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70
교랑의경 570화
앞장서 있던 병사가 하는 말에 다들 경악한 표정으로 소리쳤다.
“이게 무슨 짓이란 말인가!”
“일을 어쩐담!”
“만에 하나 무슨 일이라도 생기면 어쩌시려고!”
모두가 미간을 잔뜩 찌푸린 채 초조해하는 사이, 한 관리가 콧방귀를 뀌고 굳은 표정을 지었다.
“군왕은 혼자서 공로를 독차지하겠다는 생각으로, 우리의 충언과 만류를 무시하고 홀로 들어가신 거잖소. 그러니 정말 무슨 일이 난다고 한들, 그게 우리와 무슨 상관이란 말이오!”
그건 맞는 말이긴 한데.
자리에 있던 관리들이 서로 눈짓을 했다.
우리가 군왕을 억지로 보낸 것도 아니니, 혹여 정말 무슨 일이 난다고 해도 자업자득인 셈이야. 그러니 우리까지 황천길로 끌어들이기에는 무리가 있지.
“병사들에게 석당의 산채를 포위하고 나서 명령을 기다리라고 전하거라.”
해가 지고 밤이 되자, 산 아래에 횃불이 격렬하게 타올랐다. 야영을 위해 천막을 치고 막사를 만들었지만, 막사 안에서 쉬고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었다.
진안 군왕은 이 시간이 되도록 돌아오지 않았을뿐더러, 사람을 시켜서 오늘은 산채에서 하루 묵고 가겠다는 소식을 전해왔다.
“거기에 감금당한 건 아니겠지? 정말로 석당 두 사람과 환담을 하며 밤을 지새우겠답시고 산채에 남았으려나?”
“자기가 제갈공명이고, 석당 두 사람이 사마의인 줄 아나? 일부러 연극을 하는 것도 아니고, 뭐하러 아무것도 아닌 일로 술수를 부리는 건지!”
“이건 허튼짓이오!”
“벌써 밤이 되었으니, 산채를 공격하기에는 우리가 너무 불리하오.”
“군왕 전하께서도 참 철없는 분이구려.”
다들 속수무책으로 미간을 찌푸린 채 걱정스러운 한탄만 늘어놓고 있었다.
“해가 밝기까지는 기다려야 할 것이오. 그리고 해가 밝는 즉시 산채를 공격합시다.”
관리 하나가 엄숙한 표정으로 말하자, 모두가 고개를 끄덕이며 동의했다.
군왕에게 무슨 일이 생기든, 생기지 않든 관리들은 필시 산채를 공격해야만 했다. 어떤 결론이 나든 한마음으로 충성을 바쳤다는 성의를 표해야 하기 때문이었다.
관리 하나가 수염을 쓰다듬으며 막사 밖으로 나왔다. 어둠 속에 있는 커다란 산을 바라보는 그의 입가에 희미한 냉소가 번졌다.
그리고 그때가 되면 모든 일이 계획대로 흘러간 뒤겠지.
쉭 하는 소리와 함께, 또 한 명이 바닥에 쓰러졌다.
눈에 보이는 것이라고는 칠흑 같은 어둠뿐이었지만, 진안 군왕은 자신이 데리고 온 시종들이 모두 바닥에 쓰러져 있음을 짐작할 수 있었다. 그리고 발걸음 소리가 점점 더 가까워지는 것이 느껴졌다.
“전하, 남기실 말씀이라도 있습니까?”
사내의 목소리가 어둠 속에서 들려왔다.
“석당 두 사람이 이토록 겁쟁이들인 줄은 몰랐군.”
진안 군왕이 웃음기가 서린 담담한 목소리로 말했다. 진안 군왕은 조금 전 연회석에 앉아 있던 모습처럼 여유로워 보였다.
