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30
교랑의경 530화
“요즘 잘 지내죠?”
진안 군왕이 몇 걸음 앞서 걷고 있는 여인을 보며 물었다.
“잘 지내요.”
정교랑이 고개를 돌리며 물었다.
“전하는 잘 지내셨어요?”
“네.”
미소를 짓던 진안 군왕이 눈썹을 꿈틀거리며 말했다.
“이제 초무사가 됐으니 군을 이끌고 북쪽으로 가잖습니까. 내가 군과 관리들을 이끈다고요. 물론 대부분의 경우엔 장식에 불과하겠지만.”
정교랑도 미소를 지으며 연무장으로 걸어갔다. 그러더니 함을 열고 무언가를 꺼냈다.
“아, 이건 그······.”
진안 군왕이 뭔지 알겠다는 듯 입을 열었다.
태백성이 하늘을 지나가던 날, 정교랑이 손에 들고 있던 죽통이었다.
그때 얼핏 보기도 했고 정교랑이 소매로 가려 제대로 보지 못했지만, 지금 보니 평범한 죽통으로 보이진 않았다. 죽통 앞쪽에는 구리통도 달려 있었다.
이게 뭐지?
하지만 이번엔 입을 열어 묻지 않았다.
“전하께 드리는 작별 선물이에요.”
정교랑의 말에 진안 군왕이 미소를 지었다.
작별을 고할 땐 아무 말 없더니.
“거짓말. 호루라기에 대한 답례면서.”
“그것도 작별 선물이잖아요.”
진안 군왕의 말에 정교랑이 대꾸했다.
“떠나면서 준 거니까요?”
정교랑이 웃음을 터트렸다.
“네.”
대답을 마친 정교랑이 죽통을 들더니 함 속에서 기다란 종이를 꺼내 통 속에 넣었다. 진안 군왕이 호기심 어린 눈빛으로 동작을 지켜보았다.
“이게 뭐예요? 이것도 장난감이에요? 불면 소리 나나?”
진안 군왕이 웃으며 물었다.
“네.”
정교랑이 손을 들어 한쪽을 겨누며 말했다.
“그런데, 부는 건 아니에요.”
“그럼 어떻게 해야 소리가 나는데요?”
정교랑은 다른 한 손으로 심지에 불을 붙이며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이렇게요.”
정교랑이 심지에 붙은 불을 죽통에 가져다 댔다.
이렇게?
진안 군왕이 그게 뭔지 제대로 보기도 전에 귓가에 펑 하는 소리가 울려 퍼졌다. 죽통이 눈앞에서 폭발한 것 같았다. 놀란 진안 군왕이 저도 모르게 뒤로 한 걸음 물러섰다. 귀가 웅웅 울리고 몸이 휘청거렸다.
소리가 어마어마하네!
정신을 차린 진안 군왕이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여인의 표정은 태연했고, 손에 쥔 죽통은 이쪽을 향하고 있었다.
“장난감이 참······.”
웃으며 죽통을 쳐다보고 다시 앞쪽을 쳐다보던 진안 군왕이 멈칫했다.
백오십 보 밖에 세워진 과녁이 갈라진 채 쓰러져 있었다. 누더기가 되다시피 한 과녁에서는 검은 연기가 피어올랐고, 화염이 남아 있었다.
백오십 보 밖인데, 저리 누더기가 되다니······.
“진짜 무시무시하네.”
진안 군왕이 중얼거렸다.
정말 무시무시한 장난감이잖아!
“네, 좀 무섭긴 하죠. 이거라면 폭도와 정면으로 맞서게 됐을 때, 상대를 놀라게 하기엔 충분할 거예요. 그럼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죠.”
진안 군왕이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순간 눈이 시큰해졌다.
전부 다, 알고 있구나.
이재민을 구제하고 반란을 평정하러 가는 이 길에, 암살과 음해 또한 있을 거라는 사실을 알고 있어.
그는 말하지 않았고, 그녀는 묻지 않았다. 심지어 그녀는 빈말이라도 걱정하는 척 안부조차 건네는 법이 없었다. 그런데, 그에게······ 생각지도 못한 것을 주었다.
정교랑은 눈앞에 있는 사람이 갑자기 멍한 채로 아무 말 없이 있자 영문을 모르는 듯했다.
“놀랐어요?”
정교랑이 손에 든 죽통을 들고 흔들었다.
“이건······.”
정교랑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눈앞에 있던 젊은이가 성큼성큼 걸어와 그녀를 확 껴안았다. 낯선 호흡이 순간 그녀의 몸을 감쌌다.
누군가가 가까이 다가오는 걸 싫어하는 정교랑이었다. 몸을 씻고 옷을 갈아입을 때조차도 기껏해야 반근 한 사람만 시중을 들 뿐이었고, 그 시중이라는 것도 어깨를 주무르거나 옷자락을 정돈해 주는 정도에 불과했다.
그런데 지금, 누군가가 껴안은 것이다. 그것도 남자가.
낯설고, 단단한, 그 기분과 호흡.
순간 정교랑의 몸이 굳었다.
