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51
교랑의경 451화
주육낭이 활시위를 놓았다. 활시위가 떨리는 진동 소리가 들려오고, 곧이어 철판이 뚫리는 뭉툭한 소리가 들려왔다.
칠십 보 밖에 세워져 있던 방패가 흔들거렸다.
방패가 흔들거림을 멈추기도 전에, 주육낭은 곧바로 쇠뇌의 고리를 밟고 화살을 하나 더 올린 뒤 조준했다.
웅웅웅, 탕탕탕.
주육낭이 빠르게 쇠뇌를 당기고 화살을 쏘아내는 소리가 쉼 없이 고막을 때렸다.
“화살을 올리는 속도가 엄청나.”
금군 한 명이 중얼거렸다.
“심지어 화살을 당기는 게 전혀 힘들어 보이지 않아.”
다른 금군이 맞장구쳤다.
이 말인즉슨, 주육낭이 쓰는 쇠뇌는 화살을 올리는 시간을 대폭 줄일 수 있다는 뜻이다.
전장에서 시간은 곧 목숨이 아니던가. 생사는 찰나의 순간에 결정되는 경우가 많았고, 승부 또한 한순간에 판가름 날 때가 많았다.
주육낭은 연달아 화살 열 발을 쏜 후에야 쇠뇌를 내려놓았다. 눈 한 번 깜빡이지 않고 주육낭을 주시하던 금군은 드디어 주육낭이 숨을 고르며 손목을 터는 것을 보았다.
하지만 사람들이 궁금해하는 것은 주육낭의 모습이 아니었다. 모두의 시선은 일제히 칠십 보 밖에 일렬로 세워진 방패로 향했다.
금군 병사가 서둘러 방패 쪽으로 뛰어갔다.
“관통했습니다!”
금군 병사가 성문 위의 황제를 향해 구멍 난 방패를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그러고는 백성들이 있는 쪽을 향해 방패를 돌려 들었다.
백성들이 환호를 지르려던 찰나, 또 한 명의 금군이 방패를 높이 들었다.
“관통했습니다!”
“관통했습니다!”
“관통했습니다!”
금군들이 방패를 하나씩 치켜들며 외쳤다. 첫 번째 방패를 보고 환호를 지르려던 백성들은 주춤했다. 가장 가까이서 방패를 볼 수 있었던 고관대작들은 놀라서 입이 떡 벌어졌다. 고관대작들이 놀라 소리조차 내지 못하자, 백성들은 영문을 몰라 하면서도 덩달아 조용히 서 있었다.
성문 앞에 모인 거대한 인파가 아무런 소리도 내지 않은 채 가만히 서 있었다. 조금 전 황제가 성문 위에 오를 때와 같은 모습이었다.
황제가 성문 위에서 모습을 드러냈다. 만백성은 쥐죽은 듯 조용하고, 일렬로 들어 올려진 방패에는 커다란 구멍이 뚫려 있었다. 참으로 기이한 광경이었다.
“생각해 보아라. 저런 쇠뇌를 손에 든 이들이 너희 앞에 있다. 한 줄일 수도 있고, 두 줄일 수도 있고, 혹은 부대 전체일 수도 있지. 그렇다면 어떤 광경이 펼쳐지겠느냐?”
그건 어떤 광경일까?
쇠뇌를 장전한 병사들이 적을 향해 화살을 조준하여 쏘아내면, 저 강력한 화살들이 오랑캐의 머리 위로 비처럼 쏟아질 것이다. 그 화살들은 방패나 갑옷에 부딪혀 바닥으로 떨어지지 않고, 오랑캐의 방패와 갑옷을 관통하리라.
관통!
관통!
살점들이 허공에 날아다니고, 고통에 울부짖는 오랑캐의 목소리가 하늘과 땅을 뒤덮겠지. 오랑캐의 정예군 따위가 대수더냐! 오랑캐의 철갑 기마병 따위가 대수더냐!
하하하하!
