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572
교랑의경 572화
“이제 일을 어떻게 하면 좋겠소?”
주씨 저택의 대청 안에 앉은 정 대노야가 물었다. 그는 오늘 정교랑을 만나러 왔지만, 정교랑이 경왕부에 간 탓에 여기서 정교랑을 기다리기로 했다.
“고씨 가문에서 정말로 중매쟁이를 보냈다는 말이오?”
주 노야가 긴장한 기색으로 묻자 정 대노야가 고개를 끄덕였다.
일이 이 지경이 된 것도 모자라서 이젠 중매쟁이까지 보낸다? 고씨 가문은 정말 만만치 않은 상대군.
“중매쟁이까지 보낼 정도라면, 우리 아예 육낭과 교교의 혼사를 치릅시다.”
주 노야가 비장하게 말했다. 정 대노야가 주 노야를 쳐다보면서 진지하게 말했다.
“그렇게 된다면 더는 여기 경성에 남아 있기 힘들겠구려.”
“그럴 리가 있나. 고작 이런 황당한 일로 폐하께서 우리를 쫓아내시기라도 할까? 아직 어린 자식들이 벌인 황당한 일이잖소, 다들 젊을 때 한 번씩 풍류를 즐긴 때가 있는 것을. 게다가 사적인 일을 조당에까지 끌고 갈 수는 없는 법이지. 폐하께서 그 정도 사리 분별도 하지 못하시는 분은 아닐 거요.”
주 노야가 코웃음을 치면서 말하자 정 대노야는 헛웃음을 터트렸다.
“그 말은 틀렸소. 지금 우리가 얘기하는 건 폐하가 아니라, 평왕이오.”
평왕?
주 노야가 흠칫 놀랐다.
“설마 잊은 거요? 제일 처음 중매를 언급하고, 이 혼사를 추진시켰던 장본인이 누군지?”
정 대노야가 말했다.
아 참, 그게 평왕이었지!
이번 일은 황제와 무관했다. 정씨와 고씨 가문이 인연을 맺든 원수를 지든, 황제는 전혀 관여할 생각이 없는 듯했다. 게다가 황제는 나이가 있어 언젠가는 옥좌에서 내려올 사람이었다.
이번 일은 태후와 연관이 있는 일이고, 이번 혼담의 성사 여부는 태후의 체면과 직결되는 문제였다. 사실 주 부인이 울며 황궁 밖으로 나왔던 때부터 이미 태후의 체면은 많이 깎인 상태였다. 하지만 태후는 어쨌거나 태후였다. 황제보다 나이가 많은 데다 황궁 여인의 입김이 조당을 좌우할 수는 없는 노릇이었다.
하지만 이번 일이 평왕과 연관되어 있다면 이야기가 달라질 수밖에 없었다. 평왕은 유일한 황태자 후보이며, 훗날 제위에 오르면 꽤 오랜 시간 황제로 지낼 것이다. 그러니 평왕의 감정은 오랫동안 조당에 영향을 미칠 수밖에 없을 테고, 이는 자연스럽게 평왕의 후손에게도 영향을 줄 터였다.
“그렇다면, 이번 일을 해결하지 않으면 안 되겠군.”
주 노야가 중얼거렸다.
이 일을 해결하는 건 쉽지만, 우리 주씨 가문의 미래를 대가로 맞바꿔야겠지.
“그래서 교교가 그들이 하자는 대로 해야 한다고 했던 건가.”
주 노야가 겸연쩍은 듯 수염을 쓰다듬었다. 정 대노야가 경멸스러운 눈빛으로 주 노야를 쳐다보며 비웃었다.
“이러니까 다들 천둥소리는 커도 빗방울은 작다고 얘기하지. 온갖 큰소리는 떵떵 쳐놓고, 지금 와서 겁을 내시오? 외숙이라 성씨가 달라서 그런지, 영 못 미덥군.”
주 노야는 절대로 그런 오명을 뒤집어쓰고 싶지 않았다. 그가 눈썹을 치켜뜨고 정 대노야 못지않은 기세로 소리쳤다.