여인의 다급한 비명 소리가 마당에 울려 퍼졌다. 반근은 황급히 입을 틀어막았다.
소리 지르면 안 돼, 소리 지르면 안 된다고. 소리를 지르면 누가 보잖아. 그럼 아씨의 정조가······.
그 짧은 비명 소리에 진안 군왕은 퍼뜩 정신을 차렸다. 그는 자신이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그제야 깨달은 듯 화들짝 놀라 손을 풀고 얼른 뒤로 물러났다.
“나, 난, 난 그, 그냥······.”
진안 군왕이 말을 더듬었다.
“고마운 마음에······.”
반근이 하얗게 질린 얼굴로 달려왔다.
고마워? 이런 식으로 고마움을 표하는 법이 어디 있어?
호색한 같으니라고, 이유도 참!
정교랑이 아, 하는 소리를 내고 말했다.
“감사할 것 없어요. 답례라고 했잖아요.”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반근이 발을 굴렀다.
저 호색한의 같잖은 이유만 탓할 것도 없네. 아씨는 무례한 일을 당했으면서 어찌 저런 괴상한 생각을 하시지?
분위기가 이상해지며 잠시 침묵이 흘렀다.
진안 군왕은 멋쩍은 듯 머리를 긁적이며 말을 더듬거렸다.
“호루라기 하나를 이렇게 좋은 물건과 바꾸다니. 그, 그러니까······.”
할 말이 많았던 것 같은데 갑자기 머릿속이 뒤죽박죽 뒤섞여 뭐라 말해야 할지 알 수 없었다.
코에 감도는 여인의 맑은 향내 때문인가. 그리고 방금 그 이상하고 부드러운 느낌도······.
허튼 생각 하면 안 돼!
머리를 세차게 흔들자 머릿속에 호루라기가 떠올랐다. 진안 군왕은 반사적으로 향낭에 손을 넣어 나머지 하나를 꺼냈다.
“저기, 이건 낭자한테 주는 거예요.”
반근은 돌아 버릴 것 같은 기분으로 두 사람을 멍하니 바라보았다. 정교랑이 손을 뻗어 받고는 손에 든 죽통을 함에 넣었다.
“여기 탄환이 네 개 더 있어요. 이렇게 탄환을 통 안에 넣어 쓰면 돼요.”
정교랑이 직접 시범을 보였다.
“여기 심지에 불을 붙이면······.”
거기까지 말한 정교랑이 고개를 들자, 넋이 나간 듯 멍한 표정의 진안 군왕이 보였다.
“조심해요. 이 장난감은, 잘못 갖고 놀면 자신이 다쳐요.”
정교랑의 말에 진안 군왕이 진지한 얼굴로 앞으로 다가와 섰다.
“미안하지만 다시 한번 보여 줘요.”
고개를 숙인 채 시범을 보이는 낭자와 가까이 서서 진지하게 보고 듣는 소년을 보며 반근은 뒤로 몇 걸음 물러섰다.
아, 내가 방금 본 무례한 행동은, 환각이었나?
일가를 데리고 나와 진안 군왕을 배웅하고 난 범강림이 고개를 돌려 반근을 쳐다보았다.
“반근, 왜 그래? 얼굴이 좀 이상한데?”
반근이 억지로 웃음을 지었다.
저도 제가 왜 이러는지 모르겠어요.
“잠을 못 자서 그런가 봐요.”
반근의 대답에 범강림이 한숨을 쉬었다.
“이노야 내외도 참······.”
그런 일을 당했는데, 근심이 안 될 수가 없지.
그때 마당에 새가 지저귀는 소리가 들렸다. 모두가 고개를 돌려 보니, 황씨의 품에 안긴 아이가 호루라기를 불며 새소리를 내고 있었다. 아이는 관심이 쏠리자 기분이 좋은지 까르르 웃음을 터트렸고, 아이 덕분에 나머지 사람들도 웃음을 지었다.
새소리가 끊어졌다 이어졌다 하며 계속 마당을 맴돌았다.
“그래, 그래. 밥부터 먹자. 밥 먹고 또 불어.”
황씨가 아이를 어르며 말했다. 모두가 대청으로 걸음을 옮기려는데, 또다시 새소리가 들렸다.
“어허!”
아이를 맡기고 걸음을 옮기던 황씨가 아이를 혼내려고 고개를 돌렸지만, 유모의 품에 안긴 아이의 입과 손에는 아무것도 보이지 않았다. 아이는 고개를 흔들며 주위를 두리번거렸다.
“내 거, 내 거.”
자신의 호루라기를 빼앗긴 줄 아는지 아이가 손을 뻗으며 소리쳤다. 옆에 있던 어린 몸종이 얼른 달려와 호루라기를 건넸다.
저 애가 부른 게 아니었나?
황씨가 멈칫하는 사이, 또다시 새소리가 들렸다. 뒤쪽에서 걷고 있던 정교랑이 모두의 주목을 받으며 입에서 호루라기를 뗐다.
“나도 있어.”
정교랑이 손에 호루라기를 들고 아이를 향해 흔들며 미소 지었다.
* * *
2월 초사흘, 경성 날씨는 여전히 추웠다.