황제 옆에 서 있던 금군 대장이 갑자기 큰 소리로 웃음을 터트렸다. 하지만 금군 대장의 결례를 지적하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적막을 깨는 그 웃음소리와 함께 사람들은 두피가 저릿해지면서 온몸에 뜨거운 전율이 일어남을 느꼈다.
어마어마한 살인 병기로구나!
열 개의 방패가 성문 위로 올려졌다. 황제는 방패를 하나씩 자세히 들여다보았다.
구멍이 난 모양을 유심히 보니, 화살로 방패를 관통할 수 있을 뿐만 아니라 방패 뒤에 선 사람까지 쏘아 죽일 수 있겠어.
황제는 감격스러운 표정을 숨기지 못했다.
“폐하, 화살을 올리는 속도도 엄청납니다! 저 소년 장수는 연달아 열 발을 쏘고도, 그저 숨을 내쉬며 손을 털기만 했습니다. 중노와 비교 자체가 불가능한 속도입니다. 이는 발의 힘으로 활시위를 당기기 때문입니다.”
소년 장수라는 말에 황제가 고개를 돌려 뒤를 쳐다보았다. 소년은 쇠뇌를 금군에게 맡긴 뒤 황제를 알현하러 성문 위로 올라와 어느덧 범강림 옆에 서 있었다.
“너는 어느 집안 출신이더냐?”
황제가 물었다. 주육낭이 무릎을 꿇고 예를 올렸다.
“신은 귀덕낭장 주월의 여섯째 아들로, 서북 군영의 조성 휘하에 있는 삼반 주복이라 하옵니다.”
주육낭이 낭랑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용맹하고 의기양양한 소년이군. 보기만 해도 기분이 좋아지는 녀석이야.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웃었다.
“궁술이 뛰어나더구나. 짐이 상을 내리마.”
황제가 잠시 뜸을 들이고는 입을 열었다.
“우시금(右侍禁)에 봉하노라.”
계급 네 개를 뛰어넘다니!
주육낭은 저도 모르게 숨을 참았다.
2년이 넘도록 서북 전장에서 적군과 맞서 싸워도 겨우 한 계급 오를 뿐이었는데. 황제 앞에서 쇠뇌를 시험 삼아 쏜 것만으로도 무려 네 계급을 뛰어넘었어!
주육낭은 조심스레 주위의 관리들을 둘러보았다. 황제의 근처에 있을 수 있는 무관들은 높은 계급의 장수들이었다. 그들의 눈에 우시금은 언급할 필요조차 없을 정도로 낮은 직책이었다. 따라서 무장들은 황제가 소년 장수를 우시금에 봉하는 것에 별다른 이견이 없었다.
반면 문관들은 황제가 지금처럼 즉흥적으로 관직을 내리는 일을 탐탁지 않게 여겼다. 그러나 지금 같은 분위기에 굳이 나서서 트집 잡으려 드는 문관은 없었다.
황제가 주육낭에게 내린 관직이 무관이니 망정이지 행여 문관에 봉하기라도 했다면 아마 여기 있는 모든 문관이 나서서 목에 핏대를 세우며 언성을 높였을 것이다.
“성은에 감사 인사를 올려야지요.”
주육낭의 옆에 있던 내시가 조용히 말했다. 주육낭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쩌렁쩌렁한 목소리로 성은이 망극하다고 외쳤다.
주육낭의 결례에도 황제는 언짢은 기색 없이 그를 칭찬했다. 황제의 칭찬과 진급이라는 포상을 받은 주육낭은 어쩐지 마음속이 복잡해졌다.
나 좀 도와줄 수 있어요?
도와 달라? 그 여인을 도와줬더니, 도리어 내가 진급했잖아? 도대체 누가 누굴 돕는 거야?
주육낭이 넋이 나간 사이, 범강림이 입을 열었다.
“폐하, 다른 사람을 시켜 이 쇠뇌를 시험해 보셔도 좋습니다.”
황제가 웃으면서 고개를 저었다.
“그럴 필요 없다. 짐은 널 믿는다.”
