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20
교랑의경 420화
노 검정이 대전 안으로 들어오면서 조심스럽게 고개를 들어 주위를 살폈다. 어상 위에 있던 황제는 언짢은 표정을 짓고 있었다. 주위의 관리들은 비웃는 이도 있고, 무표정인 이도 있었다.
노 검정은 자신을 부른 것이 분명 좋은 일 때문은 아닐 거라고 짐작했다.
“듣자니 서북에서 짐의 논공행상에 불만을 품은 자가 있다지?”
황제의 목소리가 노 검정의 머리 위로 스쳤다. 노 검정의 심장이 덜컥 내려앉았다. 그는 무의식적으로 고개를 들어 진소를 쳐다보았다.
진소는 아무런 표정 없이 서 있었다.
“강문원 외 몇몇 이들이 짐이 내리는 포상을 거절했소. 이번 대전을 승리로 이끌었던 주역들은 모두 최전선에 있던 병사와 장수들이라더군. 자신들은 직접 전장에 나간 게 아니니 공로를 인정받을 일을 하지 않았다며, 상을 받을 수 없다고 했소. 불복하는 이가 있을까 봐 겁난다나.”
황제가 담담하게 말하면서 냉랭한 시선으로 노 검정을 내려다보았다.
“노사안(盧思安), 그대 생각에, 누가 불복할 것 같소?”
노 검정의 콧잔등에 땀방울이 송골송골 맺혔다. 그는 황제의 질문에 대답하고 싶지 않았지만, 하는 수 없이 입을 열었다.
“폐하, 어찌 감히 불복하는 자가 있겠습니까. 대군이 승리를 거둘 수 있었던 것은, 모두 지휘관과 장수들의 현명한 판단과 전술 덕분입니다. 그들은 포상을 받아 마땅하옵니다.”
“그럼 그대가 불복하는 것인가?”
황제가 무미건조하게 묻자, 노 검정이 서둘러 허리를 숙이고 머리를 조아렸다.
“소신이 어찌 감히요. 당치 않습니다.”
“폐하.”
진소가 나서서 입을 열었다.
“강문원이 어명을 무시하고 경솔하게 행동했습니다.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헛된 명예를 탐낸 것이니, 벌을 내리셔야 마땅하옵니다.”
진소가 아닌 다른 대신이 이런 말로 조정의 얼굴을 후려쳤다면, 황제는 그 대신이 제발 아량을 베풀어 달라고 빌 때까지 호통을 치고 따끔하게 훈계했을 것이다.
게다가 진소가 말한 자는 강문원 등 서북의 고위 관리들이었다. 그들이 서쪽 오랑캐의 정예병들을 무찌르고 대승을 거둔 것은 가히 큰 공로라 할 수 있었다.
하지만 황제가 대승을 기념하며 서북을 치하하고 포상을 하사한 지 얼마 지나지 않은 이 시점에, 진소는 찬물을 끼얹는 행동을 한 것이나 마찬가지였다.
노 검정을 위해 나선 자가 진소였기에 황제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노 검정은 진소가 천거한 인사였기 때문에, 노 검정이 암암리에 서북 전투의 일을 조사한다는 사실은 곧 진소가 그 일을 조사하는 것이라고 생각하기 쉬웠다. 하지만 정말로 진소가 노 검정에게 조사를 시켰는지는 증거가 없으니 아무도 모를 일이었다.
지금 시점에 진소가 노 검정을 위해 나선다는 것은 자신이 조사를 명했다고 자백하는 것과 같았다. 하지만 지금 이 시점에 노 검정을 위해 나서지 않는다면, 진소는 매정하고 의리가 없으며, 제 몫만 챙기기 바쁜 비겁한 자라는 수식어를 얻게 될 것이었다.
어찌 됐든, 이번 일로 진소는 황제의 마음속에서 몇 순위는 아래로 떨어지게 되었다.
고능준의 입꼬리가 점점 더 위로 올라갔다. 그는 살면서 처음으로 강직하고 아첨을 떨지 않는 진소의 모습에 감탄했다.
