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52
교랑의경 452화
하늘을 울리는 백성들의 환호를 들은 황제는 기분 좋게 몸을 돌려 황궁 대전을 향해 걸음을 옮겼다. 대신들은 황제의 뒤를 따라 질서정연하게 탄신 연회 자리로 이동했다. 범강림과 주육낭도 황제의 탄신 연회에 초대되었다.
“범강림, 짐이 상을 내리고 싶구나. 원하는 게 무엇이냐?”
황제가 옥좌에 앉아 흥분이 채 가시지 않은 얼굴로 물었다. 늘 창백하던 황제의 얼굴에 모처럼 혈색이 돌았다.
범강림이 큰절을 올리며 대답했다.
“소인은 단지 적을 죽여 나라에 보답하고 싶은 마음뿐입니다. 하오나 이제는 부상으로 인해 불구의 몸이 되었으니 직접 전장에 나설 수 없습니다. 그래서 소인은 병사와 장수들이 적군을 쏘아 죽일 수 있는 화살을 만들고 싶습니다. 이 또한 소인의 간절한 소망입니다.”
황제는 흐뭇해하며 고개를 끄덕였다.
“짐이 너를 어전(御前) 번방도군두(藩方都軍頭) 겸 궁노원 군감에 봉하겠노라.”
황제의 말이 떨어지자, 대전 안에서 대신들이 헙 하고 숨을 들이마시는 소리가 들려왔다.
좀 전에 성문 위에서 주육낭이 하사받은 품계도 꽤 빠른 진급에 속했지만, 황제의 이 결정은 그보다 훨씬 파격적이었다. 이번에는 몇몇 무장들까지 움찔거렸다.
“폐하, 아무래도 중서성의 관리들과 상의를 해 보심이······.”
관리 한 명이 나서서 말했다. 황제는 관리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정색하며 반문했다.
“서북의 일에 대해서는 상의가 끝났소?”
말문이 턱 막힌 관리는 소리 없이 제자리로 돌아갔다.
어차피 높은 관직에 봉한다 한들, 궁노원에서 활이나 만들 뿐이다. 일개 장인에 불과하니 신경 쓰지 않아도 되겠지.
천금을 주어도 구하기 힘든 게 인재인 법인데, 이를 계기로 더 많은 사람이 나라를 위해 기술과 신기를 바친다면 나라에도 큰 도움이 되지 않겠는가. 옛날부터 흔히 있던 일이니, 생각해 보면 안 될 것도 없지.
범강림이 큰절을 올리며 감사 인사를 올렸다.
“말편자를 만들었던 자도 네 형제라고?”
황제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물었다. 범강림이 고개를 끄덕이며 대답했다.
“당시에 저희 일곱 형제가 전장에 나가는 것을 누이가 배웅해 주었습니다. 그때 누이가 저희에게 각자가 가진 재능과 기호에 따라 기술을 선물해 주었지요. 넷째가 말을 아끼고 소중히 여기다 보니, 누이가 그에게 말편자를 만드는 방법을 전수해 주었습니다. 이제 제가 몸이 불편하여 전장에 나갈 수 없게 되자 누이는 적을 죽일 수 있는 다른 기술을 전수해 주었고요.”
범강림의 말을 듣던 황제의 표정이 차츰 변해 갔다. 대전 안에 있던 사람들도 황제처럼 표정이 달라졌다.
강문원은 끝났구나.
고능준은 머리가 핑 도는 느낌에 눈을 질끈 감았다.
쇠뇌의 엄청난 살상력부터 쉬운 제조법, 그리고 저렴한 제작 비용까지. 범강림은 연달아 휘둘러대더니 급기야 가장 날카롭고 매서운 일격을 황제의 가슴에 찔러 넣었다.
일곱 형제에게 각자의 재능에 따라 기술을 한 가지씩 전수했다고. 이미 두 명의 형제는 각자의 장기를 살려 적군을 죽이고, 아군에 큰 보탬이 되는 물건을 만들어 냈다.
그렇다면 나머지 다섯 명은 어떠한 재능을 가졌으며, 어떤 놀라운 기술로, 어떠한 신기를 만들어 냈을까?
하지만 이제 그 답은 영원히 미궁으로 남게 됐다. 그 다섯 명은 죽고 없으니까. 그들의 재능이 뭔지, 어떠한 기호를 가졌는지, 이제는 아무도 알 수 없는 노릇이었다.
