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01
교랑의경 501화
순간 가슴이 덜컥 내려앉은 이신은 옆에 있던 이와 시선을 주고받은 후 대답했다.
“네, 제 서자입니다만······.”
이신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무관이 손짓을 하며 호령했다.
“그럼 맞구나. 체포해라!”
호령이 떨어지자 병사들이 우르르 달려들어 이신을 비롯한 그 일가를 전부 바닥에 제압했다. 동시에 사방에서 서로를 불러대는 목소리와 아이의 울음소리가 끊이지 않았다. 이씨 가문의 대저택은 순식간에 아비규환이 됐다.
어둠이 내릴 무렵, 등불만 하나 켜 놓은 커다란 방 안은 어두컴컴했다. 이씨 일가는 전부 이 방 안에 갇혀 처벌을 기다리고 있었다.
“이게 대체 무슨 일이지?”
이신은 수염이며 머리가 헝클어진 채로 바닥에 앉아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그때 한 사내가 밖에서 문을 열고 들어왔다.
“오후에 지진이 일어났던 게 아니랍니다. 궁노원에서 폭발이 일어나 신비궁 수백 개를 망가뜨렸대요.”
안으로 들어온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궁노원이 어떤 곳이고, 신비궁이 어떤 무기던가. 방 안에 있던 이씨 일가 사람들은 무슨 일인지 대번에 알아들었다.
“설마 그놈 짓이더냐?”
이신이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사내는 고개를 끄덕이며 눈물을 쏟으려 했다.
“맞습니다.”
그 말에 이신은 눈을 까뒤집고 혼절했다. 방 안은 또다시 아수라장이 되었고, 곡소리와 비명이 이어졌다. 문밖에 있던 위병에게 몇 번이나 소리를 지르며 애걸한 후에야 간신히 물 한 그릇을 얻어 이신의 얼굴에 끼얹을 수 있었다.
“끝났구나, 끝났어.”
정신을 차린 이신이 바닥에 엎드려 흐느꼈다.
“우리 이씨 가문이 그놈 손에 끝나게 됐구나.”
“지난번에도 그 녀석이 거리를 절반이나 태우는 바람에 멸문지화를 입을 뻔했잖아요. 그러게 경성 밖으로 내쫓아야 한다니까, 다들 귓등으로도 안 듣더니만.”
“안 듣긴 누가 안 들어? 마음이 약해진 사람이 있었으니 그렇지, 이 판국에 누굴 탓해!”
“애초에 벼슬자리를 구해 주는 게 아니었어요. 상단이나 쫓아다니게 했으면 이런 일은 없었죠.”
서로를 비난하며 옥신각신하는 소리가 계속됐다.
“그 얘긴 그만합시다. 일단 어떻게 된 일인지부터 알아보죠. 그 녀석이 정말 세작이라면, 우린 살아남지 못할 겁니다!”
누군가가 소리쳤다.
방 안이 일순간 조용해지나 싶더니 다시 소란스러워졌다. 곧이어 여인들과 아이들이 있던 옆쪽에서 한 여인이 끌려왔다.
“아버님, 아버님, 전 몰랐어요.”
여인이 무릎을 꿇고 흐느껴 울었다.
“벌써 집에 안 들어온 지 꽤 돼서 저도 어디서 뭘 하는지, 누굴 만나고 다니는지 몰랐어요. 돈이 좀 필요하다고 그러더라고요. 관직을 잃은 데다 아버님의 노여움까지 샀잖아요. 그래서 조그맣게 장사나 할까 한다는데, 집에 돈이 없어서 제가 혼수를 팔아 장만해 줬어요. 아버님, 뭘 하고 다니는 건지는 정말 몰랐어요.”
얘기를 들은 사람들은 오싹 소름이 돋았다.
역시 은밀히 뭔가를 꾸미는 거였어! 끝났구나, 끝났어.
“우리 이씨 가문에 그리 불효막심한 놈이 나오다니!”
