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32
교랑의경 632화
“어디 갔다 온 거야?”
황씨가 마당 안으로 들어서는 반근과 시녀를 보며 물었다.
“저희는······.”
반근이 머뭇거리면서 입을 열자, 시녀가 한발 먼저 대답했다.
“무덤에 잠시 다녀왔어요.”
황씨가 아, 하고는 두 사람의 퉁퉁 부은 두 눈을 보면서 한숨을 쉬었다.
“어서들 가 봐. 시누이가 보면 속상해하겠다.”
두 반근이 예를 표하고 안쪽으로 들어갔다.
“반근 언니, 왜 사공자님의 무덤이라고 하지 않았어?”
반근이 물었다.
“무덤은 불길한 곳이지만, 사공자님의 무덤은 불길한 곳이 아니니까.”
시녀가 대답하자, 반근이 멈칫하면서 물었다.
“불길하다고?”
“응. 좀 전에 우리가 간 곳만큼 불길한 곳이 또 어딨어?”
시녀가 콧방귀를 뀌면서 대꾸하자 반근이 풉 하고 웃음을 터트렸다.
“반근 언니!”
반근이 못 말린다는 듯이 시녀의 어깨를 때리면서 눈물이 그렁그렁한 눈으로 웃음을 터트렸다.
두 사람이 정교랑의 거처에 도착했다. 정교랑은 회랑 아래서 두 몸종과 함께 긴 풀로 새들을 어르고 있었다.
“아씨, 잠깐 나갔다 왔어요.”
시녀가 말했다. 정교랑이 고개를 끄덕이고 두 사람의 얼굴을 잠시 살폈다.
화장도 다 지워졌고, 눈도 퉁퉁 부었고, 코도 빨간 것이······.
반근이 민망한 듯 고개를 숙이자, 시녀가 억지웃음을 지었다.
“아무리 생각해도 속이 상해서요.”
시녀의 말에 정교랑은 음, 하고 대꾸하고는 두 사람을 쳐다보던 시선을 거두었다.
“저희는 가서 세수 좀 하고 올게요.”
시녀가 말하고는 서둘러 반근을 데리고 곁방으로 가다가, 갑자기 발을 구르고 제자리로 되돌아 왔다.
“아씨, 제가 사실대로 말하지 않았다는 거 알고 계시죠? 아씨께서는 제 말을 믿지 않으시면서 딱히 묻지도 않으시니 오히려 제가 답답해서 못 견디겠어요.”
반근이 경악한 얼굴로 시녀를 쳐다보았다.
언니가 이번에 정말 제대로 마음이 상했나 봐. 행동까지 이상해지고.
정교랑이 시녀를 쳐다보면서 입꼬리를 올리고 물었다.
“어딜 다녀왔는데? 어쩌다 그렇게 서럽게 울었어?”
“반근이랑 경왕부에 다녀왔어요.”
시녀가 말했다.
회랑 아래서 새들을 어르고 놀던 몸종들이 서둘러 풀을 내려놓고 놀란 얼굴로 황급히 물러났다.
시녀가 경왕부에서 있었던 일을 이야기하자, 반근이 다시 울음을 터트렸다. 시녀는 이야기하는 데에 더 집중하느라 반근처럼 눈물을 쏟지는 않았다.
“그게 뭐 울 만한 일이라고.”
정교랑이 웃으면서 대수롭지 않다는 듯 대꾸했다.
“그 사람들이 해도 해도 너무하잖아요! 자기들이 뭔데 아씨를 의심해요!”
시녀가 미간을 찌푸렸다.
“의심한 게 아니라, 있는 그대로의 사실을 말한 거잖아.”
정교랑이 말했다. 시녀가 고개를 들고 정교랑을 쳐다보자, 정교랑이 말을 이었다.
“진안 군왕은 황제가 아니야. 그러니 충효의 도리에서, 진안 군왕을 구하는 게 충이라 할 순 없지. 효를 우선시한다면, 난 당연히 내 가족을 먼저 택해야 해. 그러니 그들은 그런 질문을 던질 필요도 없고, 나 또한 그들의 질문에 화나지도, 속상하지도 않아.”
시녀와 반근이 멍한 표정으로 생각했다.
하긴, 아씨의 말씀이 맞긴 해. 아니, 사실이 그렇잖아!
생각하던 시녀는 부아가 치밀어 올랐다.
“누구나 다 그렇게 했을 텐데, 제가 그들한테 반문한다는 걸 깜빡했네요.”