“어이, 정씨, 지금 누가 겁낸다는 겐가? 이게 다 자네 아들 때문에 일어난 일 아니야! 자네 아들 일에 괜히 우리 교교까지 휘말리게 해 놓고, 뭘 잘했다고 큰소리야?”
드디어 싸우네. 이래야 주씨 가문과 정씨 가문답지.
문밖에 서 있던 여종과 몸종들이 한시름 놓은 표정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었다.
“뭐 하시는 거예요?”
정교랑의 목소리에 두 사람이 팽팽한 기 싸움을 멈췄다.
“교교.”
정 대노야와 주 노야가 이구동성으로 외쳤다.
문가에 서 있는 정교랑을 보고, 주 노야가 한발 먼저 정교랑의 옆으로 다가갔다. 주 노야의 이런 치사한 행동에도 정 대노야는 전혀 개의치 않는 듯했다.
교교에게 잘 대해 주고 말고는 행동으로 보여 주는 것이지, 누구 목청이 더 큰가를 비교하는 게 아니야.
“네 혼사니, 어떻게 하고 싶은지 말만 해 다오. 나는 전적으로 네 뜻을 따르마.”
주 노야가 먼저 입을 열었다.
정교랑이 짧게 네, 하고 대꾸하고는 가볍게 예를 표했다.
“혼사는 사소한 일이에요.”
정교랑이 말하고는 정 대노야에게 시선을 옮겼다.
“때마침 백부님이 잘 오셨네요. 안 그래도 집으로 돌아가려던 참이었는데.”
집으로 돌아간다고?
지금 정씨 저택으로 돌아가겠다고?
“나무아미타불, 드디어 가는구나.”
정교랑이 주씨 저택을 떠난다는 소식을 들은 주 부인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불경을 읊고는 합장했다.
“왜 갑자기 돌아간다고 하는 거지?”
여종 한 명이 조용히 중얼거렸다.
주 부인은 정교랑이 왜 떠나는지 궁금하지 않았다. 다만, 정교랑이 자신과 한 지붕 아래서 살지 않게 됐다는 것, 더는 자신의 눈앞에 보이지 않게 됐다는 것이 무척이나 기쁠 뿐이었다.
“그러게 말이야. 정 이노야가 아직 집에 있을 텐데. 백부인 정 대노야가 가둬 두었다고는 하지만, 자식 된 입장에서 부모가 갇혀 있는 것을 보기 힘들어 돌아가는 게 아닐까?”
다른 여종이 의아하기도, 궁금하기도 한 표정으로 맞장구를 쳤다.
“아니면, 혼사 때문에 돌아가는 거 아니야? 좀 전에 노야께서 말씀하시는 걸 들었는데, 이번 일은 무조건 혼사로 맞대응을 해야 한다던데.”
여종 중 한 명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그럼 누구한테 시집가는 거야?”
여종들이 이구동성으로 물었다. 옆에서 불경을 읊던 주 부인도 저도 모르게 귀를 쫑긋 세웠다.
“당연히 우리 육공자님이지.”
여종이 당연하다는 듯이 대답했다.
아이고, 내 아들아! 내가 결국 너를 제물로 바치게 되었구나!
주 부인은 한 손으로 가슴을 쓸어내리며, 다른 한 손으로는 무의식적으로 탁자 위에 놓인 술 주전자를 찾았다. 그녀는 떨리는 손으로 술잔에 술을 조금 따른 뒤, 고개를 들고 단숨에 술을 들이켰다.
술을 한 잔 들이켜자, 주 부인은 갑자기 온몸이 편안해지면서 미친 듯이 뛰던 심장이 차분해지는 것을 느꼈다.
탁자 위에 올려놓은 술은 정교랑이 직접 빚어 주 부인에게 선물했던 술이었다.
술은 좋은 술이다만, 술만 있고 그 여인은 눈앞에 없다면 더할 나위 없이 좋을 텐데.
“교랑, 방법이 떠오른 거냐?”
집으로 돌아간 뒤, 정 대노야가 정교랑에게 물었다.