이신은 가슴을 치며 눈물을 흘렸다.
동녘이 밝아 올 무렵, 누군가가 문을 열고 들어와 바닥에 밥통을 내려놓았다.
“밥들 먹어라, 밥.”
방 안에 있는 이들은 전부 풀이 죽은 채 생기를 잃은 모습이었다.
“난 안 먹을래. 어차피 죽게 된 거, 체면이라도 지켜야지.”
누군가가 말했다. 밤새도록 통곡한 이들이 그 말에 또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그렇게 다 같이 울고 있는데,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렸다.
“끌어내 목을 벨 건가 봐요!”
아낙이 소리치자 방 안에 있던 이들은 더 큰 소리로 흐느껴 울었다.
“아닙니다, 아니에요. 노야, 노야, 저예요!”
소란스러운 와중에 누군가가 큰 소리로 외쳤다.
“이무 도련님도 무사하십니다. 이무 도련님은 무사하세요.”
바닥에 누워 있던 이신이 그 말에 벌떡 일어나 기어왔다. 이씨 일가 사람들은 문 쪽으로 우르르 몰려갔지만, 금군 위병들의 삼엄한 경계에 막히고 말았다.
마당 쪽을 보니 사환 하나가 보였다. 사환은 무관에게 무어라 이야기한 후 문서 하나를 꺼내 보여 주었다. 무관이 고개를 끄덕이고 비켜섰다.
사환은 그제야 안으로 뛰어 들어왔다.
“대체 어떻게 된 일이냐?”
이신이 물었다.
“노야, 이무 도련님께서 폐하께 보물을 바치신답니다. 신비궁보다 훨씬 대단한 보물이래요.”
사환이 소리쳤다. 방 안에 있던 이들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을 지었다.
“그럼, 세작이 아니란 말이냐?”
누군가가 핵심을 물었다. 사환이 고개를 끄덕였다.
“세작이 아닙니다.”
사환은 소매를 들어 땀을 닦으며 말을 이었다.
“오늘 도련님이 곡강지에서 폐하께 그 어마어마한 병기를 직접 검증해 보이신대요!”
사환이 손으로 곡강지 쪽을 가리키며 말했다.
날이 환하게 밝았을 무렵, 어가는 이미 봉쇄되어 있었다. 황제의 행렬이 지나가고 나서야 백성들이 우르르 몰려나왔다.
“폐하께서 곡강지로 가시나 봐!”
“이 엄동설한에 폐하께서 곡강지엔 왜 가시지?”
“누가 보물을 바친다는군. 신비궁보다 더 강력한 거래.”
“정 낭자가 또 보물을 바친다고?”
“정 낭자가 아니야. 누구라더라, 아무튼 다른 사람이라던데.”
거리로 쏟아져 나온 사람들이 왁자지껄 떠들어댔다.
한편 곡강지 쪽의 분위기는 엄숙하기 그지없었다. 대신들은 곡강지에 있는 높은 누대에 여기저기 흩어져 앉아 있었다.
“참으로 황당한 일이오! 폐하께서 옥체를 돌보지 않고 함부로 출궁하시다니, 참으로 황당한 일이외다.”
풍림이 또다시 목청을 높였다.
“이미 이렇게 됐는데 괜히 분위기 깨지 마시구려, 풍 대인.”
고능준이 웃으며 대꾸했다. 고능준 역시 황제의 결정이 못마땅했지만, 황제가 하는 일에 흥을 깰 순 없는 노릇이었다.
역시 나서주는군.
황제의 안색이 한결 밝아졌다.
“나랏일을 맡은 신료가 아첨에 능해서는 아니 됩니다.”
풍림이 고능준을 노려보며 말했다. 대놓고 욕을 하는데도 고능준은 진소처럼 펄쩍 뛰며 맞서지 않고 여유로운 웃음을 지었다.
