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468
교랑의경 468화
중얼거리던 정 이노야는 갑자기 무언가를 깨달은 듯 손으로 무릎을 탁 쳤다.
“이제 보니 그 애 때문이었어!”
정 이노야가 고함을 질렀다.
“윗선! 그런 일이 있었는데도 윗선에서 날 잡아다가 어사대에 처넣지 않았구나. 해주로 보낸 것만으로도 성은이 망극한 일이야!”
정 이노야는 생각할수록 몸서리가 쳐졌다.
다 그 계집 때문이야! 다 그 불운 덩어리 때문이라고! 눈앞에 없어도, 여전히 우리를 못살게 구는구나!
팍 소리와 함께, 정 이노야의 외마디 비명이 들렸다.
“형님! 이게 무슨 짓입니까!”
정 이노야가 이마를 부여잡고 분한 얼굴로 소리쳤다.
정 이부인이 다급하게 정 이노야에게 다가가 그의 손을 치우자, 정 이노야의 이마에 커다란 혹이 난 것이 보였다. 정 이부인은 하늘이 떠나갈 듯 울고불고하며 난리를 쳤다.
문밖에 서 있던 여종들과 몸종들은 그제야 이 사람들이 평소의 모습으로 돌아왔다는 듯 안도의 한숨을 내쉬었다.
“생각을 좀 하거라, 생각을! 벌써 몇 번을 당했는데, 아직도 복과 화를 구분할 줄 몰라? 그 아이 때문에 네가 진급을 못 해? 정녕 그러하다면, 네가 어찌 이리 멀쩡하게 이 자리에 서 있겠느냐? 정말 그 아이 때문에 진급이 막혔다면, 그 사람들은 왜 또 불쑥 찾아와 아부를 떨고?”
정 대노야의 말을 듣던 정 이노야가 멍한 표정으로 생각에 잠겼다.
그러게. 왜 그런 거지?
“마지막에는 결국 그 아이가 이겨서, 폐하께서 상을 하사하신 게지?”
정 대노야가 정 이노야를 향해 혀를 차고는 집사에게 다시 물었다.
집사가 이어서 대답했다.
“맞습니다. 그 형제들은 장군으로 추서됐고, 지방으로 좌천될 뻔한 노씨 성을 가진 관리도 복직했습니다. 서북에서 제일 높은 직책이었던 강문원은 다른 곳으로 전임 가게 되었고요. 살아남은 두 형제 중 하나가 폐하의 성은에 감사드린다며 쇠뇌를 바치자, 폐하께서 그 쇠뇌에 신비궁이라는 이름을 하사하셨답니다. 그 쇠뇌를 단기간 내에 대량 생산하여 서북으로 보냈더니, 서북에서 그 쇠뇌 덕에 연달아 몇 번이나 대승을 거뒀다 합니다.”
정 이노야는 이야기를 들으면서 또 한 번 놀랐다.
“역시, 역시!”
정 대노야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이면서 감탄했다.
예상했던 결과이긴 하지만, 직접 이야기를 듣고 보니 더욱 감동적이구나.
서북의 수장, 경성의 고위 관리, 게다가 황실의 천자까지!
강주에서 내가 그 아이와 혼수 쟁탈을 벌였을 때, 그 아이는 끝내 얼굴도 비추지 않은 채로 집사와 몸종에게 모든 걸 맡겼어. 난 또 어린 낭자가 체면이 상할까 봐 창피하여 나서지 않는 줄 알았는데, 돌이켜 생각해 보니 그런 게 아니었군.
그게 어딜 봐서 창피하여 나서지 않은 거야? 나설 필요도, 그럴 만한 가치도 없어서 나서지 않았던 게지. 그 아이의 눈에 우린 그저 저잣거리의 행인보다도 못한 존재일 테니까.
정 대노야가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며 자조적인 웃음을 보였다.
대청 안의 사람들은 차츰 정신을 차리고 혼잣말을 하며 들었던 이야기를 정리했다.
