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54
교랑의경 554화
울부짖던 춘령이 주 낭자의 말에 화들짝 놀라서 몸을 살짝 떨었다. 그러고는 울음을 멈추고 눈을 휘둥그레 뜬 채 고개를 들어 주 낭자를 쳐다보았다. 주 낭자도 자신의 목소리 때문에 놀란 눈치였다.
무지막지한 여자가 내지르는 날카로운 목소리.
아무도 듣기 싫어하는 그런 목소리가, 종달새보다도 아름다운 목소리라고 칭찬받던 내 목소리라니. 모두가 혐오하는 그 목소리가······.
그날 벌어진 일을 다시 기억하고 싶지 않아서인가?
난 그분 때문에 고 관인을 접대하지 않았던 게 아니야. 아니야. 아니야, 아니라고!
옷소매를 쥐고 있던 주 낭자의 손에 점점 더 힘이 들어갔다. 그녀가 모든 것을 떨치려는 듯 세차게 고개를 저었다.
“그분이 그러시는 게 옳아. 진심이니까. 하지만 여기 덕승루에 진심 따위란 없어. 내가 누군가에게 진심인 적도 없고. 그러니까 앞으로 그런 헛소리 하지 마.”
춘령이 눈물을 흘리면서 주 낭자를 쳐다보았다.
“언니.”
“그런 헛된 말과 헛된 일 때문에, 피해를 본 사람이 아직 부족하다고 생각하니?”
주 낭자의 말에 춘령은 재빨리 이마를 땅에 찧으며 아니라고 말했다.
“언니, 너무 속상해하지 마세요.”
춘령이 숨이 넘어갈 듯 울먹였다. 주 낭자는 다른 손에 들린 책을 세게 쥐면서 옆에 있던 구리거울을 들여다보았다.
난 꼭 잘 지낼 거야. 보란 듯이 아주 잘.
챙 하는 소리와 함께, 고 관인이 던진 금잔이 바닥을 나뒹굴었다. 온몸을 바들바들 떠는 시녀 두 명이 서둘러 금잔을 주웠다.
“썩 꺼져!”
고 관인의 욕을 듣자, 두 시녀는 사형을 면제받은 죄인들처럼 기뻐하며 재빨리 밖으로 나갔다.
요 며칠 집에 갇혀 있던 터라 고 관인은 우리에 갇힌 맹수처럼 성질이 괴팍해졌다. 고 관인에게 맞아 몸을 가누지 못할 지경에 이른 시녀가 두 명 있었는데, 결국 며칠을 넘기지 못하고 숨을 거두었다. 그 일로 고씨 저택의 하인들은 고 관인의 시중을 들 때마다 잔뜩 겁에 질려 있었다. 행여나 고 관인에게 맞아 죽는 재수 없는 사람이 바로 자신일까 걱정스러운 마음에서였다.
“제 생각에는 진십삼 공자의 말이 틀림없습니다. 이번 일이 좀 수상쩍긴 하잖습니까.”
식객이 말했다.
“수상쩍다니? 수상쩍다 한들, 뭐가 달라지는데?”
고 관인이 콧방귀를 뀌며 대꾸했다. 고 관인의 반응에 식객이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공자님, 기왕지사 이렇게 된 거, 더는 남의 손에 놀아나지 않아야 합니다. 우리가 정 낭자와 악연을 맺는 것을 몹시 기뻐하는 자가 있을 겁니다. 노야께서도 떠나시기 전에 당부하셨지요. 지금은 정 낭자를 상대할 때가 아니라, 태자 책봉이 더 시급······.”
“태자 책봉이 뭐 급하다고. 이미 기정사실인 것 아닌가. 평왕을 태자로 세우지 않으면 누굴 세울 수 있는데? 그 바보를 태자로 세우기라도 할까.”
고 관인이 식객의 말을 끊고 언짢은 기색으로 말했다.
“뭐든 신중에 신중을 기하는 게······.”
식객이 웃으면서 말했지만, 고 관인은 냉소를 지었다.