이런 외골수와 대놓고 싸워 봤자 손해 보는 건 나 자신이야. 이런 자를 상대할 땐 은밀히 손을 쓰는 게 낫지.
“검증 결과 거짓으로 밝혀지면, 군주기만죄를 더해 일벌백계로 삼으시옵소서.”
고능준의 말에 황제는 고개를 끄덕였다.
아첨은 무슨. 보다시피 법대로 하고 있잖아.
사람 키만 한 방패를 손에 든 금군 무리가 누대로 올라왔다. 금군이 황제와 대신들을 일제히 에워쌌다.
“신비궁보다 강력하다니, 경계도 강화할 수밖에 없습니다.”
무관 하나가 황제에게 말했다.
이무는 누대에서 시선을 거두고 중얼거렸다.
“마음만 먹어 봐라. 저런 방패로는 절대 못 막지.”
범강림이 이무를 보며 말했다.
“그래도 저런 방패가 그런 마음을 못 먹게 막을 순 있지.”
이무가 범강림을 보며 씩 웃었다. 하룻밤이 지나는 사이 벌겋게 부어오른 얼굴은 웃어도 표가 나지 않았다. 이무는 통증 때문에 얼굴을 더욱 일그러뜨렸다.
“대인, 발석거에 준비를 마쳤습니다.”
어제의 그 장인이 쭈뼛거리며 말했다. 이무는 말없이 심호흡을 하고, 절름거리며 발석거 쪽으로 걸어갔다. 범강림이 금군 무리를 이끌고 그 뒤를 바짝 쫓았다.
“멀쩡한 내 발석거만 실없이 망가뜨리는 일은 없었으면 한다.”
범강림이 말했다.
한편 높은 누대 위에서는 군기사의 관원이 황제에게 손짓을 해 가며 설명 중이었다.
“······저 발석거는 이무가 만든 돌포탄을 던질 수 있도록 개량한 겁니다.”
황제가 고개를 끄덕이며 방패 사이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저게, 이무가 만든 돌포탄이더냐?”
관원이 얼른 고개를 돌렸다. 이무와 범강림 등이 발석거 앞에 서 있는 모습이 보였다. 이무는 몸을 숙인 채 돌포탄 하나를 조심스레 꺼내고 있었다.
“그렇습니다. 여러 번의 시도 끝에 유효한 돌포탄 다섯 개를 만들었는데, 그저께 하나 쓰고, 어제 범 군감이 실수로 하나 썼답니다.”
이무가 돌포탄을 조심스레 발석거에 넣은 후, 화절자를 꺼내 들었다. 금군들은 별다른 반응을 보이지 않았지만, 어제 궁노원에서 폭발 장면을 목격한 관료들은 반사적으로 물러섰다.
“무서워할 것 없습니다. 도화선을 길게 만들어 놨으니, 도망칠 시간은 충분합니다.”
이무가 화절자로 불을 붙이며 말했다. 이무는 불을 붙이려다 말고 동작을 멈추더니 범강림을 쳐다보았다.
“군감 대인, 한 번 더 해 보시겠습니까?”
범강림이 화절자를 받아 도화선에 불을 붙였다.
“대인, 불을 붙이기 전에 말씀을 해 주셔야지요.”
이무가 뒤돌아 달려가며 소리쳤다. 이무가 달려가는 모습을 본 주위 사람들도 놀라 후다닥 자리를 피했다.
높은 누대 위에 있던 황제가 그 모습을 보며 웃음을 터트렸다.
“도망을 쳐? 전장에서 저리 도망치면 군대의 위신이 떨어질 텐데.”
황제가 고개를 가로저었다. 황제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서 불꽃이 번쩍 일었다. 곧이어 천지를 뒤흔들 듯 엄청난 폭발음이 들렸다.
방패를 들고 서 있던 금군들의 대오도 흐트러졌다. 옆에 있던 대신들은 비명을 지르기도 하고, 이쪽으로 달려와 황제 앞을 막아서기도 했다.
