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12
교랑의경 412화
진십삼이 이상하다고 느낀 사람은 사환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대청 안으로 들어선 진 시강은 뭔가 이상하다는 표정으로 뒤를 돌아보았다.
“왜 그래요?”
여유롭게 부채질을 하고 있던 진 부인이 물었다.
“십삼의 기분이 왜 저렇게 좋은 거요?”
진 시강이 물었다.
“우리 십삼이 언제 기분이 안 좋았던 때가 있나요.”
진 부인이 웃으면서 대답했다.
“그게 아니라, 이번엔 정말로 기뻐 보여서 그렇소. 아주 숨길 수 없을 정도로, 아니, 숨길 생각도 없을 정도로 기뻐하는 것처럼 보이는군.”
진 시강이 겉옷을 벗으며 말했다.
그러니 이상하지.
“무슨 기분 좋은 일이라도 있나? 일식 때문인가?”
진 시강이 중얼거렸다. 진 부인은 부정 탄다는 눈빛으로 진 시강을 쏘아보았다.
“십삼이 지금 뭘 하고 있는지 알아보아라.”
진 부인이 시녀에게 명령했다. 얼마 지나지 않아 돌아온 시녀가 진 부인에게 말했다.
“십삼공자께서는 책을 읽고 계십니다.”
시녀의 말을 들은 진 부인이 진 시강에게 웃으면서 말했다.
“예전이랑 똑같기만 하네요, 뭘. 진짜 기쁘면, 책이 눈에 들어오겠어요?”
진십삼은 손에 쥔 책을 보면서 행을 따라 눈을 움직였다. 하지만 단 한 글자도 눈에 들어오지 않고, 오늘 보았던 정교랑의 일거수일투족만이 눈앞에 아른거렸다.
진십삼은 오늘 이른 아침에 책을 한 권 읽고, 스승님께 경문 몇 편을 여쭤보았다. 그러고는 벗들과 함께 덕승루로 가서 시를 읊으며 여유를 즐겼다.
이제 진십삼의 옆에는 동문수학하는 학우들과 권문세가의 자제인 수많은 벗이 있었다. 그들은 진십삼을 덕승루로 초대해 화괴의 가무를 즐겼고, 진십삼은 한껏 흥을 즐기고 나서 잠시 물러나 쉬었다. 편안하면서도 여유로운 하루였다.
그런데 어찌 된 일인지 그 여인을 보는 순간, 그 모든 것이 보이지 않았다. 마음속에 흔적조차 남지 않을 정도로 깡그리 사라졌다.
여태 만났던 사람들이나 그들과 함께 보낸 시간은 전부 무의미하고 공허하기라도 하다는 듯이.
그 여인이 눈앞에 나타나고 나서야 그의 모든 것은 화지에 색을 더한 것처럼 생명력을 되찾고 각자의 색을 띠기 시작했다.
진십삼은 한숨을 토하며 손에 쥐고 있던 책을 내려놓았다.
속상하네. 나는 2년이라는 시간을 허투루 보냈던 건가? 2년 동안 느낀 즐거움은 모두 가짜였단 말이야?
지금 내가 느끼고 있는 이 기쁨은, 나만의 기쁨이겠지. 그 낭자에게는······ 다 똑같은 사람일 뿐일 거야.
진십삼은 다시 책을 들고 집중하려 했다.
하지만 낭자는 내게 직접 차도 우려 주었는걸.
구운 차병을 낭자의 주전자에 직접 우리고는, 보기 드물게 검은색 유약이 칠해진 도자기로 만든 찻잔에 차를 따라 주었다. 그렇게 각별한 태도로 찻잔을 건넸다.
낭자는 내게 마음이 없는 게 아닐 거야. 자신의 마음을 표현할 줄 모르거나, 표현하는 것이 익숙하지 않을 뿐이지.
간식이 든 찬합을 무뚝뚝하게 건넸을 때도 그랬잖아.
– 가져가서 먹어요.
주육낭은 낭자의 그런 행동을 퍽 수치스러워했지. 어린아이를 달래듯이 간식을 쥐여준 것처럼 보였으니까.