“신중이라. 그러니까 그 정씨를 신중히 대해야 한다는 말일세. 진십삼의 말이 맞아. 나도 그 정씨에게 아무런 잘못이 없다는 것을 잘 알고 있고, 나나 정씨나 다 남의 손에 놀아난 것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래도 그 정씨가 몹쓸 계집이라는 생각에는 변함이 없네.
남의 손에 놀아난 것을 알면서도, 왜 나에게 사과하지 오지 않지?
어쩔 수 없어 그런 식으로 나오기는 개뿔. 정씨 입장에서는 이 일을 황당한 일로 만들어야 제일 좋잖아. 그렇지 않으면, 남들이 정씨를 공격할 때 이번 일이 이용될 테니까.
어차피 황당한 일이라면, 정씨가 내게 와서 머리를 조아리며 사과해도 될 텐데, 왜 나만 온 경성의 웃음거리가 되게 하는 거냐고! 딱 보면 모르겠나? 정씨가 얼마나 악독하고, 우리 고씨 가문에게 오만불손한지.”
그날 이후로 잘못을 저지른 개처럼 꼬리를 다리 사이에 숨기고 몸을 사리며 지내 온 생각을 하자, 고 관인은 갑자기 부아가 치밀어올랐다. 그가 자신 앞에 있던 찻잔을 세게 바닥에 던졌다.
“참으로 원통하구나!”
“참으로 원통하구나!”
같은 시간, 정 이노야도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소리쳤다. 그의 앞에도 찻잔과 접시가 여러 개 놓여 있었지만, 식기가 아까워 차마 집어 들어 깨트리진 못했다.
저 식기들도 다 돈이다. 집안 살림이 빠듯해서 밥해 먹는 것도 어려워질 지경이야.
며칠만 더 기다리면 돼. 며칠만 더 기다리면 월말이니, 점포들이 막대한 수익금을 내게 쥐여주겠지.
“노야, 고 관인이 만나 주지 않던가요?”
정 이부인이 물었다. 정 이노야가 어두워진 안색으로 한숨을 쉬었다.
“벌써 몇 번이나 만남을 청했는데, 있는 인맥을 싹 다 끌어모아도······.”
정 이노야가 고개를 저으며 말끝을 흐렸다. 그러더니 다시 한번 탁자를 세게 내리치면서 소리쳤다.
“이게 다 그 몹쓸 것과 사낭이 불러온 화야!”
정 이노야가 갑자기 자리에서 벌떡 일어서서 화를 냈다.
“그 몹쓸 것은 지금도 주씨 가문에서 한껏 여유를 즐기고 있을 테고, 사낭은 요양한답시고 자기 방에 틀어박혀서 나오질 않으니, 원! 저들은 편하게 지내면서, 왜 골치 아픈 일은 다 내 몫이냔 말이오!”
정 이노야가 이를 부득 갈았다.
“정사낭의 진사 자격을 박탈시켜달라는 상소문을 한 번 더 올려야겠소. 남들은 내가 보여주기식으로 고 관인을 찾아가는 줄 알아.”
정 이노야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문밖에서 누군가가 침을 뱉었다.
“퉤! 이 썩을 놈아! 감히 내 아들의 진사 자격을 박탈하겠다고?”
정 이노야 부부가 놀란 얼굴로 서로를 마주 보았다.
“어째 형님의 목소리 같지 않소?”
정 이노야의 물음에 정 이부인은 헉 하는 소리를 내며 문밖으로 시선을 돌렸다.
“대노야 같은 게 아니라, 정말로 대노야잖아요!”
정 이부인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말했다.
먼 길을 쉬지 않고 달려온 흔적이 묻어나는 행색의 정 대노야가 지팡이를 짚으며 대청 안으로 들어왔다. 정 대노야가 걸음을 옮길 때마다, 지팡이가 바닥에 부딪혀 쿵쿵 소리를 내며 정 이노야의 고막을 때렸다.
“이 썩을 놈아, 무슨 낯짝으로 자기 집 자식들과 소란을 피운단 말이냐! 이 썩을 놈아, 네놈이 그 둘을 고소하러 가기 전에, 호적을 따로 만들어 재산을 나눴다고 내가 먼저 네놈을 고소할 것이야!”
