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50
교랑의경 650화
“주 공자님, 전하와 왕비께서는 지금 식사 중이십니다. 마차는 미리 준비해 뒀으니, 잠시 안으로 들어 기다리시지요.”
고 선생이 객청에 서 있는 주복을 향해 예를 표하며 말하자 주복이 고개를 저었다.
“여기서 기다리겠습니다. 그리 오래 걸리지 않을 테니.”
그 여인은 시간을 잘 지키는 사람이니까.
주복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문밖에서 사환이 잰걸음으로 들어왔다.
“전하와 왕비께서 나오셨습니다.”
거봐, 시간 맞춰 나올 줄 알았다니까.
주복의 입가에 득의양양한 미소가 떠올랐다. 하지만 그 미소는 오래가지 못했다. 문밖으로 시선을 돌리던 주복의 미소가 어색하게 굳더니, 급기야 경악한 얼굴로 밖을 바라보았다.
주복의 표정을 본 고 선생도 그 시선을 따라 밖을 내다보다가 놀라 눈이 휘둥그레졌다. 마당을 걸어오던 사람 중, 가장 앞서서 걷던 사람은 주복이 기다리던 정교랑이 아니라 젊은 사내였다.
다소 어두운 계열의 주홍색 비단옷을 입은 젊은 사내가 한 걸음 한 걸음 천천히 내디디며 다가왔다. 조금 느리긴 했지만, 진중하게 한 걸음씩 내딛는 모습이 위풍당당해 보이기도 했다.
그가 점점 더 가까워지자, 주복은 사내의 얼굴을 자세히 쳐다볼 수 있었다. 무척 야위어 보이는 그의 얼굴은 허약하고 희멀건 색을 띠고 있었지만, 커다란 두 눈만은 빛이 나고 생기가 넘쳤다.
“전, 전하.”
고 선생이 저도 모르게 눈을 비비면서 중얼거렸다.
내가 설마 헛것을 보고 있나? 아니야, 틀림없이 전하야.
고 선생이 다시 눈을 떴을 때에도, 눈앞에 보이던 그 젊은 사내는 여전히 그 자리에 있었다. 점점 가까이 걸어와 층계를 오르고 회랑 아래에 멈춰 서기까지 했다.
“육낭이 왔군.”
진안 군왕이 믿기지 않는다는 표정을 짓고 있는 주복을 보며 미소 지었다.
어떻게 저 모습이 된 거지?
불과 하루 전까지만 해도 내시들의 부축을 받으면서 힘겹게 걸음을 옮겼고, 혼례 때 맞절을 하면서도 곧 쓰러질 거 같았던 모습이었는데? 심지어는 내시 둘이서 부축을 해도 힘에 부쳤다고.
태후가 부랴부랴 출궁해 달려올 정도라던 말은, 다 거짓말이었나?
주복이 대청 안으로 들어오는 진안 군왕을 뚫어져라 바라보았다. 아직 안색이 어둡긴 했지만, 화사한 주홍색 옷 덕분인지 심각할 정도로 어두워 보이지는 않았다. 게다가 피부에서는 어렴풋하게 광채가 느껴졌고, 온화한 표정 속 깊고 큰 두 눈은 더욱 반짝여 보였다.
진안 군왕은 누가 보아도 머리부터 발끝까지 생기가 넘치는 모습이었다.
“왜 잠시 앉다 가지 않고요?”
정교랑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복이 정신을 차리고 진안 군왕의 뒤에서 걸어오는 정교랑에게 시선을 옮겼다.
내가 저 여인을 잊어버리고 있었다니! 진안 군왕의 등장이 모든 사람의 이목을 빼앗은 거야? 저놈한테 뭐 볼 게 있다고!
주복은 속으로 씩씩댔다.
신혼이었기에 정교랑도 진안 군왕처럼 붉은색 비단옷을 입긴 했지만 평소처럼 나무 비녀와 작은 은빗 외에는 별다른 장신구를 하지 않았다.
맑은 눈빛과 담담한 표정, 붉은색 옷을 제외하고는 모든 게 그대로인 것 같았다.
“다들 집에서 기다리고 있어.”
주복이 시선을 거두고 작은 소리로 대답했다.