“말만 해 다오. 누구에게 시집가고 싶으냐?”
주씨 그놈은 분명히 겁을 먹은 게야. 그러니 절대로 먼저 혼담을 넣으러 오지 않을 테지.
하지만 아무렴 상관없어. 그놈이 먼저 혼담을 꺼내지 않아도 교랑이 먼저 그 혼사를 원한다고 말만 한다면, 멱살을 잡고 싸우는 한이 있더라도 기필코 그 혼사를 성사시킬 테다.
교랑의 어미가 죽었던 그해에, 우리가 반격할 힘이 없어서 고스란히 맞기만 한 줄 알아? 목숨 걸고 싸운다면, 우리도 두려울 게 없어!
하지만 교랑이 정말로 고씨 가문에 시집가겠다고 하다면, 그것 또한 아예 불가능한 일은 아니지. 중매쟁이의 태도를 보아하니, 고 대인은 진지하게 이번 혼사를 생각하는 것 같더군. 본인이 경성에 도착하면 꼭 직접 와서 인사를 하고 상세한 내용을 논의하자고 할 정도이니. 고씨 가문이 이대로 자세를 낮추고 교랑을 데려간다면, 아예 만회할 기회가 없는 건 아니야.
물론 모든 건 교랑의 의지에 달렸지. 교랑이 이 혼사에 동의하기만 한다면, 나는 세상 사람들이 나를 줏대 없는 인간이라 비웃더라도 고씨 가문과 화기애애하게 혼담을 주고받을 거야.
“누구에게 시집갈지는 일단 나중에 다시 이야기해요. 우선 지금은 당장 백부님께서 제 아버지를 데리고 강주로 돌아가셔야겠습니다.”
정교랑이 말했다.
강주로 돌아가라고?
예상치도 못했던 정교랑의 말에 정 대노야는 생각을 멈추고 잠시 넋을 놓았다.
지금 당장?
“경성에 남아 있으면 여러모로 불편할 거예요. 그러니까 일단 강주로 돌아가세요.”
하긴, 경성에 있으면 누구든 혼담을 넣으러 오겠다고 쉽게 찾아올 수 있어. 문을 막는다 해서 혼담이 들어오는 걸 막을 수 있는 것도 아니고. 하지만 강주로 돌아간다면, 혼담을 넣으러 오가는 거리 때문에 시간을 꽤 오래 끌 수 있을 거야.
맞아. 이런 일에는 시간을 끄는 게 상책이지. 난 왜 이런 간단한 생각조차 못 했을까.
“무거운 일일수록 가볍게 처리하는 게로구나.”
정 대노야가 웃음을 터트리고는 감탄했다. 하지만 정교랑은 고개를 저으며 정 대노야의 감탄에 맞장구치지 않았다.
“다만, 아버지가 어떻게 강주로 돌아갈지는 백부님께서 방법을 생각해 주셔야겠습니다.”
정교랑의 말에 정 대노야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그거야 아주 간단하지.”
정 대노야가 한 방향을 가리키면서 말을 덧붙였다.
“고능준 대인을 따라 하면 돼.”
4월 말, 대리시 판관 정동이 상소를 올렸다. 강주에 계신 모친이 위중하다는 소식을 들어 고향으로 돌아가기를 청한다는 내용이었다.
정동이 대리시 관아에 앉아 있던 일수는 손에 꼽을 정도였다. 처음에는 어사대에 끌려가는 바람에 며칠이 늦어졌고, 곧이어 정 대노야가 정 이노야를 별적이재 죄목으로 관아에 고소한 탓에 어쩔 수 없이 자리를 피해야 했다. 드디어 송사가 끝났다 했더니, 병이 나서 며칠 동안 집에서 쉬겠다고 했고, 이제는 모친이 위중하여 강주로 돌아가게 생겼다.
“부인의 다리가 부러졌다는 이유로 나오지 않다가, 이제는 아예 고향으로 내려가겠다고? 시간 끄는 일에 재미가 제대로 들렸군.”
관리 하나가 상소문을 슬쩍 보고 고개를 저었다.
