 받기가 쉬워. 큰 후환 같은 것 없이, 기껏해야 감옥에 갇히는 게 다일 거다. 하지만 네가 소란을 피운다면, 관직이 있는 자가 일부러 소란을 피우는 꼴이 돼. 관부의 윗분들께서 절대로 용납할 리 없지. 그러니 내가 먼저 길을 터 보마. 너는 뒤에서 나를 잘 챙겨 줘. 우리의 목표는 이 일을 크게 만드는 거다. 그리고 지금 남은 사람이라고는 너와 나 단 둘뿐이야. 집사람은 괜찮아. 서방이 죽으면 개가하겠지. 하지만 우리한테는 봉추가 남기고 간 아이가 있지 않냐. 너와 나 모두에게 무슨 일이 생겨 버리면, 그건 원수에게만 좋은 일이다. 우리에게 득이 될 게 없어. 그러니까 우리, 천천히 하자. 각자의 위치에서 천천히.”
범강림이 서사근을 다독이자, 서사근의 눈시울이 붉어졌다.
예전에는 치밀하게 계획을 짜고 무슨 일이 생길 때마다 어떻게 해야 한다고 알려 주던 서무수 형님이 있었지. 덕분에 우리 형제들은 굳이 어렵게 머리 굴릴 필요 없이 힘만 쓰면 됐어. 서무수 형님이 없는 지금은 큰 형님이 그 역할을 해 주시네.
“네. 알겠습니다. 형님의 뜻을 따르겠어요. 우리 천천히 합시다.”
서사근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갓난아이의 울음소리가 범강림의 회상을 끊었다. 엄숙한 표정의 병졸들은 범강림에게 자신들을 따라오라는 눈짓을 했다.
“여보.”
부인이 범강림을 붙잡고 울음을 터트렸다.
“누가 무슨 일로 나를 찾는 것이오? 제대로 말해 주지 않으면 여기서 한 발짝도 움직이지 않겠소.”
범강림이 말했다.
어차피 관청 관리들은 나를 무뢰한으로 볼 거야. 그렇다면 끝까지 얼굴에 철판을 깔 수밖에.
“순검 조 대인께서 심문을 위해 데려오라 하셨소.”
병졸이 사실대로 대답했다.
순검 대인!
정신이 퍼뜩 든 범강림이 환하게 웃었다.
소식을 들은 서사근은 한달음에 달려와 범강림과 함께 순검청으로 향했다.
“순검 대인께서 이 일을 조사하신다니, 드디어······.”
범강림이 감격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게요. 순검 대인께서 조사하신다니.”
서사근도 몹시 흥분한 모습이었다. 비록 관직에 오른 지 얼마 안 됐고, 겨우 목감 관리이긴 하지만, 관청에 존재하는 원리원칙들을 어렴풋이나마 깨우친 터였다.
순검 대인이 사람을 불러서 심문한다는 것이 무엇을 뜻하는 건지, 서사근은 얼추 알고 있었다.
예상 밖의 일이야! 이렇게 쉽게, 이렇게 빨리 심문을 받다니!
형제들이 하늘에서 우릴 위해 기도한 것이 틀림없어.
서사근이 심호흡을 한 번 하고는 범강림을 부축하며 층계를 올라 관청 안으로 들어섰다. 그들이 관청 안으로 들어설 때, 주육낭은 측문으로 관청을 나왔다. 주육낭은 서로에게 의지하며 관청 안으로 들어서는 두 사람의 뒷모습을 바라보았다.
– 이건 누이가 주라던 동상 치료용 연고입니다.
– 이건 누이가 주라던 단오절 향낭입니다. 이건 벌레 퇴치용 향이고······.
주육낭은 고개를 숙이고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누이가 나한테 주는 것은 무슨. 그 여인은 날 한 번도 오라비라고 생각한 적이 없을걸? 동생으로 본다면 모를까.
서무수, 서무수. 한 번도 그자의 얼굴을 제대로 쳐다본 적이 없어서, 어떻게 생겼는지도 기억도 잘 안 나네.
주육낭은 다시 한번 한숨을 내쉬고는 걸음을 옮겼다.
바닥에 엎드린 채 이야기를 끝낸 범강림을 보며, 조성은 고개를 끄덕였다.
“일어나거라.”
“부디 저희 형제를 위해 현명한 결정을 내려 주시기를 간청드립니다. 소인이 이러는 것은 돈 때문이 아닙니다. 오로지 형제들의 명예를 되찾기 위해서입니다. 그래야만 하늘에 있는 제 형제들의 넋을 위로할 수 있습니다.”
범강림이 울먹이며 말했다. 서사근이 범강림과 함께 예를 올렸다.
