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57
교랑의경 557화
정 이부인이 고소하다는 표정으로 정 대노야를 쳐다보았다. 하지만 정 대노야는 예상했다는 듯 고개를 끄덕였다.
“잘못이지. 교랑, 조부모와 부모가 살아 계실 땐, 자식이 사유재산을 두면 안 된다는 율법이 있다. 그리고 우리 정씨 가문엔 선조의 유훈을 따라 분가를 하지 않는다는 전통이 있어. 그래서 네 부모도 사유재산을 따로 가지지 못하는 거고.”
“그렇게 설명해주지 않아도 우리 교교는······.”
정 이부인이 콧방귀를 뀌면서 대꾸했지만, 정교랑이 정 이부인의 말을 끊었다.
“그렇군요. 전 몰랐어요. 그런 걸 신경 쓰지도 않았고요. 잘못된 거라면 바른대로 해야죠.”
뭐라고?
정 이노야 부부가 경악한 표정으로 정교랑을 쳐다보았지만, 반대로 정 대노야는 여유로운 미소를 보였다.
역시 내가 생각했던 게 맞았어. 역시!
“교랑, 너 미쳤니? 어떻게 네 재산을 저 사람한테 줄 수 있어!”
정 이부인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소리쳤다.
“대노야께 당연히 드려야 하는 거라면 드려야죠. 그때 당신이 내 재산을 당신에게 줘야 한다고 했을 때, 내가 줬던 것처럼요.”
정교랑이 말했다.
그게 무슨 소리야? 누가 누구한테 당연하게 뭘 줘? 이거 바보 아냐?
정 이부인이 눈을 휘둥그레 떴다.
“그 재산은 전부 다 네 것인데, 왜 나 몰라라 내팽개치는 거야? 넌 주지 않겠다고 한마디만 하면 돼. 네가 대노야를 무서워할 게 뭐 있어!”
“교랑, 형님을 무서워할 필요 없다. 내가 네 아비이니, 당연히 너를 위하고 네 것을 지켜 줄 것이야. 네 것을 형님에게 줄 필요는 없어. 네가 안 준다 해도 형님은 너를 어찌할 수 없을 게다!”
정 이노야가 눈썹을 치켜뜨고 부녀가 힘을 합쳐 공동의 적을 향해 적개심을 불태우자는 듯이 말했다.
정 대노야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이 불효막심한 놈아!”
정 대노야가 웃음기를 거두고 몸을 일으켰다.
“과연 네놈이 나를 어찌할 수 있을지 내 두고 보마!”
말을 마친 정 대노야는 소매를 홱 털고 성큼성큼 걸어 나갔다. 정 이노야가 분을 이기지 못하며 눈을 부릅떴다.
“교교. 저 봐라, 저 봐. 저 사람이 저리 기고만장하게 나온다니까? 좀 전에는 우리를 때리러 집까지 찾아왔어.”
정 이부인이 정교랑의 팔을 끌어안고 억울한 표정으로 눈물을 훔치며 말했다.
지금은 하소연할 때가 아니라고 생각됐는지, 정 이노야는 단도직입적으로 정교랑에게 물었다.
“교랑, 말만 해 다오. 어떻게 하면 좋겠니?”
정교랑이 고개를 들고 대답했다.
“이미 말했는걸요.”
말했다고?
정 이노야 부부가 의아하다는 표정으로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잘못된 거라면, 바른대로 하면 된다고요.”
정교랑이 이어서 말했다.
바른대로 하면 된다고?
“뭐가 바른 건데?”
정 이노야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물었다.
“그건 관아에서 결정해 주겠죠.”
정교랑이 대답했다.
관아에서 결정해 준다고?
정 이노야가 아직 넋이 나가 있는 사이, 정 이부인이 먼저 정신을 차리고 목청을 높였다.