진소가 뭐라 더 말을 덧붙이려고 하자, 노 검정이 한발 앞서 말했다.
“폐하, 공로가 있음에도 불구하고 포상을 내리지 않는 것은 도리에 어긋나는 일이라 사료되옵니다.”
노 검정이 이를 악물고 뒷말을 뱉어냈다.
“소신이 잘못했습니다. 그러니 소신이 직접 서북으로 가서, 강 대인과 장수들에게 포상을 전달하도록 윤허해 주십시오.”
제 발로 경성을 나가겠다는 뜻이군!
황제의 입가에 냉소가 번졌다.
보았느냐. 이것이야말로 수단과 방법을 가리지 않고 명예를 좇는 행동이다. 그렇게까지 해서 명예를 지키고 싶다면, 내 기꺼이 윤허해 주지. 조정의 대신 하나 잃는 게 뭐 그리 대수라고.
“짐은 이번 포상에 대해 불복하는 자가 있다는 말을 들은 적이 없소. 그러니 짐을 대신하여 서북으로 가서 알아보시오. 도대체 누가 그렇게 억울한 건지, 짐이 내리는 포상에 대해 불복하는 자가 얼마나 많은지 알아보라고.”
황제가 담담하게 말했다.
대신들이 물러나자, 황제가 피곤한 기색으로 어상 한쪽에 기댔다. 어상 아래 서 있던 대황자가 서둘러 황제 곁으로 다가갔다.
“아바마마, 궁으로 돌아가셔서 쉬심이 좋겠습니다.”
대황자가 다정하게 말했다. 그러나 황제는 몸을 일으키지 않고 관자놀이를 꾹꾹 눌렀다.
“오늘 일에 대해서 어떻게 생각하느냐?”
황제가 물었다.
“원망입니다. 저들은 마음속에 원망을 품고 있습니다. 그런 마음을 가진 대신들의 말을 들으면 아니 되옵니다. 강 대인의 공로를 만천하가 아는데, 불만을 품은 관리들이 그 공로를 무시한 채 트집만 잡으려고 하니, 그들이야말로 벌을 받아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그런 자들을 이대로 내버려 둔다면, 훗날 군사 관련 일을 추진할 때 어려움이 많을 것입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자, 대황자는 뿌듯한 표정을 지었다. 황제가 다른 한쪽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위낭, 네 생각은 어떠하냐?”
진안 군왕이 허리 숙여 예를 표한 뒤 말했다.
“소신은 이 일이 석연치 않다고 생각됩니다. 노사안이 이 일을 조사하는 것도 수상하고, 강문원이 굳이 포상을 거절한 것도 수상하며, 진 상공이 한 말도 수상합니다.”
“그래, 네 말이 맞다. 이 일은 원망과는 상관이 없는 일이야.”
황제가 이마를 누르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가 허탈한 웃음을 보이며 말했다.
“보았느냐. 좋은 일이든, 나쁜 일이든, 기쁜 일이든, 기분 나쁜 일이든, 어떤 일이든 간에, 짐과 함께 정사에 참여하는 대신들은 항상 서로 못 잡아먹어서 안달이 나 있다. 깨알만 한 일에도 암투를 벌이면서 서로를 공격하곤 해. 아마도 저들은 영원히 저렇게 서로 뒤엉켜서 좀처럼 조용해지지 않을 것이야.”
“폐하께서 부디 넓은 아량으로 저들을 보살펴 주시기 바랍니다. 폐하가 계시기에 저들의 균형이 유지되는 것 아닙니까. 나라를 위해 공로를 세우는 대신들이라면, 굳이 저들의 속내까지 살피지 않으셔도 된다고 생각합니다.”
진안 군왕이 말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면서 진안 군왕을 향해 웃음을 지었다. 그가 몸을 일으키고 진안 군왕과 대황자에게 말했다.
“다들 피곤할 텐데, 그만 궁으로 돌아가 쉬거라.”