하지만 지금 그는 자신이 데려온 시종들을 모두 잃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 갇혀 있는 처지였다. 그뿐 아니라, 문가와 창가에는 당장이라도 진안 군왕의 목숨을 앗아갈 수 있을 정도로 수많은 화살이 그를 향해 촘촘하게 겨눠져 있었다.
“전하, 틀렸습니다. 정말 겁쟁이들이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도 없었겠죠. 이번 기회에 전하께 교훈을 하나 알려 드리고자 합니다. 다음부터는 좀 더 조심하시라고요.”
사내가 무미건조한 말투로 말하자 진안 군왕이 피식 웃었다.
“충고 고맙네. 하지만 겁쟁이가 아니라면, 등불을 밝히는 건 어떻겠나? 죽기 전에 적어도 나를 죽인 사람이 누구인지는 알아야 할 거 아닌가. 명색이 군왕인데, 나를 죽인 사람도 모르고 죽기에는 너무 억울하지 않나.”
진안 군왕의 대답에 사내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전하, 만약 제가 누구인지 아신다면, 죽음에 억울함이 없겠습니까?”
사내가 비웃었다.
누군가가 사내에게 조용히 다가가 속삭였다.
“산에 오르기 전에 이미 몸수색을 마쳤습니다. 시위들이 암살용 무기를 지니고 있었지만, 지금은 다 죽었습니다. 그러니 군왕의 몸에는 아무런 무기도 없을 겁니다.”
웃음기가 더 짙어진 얼굴의 사내가 입을 뗐다.
“좋습니다. 등불을 밝혀서 내 얼굴을 보여 주고, 마지막으로 유언을 남길 시간도 드리지요.”
“고맙네.”
진안 군왕이 몸을 일으키자 옷자락이 스치며 사락 소리가 들려왔다. 어두운 환경에 오래 있었던 사내는 등불을 밝히지 않아도 진안 군왕의 크고 건실한 체격을 느낄 수 있었다.
“참 불쌍한 군왕일세.”
사내가 웃으면서 말했다. 사내의 말이 채 끝나기도 전에, 그의 눈앞에서 불빛이 반짝이더니 심지에 불이 붙었다.
밝은 불빛이 갑작스레 보이자 사내는 저도 모르게 눈을 게슴츠레 뜨고 앞을 내다보았다. 하지만 심지에 붙은 불은 금방 꺼지고 작은 불씨만 남았다.
작게 남은 불씨에서 뭔가 타는 듯한 소리가 들리는데?
“어이, 군왕 전하, 무슨 심지가 그렇소? 불이 붙기도 전에 꺼져 버리다니. 이렇게 된 이상 내 얼굴을 볼 수 없는 게 운명이려니 하시오. 그만 황천길로 가시구려.”
사내는 냉소를 지으며 석궁을 들고, 어두컴컴한 방 안에서 희미하게 보이는 진안 군왕의 윤곽을 향해 화살을 조준했다.
황천길에 오르라는 말이 끝나기가 무섭게, 고막이 찢어질 정도의 굉음이 들리더니 환한 빛이 폭발했다.
누군가의 비명이 방 안에 울려 퍼졌다.
무슨 일이지?
문가에 서서 석궁을 당기고 있던 사람들에게 방에서 튕겨 나와 바닥에 쓰러진 사내가 보였다. 곧이어 느껴지는 코를 찌르는 피비린내와 숨 막히는 화약 냄새 때문에 그들은 쉽게 정신을 차릴 수 없었다.
사람들의 눈앞에 불빛이 또 한 번 번쩍이더니 치지직, 하는 소리가 들려왔다.
저게 뭐지?
– 이건 자과(子窠)라는 화약탄이에요. 안에 든 건 화약이고요. 이걸 안쪽에 넣어서······. 그리고 이건 심지고, 이렇게 불을 붙이면 돼요.
– 이거라면 폭도와 정면으로 맞서게 됐을 때, 승산이 있을지도 모르죠.
진안 군왕은 무슨 일이 벌어진 건지도 모르고 넋이 나간 채로 문 앞에 서 있던 사람들을 향해 화구를 조준했다.