“교랑, 너 지금 대노야가 관아에 우리를 고발한다는 거에 동의한다는 말이니? 이건 우리 가정사인데, 어째서 남들 앞에서 난리를 피우겠다는 거야?”
“남들에게 말 못 할 일이 아니기도 하고, 가족끼리 논쟁을 해도 답이 나오지 않으니, 관아에서 결정하도록 하는 거죠.”
정교랑이 말했다.
정 이노야 부부가 넋이 나간 표정으로 정교랑을 빤히 바라보았다. 두 사람은 자신의 귀를 의심했지만, 변함없는 정교랑의 표정에 차츰 정신을 차리기 시작했다.
우린 확실히 호적을 따로 만들어 재산을 나누고, 사유재산을 은닉했어. 이건 논쟁해도 답이 안 나오는 일이 아니기도 하고, 옳고 그름을 구분할 수 있는 일은 더더욱 아니야.
어떤 게 이치에 맞는 결론인지, 관아에서 어떤 판결을 내릴지는 눈 감고도 알아맞힐 수 있었다. 관아까지 가지 않아도 뻔한 결과인 것을, 대노야가 일부러 집안 망신을 시키겠다고 관아까지 일을 끌고 간 거니까.
보통의 경우라면 대노야를 말려야 정상인데, 교랑은 대노야를 말리기는커녕 오히려 부추기는 것처럼 보인단 말이지. 아예 대놓고 대노야한테 관아에 우리를 고소하라고 지시하는 것 같기도 하고.
관아에서 결정토록 하자고?
정교랑!
“너! 지금 우리를 가지고 논 거니?”
정 이부인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소리쳤다.
재산을 우리에게 넘겨준다고 했던 건 다 거짓말이었어? 우리가 그 오랫동안 기뻐했던 게 다 헛짓거리였던 거야?
“몹쓸 것! 대노야와 주씨가 네게 얼마나 좋은 걸 약조했기에 이러는 게냐? 어떻게 그들과 한통속으로 나를 음해할 수 있어! 세상에 이런 불효막심한 것이 다 있나!”
정 이노야가 분을 못 이기며 소리쳤다.
밖에서 기다리다 지친 주 노야는 정 이노야의 목소리를 듣자마자 마치 전투 개시를 알리는 북소리를 들은 장수처럼 시종들을 데리고 곧장 대청 안으로 쳐들어왔다.
“불효막심한 건 네놈이지!”
주 노야가 소리를 내지르며 정 이노야를 향해 주먹을 날렸다.
“감히 사유재산을 숨겨? 그리고 그 죄를 친딸에게 덮어씌워? 내가 네놈의 형님을 대신해서 한 수 가르쳐 주마!”
주 노야의 주먹에 맞은 정 이노야가 바닥에 고꾸라지자, 정 이부인이 소리를 지르면서 정 이노야를 향해 달려갔다. 정 이노야 부부가 더 소란을 피우기 전에, 주 노야는 시종을 시켜 두 사람을 문밖으로 끌어냈다.
주씨 가문의 시종들은 줄곧 문 앞을 막고 있었다. 그래서 좀 전에 이노야 부부가 주씨 가문에 발을 들이려 했을 때도 한참이나 실랑이를 벌여야만 했다. 한바탕 실랑이 끝에도 정씨 가문에서 데려온 시종들은 문턱을 넘어서지 못했고, 정 이노야 두 내외의 몸뚱이만 겨우 이 집에 들어올 수 있었다.
게다가 주씨 가문의 시종들은 대부분 군인 출신인지라 큰 힘을 들이지 않고도 두 사람을 손쉽게 대문 밖으로 내던져 버렸다.
대문 밖에서 들려오는 울음소리와 욕설 소리가 차츰 멀어지자, 주 노야는 옷매무시를 정리한 뒤 다정한 표정으로 정교랑에게 물었다.
“많이 놀랐지, 교교? 네 외숙이 있는 한, 너는 무서워할 게 아무것도 없단다. 절대로 이 집에서는 정씨 놈들이 난리를 피울 수 없을 게야.”