“그 형제들에게 관직을 추서한 데다, 쇠뇌로 큰 공을 세웠으니······.”
정 이노야가 중얼거리면서 좀 전에 자신을 축하하러 왔던 동료들이 한 말을 떠올렸다.
내가 경성으로 가서 관직을······.
“하! 폐하께서 내리시는 내 상도 곧 당도하겠구나!”
정 이노야가 흥분을 감추지 못하며 펄쩍 뛰어올랐다. 정 이부인도 뒤늦게 깨닫고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노야, 드디어 고생길이 끝났어요! 빨리 경성으로 가야겠네. 아이고, 어서, 어서 짐을 정리해야······.”
너무 기쁜 나머지 정 이부인은 허둥대면서 몸을 돌렸다.
“정리는 무슨 정리를 해. 내 딸이 거기 있잖소. 설마 우리가 살 곳도 마련해 놓지 않았겠소? 이제야 그 아이를 허투루 키운 게 아니라는 보람이 느껴지는군.”
정 이노야의 대꾸에 정 이부인은 머릿속으로 얼른 셈을 했다.
그 아이는 경성에 돈을 긁어모으는 점포를 세 개나 가지고 있어. 그 아이가 자리를 비운 동안, 혼수인 농토와 포목점은 전부 조 집사라는 놈이 통째로 꿀꺽 삼켰지만, 우리가 경성으로 간다면 모든 게 달라질 거야.
그리 많은 점포를 혼자서 감당하기란 여간 힘든 게 아닐 테니, 식구끼리 돕고 살아야지.
정씨 가문의 아랫것은 쓸 게 못 돼. 여기 있는 것들은 죄다 대노야 사람들이니까.
얼마 전부터 친정에서 좀 도와달라고 몇 번이나 말했잖아. 이참에 친정 조카나 몇 명 데리고 경성으로 가서 점포 일을 돕게 하면 딱 좋겠네. 누굴 데려갈까나?
그러고 보니 또 새해네. 경성에 가는 거니까 새 옷을 지어서 입고 가야겠지? 아니다, 경성에서 만드는 게 여러모로 더 좋겠어.
세상에, 이제부터 바빠지겠네.
정 이부인의 생각이 꼬리에 꼬리를 물었다. 정 이부인은 다급한 마음에 재빨리 정 이노야의 소매를 잡아끌고 자리를 떴다.
대청 안이 조용해지고, 정 대노야 부부만 자리를 지키고 있었다.
정 이노야의 이마를 맞히고 깔개 위로 떨어진 찻잔을 보자, 정 대부인은 좀 전의 일이 그제야 실감이 났다.
“노야, 오늘 들은 얘기가 다 사실이에요? 그 바보가 폐하의 용안까지 뵈었다고요?”
정 대부인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물었다. 정 대노야가 천천히 고개를 저었다.
“아무래도 이상하구려.”
정 대부인은 순간 긴장했다.
“가짜겠죠? 이게 진짜일 리가 없잖아요.”
생각에 잠겨 있던 정 대노야가 정신을 차리고 정 대부인을 노려보았다.
“뭐가 가짜라는 거요? 한 번, 두 번까지는 헛소문이라 여길 수도 있소. 그러나 세 번째, 네 번째로 이런 일이 일어났을 때는 진짜지. 그리고 관부 사람들도 죄다 진짜라고 하는 일이 어찌 가짜일 수 있겠소?”
정 대노야가 깊은 한숨을 쉬면서 중얼거렸다.
“내 말은 아우가 경성 관리로 진급한 게 영 이상하단 거요.”
“뭐가 이상해요? 그 애가 그런 일을 벌이는 바람에 폐하께서도 그 아이의 공로를 인정하셨다잖아요. 공을 세우긴 했지만, 아직 혼례도 올리지 않은 여인의 몸으로 상을 받을 순 없으니, 하는 수 없이 부모나 형제에게 대신 상을 하사하시는 것 아니겠어요?”
한숨을 푹 내쉬던 정 대부인의 입가에 희미한 웃음이 떠올랐다.