진십삼도 당시에는 조금 민망했지만, 나중에 깨달았다. 그 낭자가 달래고 싶은 아이는 세상에 몇 없다는 것을. 낭자가 달래 준 아이는 아마 손에 꼽을 정도일 테니까.
진십삼은 결국 웃음을 터트리고 책을 탁자 위로 던졌다.
해가 저물고 시원한 바람이 불어올 때쯤, 수문장과 관졸들은 성문을 닫을 준비를 했다. 원래는 이렇게 일찍 성문을 닫지 않지만, 오늘은 일식이 있었던 터라 평소보다 일찍 성문을 닫으라는 관청의 명이 있었다.
이때, 말을 탄 두 사람과 물건을 잔뜩 실은 말 한 필이 성문 앞으로 다가왔다. 수문장은 그들에게 멈추라는 손짓도 하지 않고 곧장 그들을 성문 안으로 들여보냈다.
“말에 물건을 한가득 실었던데, 왜 검사도 하지 않고 들여보내십니까?”
관졸 하나가 의아한 얼굴로 수문장에게 물었다.
“이러니 아직 네놈이 세상 물정을 모른다고 하지.”
수문장이 귀찮다는 듯 미간을 찌푸리며 턱으로 성 안쪽을 가리켰다.
“좀 전에 지나간 그 사내, 살기가 느껴지지 않디? 차림새를 딱 보면 군에서 먼 길을 달려온 게 보이잖아. 전장에서 피를 뒤집어썼던 사람을 검사하라고? 얻어맞고 싶어서 안달이 난 게야?”
말을 탄 채 성문을 지난 주육낭은 익숙하고도 낯선 거리를 둘러보았다. 돌아온 고향에서 느껴지는 친숙함이 온몸을 덮치자, 주육낭은 채찍질을 하며 말에 박차를 가했다.
거리에는 화려한 등불들이 이제 막 켜지기 시작했지만, 낮에 있었던 일식 때문에 오가는 행인들은 많지 않았다. 한창 시끌벅적해야 할 시간임에도 불구하고, 경성의 거리는 한산하기만 했다.
“공자님?”
바로 뒤에서 따라오던 사환은 주육낭이 갑자기 말고삐를 당기며 말을 멈추차 얼른 따라서 말고삐를 당겼다. 사환이 의아한 얼굴로 고개를 돌리며 무슨 일이냐고 물었다.
주육낭의 시선은 한곳을 응시하고 있었다. 등불이 환하게 켜진 옥대교 앞 저택이었다. 문 앞에서 더위를 식히는 사람이 아무도 없어서, 옥대교 저택 앞은 조용하고 여유로워 보였다.
그 여인은 도착했으려나? 서북과 비교하면 강주부에서 오는 길이 더 멀 테니, 나보다 일찍 출발했겠지?
“공자님, 우선 정 아씨를 뵙고 갈까요?”
사환이 웃으며 물었다.
보러 가겠느냐고? 내가 저 여인을 왜 봐?
내가 보러 간다고 한들, 그 여인이 퍽이나 좋아하겠다.
주육낭은 콧방귀를 뀌고는 채찍을 휘둘렀다.
빠르게 앞서 나가는 주육낭 때문에 사환도 서둘러 채찍을 휘둘러야 했다. 사환이 마지막으로 뒤를 돌아보자, 옥대교 저택의 문이 열리고 사람들 무리가 밖으로 나오는 모습이 보였다.
누구지? 눈에 익은 사람들 같은데, 집에서 봤던 사람들인 것 같기도 하고.
짙어지는 밤하늘 아래, 말굽 소리는 점점 더 멀어져 갔다. 사환의 시야는 모퉁이에 가려져 더 이상 옥대교 저택이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남겠습니다. 그때 주 노야께서 저희를 아씨께 준 것이나 다름없습니다.”
대문 앞에 서 있던 시종들이 발걸음을 멈추고 재차 말했다.
“아씨께서 너희가 필요 없어졌다고 하신 게 아니야. 겁먹기는.”
시녀가 웃으면서 말하자, 시종들은 그제야 표정을 누그러뜨렸다.
“어휴, 엄청 겁먹게 되네요.”
시종 중 하나가 우스갯소리를 했다.