나라의 손해로다. 이게 바로 나라의 손해라는 것이야.
무원산 형제가 만든 신기를 떠올릴 때마다, 황제는 죽은 다섯 형제를 떠올릴 터였다. 죽은 다섯 형제를 떠올릴 때마다, 황제는 이번 일을 떠올릴 것이다.
그런 생각이 황제의 머릿속에 하루하루 쌓여 가면, 강문원이 서북에 남기는 힘들 테지. 어디 남기 힘들 뿐인가. 황제의 마음에 좋은 인상을 남기는 건 아마도 한평생 힘들 것이리라.
정녕, 정녕!
정녕 이토록 독하단 말이냐, 강주 바보!
인간은 하늘의 뜻을 예측할 수 없다지만, 기어코 하늘의 뜻을 누르고 지나가는 이도 있는 법이구나.
“노야, 노야.”
같은 시각, 진(陳)씨 저택.
마당에서 부친과 함께 바둑을 두며 차를 마시던 진소는 사환의 목소리에 바둑을 두던 손을 멈췄다.
황궁 안에서 벌어지는 일은 몰랐지만, 사환은 성문 앞에 모였던 사람들이 무엇을 보고, 무엇을 들었는지 진소에게 빠짐없이 전했다.
이야기를 들으면 들을수록 진소는 놀란 기색을 감추지 못했다. 진소가 손을 휘휘 내저어 사환을 물리자, 진 노태야는 손에 쥐고 있던 바둑알을 내려놓았다.
“강문원은 끝났구나.”
진 노태야가 진소를 보며 의미심장한 미소를 지었다.
“그랬구나. 역시, 정 낭자가 널 돕고 있었던 거였어.”
진소가 고개를 끄덕였다. 진소는 놀라운 한편 어떻게 된 일인지 알겠다는 듯 넋이 나간 표정으로 천천히 중얼거렸다.
“형제들의 공로를 치하하도록 폐하를 재촉하라고 했던 게, 폐하께 이 선물을 바치기 위해서였다니. 그리고 이 선물이 모든 국면을 뒤집다니.”
신비궁! 정말 엄청난 살인 병기로구나!
“정 낭자가 걱정할 게 뭐 있겠습니까. 폐하를 자극했다고 한들, 자신의 명망 때문에 폐하께서 자신을 싫어한다고 한들, 문제 될 건 없지요. 어차피 명망에 의지해 살아가는 사람이 아닌 것을. 이제 보니 정 낭자는 자신의 실력을 믿었던 겁니다. 신선이니 뭐니 하는 도술을 내세운 것도 아니고, 한 치의 거짓도 없는, 도저히 거부할 수 없는 강력한 실력 말입니다.”
신분도 평범하고 의지할 가족조차 없었던 여인이니, 그 명망 또한 신기루 같은 것일 수밖에 없다. 그런데 그 명망 아래에 탄탄하게 닦아 둔 기반이 나라를 이롭게 할 엄청난 공적이라면?
“도통 꿰뚫어 볼 수가 없군요.”
진소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진소의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문밖에서 사환이 또 노야를 외치며 뛰어 들어왔다.
“노야, 경하드리옵니다. 노야, 경하드리옵니다!”
두 사환이 큰절을 올리며 큰소리로 외쳤다.
경하?
폐하께서는 응당 축하를 받을 만한 일이지만, 사직을 청하고 집에 있는 나에게 축하할 일이 뭐 있다고?
“노야, 폐하께서 십팔랑 아씨가 바친 서예를 극찬하며 아씨를 사서어인(寫書御人)에 봉하고, 대황자께 글씨를 가르치라 하셨습니다.”
사환이 연신 큰절을 올리며 말했다.
뭐라고?
진소가 화들짝 놀라서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옆에 앉아 있던 진 노태야도 무척 기뻐하며 웃음을 터트렸다.
한편 황궁의 연회석에서는 진십팔랑이 황제에게 감사의 큰절을 올리고는 자리에서 일어나 몸을 돌리고 있었다. 진십팔랑은 자신에게 쏟아지는 부러움 가득한 눈빛을 뒤로한 채 황제가 하사한 조서를 품에 끌어안았다.
꿈에서 몇 번이고 보았던 장면이지만, 그 꿈이 사실이 되는 순간의 기분이란 꿈에서도 경험할 수 없는 것이었다.