황제의 눈앞에 별빛이 번쩍이고 귓가가 웅웅 울렸다. 동시에 아무것도 안 들리는 것 같기도 했다.
군대의 위신이 문제가 아니로군. 저리 번쩍이기만 해도 적군이 놀라 삼 리는 후퇴하겠어.
황제가 속으로 생각했다.
이거 간 떨어지는 줄 알았네.
한참이 지나고, 수행하는 내시들이 청심환 여러 개를 가져와 먹인 후에야 누대는 예의 평온을 되찾았다. 황제도 그제야 비로소 정신을 차린 건지, 귓가에 사람들의 말소리가 또렷이 들렸다.
“황당하군! 황당해!”
풍림의 목소리가 귓가에 울렸다.
“훌륭하구나. 훌륭하도다.”
황제가 얼른 풍림의 말을 끊으며 연신 칭찬했다.
“폐하, 이제 위력이 어떠한지 보시지요.”
군기사 관원이 말했다.
아, 위력이 더 남았나? 이것만으로도 대단한 위력인데.
황제가 관원의 말에 고개를 들었다. 금군들이 물러나자 시야가 탁 트이면서, 일 리 밖에 두꺼운 판으로 울타리를 친 곳이 눈에 들어왔다.
본디 소와 양 일고여덟 마리를 넣어 둔 곳이었는데, 소와 양은 도망쳤는지 보이지 않았고, 울타리 역시 산산조각이 나 있었다. 그리고 땅에는······.
황제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났다.
“폐하, 조심하십시오!”
내시가 얼른 부축했다. 황제는 벌써 누대의 가장자리로 달려가 있었다. 벽을 짚고 선 황제는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아래를 내려다보았다.
꽤 먼 거리이긴 했지만 여기저기 널브러져 있는 소와 양의 시체는 확인할 수 있었다. 땅은 온통 피로 흥건했다. 곧 다른 대신들도 우르르 몰려왔고, 풍림마저도 그 광경에 입이 떡 벌어졌다.
높은 누대에 정적이 흘렀다.
범강림은 저도 모르게 고개를 돌리며 미간을 찌푸렸다. 주육낭이 신비궁을 시연했을 당시 천지를 뒤흔들 기세로 열광하던 분위기와는 사뭇 달랐다.
이 돌포탄의 위력이 부족하다는 건가?
높은 누대에 선 황제의 낯빛이 차츰 벌겋게 상기됐다. 돌난간을 쥔 손이 미세하게 떨렸다.
일 리 밖에서, 돌포탄 하나로, 소와 양을 몰살하다니. 사정거리는 신비궁에 못 미치지만, 그 위력은······.
신비궁은 한 발에 한 사람만 맞힐 수 있다. 그것도 조준에 실패하지 않는다는 가정하에. 하지만 이 돌포탄이라면, 하나만 던져도 무리가 떼죽음을 당하리라.
떼죽음!
거리는 좀 멀지만 저쪽의 참상으로 미루어 보건대, 소와 양이 살아 있을 확률은 거의 없었다. 어디 그뿐이랴. 사지가 갈기갈기 찢겨 도처에 흩어져 있을 것이다.
만약 사람이 저기 있었다면······.
돌포탄 하나에 끔찍한 참상이 펼쳐지리라.
어마어마하구나! 실로 어마어마해! 신비궁보다 백 배는 강력한 병기라는 말도 과언은 아니야.
황제는 저도 모르게 고개를 들어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몸이 허약해 늘 창백하던 얼굴에 홍조가 번졌다.
“하늘이 이 나라를 보우하시는구나!”
황제가 중얼거렸다.
“하늘이 이 나라를 보우하시는도다!”
황제가 목청을 높여 외쳤다.
“황제 폐하, 만세, 만세, 만만세!”
고능준이 큰 소리로 외치며 허리를 굽혀 예를 표했다. 그러자 다른 대신들도 일제히 예를 표하며 함께 외쳤다.
성공이구나!