“군왕께서 왕부로 돌아오셨다.”
통보 소리가 들리자 경왕부 사람들이 나와 조회를 마치고 돌아온 진안 군왕을 깍듯이 맞이했다. 군왕을 바짝 뒤따르는 내시의 손에는 황제의 칙명을 담은 성지가 높이 들려 있었다.
“전하, 언제 출발하실 겁니까?”
대청으로 들어온 진안 군왕이 두봉을 벗고 두 팔을 활짝 벌리자, 궁녀들이 조복을 벗기고 길을 떠나기 편한 옷으로 갈아입혀 주었다.
“점심 먹고 바로 출발하자. 금군을 데려가 관서군과 합류할 것이다.”
옷을 갈아입고 요대까지 찬 진안 군왕이 손을 휘휘 내젓자 궁녀들이 허리 숙여 예를 표하고 물러갔다.
“전하, 뇌천군도 관서군과 함께 갈 겁니다.”
내시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고하자 진안 군왕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뇌천군도 그동안 밖에서 고생이 많았지.”
웃으며 당치 않다고 대답한 내시는 진안 군왕이 선반에 있는 작은 함에서 무언가를 꺼내는 모습을 지켜보았다.
그날 정 낭자의 댁에서 가져오신 물건이군. 오는 내내 보물을 대하듯 꼭 껴안고 계시더니, 돌아오자마자 자물쇠를 채우셨지. 언제부터인가 허리춤에 걸 수 있는 기다란 향낭 속에 넣어 두셨고.
“전하, 이게 무엇이옵니까?”
“호루라기 두 개와 바꾼 선물이다.”
내시가 궁금증을 못 참고 묻자 진안 군왕이 웃으며 대답했다.
호루라기 두 개?
내시가 영문을 몰라 눈을 동그랗게 떴다.
“경왕은?”
진안 군왕이 옷자락을 탁탁 털고 성큼성큼 걸어 나가며 물었다.
오전 내 실컷 놀고 난 후 씻고 탁자 앞에 앉은 경왕은 옆에 누가 앉든 말든 관심도 없는 듯 앞에 차려진 음식을 와구와구 먹고 있었다.
“육가아.”
진안 군왕이 손을 뻗어 경왕의 머리를 쓰다듬어 주었다.
“이 형이 어디 좀 다녀와야 해. 아마 반년이 좀 걸리거나 일 년은 돼야 돌아올 수 있을 거야. 겁먹지 말고 집에 얌전히 있어. 여러 사람이 널 지켜 줄 거야.”
경왕이 응, 응 하는 소리를 냈다. 물론 진안 군왕의 말에 대답한 건 아니었다.
“육가아.”
진안 군왕이 주변을 두리번거렸다. 내시와 궁녀는 이미 물러간 후였다. 진안 군왕이 향낭을 풀고 그 안에 담긴 죽통을 꺼냈다.
“봐, 그 여인이 선물한 거야.”
경왕은 그제야 눈길을 주며 죽통을 빼앗으려고 손을 뻗었지만, 진안 군왕은 손을 높이 들며 피했다.
“이건 네가 가지고 놀 수 없어. 너무 위험해.”
진안 군왕이 웃으며 말했지만 경왕은 아랑곳하지 않고 매달렸다. 대청에 웃음소리가 울려 퍼졌다.
자세를 바로 하고 똑바로 앉은 진안 군왕은 죽통을 뒤로한 채 금세 다른 물건에 집착을 보이는 경왕을 바라보며 한숨을 내쉬고, 향낭을 허리에 찼다.
“전하, 이제 출발하셔야 하옵니다.”
문밖에서 내시가 주의를 주었다. 자리에서 일어난 진안 군왕은 궁녀들이 붙잡고 있는 경왕을 바라보았다.
“전하, 염려 말고 가세요. 경왕은 저희가 잘 모시겠습니다.”
나이 든 궁녀가 웃으며 말하고는 다시 경왕을 쳐다보았다.
“경왕 전하, 군왕과 작별 인사 하셔야죠.”
경왕은 들은 체도 하지 않고 고개를 숙인 채 손에 든 목공을 가지고 놀 뿐이었다. 진안 군왕이 앞으로 다가가 경왕을 안아 주었다.
그래, 이런 사람만, 이렇게 가까운 사람만, 가서 안아 주고 싶은 거야. 마음 놓고 믿을 수 있으니까. 가장 나약한 마음이 자리하고 있는 가슴을 상대에게 보여 줄 수 있으니까.
“이만 갈게.”
진안 군왕은 벌써 숨이 막히는 듯 발버둥 치는 경왕을 토닥여 주고, 손을 푼 후 뒤돌아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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작가의 말:
‘송나라 개경(開慶) 원년, 수춘부에서 돌화창을 발명했다. 돌화창은 굵은 대나무 통으로 총신을 만들고, 그 총신에 점화용 화승을 넣어 발사한다. 총성이 어마어마하여 백오십 보 밖에서도 들렸다. – ’
돌화창을 발명한 진규(陳規)는 금나라에 대항해 싸웠던 송나라 장수로 안구(安丘) 출신의 저명한 군사가입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