진십팔랑은 천천히 걸음을 옮겼다. 자신이 표정 관리를 잘하고 있는지 알 수 없었고, 시야가 점점 흐릿해져 길도 잘 보이지 않았다. 그래도 진십팔랑은 끝까지 허리를 곧추세우고, 가슴을 펴고, 고개를 든 채, 최대한 담담해 보이는 모습으로 걸음을 옮겼다.
“오늘은 짐이 참으로 기쁜 날이로구나. 이번 생일만큼 귀하고 많은 선물을 받아본 건 처음이로다!”
옥좌에 앉은 황제가 웃으면서 술잔을 높이 들었다.
대전 안에는 대신들의 만세 소리와 함께 풍악이 울리기 시작했다. 기녀들이 형형색색으로 나풀거리는 소매를 움직이며 가무를 선보이자, 대전 안은 인간계의 선경과도 같아 보였다.
하지만 외진 곳에 있는 경왕의 궁은 황궁 대전 안의 흥겨움이 전혀 전해지지 않은 듯 조용하기만 했다.
진안 군왕과 경왕 앞에도 연회석이 마련되었다. 경왕은 바보가 된 후로 되도록 사람들 앞에 모습을 보이지 않았다. 오늘 같은 날 대외적으로 모습을 드러내게 된다면, 황제에게 난처한 상황만 생길 것이 분명했다.
“자, 이것도 먹어 봐.”
진안 군왕이 경왕에게 숟가락으로 차를 떠먹여 주었다. 양고기를 손에 쥐고 신이 나서 먹고 있던 경왕은 인상을 쓰며 진안 군왕의 숟가락을 피했다.
“그러다 체할라.”
진안 군왕은 이리저리 피하는 경왕을 다독이면서 간신히 차를 반 잔 정도 먹였다. 진안 군왕이 자신의 앞에 서 있는 내시에게 시선을 옮기며 말했다.
“그럼, 이번에는 세 사람이나 상을 받은 것이야? 폐하께서 이번 탄신일을 몹시 즐겁게 보내고 계시는구나.”
내시가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진안 군왕이 입꼬리를 올렸다.
“즐거우면 된 거지.”
진안 군왕이 별다른 말이 없자, 내시는 예를 표하고 물러났다. 내시는 문을 나서기 전, 고개를 돌려 홀로 금잔을 쥐고 천천히 술을 들이켜는 진안 군왕을 쳐다보고는 조용히 문을 닫았다.
경성 밖. 대로변의 행인들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멀지 않은 곳에 새로 생긴 무덤 쪽을 내다보았다. 무덤 앞에는 시녀 하나가 광주리를 손에 든 채 서 있었고, 두봉을 두른 여인이 바닥을 자리 삼아 앉아 있었다.
하늘은 높고 공기는 상쾌한 가을날이었다. 나뭇잎 사이로 비치는 햇빛이 정교랑의 얼굴에 얼룩을 만들었다.
정교랑은 손을 뻗어 비석을 어루만졌다. 그녀의 발치에는 묘비에 글자를 새기는 도구들이 어지러이 놓여 있었다. 잠시 후, 정교랑이 끌과 망치를 손에 쥐고 묘비 위를 두드리며 글자를 새기기 시작했다.
“범석두.”
“서무수.”
“서납월.”
“범삼축.”
“서봉추.”
누이가 오라버니들을 위해 묘비를 세우고 이름을 새기러 왔어요.
새로 만들어진 무덤, 오래된 나무, 서 있는 시녀와 바닥을 자리 삼아 앉은 아리따운 낭자. 대로변에서 무덤 쪽을 내다보던 사람들은 한 폭의 기이한 그림을 보는 것 같은 광경에 잠시 넋을 놓았다.
“아쉽구나, 아쉬워. 저리도 어여쁜 여인이 손에 망치와 끌을 쥐고 있으니 원. 저것들을 칠현금으로 바꾸면 더할 나위 없을 텐데.”
누군가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황궁 연회가 끝났다. 상을 받은 이들에게 아직 정식으로 임명장이 내려지지는 않았지만, 이미 그들의 집 앞은 방문객들과 넘쳐나는 선물들로 문전성시를 이뤘다. 천자의 말이 갖는 무게는 지엄한 것이었다. 만백성이 보는 앞에서 상을 내렸으니 차질이 생길 리 만무했다.
