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60
교랑의경 460화
이무는 이리저리 휘청이는 서생을 피하고자 옆으로 한 걸음 비켜섰다. 그는 잠시 머뭇거리다가 무덤 앞으로 걸음을 옮겼다.
“가까이 오지 말고 물러서시오.”
무덤을 지키는 위병 두 명이 호통쳤다.
이무가 걸음을 멈추려던 찰나, 누군가가 이무를 알아보고 그에게 말을 걸었다.
“엇? 이 대장도 저 글씨에 홀리셨습니까?”
한 노점 상인이 이무를 향해 외쳤다.
이 대장이라는 말에, 주위 사람들이 이무에게 시선을 돌렸다. 직책이 감문관이다 보니, 성문을 자주 드나드는 잡상인들과 친하지는 않아도 서로 얼굴은 익히고 있었다. 이무를 알아본 노점 상인들이 일제히 놀란 표정을 지었다.
“이야, 이 대장도 저런 걸 좋아하시네.”
“대장 말고, 서생으로 전향하려는 건가?”
“하긴, 백날 대장을 해 봤자 뭐해? 문관 정도는 돼야 앞길이 트이지.”
“글씨를 보러 온 게 아니지 않을까? 술 냄새를 맡으러 온 것 같은데.”
“에이, 글씨를 보러 온 서생들이 무덤 앞에서 진을 치고 있잖아. 술 냄새를 맡으러 온 술꾼은 차치하고, 우리가 여기서 큰 소리를 내는 것조차 질색하는걸.”
“저 서생들도 참. 글씨를 보는 건 저들 마음이라지만, 술 냄새도 못 맡게 하는 건 좀 심했어.”
“하하하, 자네는 여기서 술장사를 하고 싶었던 거지?”
갑자기 주위가 시끌벅적해지자 당황한 이무는 서둘러 말을 타고 집으로 돌아갔다.
집에 도착한 이무는 곧장 아버지에게 불려갔다.
이무는 이씨 집안의 서자였다. 게다가 그는 형제들처럼 언변이 뛰어나지 않고, 천성이 둔했다. 말재주가 없는 터라 장사는 그른 데다, 설령 손재주가 있다고 해도 이씨 가문의 폭약 공방에서 일할 수는 없었다. 이씨 가문의 폭죽 제조 비방은 오직 적장자에게만 물려주기 때문이었다.
뭐든 어중간하게 했던 이무를 보다 못한 그의 아버지는, 이무에게 막일을 시키는 대신 돈으로 하급 무관 신분을 얻어 주었다. 물론 가문을 위해 관청에 의지할 만한 사람을 심어 두고자 하급 무관 신분을 얻어 준 것이었지만, 아무런 공로도 세우지 못하는 이무를 본 이씨 가문은 사실상 이무에게 기대를 내려놓은 상태였다.
“요새 공방에 자주 드나든다고 들었다.”
이무의 부친이 굳은 표정을 지으며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게다가 은밀히 무언가를 만들고 있다고 하던데, 대체 무슨 꿍꿍이인 게냐!”
“저, 저, 저는 단지 시험을 해 보고 싶었습니다.”
이무가 주저하다가 대답했다.
“시험? 무엇을 시험하려고?”
이무의 부친이 탁자를 팍 내리치며 다그쳤다.
“기껏 대장씩이나 시켜줬으면, 대장 일에나 심혈을 기울일 것이지. 감히 네놈이 공방 일에 관여할 수 있다고 생각하는 게야?”
“아버지, 무원산 형제의 장례를 치르던 날, 하늘 높이 솟아오른 폭죽을 보셨습니까? 그때 쓴 폭죽이 저희가 만든 폭죽보다 훨씬 좋아 보이길래, 소자가 한번······.”
다급하게 해명하던 이무는 부친의 냉랭한 눈빛을 보고 나머지 말을 꿀꺽 삼켰다.
“너는 쓸데없는 생각을 참 많이 하는구나. 내가 몇 번을 말했느냐? 우리 가문의 일은 네가 관여할 바가 아니라고. 네가 뭘 해야 진급할 수 있는지나 생각하라고 하지 않았느냐. 너보다 더 일찍 관직을 얻은 사람도, 너보다 더 늦게 관직을 얻은 사람도 벌써 저만치 높이 올라갔는데, 왜 너만 제자리인 것이냐? 평생 그렇게 감문관이나 할 작정이야?”
이무는 고개를 떨구고 입을 다물었다. 그는 가만히 서서 부친의 꾸중을 듣고만 있었다.
“암, 그날 폭죽을 너만 봤을까? 우린들 그 폭죽을 못 봤을 것 같으냐?”
이무의 부친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위협적으로 말했다.
“사람은 제 본분을 지켜야 하는 법이야.”
이무가 알겠다고 대답하려던 찰나, 땅의 진동과 함께 멀지 않은 곳에서 무시무시한 폭발음이 들려왔다. 방 안에 있던 사람들이 비명을 지르면서 바깥으로 뛰쳐나와 서쪽을 바라보았다. 이씨 저택의 한구석에서 짙은 매연이 피어올랐다.