체면? 지금 짐의 체면이 중요한가? 이것으로 이뤄낼 서북의 공적에 비하면, 짐이 한 여인의 오기에 체면이 상한 일은 아무것도 아니지.
아직 어린 낭자니 철이 덜 들어서 그럴 게야.
황제의 말을 듣고 범강림은 감격스러운 얼굴로 큰절을 올렸다. 황제의 진심 어린 미소를 보자, 고능준도 황제를 따라 억지로 미소를 지었다. 고능준은 범강림을 쳐다보다가 구멍이 뚫린 방패로 시선을 옮겼다.
“역시 대단한 병기구나. 중노와 크기는 비슷해 보이는데, 더 정교하게 만들어진 모양이야. 궁노원(弓弩院)에서 중노 하나를 만드는 데 족히 열흘은 걸린다. 너의 저 쇠뇌를 만들려면 며칠이나 걸리더냐?”
고능준이 냉소 섞인 얼굴로 범강림에게 물었다. 고능준의 의중을 알아챈 주육낭은 몸을 살짝 떨었다.
젠장! 고능준 저 독한 놈이!
여염집 백성이 저런 병기를 사사로이 소지하는 건 국법에 어긋나는 일이었다. 소지하고 있는 병기가 다섯 개를 넘을 경우, 참형에 처해질 수도 있었다.
그 쇠뇌를 범강림이 경성에 들어오기 전에 만들었든 경성에 들어온 뒤에 만들었든, 열흘이 걸렸든 보름이 걸렸든, 옳지 않은 일이었다. 지금은 황제가 기분이 좋으니 괜찮겠지만, 추후 누군가가 이 일을 다시 언급하며 이간질하는 말을 보탠다면 황제는 분명 범강림을 의심할 것이다.
주육낭이 대답하려고 입술을 움직였지만, 범강림이 그보다 한발 빨랐다.
“이 쇠뇌는 그리 정교하게 만들 필요가 없습니다. 소인이 혼자 밤낮을 재촉하며 만들었을 때, 족히 엿새가 걸렸습니다.”
범강림은 뭔가 창피하다는 듯이 말했다.
누이는 고작 사흘 만에 완성했는데.
고능준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이를 악물었다.
그럴 리가 없어!
주위에 있던 대신들이 감탄사를 뱉었다.
그럴 리가 있나!
황제는 감격스러운 얼굴로 앞으로 한걸음 내디뎠다.
“엿새라고 했느냐? 정녕 엿새 만에 만들었다는 말이냐?”
범강림이 고개를 끄덕였다.
“소인이 어찌 감히 폐하께 거짓을 고하겠나이까.”
“너 혼자서 말이냐?”
황제가 다시 물었다. 믿을 수 없는 대답에 황제는 숨까지 가빠졌다. 범강림은 다시 한번 고개를 끄덕였다.
“폐하, 폐하! 어서, 어서 궁노원에 저 쇠뇌를 만들라고 명하십시오. 모든 장인을 동원한다면, 열흘 내로 족히 백 개가 넘는 쇠뇌를 만들 수 있습니다! 서둘러 만들어 서북으로 보내야 합니다! 소장이 직접 폐하를 대신하여 큰 선물을 서북에 전하겠습니다!”
황제 옆에 있던 무장 하나가 흥분을 주체하지 못하며 소리쳤다.
하지만 무장의 결례를 지적하는 어사는 아무도 없었다. 어사들조차도 범강림의 말에 놀라 입이 떡 벌어졌기 때문이다.
그럴 리가 없어. 그럴 리가 없어!
“하옵고 폐하, 소인의 쇠뇌는 나무 깃을 단 화살입니다. 그래서······.”
범강림이 말을 이어 갔다. 무장이 흠칫하며 외치던 말을 멈췄다.
그래서······.
황제는 순간적으로 숨을 참으며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새의 깃털이 필요하지 않다?”
“맞습니다. 나뭇조각을 깃으로 삼아도 충분합니다. 그리고 활의 몸체와 활시위를 소의 힘줄이나 쇠뿔로 만들지 않아도 됩니다. 산에 있는 나무와 삼노끈이면 충분합니다.”
