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59
교랑의경 559화
정사낭이 멍한 표정으로 정 대노야를 쳐다보았다.
누이에게 폐만 끼치는 내가 어떻게 누이를 지킬 수 있다는 말이지······.
“네 누이가 너를 지키고자 네가 옳다고 말했으면, 넌 옳은 게다. 그러니 너는 세상 사람에게 네 누이가 말한 게 옳다고 알려 줘야 해. 그게 바로 네가 누이를 지키는 방법이다. 가족이 무엇이더냐? 가족이라면 다 같이 한 마음이 되어 바깥의 공격을 막아내야 한다.”
정 대노야가 갑자기 정사낭의 어깨에 손을 세게 얹고 목청을 높였다.
“당당하게 어깨를 펴거라! 겁먹고 움츠러들 게 뭐 있어!
어깨 펴고! 세상 사람들에게 네가 옳다는 것을 두 눈 똑똑히 뜨고 지켜보라고 하거라! 어깨 펴고! 네가 남 보기에 창피한 사람이 아니라는 것을 알리란 말이다!”
어깨 펴고! 당당하게!
정사낭이 반사적으로 허리를 곧추세우고 어깨를 폈다.
“아버지.”
정사낭이 떨리는 목소리로 정 대노야를 불렀다.
“교랑의 기대를 저버리지 말아야 한다. 비록 네가 교랑에게 큰 도움이 되지는 못하겠지만, 최소한 발목을 잡아서는 안 된다. 교랑이 너를 지킬 때, 겁쟁이처럼 숨지 말라는 뜻이다. 사람은 원래 잘못을 저지르며 현명해지는 것이야. 그러니 이번 잘못이 헛되지 않게, 이번의 손해가 헛되지 않게 해야 한다. 절대로 네 가족을 고통스럽게 한 원수가 통쾌함을 느끼게 둬선 안 된다.”
정사낭이 정 대노야를 향해 큰절을 올리며 울먹였다.
“아버지의 가르침에 감사드립니다. 소자, 어떻게 해야 할지 잘 알겠습니다.”
“아씨, 어때 보여요?”
반근이 정사낭의 붕대를 조심스럽게 풀며 다친 부위를 정교랑에게 보여 주었다. 정교랑이 손으로 정사낭의 손목을 천천히 문질렀다.
“공자님, 아프세요?”
정사낭은 자신의 다친 부위를 차마 보지 못하고 고개를 돌렸다. 그런 정사낭을 쳐다보며 시녀가 쿡 웃었다. 정사낭이 머쓱하게 웃으면서 고개를 끄덕였다.
“조금 아프네.”
정사낭이 솔직하게 말했다.
“아픈 게 안 아픈 것보단 나아요. 안 아프면, 큰일 나는 거고요.”
정교랑이 말했다. 정사낭이 고개를 끄덕이며 웃음으로 대답을 대신했다. 정교랑이 정사낭의 다친 손목에 침을 놓고 새로 약을 바르자, 반근이 붕대를 다시 감아주었다.
“근데 어쩐 일로 공자님이 직접 여기까지 오셨어요? 안 그래도 아씨께서 그쪽으로 가시려던 참이었는데.”
반근이 붕대를 감으며 물었다.
“오늘 나가서 동기 몇 명과 술을 마시기로 했어. 여기는 지나가는 길에 들렀고. 이러면 괜히 누이가 우리 집까지 오지 않아도 되잖아.”
정사낭이 웃으면서 말했다. 반근과 시녀가 다소 놀란 기색으로 물었다.
“공자님, 밖에 나가 술 드시려고요?”
“왜? 마시면 안 되나?”
정사낭이 똑같이 놀란 눈치로 반문하고는 정교랑을 향해 물었다.
“누이, 나 술 마셔도 돼?”
“술은 아직 안 되고, 차나 음료 정도는 괜찮아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알겠어. 누이한테 먼저 물어봐서 다행이네. 시간이 늦었으니, 난 이만 가볼게.”
정사낭이 몸을 일으켰다. 정교랑도 정사낭을 배웅하려 몸을 일으키고 그와 함께 밖으로 걸음을 옮겼다.