진안 군왕은 알겠다고 대답한 뒤 예를 올렸다. 황제의 의장이 멀어지는 것을 본 대황자가 분한 듯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전하, 태후궁으로 가시는 거라면, 저와 같이······.”
진안 군왕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대황자는 소매를 홱 털며 자리를 떴다. 진안 군왕은 대황자의 무례함이 익숙한 듯 입꼬리를 올리고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썩은 내가 진동하는 쥐를 진미라 여기는 것도 모자라, 봉황을 시기하는 마음 그칠 줄 모르는구나(不知腐鼠成滋味, 猜意鵷雛竟未休 – 이상은李商隱)!”
진안 군왕이 느긋하게 시를 읊었다.
어리석은 것은 대황자나 다른 사람이나 다 똑같았다.
한편 노 검정은 진소를 향해 예를 올리고 있었다.
“대인, 다 소인의 잘못입니다. 대인께서 소인을 천거해 주신 은혜를 갚지 못할망정, 대인을 함정에 빠트리다니요.”
노 검정이 울먹이면서 사죄했다.
“사안, 자네도 참. 왜 갑자기 그런 걸 알아본 게야? 지금이 어떤 시기인데, 왜 하필 이때 조사를 해? 지금 그런 짓을 한다는 건, 폐하의 용안에 따귀를 날리는 것과 다름없는 행위가 아닌가.”
옆에 서 있던 사람이 참지 못하고 노 검정을 나무랐다.
“내 탓일세. 내가 사석에서 주 감찰에 관한 이야기를 꺼내지 말았어야 했어.”
진소의 말에 노 검정은 더욱 속상해 울기 직전이었다.
“대인, 이게 다 소인이 멋대로 행동했기에 대인에게 폐를 끼친 것입니다.”
“아직 조심성이 부족해 그랬겠지. 관청에 고능준이 심어 놓은 귀가 몇 개인데.”
옆에 있던 사람이 안타까워하면서 말했다. 진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엎질러진 물이니, 쓸데없는 생각은 그만하게. 이참에 잠시 나가서 화를 피하는 것도 좋은 일이야.”
그렇지요. 이젠 그럴 수밖에요.
노 검정이 속으로 생각하면서 진소를 향해 정중하게 예를 올렸다.
일이 어쩌다 이 지경이 된 건지 모를 일이었다. 고능준이 먼저 횃불을 가로채 황제의 마음에 불을 지피고 분노를 일으키다니, 진소 쪽으로서는 마른하늘에 날벼락이었다. 아무것도 한 일이 없는데, 다짜고짜 욕을 먹고 체면을 깎였으니.
이를 어쩌면 좋지? 정 낭자가 나를 찾아온다면, 핑계를 대서 거절하기는커녕 그 여인을 뜯어말려야 할 지경이 됐어. 또 지난번 탈영병 사건 때처럼 되어 버렸군.
진소가 쓴웃음을 지었다.
어쩌면 그 여인은 이번 일로 나를 찾아올 생각이 없을지도.
부인의 말처럼, 내가 공연한 걱정을 하는 것이길 바라야겠군. 그 여인이 경성에 올 일도, 그 탈영병들 때문에 일을 벌일 가능성도 없다고 믿고 싶어.
고능준이 이 일에 손을 대든 안 대든, 이 일을 입에 올리는 건 우스운 일이었다.
그 병졸들이 아직 살아 있다면 또 몰라도, 이미 죽은 자들의 공로를 논해 봤자 무슨 소용이 있겠는가. 쓸모없는 일이었다. 보통 어려운 일이 아닐 것이 뻔한데, 굳이 그런 일을 만들어 뭐 하겠나. 의미 없는 일을 만들 필요는 없었다.
“하지만 누가 배후에서 우리의 등에 칼을 꽂은 건지는 알아내야겠다. 이제 겨우 한 수 두었을 뿐, 우리에게도 기회가 있으니 아직 승패는 모를 일이야.”
“일단 이렇게 일단락됐지만, 최종적인 결과가 어떻게 될지는 아직 아무도 모릅니다. 그러니 낭자도 너무 걱정하지 마십시오.”