“하지만 누구나 다 그렇다는 생각을 잊어버리기도 하잖아.”
정교랑이 대꾸했다.
남이 무언가를 해야 한다고 요구하는 사람들은, 자신이었다면 어떻게 했을지를 잊곤 하지.
“그걸 잊어버리면, 걱정이 늘어나는 법이야.”
정교랑이 말을 덧붙이자, 시녀가 곧바로 인상을 찌푸리며 말했다.
“그러게요. 걱정이나 잔뜩 하라지!”
정교랑과 시녀가 한창 대화하던 도중, 황씨가 다급하게 마당 안으로 들어왔다.
“아가씨, 궁에서 사람이 왔는데, 혼사와 관련해 이야기할 게 있대요.”
황씨가 떨리는 목소리로 말했다.
혼사?
시녀와 반근이 눈을 휘둥그레 뜨고 황씨를 쳐다보았다.
정교랑도 다소 의외라는 표정으로 황씨에게 시선을 돌렸다.
“혼사라니요?”
범강림이 금시초문이라는 얼굴로 물었다.
“범 군감, 농이 지나치십니다. 당초 폐하께서 윤허하셨던 일이 아닙니까. 그야 당연히 정 낭자와 진안 군왕의 혼사지요.”
내시가 웃으면서 말하자, 범강림이 놀란 기색으로 말을 더듬었다.
“그, 그게 아직도 유효하단 말입니까?”
내시가 웃음기를 싹 거두고 호통쳤다.
“황당하외다! 폐하의 성지를 뭐로 여기는 겁니까!”
진안 군왕과 정교랑이 혼사를 올린다는 소식은 채 하루가 지나기도 전에 바람처럼 온 경성에 퍼졌다. 사람들이 이 소식을 신나게 전하던 도중, 또 하나의 새로운 소식이 들려왔다.
진안 군왕이 이 혼사를 거절했다는 소식이었다.
“이 일은 결코 내가 제안한 일이 아니오. 전하께서 직접 내리신 결정이오.”
“나 말이오? 나야 당연히 전하의 결정에 전적으로 동의하지. 태후가 그 여인을 시켜 신혼 첫날밤에 전하의 목을 꺾어 버리라고 했을지 누가 아나?”
문이 쾅 하고 닫히는 소리와 함께 문밖에서 들려오던 논쟁이 끝났다.
방문이 다시 열렸다 닫히는 소리가 들리고, 희미한 빛이 방 안으로 스며들어왔다. 침상으로 다가가려던 이 태의가 갑자기 걸음을 멈추자, 시녀가 가까이 다가와 조용히 물었다.
“태의? 침을 놓으시려고요? 아니면 진맥을 하시려고요? 전하께서는 아까 막 잠드셨어요.”
“그렇군.”
이 태의가 조용히 말하고 내려진 휘장을 바라보았다.
“그, 그럼 됐다. 나중에 전하께서 깨어나신 뒤에 다시 오마.”
시녀가 알겠다고 대답했다. 이 태의는 다시 침상을 물끄러미 쳐다보다 몸을 돌리고 천천히 밖으로 나갔다.
침상 위에 누워 있던 진안 군왕이 조심스럽게 팔을 들어 올리며 나무 조각을 손에 쥐고 이리저리 굴렸다.
“마마, 전하께서는 차마 그러실 수 없어 거절하신 듯합니다.”
태후궁 안, 내시가 감탄하며 말했다.
“전하의 건강이 몹시 안 좋아졌으니, 정 낭자만 억울할까 봐서요.”
태후가 눈을 흘기면서 언짢은 기색으로 대꾸했다.
“뭐? 정 낭자가 억울해? 그 악운 덩어리가 뭔데 억울하네 마네야? 황실로 시집오려는 사람이 얼마나 많은데, 퍽도 억울하겠다. 난들 그 여인이 좋아서 들이려는 줄 알아?”
내시가 깜짝 놀랐다.
아이고, 태후마마, 그리 말씀하시면 아주 큰일 납니다!
“마마, 그래도 전하께서 이렇게 홀로 쓸쓸하게 가시도록 두면 안 되지 않습니까. 더군다나 정 낭자에 대한 전하의 마음이 이리도 깊은데요.”
그래. 제 복에 겨워 정신 못 차리는 것 같으니라고. 애가가 너를 꼭 진안과 순장해 주마. 진안이 결국 독을 못 이겨 목숨을 잃으면, 당연히 너도 같이 땅에 묻혀야지.