폭발이 발생한 곳은 다름 아닌 이씨 저택의 고방이자 폭죽 공방이 있는 곳이었다.
“큰일이다.”
이무 부자의 얼굴이 사색이 되었다.
“네놈은 이제 진급할 생각도 할 필요가 없겠구나! 어떻게 죄를 청해야 할지나 생각하거라!”
거리에 징과 북이 울리는 소리, 그리고 사람들의 비명 소리가 울려 퍼졌다. 이제 막 저택 안으로 들어서던 고능준도 소리를 듣고는 화들짝 놀랐다.
“불이 난 건가?”
고능준은 고개를 들고 서쪽에서부터 피어오르는 시커먼 연기를 올려다보았다. 그는 걱정스러운 얼굴로 마당에 멈춰 섰다.
“노야, 안심하십시오. 이쪽까지는 불길이 닿지 못할 것입니다.”
수하가 서둘러 고능준에게 말했다. 고능준이 눈을 게슴츠레 뜨면서 뒷짐을 졌다.
“정말 갑작스러운 화재구나. 폐하와 태후마마께서 무척 놀라시겠어.”
고능준의 예상대로, 경성 한복판에 불이 났다는 소식은 금세 황궁까지 전해졌다. 온갖 조서에 파묻혀 있던 황제는 잠시 휴식을 취하려고 침상에 누웠다가, 소식을 듣자마자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불이 나는 것은 경성에서 그리 드문 일이 아니었지만, 매번 인명 피해를 동반했다. 어느 집안의 첩실이 비상금을 숨기다가 거리 반쪽을 태워 먹은 일이 일어난 지 얼마 되지 않은 시점이기도 해서, 황제는 이번 화재 소식에 더욱 놀란 터였다.
“고정하시옵소서, 폐하. 불길이 잦아들어 사상자가 많이 나오지 않았다고 합니다.”
내시들이 서둘러 황제 곁으로 다가가 말했다. 황제는 내시들의 말을 믿지 않았다.
불이 완전히 꺼진 것도 아닌데, 어찌 사상자 수를 파악했단 말이냐. 이놈의 내시들은 어째 날이 가면 갈수록 아둔해지는 것이야? 짐을 위로한답시고 하는 말이 고작······.
황제는 경성을 한눈에 내려다볼 수 있는, 황궁에서 가장 높은 전각으로 가기 위해 대전을 나섰다. 황제가 전각에 도착하자, 먼저 도착한 태후와 비빈들이 보였다.
“이씨 가문의 폭죽 공방이 터진 것이라고?”
태후가 물었다. 이미 황성사의 사람이 태후에게 사실을 전했을 것이라 생각한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일찍이 그런 것들을 집에 두면 안 된다고 했거늘. 어떻게 그런 위험한 것을 집에 뒀단 말이오. 또 얼마나 많은 사람을 다치게 할지.”
태후가 합장하고 아미타불을 외며 말했다.
“예전부터 그런 것을 집에 두지 못하게 했습니다. 정확히 어떻게 된 일인지는 오성 병마군이 조사하고 있으니, 조금만 더 기다려 주십시오.”
황제가 말했다.
“꼭 죄를 물어야 하오, 황상.”
태후의 말에 황제는 대답 대신 고개를 끄덕였다.
전각 위에 서 있던 사람들은 말없이 매연이 피어오르는 곳을 내다보았다. 다행히도 불길이 금방 잡혀, 시커멓던 매연은 점차 옅어졌다.
잠시 뒤, 황성사의 관리가 자신의 뒤에 있던 오성 병마사의 관리를 가리키며 양해를 구했다.
“긴급한 사안이다 보니, 신이 직접 오성 병마사 관리를 데리고 왔습니다. 폐하와 마마께서 궁금해하시는 것에 대해 소상히 대답해 드릴 수 있는 자입니다.”
황궁의 후궁은 윤허 없이 들어올 수 없는 곳이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였다.
“이씨 가문 사람들의 말로는, 평소 폭죽을 다루는 일이 몹시 조심스러워 점포도 모두 성 밖으로 이전했다고 합니다. 오늘 폭발은 이씨 가문의 자제 중 한 명이 아둔하게도 남몰래 제조 규칙을 어기고 폭죽을 제조하여 생긴 일이라고 하옵니다. 집안의 어른이 그자를 찾아내 문책하던 와중에 폭발이 발생했으며, 하필이면 평소 땔감을 쌓아 두는 고방에서 폭발이 일어나는 바람에 주위에 있던 땔감에 불이 붙어 불길이 거세졌다고 합니다. 이씨 가문의 자제는 이미 자수하여 처분을 기다리고 있는 상태입니다.”
오성 병마사의 관리가 사건의 전모를 소상히 말하던 도중, 진안 군왕이 내시와 함께 다급하게 전각 위로 올라왔다.
“마마,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위낭.”
태후가 진안 군왕을 보자마자 그에게 손을 뻗어 가까이 오게 했다. 태후가 진안 군왕에게 조용히 말했다.
“안 그래도 마침 너를 부르려고 사람을 보내려던 참인데······.”