게다가······.
범강림이 계속해서 설명했지만, 황제는 범강림의 목소리가 점점 더 멀리서 들리는 듯했다.
엄청난 살상력을 지닌 것만으로도 충분히 기뻐할 일인데, 그보다 더 사람을 기쁘게 하는 소식이 있다니.
강력한 군대와 뛰어난 무기에 무엇보다 중요한 건 돈이었다.
군비로 들어가는 돈에는 끝도 없었다. 누군들 병사들에게 좋은 무기를 쥐여주고 싶지 않을까. 하지만 나라에서 군에 쓸 수 있는 비용은 제한적이었다. 마음 같아서는 천 관이고 만 관이고 쏟아부으며 병사들과 장비들을 지원하고 싶지만, 국고가 텅 비어 있었다.
황궁 내에는 수리하지 못한 채 폐허로 남겨 두는 전각이 차고 넘쳤다. 황제는 이미 허리띠를 바짝 졸라매며 지내고 있었지만, 텅 빈 국고는 쉬이 채워지지 않았다. 그래서 대신들은 황제의 호전적인 결정을 질책해 왔다. 전쟁을 한 번 치를 때마다 엄청난 나랏돈이 들어가야 하기 때문이었다.
하지만 범강림이 만든 이 쇠뇌는 그런 문제까지 단번에 해결해 버렸다. 중노보다 백배는 더 강력한 살상력을 가졌지만, 제작 비용은 중노의 절반도 못 미치다니!
황제는 곁눈질로 주위를 둘러보았다. 좀 전까지 미간을 찌푸린 채 입을 열 준비를 하던 대신들이 조용히 고개를 숙이고 있었다. 비용이 문제 되지 않는다면, 더 이상 트집 잡긴 힘들었다.
범강림, 이자가 말을 참 잘하는구나! 짐이 조당에서 대신들과 한참을 논쟁해야 할 문제를, 말 한마디로 다 해결했어!
이것이 무엇을 뜻하겠는가. 전군 병사들에게 이 강력한 쇠뇌를 보급하는 것 또한 불가능은 아니라는 뜻이다!
전군 병사들에게! 전군 병사들에게!
“물에 닿아도 물을 흡수하지 않습니다. 다만 중노에 비해 손상이 빠른 편입니다.”
범강림이 이어서 말했다. 황제는 손끝이 떨려오는 게 느껴졌다.
“여봐라, 여봐라! 어서 짐에게 이것을 전군에게 보급하려면 얼마가 드는지······.”
황제는 큰 소리로 소리치다가, 갑자기 쇠뇌의 이름이 떠오르지 않아 범강림을 쳐다보았다.
“이것의 이름이 무엇이냐?”
범강림이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소인이 아직 이름을 짓지 못했습니다. 폐하께서 이름을 하사해 주시옵소서.”
황제는 성문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금군들이 쇠뇌를 거둬 보이지 않는 곳에다 보관한 탓에 쇠뇌가 시야로 들어오지 않았다.
“신궁, 신······ 신비궁(神臂弓). 신비궁이라고 부르거라.”
잠시 고민하던 황제가 입을 열었다.
“신기(神器)를 얻으신 것을 경하드리옵니다.”
고능준이 제일 먼저 외쳤다. 고능준은 속으로 분해 죽을 것만 같았지만, 어떤 때에 어떤 말을 해야 하는지는 누구보다 잘 알고 있었다.
고능준의 말을 들은 주변 관리들은 그제야 정신을 차리고 무릎을 꿇고 목청을 높여 외쳤다. 성문 위에서 대신들의 목소리가 들려오자, 성문 아래에 있던 백성들도 일제히 두 팔을 높이 들고 따라 외쳤다. 순식간에 성문 위아래로 거센 파도가 일듯 사람들의 목소리가 울려 퍼졌다.
황제는 참지 못하고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좋아! 이번 생일은 참으로 즐겁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