“어쩌면, 그 아이의 친어미인 과랑도 추서될지 몰라요.”
정 대노야는 연신 고개를 저었다.
“이치야 그렇다지만, 듣기만 해도 아슬아슬한 경우가 한두 번이 아니었소. 이번엔 그 아이가 이겼다고는 하나, 이 일로 인해 심기가 불편해진 이도 한둘이 아니겠지. 나는 아무래도 마음이 안 놓이는구려.”
“노야, 너무 걱정 마세요. 경성에는 주씨 가문도 있잖아요.”
정 대부인이 말했다. 정 대노야는 잠시 생각에 잠겼다가 돌연 큰 소리로 외쳤다.
“여봐라, 사낭을 불러오거라.”
정사낭을 불러오라는 말에 정 대부인은 고개를 저었다.
“사낭은 불러서 뭐 하게요? 그때 이미 물어봤잖아요. 사낭은 그 아이를 몇 번 본 거 말고는, 그 아이에 대해 아는 게 하나도 없어요.”
“뭘 물으려는 게 아니라, 즉시 채비를 하여 경성으로 보내야 하오.”
정 대노야가 말했다.
“저더러 경성에 가란 말씀입니까? 게다가, 지금 당장이요?”
정 대노야의 말을 들은 정사낭은 깜짝 놀랐다. 어차피 곧 있을 과거 시험 때문에 경성으로 가야 하긴 했지만, 11월에 출발해도 충분했기 때문이었다.
정 대노야가 진지하게 고개를 끄덕였다.
“네 누이 교랑한테 무슨 일이 생길지도 모르겠다.”
정사낭이 더욱 놀란 얼굴로 정 대노야의 말을 끊었다.
“네? 왜요? 누이에게 무슨 일이라도 생겼습니까?”
잔뜩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으며 금방이라도 정교랑에게 달려갈 듯한 정사낭의 모습을 보고, 정 대노야는 또 한 번 감탄했다.
설마, 고작 이것 때문이었어?
고작 저 마음 때문에 교랑이 저놈을 보살펴 주고, 예를 갖춰 대했다고?
정교랑이 정사낭을 어떤 태도로 대하는지 정 대노야가 직접 본 일은 없었다. 하지만 그건 조 집사만 보아도 충분히 알 수 있는 것이었다.
조 집사는 언제 어디서든, 누구 앞에서든 한결같이 거만하고 안하무인인 태도를 보였다. 하지만 그런 조 집사도 정사낭을 대할 때는, 길에서 우연히 마주치기만 해도 얼른 말에서 내려 자세를 바르게 한 후 공손하고 깍듯하게 예를 올렸다. 그뿐만이 아니었다. 조 집사는 정사낭과 대화할 때마다 공손히 허리를 살짝 숙였으며, 함께 걸을 때도 앞서 걸으라는 손짓을 하고 자신은 몇 걸음 뒤에서 천천히 따라가곤 했다.
조 집사가 이렇게 사소한 부분까지 신경 쓰는 것은, 정사낭을 진심으로 존경하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
– 제가 한 건 아무것도 없습니다.
정사낭은 강주로 돌아온 뒤로 계속 같은 말만 되풀이하며 자신은 정교랑에게 아무것도 해준 게 없음을 강조했지만, 정 대노야는 끝내 사람을 시켜 정사낭이 뭘 했는지 알아냈다.
정교랑이 도관에서 지낼 때 돈을 보냈고, 강주를 떠나 경성으로 갈 때도 배웅을 나가 돈을 줬다. 경성에서는 주씨 저택까지 직접 찾아간 데다, 거기서도 돈을 줬다고 했다.
정 대노야는 갑자기 실소가 터져 나왔다.
으이구, 이 어리석은 아들아. 네가 준 그 푼돈은 그 집 사환이 쓰는 용돈보다도 적을 텐데.
그런데도 그 애는 사낭의 돈을 하찮게 여기지 않고, 매번 감사히 챙겼다지. 진심은 하찮게 여길 수 없는 거니까.