“황천길에 오르게나.”
산채 전체가 울릴 정도의 굉음이 또 한 번 울려 퍼졌다. 산채에 있던 사람들이 폭발음이 난 곳을 향해 황급히 달려왔다.
“두목님, 두목님!”
아수라장이 된 곳을 향해 뛰어오던 두 사내가 급하게 걸음을 멈추고, 타오르는 불길을 쳐다보았다. 불길에 비친 주위에는 온통 고통스러운 비명을 지르며 쓰러져 있는 사람들뿐이었다.
그리고 젊은 사내 하나가 멀쩡한 모습으로 불길을 뚫고 천천히 걸어 나왔다. 그의 모습은 신선이 강림하기라도 한 듯 성스러워 보였다.
“저게 뭐지?”
“큰 소리 한 번 났을 뿐인데, 저렇게 큰 불덩이를 내뿜었다고?”
“군왕은 분명히 빈손이었는데!”
“저게 뭐야?”
비명과 신음, 겁에 질린 채 내지르는 소리, 그리고 정체불명의 굉음이 산채에 울려 퍼졌다.
빈손으로 들어간 군왕이 불덩이를 만들어 사람들을 쓰러트리고 유유히 빠져나오는 모습은 눈으로 보고도 차마 믿지 못할 충격적인 광경이었다.
“저, 저건 신선의 보호잖아!”
두목 두 사람이 중얼거리면서 제자리에 털썩 무릎을 꿇고 주저앉았다. 두 사람은 연신 땅에 이마를 찧으며 큰절을 올렸다.
“저분은 신선의 보호를 받는 게 분명해! 신선의 보호를!”
산 위에서 굉음이 울려 퍼지자, 산 아래에 있던 관리들과 병사들은 서둘러 막사 밖으로 나와 위쪽을 내다보았다. 뒤이어 산 위의 소란스러운 소리가 밤바람을 타고 내려왔다.
“무슨 일이야?”
모두가 놀라움을 금치 못한 얼굴로 물었다. 그들은 한시도 지체할 수 없다는 듯 소리쳤다.
“산을 올라라!”
황급한 호령과 함께, 병사들이 재빨리 줄지어 산 위로 돌진했다. 양쪽에 있던 횃불이 천막 앞에 서 있던 관리의 얼굴을 비췄다. 그는 귀신이라도 본 사람처럼 경악한 얼굴로 산을 올려다보았다.
빌어먹을, 무슨 일이 벌어진 거야?
4월 하순, 무평 민란을 평정했다는 기쁜 소식이 경성에 전해졌다. 황제의 호탕한 웃음소리가 황궁 안을 가득 메웠다.
“황실 자제들이 응석받이로 자라서, 전장에 나가 천하를 평정했던 선조의 용맹함이 없어졌다고들 비웃었는데, 우리 위낭을 좀 보거라. 이 일 이후로 또 누가 감히 그런 말을 지껄일 수 있는지 두고 봐야겠군.”
황제가 기분 좋게 웃으면서 말했다.
“그러게 말입니다. 사람들이 다들 진안 군왕께서 표기장군(驃騎將軍: 관직명)의 용맹함으로 적진 깊은 곳까지 뚫고 들어간 것이라 합니다.”
내시가 웃으면서 황제의 말에 맞장구쳤다. 옆에 있던 귀비는 속으로 냉소를 지었다.
표기장군은 무슨. 일개 산적들을 어찌 흉악한 오랑캐에 빗대어 말하는 것이야.
황제의 웃음소리가 다시 한번 울려 퍼졌다.
“아니다. 그 정도에 비할 바는 아니지.”
귀비는 황제가 말은 그렇게 해도, 속마음은 전혀 아니라는 것을 알고 있었다.