“참, 누이는 어디 나가지도 않는 것 같던데, 내가 나가는 길에 사다 줄 건 없어?”
정사낭이 고개를 돌리고 물었다.
“공자님, 걱정하지 마세요. 아씨께서 밖에 안 나가시더라도, 저희가 있잖아요.”
시녀가 웃으면서 대꾸했다. 정사낭이 그제야 알겠다며 인사한 뒤 대문을 나섰다. 정사낭의 뒷모습을 바라보던 시녀가 안심이 되는 듯 픽 웃었다.
“아씨, 참 좋네요.”
시녀가 정교랑을 쳐다보면서 말했다.
“지금 이 순간이 좋다는 거야, 아니면 내가 좋다는 거야?”
정교랑이 묻자, 시녀가 깔깔거리며 웃음을 터트렸다.
“아씨께서는 뭐든 다 아시니까 참 좋네요.”
시녀가 정교랑의 소매를 끌면서 말했다.
“아씨, 우리도 나가서 놀아요. 집에만 있으니까 너무 답답한 거 있죠.”
정씨 가문 사람 중 절반은 마음이 홀가분했고, 나머지 절반은 수심에 가득 찼다. 같은 시간, 정 대노야의 고소장을 수리한 관아의 판관도 머릿속이 복잡했다.
“대인, 이번 건은 어려운 사건입니까?”
며칠 사이에 수염이 다 빠질 정도로 수염을 쓰다듬는 판관이 걱정스러웠던 수하가 차를 올리며 물었다.
형제들의 재산 싸움이면, 좋은 사건 아닌가? 모든 관아에서 쌍수 들고 환영하는 사건이 바로 이런 사건이지 않나? 위에서부터 아래까지 모든 관리가 배에 기름칠할 수 있는 이런 귀한 사건은 당연히 좋은 사건이잖아. 이런 사건을 맡으면 다들 싱글벙글 기뻐하기 바쁘던데, 판관 대인은 왜 저렇게 근심 걱정 가득한 표정으로 계시는 건지.
“형제간의 재산 싸움 말이냐? 가산을 놓고 싸우는 게 뉘 집 형제인지를 봐야지.”
판관이 말하면서 탁자 위에 놓인 고발장을 손으로 탁탁 쳤다.
“무려 정씨야. 정씨.”
수하가 목을 빼고 고발장을 들여다보면서 물었다.
“정씨가 왜요?”
판관이 수하를 흘겨보았다.
“정씨가 왜냐고? 왕 공사, 자네가 어떻게 우상공사(右廂公事: 관직명)가 된 줄 아는가?”
왕 공사가 아첨의 미소를 지으며 대답했다.
“소인, 알다마다요. 다 대인께서 소인을 챙겨 주신 덕분이지요.”
판관이 콧방귀를 뀌었다.
“틀렸어. 자네를 도운 건 정씨 낭자였네.”
예?
왕 공사가 눈을 휘둥그레 뜨고 놀란 표정을 지었다.
“당초 유금천은 순풍에 돛단 듯 잘나가기도 했고 부윤의 측근이기도 했는데, 하필이면 이 정씨 여인을 건드려서 지방에 좌천된 게야. 그렇지 않았다면, 자네는 아직 산속에서 광부들이나 관리하고 있었겠지.”
판관이 혀를 차면서 말했다.
“듣기론 고 대인의 심기를 건드려서라고······.”
왕 공사가 놀란 얼굴로 말하자, 판관이 눈을 부릅떴다.
“이렇게 모자란 인사를 봤나. 경성에 들어온 지 그렇게 오래됐으면서, 한 번도 제대로 알아볼 생각을 안 했어? 여기는 경성이고, 관아일세. 자네처럼 귀도 먹고 말까지 못해서야 여기서 어떻게 살아남으려는 게야!”
부아가 치밀어오른 판관이 호통쳤다. 왕 공사가 재빨리 머리를 조아리며 사죄하자, 판관은 성가시다는 듯이 손을 휘휘 저으며 물러가라고 했다.