“그럼 고향으로 보내줘야 할까요, 보내지 말아야 할까요? 정 이노야가 경성에 들어오게 된 건 고 대인 덕인데, 지금 이자를 보내 주면 나중에 고 대인께 어찌 설명해야 할지.”
다른 관리가 목소리를 낮추고 물었다. 상소문을 슬쩍 쳐다보던 관리가 상소문을 탁자 위로 던졌다.
“그럼 어쩌겠나? 모친이 위중하다는데, 우리가 그를 붙잡고 늘어질 수라도 있어? 고 대인도 똑같은 이유로 경성에 돌아오시는 건데, 정동이라고 못할 건 또 뭔가? 이 일은 우리가 붙잡고 싶어도 그럴 수 없는 상황이야. 진 상공께서도 이미 동의하신 일이고.”
상소문에 큼직하게 찍힌 중서문하성의 붉은 인장이 다른 관리의 눈에 뒤늦게 들어왔다.
“질질 끌려면 끌라지. 시간을 늦출 수 있는 건 잠시뿐, 평생이 아니야. 강주가 아무리 멀다 해도, 빠른 말로 달리면 열흘 만에 도착하는 곳이지.”
마차 행렬이 떠났는데도 정사낭은 여전히 자리에 서서 마차 행렬이 떠난 방향을 내다보았다.
“교교, 너도 지금 같이 강주에 돌아가는 게 좋지 않겠느냐. 지금 돌아간다 한들, 네게 뭐라고 할 만한 사람도 없으니.”
주 노야의 목소리가 뒤에서 들려왔다.
“진안 군왕이 아직 돌아오지 않아서요. 부탁을 받은 일인데, 말에 신용이 없으면 안 되죠.”
정교랑이 말했다.
정교랑이 떠나지 않은 탓에, 아직 손목을 치료해야 하는 정사낭도 경성에 남기로 했다.
“누이, 이번 일은 많이 어려운 일이야?”
돌아오는 길 내내 침묵을 지키던 정사낭이 집에 발을 들이자마자 물었다.
정 대노야의 말을 들은 뒤, 정사낭은 계속 담담하게 아무렇지 않은 척하며 일상생활을 유지했다. 그가 먼저 그때의 일을 언급하는 경우는 없었지만, 그의 마음속에는 그때의 일이 응어리처럼 맺혀 있었다.
자신 때문이 아니었다면, 지금 같은 상황도 오지 않았을 거라고 정사낭은 생각했다.
정교랑이 정사낭을 향해 고개를 돌리고 웃음을 지었다.
“사실, 다들 공연한 걱정을 하는 거라니까요. 이번 일은 정말 사소한 일일 뿐인데.”
정교랑이 말했다.
정교랑이 이런 말을 하는 게 처음은 아니었다. 고 관인과의 혼사 이야기가 나왔을 때부터, 정교랑은 시종일관 같은 태도를 유지했다.
“그럼 누이 눈에는 어떤 일이 큰일인데?”
정사낭이 물었다.
“아무도 이야기하지 않지만, 분명 존재했던 일이요.”
정교랑이 말했다.
무슨 일이지?
정사낭이 미간을 찌푸리고 의아하다는 표정을 지었다.
“천문 현상 말이에요.”
정교랑이 말했다.
“일식과 월식 말이야? 그건 다들 말했잖아. 흉조가 들어맞아 민란과 재해도 있었고.”
정사낭의 대답에 정교랑이 고개를 저으며 말했다.
“아니에요. 다른 천문 현상이 더 있었어요.”
정사낭이 흠칫 놀랐다.
일식과 월식 외에 또 다른 천문 현상이 있었다고? 그게 뭐지? 왜 나는 몰랐지?
“그래서 이상하다고 생각하는 거예요. 분명히 이 일에 대해 알고 있는 사람이 있는데, 그 일을 발설하는 자가 없어요. 마치 아무 일도 일어나지 않았던 것처럼 말이죠. 그건, 그 천문 현상이 정말 사소한 것이었거나, 아니면······ 곧 큰일로 번질 거라는 뜻이죠.”