정 대노야가 깊은 한숨을 내쉬었다.
“사낭, 경성에 가서 교랑에게 무슨 일이 있는지만 물어보면 된다. 그리고 우리가 도울 일이 있냐고도 꼭 물어보고, 이노야가 경성으로 전임하게 된 일도 알리거라.”
정사낭이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조, 좋은, 일인 거죠?”
정 대노야가 정사낭을 쳐다보면서 반문했다.
“좋은 일이냐고 물으면서, 왜 말을 더듬는 게냐?”
내가 말을 더듬었나?
정사낭이 멍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숙부님께서 경성으로 가시게 된다면, 누이도 경성에서 더 이상 혼자가 아니겠지. 전에 숙부님께서 누이를 별로 안 좋아하시긴 했지만, 그건 누이한테 병이 있었기 때문이야. 지금은 병도 다 나았고 능력까지 대단해졌으니, 숙부님께서도 분명 누이를 좋아하실 거야.
조, 좋은 일인 게 맞겠지?
어두운 안색의 진소가 고능준이 당직을 서는 관청 안으로 들어갔다.
“진 상공, 정말 귀한 손님이 오셨습니다.”
웃음을 머금은 고능준이 몸을 일으키면서 아랫사람이 갖춰야 할 공경함을 담아 예를 표했다.
“이 명부를 승인하셨소?”
진소가 명부 하나를 고능준의 탁자 위로 던지자, 고능준은 웃는 얼굴로 탁자 위에 올려진 명부를 가볍게 훑어보고는 고개를 끄덕였다.
“소관이 승인한 것이 맞습니다만, 무슨 문제라도 있습니까?”
고능준이 깜짝 놀란 듯한 표정으로 진소에게 물었다.
“올해의 관료 고과는 이미 끝났는데, 어찌 이리 독단적으로 전임을 허락한 거요? 그것도 전임지가 이미 확정되었던 시기에.”
진소가 대답을 피하고 반문했다.
“특별한 일이라 특별하게 처리했을 뿐이오만.”
고능준이 여유롭게 대답했다.
“그자가 어딜 봐서 특별하지? 관리 평가에서도 낮은 등급을 받고, 십 년 넘게 관직 생활을 하면서도 아무 공적도 못 세웠는데! 어째서 그자를 대리시(大理寺)로 전임 보냈느냔 말이오!”
진소가 눈썹을 치켜세우며 호통을 쳤다. 그러자 고능준이 입꼬리를 살짝 올리고 대답했다.
“그 유명한 정씨 낭자의 부친이잖습니까. 정 낭자는 의형제를 도와 말편자를 만들고, 신비궁까지 만들어 냈습니다. 정 낭자의 오라비들이 서북에서 억울하게 공로를 빼앗긴 일이 만천하에 공개되면서 폐하와 조정에서도 서북의 쓸모없는 장수들을 처리했고요. 그 덕에 서북에는 새로운 용맹한 젊은 장수가 부임하여, 오랑캐를 백 리 밖까지 쫓아내고, 원래 우리의 것인 성보도 모두 수복하지 않았습니까. 진 대인, 이런데도 정 낭자에게 공로가 없다고 할 수 있겠습니까?”
고능준이 마지막 말을 할 무렵, 그의 얼굴에 있던 웃음기는 말끔히 걷혀 있었다. 진소가 인상을 찌푸린 채 천천히 말했다.
“그건 정 낭자의 공로이지, 낭자의 부친과는 무관하오.”
고능준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가 곧바로 웃음을 멈추었다. 고능준은 눈썹을 치켜세우고 소리를 지르며 진소에게 삿대질을 했다.
“진소, 어찌 감히 그런 불충하고 불효막심한 말을 하는 것이오! 폐하께서 공을 세운 자식을 둔 부모에게 상을 내리면 안 된다는 거요? 아니면 부모가 공을 세운 자식 덕에 호강하는 게 틀렸단 거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