“인제 그만 돌아가. 집을 나온 지 한참 됐으니까, 가서 친구들도 만나고 회포도 풀고 하루 푹 쉬다 와. 여긴 내가 지키고 있을 테니까.”
시녀가 말했다.
시종들은 정교랑을 따라다닌 지 오래였던 터라, 더는 토 달지 않고 허리를 숙여 예를 올린 뒤 자리를 떠났다. 시녀와 반근은 시종들을 눈으로 배웅한 뒤 대문을 걸어 잠갔다.
옥대교 저택 앞은 다시 조용해졌다.
이때 옥대교 저택 바로 옆의 저택에서 누군가가 문을 열고 고개를 빼꼼 내밀었다. 놀란 표정을 짓는 그의 얼굴이 등불에 비쳤다. 그는 조심스럽게 문을 닫은 뒤 거리의 어둠 속으로 재빨리 사라졌다.
밤이 되자, 수문장들이 황궁의 궁문을 걸어 잠갔다. 온종일 정사를 돌보았던 황제도 비빈들과 함께 태후궁에서 휴식을 취하고 있었다.
새로 수리한 태후궁 전각 곳곳에는 화려한 문양이 보였고, 등불이 찬란하게 빛나고 있었다.
현재 황제의 슬하에는 두 명의 황자와 세 명의 공주가 있었다. 많다고 할 순 없으나 그렇다고 적은 자손도 아니었다. 아들 하나와 딸 셋이 한자리에 모여 조잘조잘 떠들어 대니 아이들의 목소리가 무척 정겹게 들렸다.
“아바마마께 한 잔 올릴게요.”
비빈과 유모의 지도하에, 제일 어린 공주가 고사리 같은 손으로 그럴싸한 동작을 취하며 황제에게 술잔을 올렸다.
어린 공주의 귀여움 덕분에 황제는 피로가 싹 가시는 듯했다. 황제는 환한 미소를 지으며 공주를 번쩍 들어 올려 자신의 앞에 두고 술잔을 받았다.
황제가 웃으면서 태후궁 안을 둘러보았다.
그 두 아이는 오지 않았구나.
“오늘 일식이 있었으니, 군왕과 경왕을 불러오거라. 같이 술도 한잔하면서 놀란 마음을 추슬러야지.”
황제가 말했다.
“좀 전에 불렀소. 하나 경왕의 상태를 모르는 것도 아니니, 괜히 군왕을 난처하게 하지 맙시다.”
태후가 대답했다.
“계속 이렇게 사람을 피하면 좋지 않을 텐데.”
황제가 한숨을 쉬었다.
그놈은 착하고 가엾은 모습을 꾸며내는 것일 뿐이에요. 우리만 피하는 거지, 폐하를 피한 적은 없잖아요. 정말로 사람을 피하는 거였다면, 매일 폐하 근처를 서성이며 조회까지 따라갈 리는 만무하겠지요. 대황자가 조회를 나가는 것은 당연하고 응당한 일이지만, 아직 친왕 봉호도 받지 못한 군왕이 어찌 감히 조회를 나간단 말입니까.
군왕이 몹시 괘씸했던 귀비는 속으로 생각하고는 대황자에게 조용히 물었다.
“혹시, 군왕이 폐하 앞에서 네게 창피를 준 적 있느냐?”
대황자는 지금과 같이 무료하고 따분한 시간을 싫어했다. 할 수만 있다면, 자신도 사람들을 피해서 처소 안에 틀어박혀 책을 읽고 아랫것들이 아부를 떠는 것을 즐기며 시간을 보내고 싶었다. 이렇게 여기서 남의 환심을 사려고 아등바등할 게 아니라.
그러니 바보가 되는 게 그리 나쁘지도 않지. 그 바보와 군왕은 내게 감사해야 마땅해.
“어딜 감히요! 군왕은 아둔해서 경문도 못 외우고, 옛 고사도 잘 모르는데, 어찌 제게 창피를 줄 수 있겠습니까?”
대황자가 콧방귀를 뀌면서 으스댔다.