왕 공사가 나간 뒤에도 판관은 여전히 탁자 위에 놓인 고소장을 보며 멍하니 앉아 있었다.
정 낭자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가는, 아니, 고 관인에게 미운털이 박혔다가는!
정 낭자에게 미움을 샀다가는 풍림과 똑같은 처지가 될 것이고, 고 대인의 미움을 샀다가는 유금천과 같은 꼴이 날 것이야. 이번에 내가 어떤 결정을 하든 안팎으로 사람대접을 못 받겠구나. 정말로 막다른 골목에 이르렀어.
부윤 대인, 이 간사한 놈 같으니라고! 어떻게 이렇게 뜨거운 감자를 내게 던져줄 수 있어!
“안 되겠다. 민사 소송이긴 하나, 어쨌든 정 이노야는 관리니 이 사건을 대리시로 넘겨야겠어!”
판관이 탁자를 세게 내리치며 말했다. 그가 말하는 사이, 문이 열리고 쫓겨났던 왕 공사가 다시 뛰어 들어왔다.
“대인, 귀덕낭장 주 노야께서 오셨습니다.”
귀덕낭장 주씨!
판관이 놀라서 몸을 살짝 떨었다.
역시 정 낭자도 사람을 보내왔군.
“이번 사건이 판결 내기가 어렵소이까?”
귀덕낭장 주 노야가 단도직입적으로 물었다.
역시 정 낭자가 보낸 사람다워. 기세가 대단한 것이 고 관인 쪽에서 보낸 사람 못지않군.
판관이 어색하게 입꼬리를 올리면서 대답했다.
“아닙니다, 아닙니다.”
“그런데 왜 며칠이 지나도록 아무런 소식이 없는 거요?”
주 노야가 눈을 부릅뜨고 묻자 주춤하던 판관이 주 노야에게 되물었다.
“그럼, 주 대인께서는 어떻게 하는 게 좋겠습니까?”
“물을 필요가 뭐 있소? 정동 그자가 사유재산을 은닉했다는 증거가 확실하잖소. 정동의 부인 이름으로 재산을 두었다는 건, 부모가 생존에 계신데 재산을 따로 나눈 별적이재(別籍異財)의 죄에 해당하지.”
주 노야가 콧방귀를 뀌었다. 판관이 연신 고개를 끄덕이며 맞는 말이라고 대답했다.
“예, 예. 하지만 제가 어찌 감히 별적이재라고······. 으응?”
판관이 자연스럽게 주 노야의 말을 따라서 대답하던 중, 뭔가 이상하다는 생각에 고개를 들고 주 노야를 쳐다보았다.
뭐라고 한 거지?
“감히 별적이재라 할 수 없기는. 이게 바로 별적이재인 것을.”
주 노야의 말에 판관이 주 노야를 쳐다보며 말했다.
“주 노야, 정동은 정 낭자의 부친이잖습니까.”
“부친인 게 뭐? 부친이 그런 짓을 저질렀으니, 자식 된 자로서 아비의 죄를 덮어줘야 한다는 말이오? 아버지가 중하다고 해서, 종족을 배반해도 된다는 소리요? 지금 정 낭자에게 종족을 배반하고 죄를 숨겨 주었다는 죄명을 씌우겠다는 것이오? 정 낭자가 그럴 사람이오?”
주 노야가 분개하며 소리쳤다. 판관이 주 노야를 잠시 쳐다보다가 천천히 고개를 끄덕였다.
“아, 알겠습니다. 그렇다면 일이 쉬워지지요.”
주 노야가 나간 뒤, 판관이 무언가 결심한 듯 탁자를 내리쳤다.
“여봐라.”
왕 공사가 서둘러 안으로 들어왔다. 그는 판관이 고소장을 손에 들고 있는 모습을 보고는 고소장을 받아오려고 재빨리 판관에게 다가갔다.
“대인, 이걸 대리시로 보내시려고 그러시지요? 소인이 직접 다녀오겠습니다.”
왕 공사가 웃으면서 말하자, 판관이 그를 향해 침을 뱉었다.