“알겠네.”
조성이 말하면서 그들에게 일어나라고 손짓했다. 범강림과 서사근은 조성을 향해 수차례 감사의 인사를 올린 뒤 관청에서 물러났다.
“대인, 어떻게 생각하십니까.”
수하가 조성에게 가까이 다가가 물었다.
“보면 모르겠나?”
조성은 서사근의 부축에 의지하여 관청을 떠나는 범강림의 뒷모습을 보며 한숨을 쉬었다.
“저런 비통함은 고작 돈 따위를 위해서 쥐어 짜낼 수 있는 것이 아니야.”
저렇게 뼛속에서부터 우러나오는 비통함은, 돈으로 살 수 없지.
수하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럼 어찌하실 겁니까? 대인, 이 일은 작다면 작고 크다면 큰일이지 않습니까.”
사실 조정에 공로를 인정해 달라고 보고서를 하나 더 올리면 그만인 일이다. 문서를 다루는 벼슬아치에게 시키면 금방 끝날 테니 사소하기도 하고 쉬운 일이기도 했다.
하지만 이 사안이 정말 조정으로 올라갈 경우, 방중화가 남의 공로를 빼앗았다는 죄목으로 벌을 받는 건 둘째 치고, 조정에서는 왜 공로에 착오가 생겼는지 문책할 게 뻔했다. 이 죄목 하나에 연루되는 서북 일대의 관리들이 한둘이 아닐 테고, 전투 직전 조성이 내린 잘못된 판단까지 다시금 문제가 될 터였다.
그리된다면, 전투에서 이기고 공로를 세워 한껏 들뜬 서북의 분위기는 순식간에 뒤집혀 침체되겠지.
조 순검은 어두운 표정으로 수염을 쓰다듬으면서 생각에 잠겼다.
쨍그랑 소리와 함께, 청자 찻잔 하나가 바닥을 나뒹굴었다. 산산조각이 난 찻잔 사이로 튄 찻물이 바닥에 흩뿌려졌다.
“내 결백을 위해서라고? 내가 아둔패기인 줄 알아?”
얼굴이 새파랗게 질린 방중화가 손으로 탁자를 내리치면서 말했다.
“정말 내 결백을 생각해서 그런 거라면, 그놈을 당장 때려잡아 감옥에 처넣었어야지! 그놈을 군법으로 다스렸어야 한다고!”
화를 참지 못한 방중화는 탁자를 아예 엎어 버리고 대청 안을 이리저리 서성였다. 수하 몇 명이 서둘러 방중화에게 다가가 그를 진정시켰다.
“조성 그놈이 쓸데없는 짓을 벌이는 게야. 놈은 애초부터 내가 자기 자리를 꿰찰까 봐 날 경계하고 싫어했지. 이번 기회를 빌미로 나를 밟아 버릴 작정이 분명해.”
방중화가 수하들을 밀쳐내면서 손을 휘휘 저었다.
“대인, 대인, 듣기로는 섬주 주씨 가문의 주육낭이 자리를 마련해 준 것이라고 합니다.”
수하 하나가 다급하게 말했다. 방중화가 걸음을 멈추고 미간을 찌푸렸다.
“주육낭? 아, 그 자식? 맞아, 맞아, 틀림없어. 그날 그 자식이 조 순검을 만나러 갔었지.”
방중화가 방 안의 사람들을 쳐다보며 물었다.
“그 자식, 나한테 무슨 원수라도 졌나?”
“대인께 원한이 있는 게 아니라, 그 병사들과 친분이 있는 것 같습니다.”
수하가 대답했다.
그럼 그렇지. 세상에 이유 없이 생긴 원한이나 친분은 없는 법.
방중화가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기억을 더듬었다.
“조 순검 말로는, 그때 지원군을 보냈던 것도 그 주씨 놈의 생각이라고 했어. 난 또 웬일로 날 위해 지원군을 보냈나 했더니, 내가 아니라 그 뒈진 놈들을 위해 그랬던 거였군.”
“대인, 지금 그게 중요한 게 아닙니다. 순검 어른께서 이 일을 들춰낸 걸 보면, 심상치 않은 상황인 것 같습니다.”
수하의 말에 다른 수하도 눈치껏 귀띔했다.
“순검 대인을 한번 뵈러 가는 건 어떻습니까?”
수하들의 말에 방중화는 냉소를 보이면서 다시 이리저리 서성였다.
“지금 내가 순검을 만나서 뭐 해? 제 발 저리는 걸 티 낼 필요가 있어?”
방중화가 걸음을 멈추고 말했다.
“누구는 줄 댈 사람이 없는 줄 알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