“그럼 지금 바로 가는 건 어떻겠나?”
진안 군왕이 말했다. 대청 안팎에 있던 사람들이 진안 군왕의 말을 따라 분주하게 움직였다.
주복이 정교랑을 흘깃 보고는 먼저 걸음을 옮겼다.
진안 군왕의 의장 행렬이 대문 앞을 떠나자, 고 선생과 이 태의는 여운이 가시지 않는 듯 감격스러운 표정으로 서 있었다. 두 사람은 무슨 말을 하고 싶다가도, 무슨 말로도 마음속의 이 감격스러운 감정을 표현해낼 수는 없다고 생각했다.
고 선생이 먼저 정적을 깨고 고개를 끄덕였다.
“왕비께서는 역시 말한 것은 반드시 실행하고, 실행하면 반드시 끝을 보시는군.”
전하께서 오늘 나을 거라고 말씀하시더니, 정말로 전하를 낫게 하셨어.
마차는 정씨 저택 앞에서 멈추었다. 진안 군왕의 모습을 본 정씨 가문의 사람들은 고 선생이나 이 태의, 그리고 주복보다도 더욱 놀란 얼굴이었다. 정씨 저택 주위에서 진안 군왕을 염탐하는 사람들 또한 그러했으리라.
진안 군왕에 관한 소식은 금세 경성 전역에 퍼졌다.
“스스로 걸을 수 있다고?”
고 관인이 눈을 크게 뜨고 물었다.
“예, 남들의 부축도 없이 비틀거리지도 않고 혼자서 잘만 걷더라고요. 심지어 정 낭자가 마차에서 내릴 때, 군왕이 몸을 돌려서 정 낭자의 손을 잡아 주기까지 했습니다.”
시종이 고개를 끄덕이면서 말했다.
“연기한 거겠지.”
고 관인은 미간을 찌푸렸고, 고능준은 콧방귀를 뀌었다.
“죽을 때는 연기한 게 아니라고 확신하더니, 멀쩡하게 살아 있으니까 연기라고 의심하는 게냐?”
고 관인이 민망해하면서 말했다.
“아, 아버지. 이렇게 될 줄은 상상도 못 했습니다.”
누군가가 문밖에서 다급하게 들어왔다.
“소문이 사실이었습니다. 진안 군왕부에 심어 둔 사람도 말을 전해 왔습니다. 어제부터 몸이 점점 나아져 앉아서 밥을 먹기 시작하더니, 오늘은 아예 침상에서 내려와 걸을 수 있게 되었다고요. 내실에서 대문까지 걸어 나가는 동안 아무도 군왕을 부축한 자가 없었다고 합니다. 게다가 이 태의는 오늘부터 약을 달이거나 침을 놓는 일도 일절 하지 않았다고 합니다. 군왕비가 진안 군왕은 완전히 나았다고 말해서요.”
막료가 말을 끝내자, 고능준이 잠시 침묵했다.
고 관인이 경악한 얼굴로 소리쳤다.
“절대로 그럴 리가 없어! 멀쩡하게 나을 리가 없잖아!”
그럴 리가 없다니?
고능준이 탁자에 손을 올렸다.
“그 여인이 죽을병에 걸린 사람을 고친다는 걸 잊은 게냐.”
고능준이 고개를 들고 다시 막료에게 물었다.
“그쪽에는 몇 명이나 남아 있지?”
“어제 한 번 정리가 되긴 했지만, 다행히도 아직 세 명이 남아 있습니다.”
막료의 대답에 고능준이 미간을 찌푸렸다.
“정말로 발각되지 않은 자들이고?”
“예, 그 세 명은 처음부터 진안 군왕의 시중을 들던 사람들입니다. 어렸을 때부터 지금까지 진안 군왕의 곁에 있던 자들이고, 저희와 직접 접촉한 적은 한 번도 없었습니다.”
막료가 말했다. 고능준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안 군왕이 왜 갑자기 나아졌는지, 무슨 치료법을 썼는지 제대로 조사하라고 하게. 그걸 알아내지 못한다면, 우리의 다음 행보는 방향조차 잡지 못할 테니 말이야. 죽었다 살아나는 건 한 번이면 족해!”