“괜히 그 여인에게 절개가 곧다는 미명만 덧씌워주는 꼴이군.”
태후가 냉소를 지으며 콧방귀를 뀌었다.
우리 회혜왕이 죽었을 때, 세간에서 그 죽음을 두고 얼마나 웃고 떠들었을지 생각하면 지금도 치가 떨려.
“마마, 그리 생각하시면 안 됩니다. 그 여인의 미명은 결국 우리 황실과 마마를 위한 것이 아니겠습니까.”
내시가 아첨의 미소를 보이면서 차를 바쳤다.
“그럼, 소인은 가서 마마의 교지를 전달하겠습니다.”
태후가 찻잔을 받아오며 음, 하고 대꾸했다.
경왕부 안.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였다. 내시 몇 명이 사다리를 타고 대문 위에 걸린 편액을 바꾸고 있었다. 경왕부 세 글자가 쓰인 편액이 내려지고, 진안 두 글자가 쓰인 편액이 그 자리를 채웠다.
“대인, 걱정하지 마십시오. 이 관저는 진안 군왕께서 들어오실 때 싹 수리했던 곳입니다. 혼사를 치르고 차차 손보면 수고를 덜 수도 있고요.”
관저를 관리하는 내시들과 관아의 관리들이 말했다. 궁에서 온 내시가 낮게 음, 하는 소리를 내더니 눈썹을 치켜세웠다.
“말을 그렇게 하면 쓰나. 되도록 빨리 준비하라고 했지, 수고를 덜기 위해 대충하라는 게 아니오.”
내시가 관리들을 향해 손가락질하면서 호통쳤다.
“태후마마의 체면을 상하게 했다가는, 그 후환을 책임질 수나 있겠소이까?”
관저의 내시들과 관리들이 재차 알겠다며 잘 준비하겠다고 대답했다.
궁에서 온 다른 내시가 진안 군왕의 방 안에 들어가 웃는 얼굴로 태후의 교지를 전달했다. 진안 군왕의 침상 옆에 서 있던 내시가 무릎을 꿇고 태후의 교지를 양손으로 받았다.
교지를 건넨 내시가 눈웃음을 보이면서 말했다.
“전하, 잘 들으셨지요? 태후마마께서 더는 말썽을 피우지 말라고 하셨습니다.”
내시는 한숨을 쉬고 말을 이어 갔다.
“어찌 됐든 간에, 이건 폐하께서 일찍이 윤허하셨던 일이니, 폐하께서도 전하의 혼사를 몹시 기뻐하실 겁니다. 어쩌면 너무 기뻐 깨어나실지도 모를 일이고요.”
침상에 누워 있던 진안 군왕이 머리로 베개를 두어 번 살짝 쳤다. 큰절을 올린다는 뜻이었다.
“알겠네.”
진안 군왕이 대답했다. 내시는 그제야 활짝 웃으면서 다른 사람에게 신신당부했다.
“태후마마께서 말씀하시기를, 전하께서 앓아누워 계시긴 하나, 꼭 정성을 다해 준비하라고 하셨네. 다만, 전하의 회복이 우선이니, 전하의 몸에 무리가 가지 않는 선에서 최대한 간소하게 준비하게.”
방 안의 사람들이 내시를 향해 큰절을 올리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침상 위에 누워있던 진안 군왕은 천천히 두 눈을 감고 깊은 잠에 빠져들었다.
정씨 저택의 마당 안. 범강림이 가족들을 데리고 함께 큰절을 올렸다.
“시간이 촉박하니, 너무 많이 준비하지 않아도 되오.”
내시가 말했다.
“하지만 해야 할 건 해야지요. 아무리 그래도 혼인은 인륜지대사잖습니까. 집안 어른들도 아직 도착하지 않았고요.”
범강림이 말하자, 내시가 눈썹을 꿈틀대며 그의 말을 끊었다.
“아이고, 강주가 얼마나 먼 곳인데, 한번 왔다 갔다 하려면 족히 한 달은 걸리잖소.
그리고 이게 누구 잘못이오? 폐하께서 일찍이 두 사람의 혼사를 윤허하셨는데, 왜 진작 준비하지 않고? 정 낭자의 부모는 뭐가 그리 급해 갑자기 강주로 돌아간 것이며, 외숙까지 전부 떠났다지? 다들 이상하리만큼 황급하게 떠나던데, 당최 뭘 하자는 건지.”