태후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진안 군왕의 얼굴이 창백해졌다. 그가 고개를 돌리던 찰나, 진안 군왕의 뒤에서 날카로운 어린아이의 비명 소리와 울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곧이어 궁녀들의 비명까지 합세하여 후궁의 평온함을 깨트렸다.
모두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넋을 놓던 순간, 진안 군왕은 후다닥 뒤쪽으로 달려갔다.
“우리 공주잖아!”
한 비빈이 자신의 딸아이의 목소리임을 알아채고, 예를 표할 겨를도 없이 진안 군왕의 뒤를 쫓아갔다.
경성에서 일어난 폭발에 대해 보고하던 관리는 영문도 모른 채 제자리에 서 있었지만, 그를 데리고 후궁으로 들어온 황성사 관리는 퍼뜩 정신을 차렸다. 황궁에서는 후궁의 일에 대해 모르는 것이 곧 살길이었다. 그는 서둘러 자신이 데려온 오성 병마사 관리의 팔을 잡고 자리를 뜨려 했다.
다른 일이라면 몰라도, 후궁 일에 대해서는 호기심을 가지면 안 된다. 두 관리가 허둥대며 발걸음을 돌렸지만, 아쉽게도 한발 늦고 말았다. 궁녀들이 두 공주를 품에 안은 채 그들의 정면을 향해 달려오고 있었다.
공주 하나는 소리를 지르며 울고 있고, 다른 하나는 이미 혼절한 상태였다. 겁에 질린 채 울부짖으면서 달리는 궁녀들 뒤로, 괴상한 웃음소리와 위로 번쩍 들어 올린 두 손이 보였다.
저것이 바로 2년 전부터 사람들 앞에 나서지 않는 과거의 이황자, 지금의 경왕이로구나.
관리는 넋이 나간 표정으로 멀리서 보이는 두 손과 점점 더 가까워지는 동그랗고 거대한 경왕을 쳐다보았다. 햇빛에 비친 경왕은 입을 벌린 채 침을 질질 흘리며 뛰어오고 있었다.
“공주가 놀라서 혼절하였습니다.”
“마마, 마마. 어마마마께 데려다주세요.”
“숙녕, 왜 그러니? 숙녕, 정신 차려.”
“어서 태의를 불러오거라! 어서!”
진안 군왕은 비명과 울음소리가 뒤섞인 곳을 지나, 단지 사람이 많다는 이유로 신이 나서 손을 휘휘 저으며 해맑게 웃는 경왕의 옆에 멈춰 섰다.
“당장 저것을 잡아라!”
태후의 목소리가 진안 군왕의 등 뒤에서 들려왔다.
“밧줄로 묶어라! 밧줄로 묶어!”
진안 군왕이 고개를 돌렸다. 경악과 분노로 가득 찬 표정의 태후와 비빈들의 품에 안긴 공주들에게 시선을 돌린 황제를 본 진안 군왕은 두 눈을 질끈 감았다. 그러고는 후다닥 뛰어나가려는 경왕을 이를 악물고 붙잡았다.
진안 군왕은 단 한 번도 지금처럼 경왕을 세게 눌러 잡은 적이 없었다. 진안 군왕의 손에 눌린 채 꼼짝도 못 하게 된 경왕은 평생 느껴보지 못했던 속박감과 자신을 억누르는 통증에 괴성을 질렀다.
“괜찮아, 겁먹지 마. 육가아, 이 형이 절대로 남들이 창피 주지 못하게 할게.”
태후궁의 분위기가 심상치 않았다. 따귀를 때리는 소리가 태후궁에 수차례 울려 퍼졌다.
“다 소인의 잘못입니다. 다 소인의 잘못입니다.”
내시 한 명이 바닥에 무릎을 꿇은 채 자신의 뺨을 세게 내리쳤다. 그의 볼은 빨갛게 부어올랐고, 입가에는 핏빛이 비쳤다.
“소인은 그저 마마께서 경왕 전하를 걱정하실까 봐, 미리 가서 경왕을 모셔 오려던 것이었습니다. 소인이 경왕 전하를 잘 모시지 못하여 공주님들을 마주치게 됐습니다.”
눈을 감고 있던 태후는 경멸스러운 듯 미간을 찌푸리고 탁자를 내리쳤다.
“치워라.”
양옆에 서 있던 내시들이 재빨리 바닥에서 사죄하던 내시의 입을 틀어막고 그를 밖으로 끌고 나갔다.
태후궁 안이 잠시 조용해졌다.
오랜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찰나의 시간이 지난 것 같기도 하던 그때, 태후가 바깥을 내다보며 물었다.
“공주들은 어떠하냐?”
“태의가 심신을 안정시키는 탕약을 처방했고, 크게 놀랐을 뿐 건강에는 지장이 없다 하였습니다. 다만 어린 공주님께서 경기를 일으킬 수도 있다고 하여, 폐하께서 공주님 곁을 지키고 계십니다.”
궁녀가 예를 올리며 조용히 말했다. 태후가 긴 한숨을 내뱉었다. 태후의 한숨이 끝나자마자, 갑자기 쿵 하는 소리가 들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