막료가 고개를 숙이고 알겠다고 대답했다.
고씨 저택의 암담한 분위기에 비해, 정씨 저택에는 즐거운 분위기가 넘실거렸다. 정씨 저택에는 범강림 내외뿐만 아니라, 진소 부인도 같이 있었다.
진안 군왕을 본 진소 부인은 환하게 웃으면서 진심으로 기뻐했다.
“나았으면 됐네요. 다 나았으면 됐어요. 그날 어찌나 놀랐는지.”
진소 부인이 말했다.
그날 태후가 급히 군왕부로 달려갔다는 소식을 듣고, 진안 군왕이 위독하다고 생각한 사람이 많았다.
“내가 나았다는 소식을 듣고, 마마께서 특별히 날 보려고 행차하셨던 겁니다.”
진안 군왕이 웃으면서 미안해하는 표정을 지었다.
“어렸을 때부터 몸이 좋지 않았던 탓에, 마마께서 신경을 많이 쓰셨거든요. 안 그래도 이미 궁으로 사람을 보냈습니다. 내일 내가 직접 궁으로 가서 태후마마의 은혜에 감사드리려고요.”
진소 부인이 미소 띤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진안 군왕이 폐하와 태후마마의 총애를 독차지했다던데, 이러니 당연히 예뻐할 수밖에.
진안 군왕이 나은 지 얼마 되지 않았기 때문에, 범강림은 간단하게 안부 인사를 한 뒤 사람들을 연회석으로 초대했다.
“오늘은 이대작과 반근이 요리를 했습니다.”
범강림이 말했다.
이대작과 찬모 반근이 정교랑과 진안 군왕 앞으로 다가가 큰절을 올렸다. 경 공공이 서둘러 두 사람에게 붉은 천으로 감싼 돈 봉투를 건넸다.
“그날 아씨를 배웅해 드리지 못했어요.”
몸종이 눈물이 그렁그렁한 얼굴로 울먹였다.
그날 제가 얼마나 걱정했는데요. 아씨의 친영 행렬이 초라할까 봐, 군왕 전하의 몸이 버티지 못할까 봐.
“배웅을 못 하다니, 진짜 아쉬웠겠다.”
소심이 웃으면서 몸종에게 팔짱을 끼고 분위기를 띄웠다.
“그날 얼마나 많은 사람이 나와서 아씨를 배웅했는데.”
“나도 봤어, 나도! 그날 정 언니한테 글씨 써 주는 사람도 엄청 많았고, 하늘에서는 예쁜 불꽃이 팡팡 터졌어!”
진단랑이 방방 뛰면서 끼어들었다.
몸종이 눈물을 흘리면서 웃었다.
“저도 봤어요. 저도 문가에 서서 봤어요. 불꽃놀이는 족히 반나절이 넘도록 하늘을 수놓고 있던데요? 집에 있던 사람들도 전부 나와서 그걸 보느라, 거리 하나가 다 막힐 정도였어요.”
물론 장 노태야께서 밖으로 나와 제가 썩 듣고 싶지 않은 말을 중얼거리긴 했지만요.
그날을 회상하자, 몸종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방 안의 사람들도 그날을 떠올리자 저마다 시끌벅적하게 떠들어대기 시작했다. 이제말을 배우기 시작한 소보아도 신나서 끊임없이 옹알이를 했다.
“하지만 아쉬운 게 하나 있어요. 이씨 가문에서 그날 썼던 폭죽들을 팔지 않겠다고 하더라고요. 정 언니, 그 사람들한테 가서 딱 한 개만 나한테 주라고 해 줄 순 없어요?”
진단랑이 울상을 지으면서 말하고는 손으로 정교랑의 소매를 잡아당겼다.
“폭죽뿐만이 아니야. 최 악공네 집에는 사람들이 문턱이 닳을 정도로 찾아갔는데, 악보를 절대로 보여 주지 않겠다고 하더라고. 지금 세간에 떠도는 정씨 송혼곡은 그날 최 악공의 연주를 들은 사람들이 기억을 더듬어 짜깁기한 거야. 어디선가 누가 정씨 송혼곡을 연주할 수 있다고 하면, 사람들이 난리를 치며 우르르 몰려가 자리다툼을 할 정도라니까?”