내시의 말에 범강림은 속으로 뜨끔했다.
“강주에 계신 노부인의 병세가 악화되어 그렇습니다.”
범강림이 서둘러 말하자, 내시가 기다렸다는 듯이 날카로운 목소리로 대꾸했다.
“그러니까 하는 말이오. 그럴수록 더 서둘러야 하지 않겠소? 삼년상을 치르기를 기다리는 것도 아니고.”
범강림이 고개를 숙이고 민망해하며 알겠다고 대답했다. 내시가 투덜거리면서 대문을 나서자, 마당 안은 다시 조용해졌다.
범강림이 몸을 돌리고 마당 안에 서 있는 사람들을 둘러보았다. 그리고 마당 한쪽에 놓인 예물이 담긴 함들을 바라보았다.
역시 뭐든 서둘러 진행하려고 하는군. 교지를 전달함과 동시에 예물을 보내와서 혼사를 정했어. 더는 서로 오가는 절차 없이 곧바로 혼사를 치를 수 있도록 말이야.
혼사라······. 혼사는 인생 중에 두 번째로 중요한 일인데.
범강림이 마당에 서 있는 사람들의 얼굴을 훑어보았다. 다들 전혀 기뻐하는 기색 없이 이상한 표정을 지으며 조용히 서 있었다. 마당 한쪽에 놓인 큼직하고 붉은 예단 함들과 대비되는 분위기가 더욱 기이하게 느껴졌다.
“우리도 서둘러 준비하세.”
범강림이 갈라진 목소리로 어렵게 입을 열었다.
범강림의 말이 떨어지자, 마당 안의 사람들이 분주하게 움직이면서 적막함을 걷어냈다. 시녀는 집사를 데리고 예물 목록을 작성했고, 범강림은 사람을 시켜 강주와 섬주에 서신을 썼다.
“서북에도 한 통 보내고.”
범강림이 말했다.
방 안의 등불이 밝혀졌다. 범강림과 함께 탁자에 둘러앉은 집사가 붓을 멈추지 않은 채 고개를 끄덕였다.
“이미 썼습니다.”
집사가 대답했다. 범강림이 몸을 돌리고 손으로 이마를 꾹꾹 눌렀다.
“병부의 사람을 쓰는 게 더 빠를 게야.”
범강림이 말했다.
“그야 당연하지요. 사위 될 분이 군왕이시니, 우리가 굳이 서신을 쓰지 않아도 벌써 강주와 섬주에 있는 관리들이 앞다투어 소식을 전했을 겁니다.”
집사가 웃으면서 대꾸했지만, 범강림은 집사의 말에 웃지 못했다. 집사가 머쓱해하며 입꼬리를 올리고는 고개를 숙인 채 더는 말하지 않았다.
서신 작성을 마친 집사가 범강림에게 내용을 소리 내어 읽어주었다.
범강림은 세세하게 퇴고를 거칠 겨를도 없이 내용만 맞으면 된다고 했다. 그러자 집사는 서둘러 서신을 접어 물러나 수하들에게 이를 전달했다.
황씨가 방 안으로 들어왔다.
“하나도 빠짐없이 준비하긴 글렀어요.”
황씨가 자리에 앉으면서 땅이 꺼질 듯이 한숨을 쉬었다.
“농토와 점포는 이미 있는 것이니 괜찮다지만, 금은으로 만든 장신구들은 당장 구하기가 어려워요.”
범강림은 황씨의 말에 대꾸하지 않고 멍하니 일렁이는 촛불을 바라보았다.
“넷째 아우한테는 전에 말해 놨으니, 일찌감치 준비해 뒀을 텐데.”
범강림이 입을 열었다.
“준비해 뒀어도, 혼사를 치르기 전까지 도착하기는 어렵잖아요.”
황씨가 말했다.
혼수는 혼례 당일에 가져가야 혼수라고 할 수 있고, 혼수로서의 의미가 있는 법이었다. 혼례를 치른 뒤에 가져가는 것은, 아무리 많아도 혼수로 치지 않았다.
“없으면 없는 대로 하지 뭐. 혼수를 보려는 사람도 없을 텐데.”
범강림이 침울한 표정으로 말했다. 황씨도 범강림을 따라 촛불을 바라보았다.
“드디어 시집을 가긴 하는데, 상상했던 것과는 전혀 딴판이네요.”
황씨가 말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