며칠 뒤, 진십삼도 진소와 똑같은 말을 내뱉었다. 그는 찻잔을 손에 들고 누추한 방 안에 앉아 있었다. 방 안에서 알 수 없는 고약한 냄새가 났지만, 진십삼은 전혀 개의치 않는 듯 보였다.
“폐하께서 자신의 포상에 불복하는 이에 대해 들은 적이 없으니, 서북으로 사람을 보내 알아보라고 했다는 거죠? 도대체 누가 불복하는 건지, 얼마나 많은 사람이 불복하는 건지 대해서 알아보라고요.”
정교랑이 반문했다.
“맞아요. 그런데 참 아쉽게 됐습니다. 나도 기회를 봐서 아버지께 이 일을 말씀드려 보려고 했는데, 그자들보다 한발 늦어 결국 이 지경이 됐네요. 한동안은 아버지께 말씀을 올리지 못할 것 같습니다. 그래도 너무 조급하게 생각하지 마십시오. 분명 다른 방법이 더 있을 겁니다.”
진십삼이 말하자, 정교랑이 고개를 저으면서 입꼬리를 올렸다.
“난 원래도 성미가 급하지 않은 사람인걸요.”
진십삼이 찻잔을 내려놓고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정 낭자는 늘 그랬다. 아예 손을 쓰지 않는다면 모를까, 일단 손을 썼다 하면 만반의 준비가 갖춰져 있었다.
진십삼이 고개를 들어 주위를 둘러보았다.
낡아빠진 방에, 썩은 내 가득한 양조장이라니. 정말 낭자가 즉흥적으로 거처를 옮긴 걸까?
시녀와 반근에게서 정교랑이 이곳으로 거처를 옮겼다는 말을 들었을 때, 진십삼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다.
“아, 조회의 일은 우리와 상관없으니 여기까지 하고.”
진십삼이 정교랑을 쳐다보면서 물었다.
“낭자, 그래서 낭자의 계획은 뭡니까? 나도 좀 알 수 있을까요?”
정교랑이 진지한 진십삼을 쳐다보면서 미소를 지었다.
“난 한 번도 내가 하려는 일을 말하지 않은 적 없어요. 이번에는 정말로 오라버니의 영령을 안장하기 위해서 돌아온 거예요.”
“묫자리는 준비되었는데, 낭자는 준비됐습니까?”
진십삼이 이어서 물었다.
“곧 준비될 거예요.”
정교랑이 천천히 말했다. 진십삼은 잠시 정교랑을 빤히 쳐다보다가 고개를 저으며 웃음을 터트렸다.
“알겠습니다. 그럼 낭자가 어떤 준비를 했을지 기대해 보죠.”
꼭 기대하겠습니다.
사나운 새가 먹이를 잡기 위해 낮게 날며 날개를 모으는 것처럼, 맹수가 먹이를 잡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때가 왔을 때 정확하게 숨통을 끊어 놓기 위해서는 기회를 살피며 몸을 숨겨야 했다.
그 준비가 무엇인지, 내가 꼭 지켜보겠습니다.
2년이라는 시간이 지났다. 이 여인이 자신의 흔적만 남긴 채 연기처럼 사라졌던 시간이 벌써 2년이었다.
진십삼은 너무도 궁금했다. 온 경성에 이름을 알린 사람이자 그 누구도 모르는 사람이기도 한 이 여인이 이번에는 또 어떤 풍랑을 일으킬지,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놀라게 할지, 또 얼마나 많은 이들의 운명을 바꾸어 놓을지, 그리고 얼마나 많은 사람이 이를 갈면서 강주 바보를 외쳐댈지.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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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사나운 새가 먹이를 잡기 위해 낮게 날며 날개를 모으는 것처럼, 맹수가 먹이를 잡기 위해 몸을 웅크리고 귀를 기울이는 것처럼’ 구절은 전국시대 말기 작자 미상의 도가 병서인 에서 발췌하였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