진소 부인이 웃으면서 한마디 거들었다.
대청 안에 있던 사람들은 여종이고, 몸종이고 할 거 없이, 다들 신이 나서 자신이 보거나 들었던 일들을 이야기했다. 웃고 떠드는 소리 덕분에 연회석은 몹시 즐거워 보였다.
한쪽에 앉은 진안 군왕이 세 반근과 진단랑에게 둘러싸인 정교랑을 물끄러미 바라보았다. 한 폭의 그림 같은 장면에 진안 군왕의 입가엔 저도 모르게 입가에 미소가 번졌다.
이때, 누군가가 진안 군왕의 어깨를 툭툭 쳤다. 진안 군왕이 고개를 돌려보자, 주복이 그를 향해 눈짓했다.
“잠시 측간에 다녀오겠네.”
진안 군왕이 말했다. 범강림이 서둘러 자리에서 일어나려던 찰나, 주복이 먼저 몸을 일으켰다.
“같이 가겠습니다.”
주복이 말하면서 걸음을 옮겼다.
진안 군왕이 범강림에게 괜찮다는 의미의 미소를 보이고 주복을 따라 연회석을 나섰다. 문턱을 넘어서던 진안 군왕은 자신의 등 뒤로 들려오는 말소리와 웃음소리가 더욱 커지는 것을 느꼈다.
아무래도 내가 있을 때는 다들 조심스러운가 보군.
진안 군왕이 입꼬리를 올릴 때, 옆에서 불쑥 튀어나온 손 하나가 진안 군왕의 옷을 잡고 모퉁이로 끌고 갔다. 주복이 진안 군왕을 벽으로 몰아세우며 눈을 부라렸다.
“연기하신 겁니까? 처음부터 끝까지, 다 연기한 거냐고요! 애초에 아무 일도 안 생겼던 겁니까?”
주복이 떨리는 목소리를 낮추고 호통쳤다. 진안 군왕은 그의 손도 같이 떨리고 있음을 느꼈다.
“군왕께서 왜 연기를 했는지는 궁금하지도 않고, 묻지도 않겠습니다. 무슨 필요가 있어서거나 어쩔 수 없는 상황이었겠지요. 다만, 제가 아는 건 딱 한 가지입니다. 정사낭이 죽었습니다. 정사낭이 죽었다고요!”
진안 군왕이 주복을 빤히 바라보다가, 옷을 잡고 있던 그의 손 위로 자신의 손을 올렸다.
“연기한 게 아닐세. 정말로 그 여인이 나를 치료한 거야.”
하지만 눈이 새빨갛게 충혈된 주복은 여전히 진안 군왕의 옷을 놔주지 않았다. 주복의 퀭한 눈 밑은 그가 밤새 잠을 이루지 못했음을 설명해 주고 있었다.
“육낭, 나는 믿지 않는다고 해도, 그 여인까지 믿지 않을 수 있겠나? 이 모든 게 가짜이고 연기인데, 정사낭의 죽음만 진짜라면, 내가 이리 멀쩡하게 살아 있을 수 있을까?”
주복이 진안 군왕의 옷깃을 놓았다.
하긴, 그 여인은 원한과 은혜를 명확히 구분하는 사람이야. 이놈 말대로 만약 그 모든 게 가짜였다면, 그 여인이 절대로 자신의 체면을 위해 진안 군왕을 치료해 줬을 리 없어.
“육낭, 나는 그 여인에게 거짓말을 하지 않네.”
진안 군왕이 주복을 쳐다보면서 단호한 눈빛으로 말을 덧붙였다.
“전에도 하지 않았고, 앞으로도 하지 않을 걸세.”
주복이 진안 군왕을 노려보았다.
“육낭이라고 부르지 마십시오.”
주복이 몸을 돌리고 먼저 걸음을 옮겼다.
“이봐, 자건.”
진안 군왕이 입꼬리를 올리고 주복을 불렀다. 주복의 자(字)는 자건(子健)이었다.
“자건!”
진안 군왕이 또 그를 불렀다. 주복이 씩씩대면서 고개를 홱 돌리자, 진안 군왕이 그를 향해 빙긋 웃었다.
“측간은 어디에 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