주 노야는 정 이노야의 약점을 잡기 위해 사람을 시켜 정씨 저택을 지켜보게 했다. 그래서 정 대노야가 정씨 저택에 발을 들인 지 얼마 되지 않았을 때임에도 주 노야는 그가 온 소식을 바로 알게 되었다.
“정 대노야가 경성에 왔다고? 그자가 뭐 하러 여길 와?”
소식을 들은 주 노야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되물었다.
“뭐 하러 왔겠어요? 다 교랑의 돈 때문이죠. 그 사람이, 그 많은 재산을 정 이노야 부부 둘이서 꿀꺽하게 놔둘 사람이에요? 그랬다가는 배 아파 죽을걸요?”
주 부인의 말에 주 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그래. 그 돈이면 배가 아플 만도 하지.
하지만, 그래도 뭔가 이상한데.
“그자가 또 교교의 재산을 노린다고? 강주에서 교교의 혼수 때문에 막대한 손해를 봤다던데, 그 교훈으로도 부족했나?”
“형님이 여긴 어쩐 일이십니까?”
정 이노야가 놀란 얼굴로 물었다. 정 대노야가 대답하기도 전에, 정 이부인이 먼저 냉소를 보이며 비아냥댔다.
“물어볼 필요도 없어요. 딱 보니까 생선 냄새를 맡고 온 고양이네.”
“악독한 것! 지금은 네가 끼어들 자리가 아니다! 이혼장은 내가 대신 써 두었으니 당장 우리 정씨 가문에서 꺼지거라!”
정 대노야가 정 이부인을 향해 거침없이 욕을 해댔다.
늘 남에게 항상 온화한 모습만 보이던 정 대노야였다. 물론 이따금 엄격한 가장으로서 정 이노야를 호되게 꾸짖을 때도 있었지만, 정 이부인에게는 한 번도 실례되는 말을 한 적이 없었다. 훗날 사이가 틀어지긴 했지만 그래도 이런 식으로 욕을 한 일은 없었다.
정 이부인은 자신이 무슨 말을 들었는지 믿을 수 없다는 표정으로 잠시 서 있다가, 정 대노야가 자신에게 심한 욕을 했다는 사실을 뒤늦게 깨닫고는 창피하고 화가 난 나머지 통곡하기 시작했다.
“천벌 받을 놈! 강주에서 우리를 괴롭힌 것도 모자라 경성까지 쫓아와서 우리를 못살게 굴어? 어디 한번 내쫓아 봐! 당신네 집 대문 앞에서 목매달아 죽을 테니까!”
정 대노야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콧방귀를 뀌면서 손으로 바깥을 가리켰다.
“어디 한번 해 보아라!”
정 이부인의 울부짖는 소리에 정 이노야는 머리가 지끈거렸다. 그는 정 이부인을 다독이며 정 대노야를 향해 발을 굴렀다.
“형님, 뭐 때문에 이리 급하게 경성까지 쫓아왔느냔 말입니다!”
“무슨 일? 아우 네가 이 요부의 말에 홀려서 무슨 짓을 저질렀는지 아직도 모르겠느냐!”
정 대노야가 냉소를 지으면서 문서 몇 장을 정 이노야 앞으로 들이밀었다.
“이게 다 어떻게 된 일이냐?”
정 이노야는 그 문서들을 대번에 알아보고 정 대노야가 경성에 온 이유를 알아챘다. 신선거 등 점포에 관한 문서의 사본이었다.
“형님, 어떻게 된 일인지는 형님이 더 잘 알고 계시지 않습니까? 그건 모두 교랑의 것입니다.”
정 이노야가 정색하고 대답했다.
“잘 알고 있다. 이게 다 교랑의 것이라는 건 잘 알고 있다만, 지금 이게 어떻게 된 일인지를 묻는 게 아니냐!”
정 대노야가 호통쳤다.
“교랑이 아둔하여 저와 형님이 건재한데도 자기 이름을 점포 문서에 올렸지 뭡니까. 율법에 따르면 부모가 생전에 있을 때, 그 자식은 절대로 자신의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지요. 부모와 자식 간에는 재산의 구분이 없다는 율법 말입니다. 교랑이 따로 재산을 가졌다는 사실을 남들이 알게 되면, 분명히 불효를 이유로 교랑을 발고했을 겁니다.”