마당에 서 있던 주 부인은 주 노야의 말을 듣자 고개를 돌렸다. 그러고는 입꼬리를 움찔거리며 혼잣말을 했다.
“놀라긴 뭘 놀라? 사람도 죽인 애가, 겨우 이런 거 가지고 놀라겠어?”
주 부인이 고개를 들고 정씨 부부가 떠난 대문을 내다보았다. 점점 더 멀어지는 정씨 부부의 목소리에, 주 부인은 여운이 가시지 않은 듯 합장을 하고 불경을 읊었다.
가엾은 정 이부인······.
그러게 내가 저 여인은 금강야차라 건드리면 안 된다고 일찍이 말했거늘.
“노야, 저 몹쓸 것이! 저 몹쓸 것이 우리를 해친 거예요!”
주씨 저택의 대문이 쾅 하고 닫히는 것을 본 정 이부인이 자신을 부축하러 다가온 여종들을 밀쳐내고 소리쳤다. 그러고는 울면서 정 이노야의 소매를 잡아끌었다.
정 이노야는 거의 제힘으로 서 있기도 힘든 상태인지라 사환들이 양옆에서 그를 부축했다.
주씨 시종들에게 마구잡이로 밀쳐진 정 이노야의 옷과 머리카락은 엉망진창이었다. 하루에 두 번씩이나 주 노야와 그 시종들에게 흠씬 얻어맞은 정 이노야의 얼굴에는 오전에 맞은 상처가 채 아물기도 전에 다른 상처가 더해졌다. 사환들에게 부축을 받는 정 이노야의 몰골은 무척이나 초라해 보였다.
“노야, 노야.”
정 이부인은 속상한 마음에 정 이노야를 붙잡고 울먹거렸다. 정 이노야는 예전에도 비슷한 경험을 했던 듯, 그런 자신의 몰골에 전혀 창피함을 느끼지 않았다.
“내 그 몹쓸 것을 절대로 가만두지 않으리라!”
정 이노야가 이를 부득 갈면서 소리쳤다. 그러고는 거리를 오가는 행인들의 시선을 의식하며 서둘러 마차에 올라타 정 이부인을 재촉했다.
“일단 돌아가세.”
정 이부인도 소매로 얼굴을 가리고 재빨리 마차에 올라탔다.
“걱정할 것 없소. 관아에서는 절대로 이번 사건을 수리하지 않을 거요.”
정씨 저택에 돌아온 정 이노야가 새파랗게 질린 얼굴로 읊조렸다.
“왜요? 그 계집은 분명 우리를 일부러 고소한 거예요!”
정 이부인이 울면서 소리쳤다.
“일부러 우리를 고소한 거라고 해도, 관아의 벼슬아치들이 이래라저래라할 수 있을 것 같소? 그 계집이 감히 그런 짓을 저지른다면, 내 기필코 천륜을 어긴 대죄로 그 계집을 곤장형에 처하게 만들 것이오. 누가 날 막을 수 있는지 두고 보자고! 다른 사람이 나를 고발해서, 그 계집이 직접 관아에 나서지 않는다고 해도, 난 엄연한 그 계집의 아비야! 지난번에 나를 탄핵했던 풍림이 지방으로 좌천된 게 얼마나 됐다고 감히 나를 건드려? 풍림이 가는 길에 동행하고 싶은 사람이 있다면 얼마든지 나와 보라 그래!”
정 이노야가 이를 갈면서 말했다. 정 이노야의 단호한 태도에 정 이부인은 한시름 놓았다. 그러면서도 얼굴은 여전히 정교랑에 대한 원망으로 가득했다.
“이럴 줄 알았어요. 그 애가 좋은 마음으로 우리에게 재산을 넘겨줬을 리 없다고 생각했다고요. 우리가 그 애를 얼마나 진심으로 잘 대해 줬는데, 어쩜 이럴 수가 있죠?”