“육낭은? 육낭은 어디 있어? 노야께서 부르신다고 전해라.”
주 부인의 목소리가 마당 안에 울려 퍼졌다.
“부인, 부인, 의원을 모셔왔습니다.”
시녀들이 다급하게 대답했다.
“누가 의원을 부르라 했느냐? 육낭이 어디 있냐니까!”
주 부인이 말했다.
주 부인은 하루 새에 두 번씩이나 혼절한 터였다. 성문 앞에서 주육낭이 쇠뇌를 들고 눈앞을 지나갈 때 처음 혼절했고, 깨어난 지 얼마 되지 않아 주육낭이 황제에게 상을 받았다는 소식을 듣고 또다시 혼절했다.
두 번씩이나 연달아 혼절한 주 부인이 걱정스러웠던 주 노야는 시녀들에게 의원을 불러오라 명했다.
주 부인은 성가시다는 듯 시녀와 여종들에게 손을 휘휘 젓고는 밖으로 걸어 나왔다. 따사로운 오후의 햇살이 주 부인의 얼굴을 비췄다.
“공자님은 황궁 연회 이후로 집에 돌아오지 않으셨습니다.”
여종 중 한 명이 대답했다. 주 부인이 순간적으로 눈썹을 꿈틀거리다가 입꼬리를 올렸다.
“아, 누이를 보러 갔나 보네.”
주 부인이 활짝 웃으며 여종들을 재촉했다.
“어서 서두르거라. 교교에게도 집에 온 선물을 좀 보내 주고. 아 참, 우리 집에서 며칠 묵었다 가는 건 어떠냐고도 물어보거라. 상냥하고 공손한 말투로 물어야 한다. 괜히 우리 교교 귀찮게 잔말 많이 하지 말고.”
여종과 시녀들은 재빨리 알겠다고 대답하며 자리를 떴다.
주육낭은 일찍이 옥대교 저택에 도착해 있었다. 그러나 범강림은 황궁 연회를 마친 후에도 곧장 집으로 돌아오지 못하고, 무장들에게 둘러싸인 채 궁노원으로 걸음을 옮겨야 했다.
범강림에게 관직이 내려졌다는 소식은 벌써 집으로 전해져 온 집안의 사람들이 옥대교 저택을 화려하게 꾸며 놓았다. 시종들과 사환, 그리고 어린 몸종들은 기쁜 표정으로 범강림이 집에 돌아오기만을 기다렸다.
아기를 안고 있던 황씨는 주육낭을 어떻게 대해야 할지 몰라 안절부절못했지만, 집에 다른 사람이 없었기에 하는 수 없이 형수 노릇을 하러 주육낭을 마중 나왔다.
사실 따지고 보면, 누가 손님인지도 모르겠네. 저 소년은 정 낭자의 진짜 오라버니잖아.
“정 낭자는 그때 나간 이후로 아직 돌아오지 않았어요.”
황씨가 말했다.
“어디로 갔습니까?”
주육낭의 물음에 황씨는 대답 대신 고개를 저었다.
하긴, 그 여인이 자신이 어딜 가는지 친절하게 말해 줬을 리가 없지.
미간을 찌푸리던 주육낭은 무언가 생각난 듯 눈빛을 번뜩이며 고개를 돌리고 걸음을 옮겼다. 몇 걸음 옮기던 주육낭이 갑자기 제자리에 우뚝 서서 몸을 돌리고는 어색하게 말을 꺼냈다.
“잠시 실례했습니다, 형수님.”
주육낭은 그 말만 던지고 황씨가 뭐라 대꾸하기도 전에 후다닥 말에 올라탄 후 질풍처럼 내달려 사라졌다. 황씨는 그런 주육낭의 뒷모습을 멍하니 쳐다보았다. 뒤늦게 정신을 차린 황씨가 혼잣말로 중얼거렸다.
“아유, 제가 감히요. 어찌 감히요.”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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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신비궁은 송나라 때 이굉(李宏, 이광(李廣)이라는 설도 있음)이 황제에게 신비궁을 바쳤던 일화를 본떴습니다. 에는 당시 이굉이 구체적으로 어떤 상을 받았는지 기록을 찾을 수 없습니다. 다만, 고대의 황제와 조정이 늘 훌륭한 인재를 갈구했던 것으로 미루어 보아, 이굉은 큰 상과 높은 관직을 하사받았을 것으로 추정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