정 이노야의 말에 정 대노야가 헛웃음을 터트렸다.
“잘났구나. 부모가 생전에 있을 때, 자식은 절대로 사유재산을 가질 수 없다는 걸 너도 잘 알고 있구나. 한데 부모가 살아 계신대도 호적을 따로 만들어 재산을 나눌 경우, 그 자식을 삼 년 형에 처한다는 율법은 모르는 것이냐? 이 재산들을 팽씨의 명의로 돌려놓다니, 대체 저의가 뭐야!”
정 이노야의 표정이 굳어졌다. 울음을 멈춘 정 이부인이 콧방귀를 뀌며 대답했다.
“저의가 뭐냐고요? 대노야가 우리 교교의 재산을 탐낼까 봐, 교교를 지켜 주려고 그런 거예요. 교교의 혼수까지 뺏으려고 했던 사람인데, 경성의 재산이라면 오죽할까!”
정 대노야가 냉소를 보이며 물었다.
“그렇다는 말은, 너희가 일부러 호적을 따로 만들고 재산을 나눈 일을 인정하는 게지?”
정 이노야가 멈칫하며 대답하지 못하던 사이, 정 이부인이 곧바로 고개를 끄덕였다.
“네, 인정해요. 남의 눈을 속이기 위해 어쩔 수 없이 한 거죠.”
정 이부인이 별일 아니라는 듯 턱을 치켜들고 입꼬리를 올렸다.
“대노야, 설마 남들도 고발하지 않는 죄목을 가져다 이이를 고소할 생각은 아니겠죠? 이건 교교의 재산이라고요. 모두 교교의 것이니까 허튼 생각 마세요.”
이 영감탱이가 혼수 싸움으로 고생했던 건 그새 잊은 거야?
정 이부인이 정 대노야에게 경고하듯 ‘교교’라는 두 글자에 힘을 실어 말했다.
맞아. 그 문서들에 내 이름을 올린 건 사실이지만, 어쨌든 교교의 손에서 넘겨받은 재산이니, 대노야도 쉽게 그 재산들을 빼앗을 생각은 못 하겠지. 우리가 대노야를 무시하고 이렇게 손쉽게 재산을 나눌 생각을 할 수 있었던 건, 대노야가 교교의 혼수를 노렸을 때 이미 된통 당했던 경험 덕분이야.
게다가 이건 어디까지나 가정사니까, 남들이 상관할 바가 아니지. 이 상황을 제대로 이해할 수 있는 건 가족뿐이야. 가족의 일원으로서 대노야도 지금 이게 어떤 상황인지 잘 알고 있겠지. 이 재산이 모두 내 이름으로 되어 있기는 하나, 여전히 교교의 것이라는 것을.
그러니 감히 이 재산을 탐내거나 우리를 고소할 수는 없을 거야. 재산은 모두 내 명의로 돌려두었으니 남들이 트집 잡을 기회는 원천차단한 셈이고. 가족들 또한 무슨 상황인지 뻔히 알지만 이의를 제기하긴 힘들어.
교교도 국법이 지엄하고, 이를 어길 수 없으니 우리가 이렇게 하도록 내버려 둔 거겠지.
이대로 오랜 시간이 흐르면······. 아니지, 오랜 시간이 지날 필요도 없어. 재산은 이미 내 소유가 되었잖아? 이제 내 거라고! 나는 황금을 낳는 거위를 가진 셈이야!
정 이부인이 눈빛을 반짝이며 생각에 잠긴 사이, 정 이노야가 평정심을 되찾고 고개를 저으며 언짢은 기색을 내비쳤다.
“형님, 천 리 길을 달려온 이유가 고작 그것 때문입니까? 아비로서 터무니없는 일을 벌인 정사낭부터 손 보셔야 하지 않겠습니까? 교랑과 우리 사이의 일은 상관하지 마십시오.”
정 대노야가 냉랭한 미소를 지었다.
“이미 늦었다. 여기 오기 전에 이미 네놈을 관아에 고소했으니.”