정 이부인이 눈물을 훔치면서 말했다.
대청에서 갑자기 혀를 차는 소리가 들려왔다.
“진심으로 잘 대해 줬다고 하였느냐? 본인 스스로 그 말을 믿기는 하고?”
정 이노야 부부는 갑작스럽게 들려오는 목소리에 화들짝 놀라 대청 안을 쳐다보았다. 대청 안에서는 정 대노야가 한껏 여유로운 자세로 차를 음미하고 있었다.
“당신이 여기 왜 있어요? 여긴 우리 집이라고요!”
정 이부인이 버럭 화를 냈다. 정 대노야가 같잖다는 듯 정 이부인을 흘겨보았다.
“이 저택은 정씨 집안의 소유야. 정씨로 된 모든 재산은 다 내 것이나 다름없다.”
세상에나!
정 이부인은 정 대노야가 이토록 철면피인 줄은 처음 알게 되었다.
“형님, 적당히 하십시오.”
정 이노야가 굳은 표정으로 말했다.
“그건 내가 네놈에게 하고 싶은 말이다.”
정 대노야는 헛웃음을 터트리고 자세를 똑바로 고쳐 앉으며 말을 덧붙였다.
“하지만 이미 늦었어. 이제 네놈이 이 모든 걸 멈추고 싶다고 해도, 절대 멈출 수 없을 것이다.”
정 이노야의 표정이 일그러졌다. 그가 침을 뱉으려고 입술을 떼던 찰나, 대문 밖에서 소란스러운 소리가 들려왔다.
“노야, 노야, 큰일 났습니다!”
집사가 황급히 뛰어왔다.
“또 뭐가? 누가 또 문을 부수고 쳐들어왔더냐!”
부아가 치밀어오른 정 이노야가 눈썹을 치켜뜨고 집사를 향해 소리쳤다.
“노야. 그게, 관졸들이 쳐들어, 아니, 관졸들이 찾아왔습니다.”
집사의 대답에 정 이노야가 흠칫 놀라서 반문했다.
“관졸들이 뭐하러 여길 와?”
“원고와 피고를 데리러 왔다고 합니다.”
집사가 울상을 지으며 대청 안에 여유롭게 앉아 있는 정 대노야를 흘깃 쳐다보았다.
뭐가 어째?
정 이노야가 경악한 표정으로 천천히 대청으로 시선을 돌리자, 정 대노야가 몸을 일으켰다.
“자, 가자. 이번 사건을 제대로 진행해 보자고. 네가 얼마나 파렴치한 불효자인지, 세상 사람들에게 똑똑히 보여줘야겠다!”
정 대노야가 소매를 홱 털고 대청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뭐라고? 그럴 리가 없는데?
정 이노야는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돌려 집사를 쳐다보았다.
“관리들이 미친 게야? 어떻게 이 사건을 수리할 수가 있느냔 말이다! 그럴 리가 없어!”
정 이노야가 소리쳤다.
그럴 리 없어, 그럴 리가 없다고!
“그럴 리가 없다니. 그러게 내가 경성에 가지 말라고 일찍이 말하지 않았느냐. 여긴 좋은 곳이 아니라고 했는데, 들은 체도 안 하더니.”
정 대노야가 천천히 정 이노야의 곁을 지나치면서 무덤덤한 표정으로 말했다. 정 이노야가 붉으락푸르락해진 얼굴로 정 대노야의 뒷모습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빌어먹을, 내 꿈에도 몰랐구나. 내가 넘어야 할 경성의 칼산이 형님이었고, 나를 심판대에 올리는 사람이 내 친딸일 줄은! 이 간사한 놈들아! 간사한 놈들!”
정 이부인이 갑자기 퍼뜩 정신이 든 얼굴로 대성통곡했다.
“이 사기꾼들아! 거기에 들어간 내 돈이 얼만데! 그건 내 돈이라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