“이런 아둔한 자를 봤나. 이 좋은 일을 왜 대리시로 보내나? 원고와 피고를 공당으로 소환하게. 본관이 친히 판결을 공표할 테니.”
좋은 일? 수염이 다 빠질 정도로 잡아 뜯으며 근심하던 일이 갑자기 좋은 일이 됐어?
왕 공사가 의아하다는 얼굴로 고발장을 받아왔다.
이래서 경성에서 일어나는 일은 전부 복잡하다고 하는 거구나.
“노야!”
관부의 관인이 선명하게 찍혀 있는 문서를 본 정 이부인은 슬픔을 주체하지 못하고 눈물을 흘렸다. 정 이부인의 뒤에 서 있던 두 여종이 아니었다면, 그녀는 진작 바닥에 주저앉았을 것이다.
“고생했소.”
정 대노야가 관졸에게 웃으며 말했다. 옆에 있던 시종이 관졸에게 수고비를 건넸다. 관졸들은 굳이 사양하지 않고 기쁘게 수고비를 받아 갔다.
“문서는 모두 바꿔 두었으니, 정 대노야께서 잘 보관하십시오. 저희는 이만 가 보겠습니다.”
관졸들이 정중하게 말하자 정 대노야가 그들을 배웅하면서 말했다.
“신선거에 자리를 마련했으니, 시간이 된다면 잠시 들렀다 가시게.”
저 봐, 저 봐. 벌써 주인 노릇을 하겠다고 나서는 것 좀 봐!
정 이노야의 안색이 새파랗게 질렸다.
난 며칠간 신선거 주인으로 지내면서도 돈이 아까워 남들을 초대하지도 못했는데! 그렇게까지 아낀 게 결국 남 좋은 일만 됐어!
관졸들을 배웅하고 돌아온 정 대노야가 몸을 돌리고 웃음기를 거두었다.
“형님, 괜한 것에 손대서 다치지 마십시오.”
정 이노야가 이를 악물고 말했다.
“나는 천륜과 이치에 맞게 가져가는 것이야. 너야말로 괜한 것에 손대지 마라. 지금 내가 이러는 건 다 너를 위한 것이다. 이번에 내가 주도면밀하지 않았다면, 너는 벌써 대리시에 끌려가 관직도 못 지켰을 것이야.”
정 대노야가 담담하게 대답했다.
“나를 위한 것이라고요? 형님이 지금 이러는 게 날 위한 것이라고?”
정 이노야가 새빨갛게 충혈된 눈으로 소리쳤다.
“내, 내가······.”
정 이노야가 거친 숨을 내쉬다가 말을 덧붙였다.
“어머니한테 말씀드릴 겁니다.”
“어머니께 뭐라고 말씀드릴 건데? 네가 친딸이 일궈낸 재산을 어머니 명의로 두지 않고, 네 부인의 명의에 달아 사유재산을 은닉했다고 말할 것이냐? 어머니께서 너를 천륜을 어긴 대죄로 네놈을 또 한 번 관아에 고소하면 어쩌려고?”
어머니의 성정이 생각난 정 이노야가 잠시 주춤했다.
어머니께서는 늘 나를 자랑스럽게 여기셨지. 내가 어머니를 고명 부인으로 만들어 드릴 수 있다 믿으시고 나를 제일 아끼셨어.
하지만 나와 함께 경성으로 오지는 못하셨으니, 형님 내외가 어머니를 챙겨 드리면서 나에 관한 무슨 안 좋은 말을 늘어놨을지 어떻게 알아.
이 상황에 내가 천륜을 어긴 대죄로 또 한 번 관아에 드나들게 된다면, 난 분명 경성에서 내쫓길 거야.
“적당히 하거라.”
정 대노야는 황당해하는 정 이노야를 쳐다보며 무덤덤하게 한마디 툭 던지고는 걸음을 옮겼다.
“대노야, 점포에는 제 돈도 들어가 있어요. 제 돈은 돌려주셔야죠.”
정 이부인이 갑자기 무언가 생각났다는 얼굴로 울음을 멈추고 말했다. 정 대노야가 혀를 찼다.
“있다고 우기면 답니까?”