“애가는 남들이 어찌 말하든 상관없다. 우리 위낭이 용맹하든 용맹하지 않든 다 상관없어. 거기가 얼마나 위험한 줄 알고. 보여주기식으로 산 아래까지만 간다고 했던 것 같은데, 어쩌다가 직접 사람을 이끌고 산채 안까지 들어간 것이냐?”
태후가 눈물을 훔치면서 물었다.
진안 군왕은 일부러 별 위험이 없었던 것처럼 자신의 공을 축소하여 서신을 썼다. 하지만 무평에서 일어나는 모든 일을 황제가 모를 리 없었다. 황제는 곳곳에 배치된 소식통들을 통해 이번 무평 민란에 관한 모든 내막을 하나도 빠짐없이 파악하고 있었다.
석당의 산채는 이번 민란에서 가장 큰 세력이 마지막까지 은신하던 곳이었다. 진안 군왕이 홀로 산채에 들어가 석당을 투항시키고 민란을 평정했다는 이야기는 듣기에도 몹시 위험했지만, 실제로는 더 위험했으리라는 것을 황제는 잘 알고 있었다.
당시 석당 산채에 들어갔던 사람들은 진안 군왕뿐만이 아니었다. 민란을 주도했던 사람 중, 이미 관부에 의해 격파된 세력이 산채에 중재인을 보낸 일이 있었다.
중재인들은 석당 두 사람이 우유부단한 틈을 타 몰래 진안 군왕을 암살하려고 했다. 만약 진안 군왕이 산채에서 암살 당한다면 이는 석당 일행이 저지른 짓으로 치부될 테니, 석당 두 사람은 결코 투항할 수 없고 반역을 이어갈 수밖에 없는 상황에 놓이기 때문이었다.
민란 잔당들의 계략은 제법 뛰어나서 그들이 바라던 대로 일이 흘러갈 뻔했지만, 마지막에 진안 군왕이 중재인들의 우두머리를 죽이는 바람에 모든 것이 불발되었다.
예상치 못한 사고에 석당 두 사람은 결국 투항을 결심하고 민란의 잔당을 척결하는 데 힘을 보탰다. 그 뒤, 석당 두 사람은 산채 문을 활짝 열고 관부의 병사들을 환영했다.
“폭죽으로 그놈들을 죽였다는 게 말이 되느냐! 그게 무슨 어린아이들 장난도 아니고!”
태후가 호통쳤다.
그러게 말이야.
황제가 이상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시종 네 명이 모두 살해됐다는 건, 그놈들이 훨씬 우위를 차지한 상태여서 빠져나갈 구멍조차 없었다는 뜻인데, 그 상황에서 위낭이 우두머리를 죽였어?
위낭에게 그놈을 어떻게 죽였냐니까, 폭죽으로 죽였다고 대답했지.
이씨 가문의 폭죽으로.
“내가 경성을 떠날 때, 야간에 신호를 보낼 용도로 폭죽을 가져왔다. 당초 무원산 형제들의 노제를 지낼 때, 이무가 정 낭자가 하늘로 쏘아 올린 폭죽을 보고, 저리 높이 쏘아지는 폭죽을 직선으로 발사하게 되면 어떨까 하는 마음으로 만든 게 바로 오늘날의 돌포탄이지. 그 후로 이씨 가문에서 만드는 폭죽도 전부 개량하여 더욱 하늘 높이 솟아오르게 되었어. 좀 전에 내가 위험에 처했을 때, 손에는 무기 하나 없고, 상황이 너무 긴박하다 보니 마구잡이로 향낭에 넣고 다니던 폭죽을 던졌는데, 그게 공교롭게도 딱 그놈을 맞혔지 뭐냐.”
이 말은 산 아래에 있던 병사들이 산채를 뚫고 들어왔을 때 진안 군왕이 했던 말이다.
당시에는 듣고도 믿기 힘든 말이었지만, 바닥에 널브러진 시체들의 얼굴이 모두 새까맣게 탄 것을 보아 화약 폭발이 있었던 건 확실하다는 결론을 내렸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