비록 태후와 황제가 진안 군왕에게 글공부를 거듭 권하긴 했지만, 군왕은 경왕을 돌봐야 한다는 이유로 차츰 학당에 발길을 끊었다. 거의 학업을 포기한 것이나 다름없었다.
군왕은 어차피 종친이고 과거를 볼 필요도 없으니, 사리 분별을 하고 글을 읽을 줄 아는 것으로 충분하긴 했다. 군왕의 고집을 꺾지 못한 태후와 황제는 결국 학업 권유를 포기했다.
“한데 군왕이 폐하께 의견을 자주 낸다고 하더구나. 폐하께서도 군왕의 의견을 몹시 마음에 들어 하시고······.”
귀비가 말끝을 흐렸다.
무릎 위에 올려 두었던 대황자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는 주먹을 쥐고 고개를 돌려 귀비를 쳐다보았다.
“마마, 얼마 전 관산의 수로 안건도 제가 결정했고, 대하의 수해에 관한 신법 제정 논쟁에도 제가 참여했습니다. 혹시 그에 대해서는 들은 것이 없으신지요?”
대황자가 귀비에게 반문했다.
올해 열세 살밖에 되지 않았지만, 황제를 따라다니면서 조정의 일에 대해 들은 게 많다 보니, 대황자의 기세는 날이 갈수록 거세졌다.
얘 말하는 것 좀 봐. 어쩜 저리 말 한마디 한마디가 기세등등할까. 정말 위엄있어 보이네.
귀비가 입꼬리를 올리며 웃었다.
“없을 리가 있나. 이 어미가 다 귀담아듣고 있단다.”
“그럼 부디 안심하세요, 마마. 누가 무슨 말을 하든 간에, 폐하께서 가장 아끼시는 건 소자이고, 폐하께 자주 의견을 내는 사람 또한 소자입니다.”
대황자가 말했다.
“알겠다, 알겠어. 이 어미는 네가 받아야 할 주목을 빼앗길까 봐 그런 거야.”
귀비가 대황자의 어깨를 토닥이며 말했다.
“아무도 소자를 향한 관심을 빼앗을 수 없습니다.”
감히 내 자리를 꿰차려는 사람이 있다면, 비참한 말로를 맞이하리라. 그 바보 경왕처럼.
“무슨 재미난 이야기들을 하고 있느냐?”
태후의 목소리가 귀비와 대황자의 대화를 끊었다. 두 사람이 서둘러 태후 쪽을 쳐다보자, 태후가 그들에게 가까이 오라는 손짓을 했다.
“이리 와서 애가에게도 말해 다오.”
귀비가 웃으면서 대황자의 등을 떠밀자, 대황자는 웃음을 짜내며 몸을 일으켜 태후에게 다가갔다.
대황자는 어린 공주와 황제 곁에 앉아 담소를 나누었다. 두 부자가 대화를 나누고 있는 모습을 보던 태후는 무언가 생각났다는 듯이 입을 열었다.
“여기 이 보양탕이라도 황후에게 좀 가져다주거라. 몸도 좋지 않은 사람이 일식 때문에 많이 놀랐을 텐데, 몸이라도 따뜻하게 데워야지.”
“짐이 조금 이따 가 보겠습니다.”
황제의 말에 태후가 고개를 끄덕였다.
얼마 지나지 않아, 황후에게 보양탕을 가져다주었던 내시가 돌아와서 웃으며 태후에게 감사 인사를 올렸다.
“황후는 잠들었더냐?”
“아닙니다. 군왕과 이야기를 나누고 계셨습니다. 소인이 보양탕을 가져다드렸더니, 기뻐하시면서 군왕과 함께 나누어 드셨습니다. 황후께서도 기분이 좋아 보이셨고요.”
내시가 웃음을 보이며 대답했다.
저 봐, 저 봐. 사람을 피하긴? 사람을 골라 가면서 피하는 게지. 내 앞에서만 안 보일 뿐이지, 어디서든 나타나는 놈이야.
귀비가 손에 힘을 주어 부채질을 했다.
저 내시 놈도 아니꼬워. 왜 쓸데없는 말을 덧붙여서는. 황후가 자는지 안 자는지만 대답하면 될 것을, 뭐하러 주절주절 입을 놀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