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51
교랑의경 651화
진안 군왕이 다시 대청 안으로 들어설 때도, 연회석에 있던 사람들은 여전히 화기애애한 분위기 속에 담소를 나누고 있었다.
회랑 아래에 걸음을 멈춘 주복이 창살 사이로 보이는 정교랑을 쳐다보았다. 옆 사람의 이야기를 듣던 정교랑이 미소를 짓자, 흑옥 같던 두 눈이 호수에 잔잔하게 이는 물결처럼 반짝였다.
사실 주복은 정교랑이 웃는 걸 별로 본 적이 없었다. 특히 예전 정교랑의 얼굴은 늘 표정이 없었고, 두 눈도 공허하기만 했었고.
앞으로는 저 여인이 웃는 걸 더 보기 힘들어지겠지.
주복은 갑자기 더는 이곳에 머무르고 싶지 않아 몸을 돌리고 자리를 떴다.
“공자님, 지금 가시게요? 아직 식사도 안 하셨잖아요.”
사환이 말을 끌고 오면서 의아하다는 얼굴로 물었다.
장씨 가문의 그 유명한 찬모가 손수 만든 음식에다가, 태평거에서 보낸 태평 두부까지 있는데? 조금 전엔 그 왼손잡이 숙수가 태평 두부로 꽃을 조각하는 걸 다른 사환들이랑 같이 봤어. 부엌에 있는 여종 말로는 인원수대로 만든 거라, 이따가 다 하나씩 먹을 수 있다던데. 그 맛있는 꽃 두부를 한입에 넣으면 얼마나 맛있을까?
“먹긴 뭘 먹어. 한 끼 안 먹는다고 굶어 죽기라도 하냐?”
주복이 언짢은 기색으로 대꾸하고는 말 위로 올라타려고 말고삐를 건네받았다.
“주 공자님!”
소심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복이 고개를 돌리자, 소심이 품에 보따리를 하나 안은 채 정교랑과 함께 걸어오고 있었다.
“집에 일이 좀 있어서, 먼저 돌아간다.”
주복이 고개를 숙인 채 먼저 입을 열었다.
“네, 그럼 먼저 가요.”
정교랑이 대답했다. 소심이 주복에게 보따리를 건넸다.
“이건 아씨께서 지으신 옷이에요. 부모님과 누이들이 집에 없으니까, 공자님 스스로 잘 챙기셔야 해요.”
“내가 옷이 부족한 것도 아니고.”
주복은 작은 소리로 대꾸하다가, 옆에 멀뚱멀뚱 서 있는 사환을 향해 바닥에 있던 작은 돌멩이를 찼다.
사환이 아파서 아야, 하는 소리를 내며 주복을 쳐다보았다.
옷이 부족한 것도 아니라면서요.
사환은 얼른 보따리를 받아 오면서, 미간을 찌푸리고 속으로 투덜댔다.
“행장을 꾸린 거예요.”
정교랑이 말했다. 주복이 음, 하고 대꾸하다가 무언가 생각난 듯이 고개를 퍼뜩 들었다.
“난 어디 안 가.”
그러고는 냉소를 지으면서 한마디 덧붙였다.
“내가 정사낭도 아니고.”
이 말을 뱉자마자 주복은 땅을 치며 후회하고 싶은 마음이었다.
왜 또 칼로 마음을 도려내는 말을 해 가지고는!
“걱정할 필요 없어. 큰 병영으로 옮기기도 했고, 종 장군께서도 날 살뜰히 챙겨 주시거든. 종 장군의 병영에까지 마수를 뻗을 수는 없을 거야. 그러니까 너나 잘 챙겨. 네가 잘 지내면, 나도, 아니 우리도 잘 지낼 테니까.”
당황한 주복이 주절주절 말을 늘어놓았다. 그러고는 말 위로 훌쩍 몸을 날린 후 서둘러 말을 움직였다.
“무슨 일이 생기면 내게 숨기려고도, 나를 피하려고도 하지 마요. 꼭 나한테 와서 말해요.”
정교랑이 주복의 등 뒤에서 말했다. 주복이 고개를 돌리고 짤막하게 알겠다고 대꾸했다.
“당신은 정사낭이 아니에요. 하지만, 남들이 내 약점으로 쥐고 협박할 수 있는 사람이에요.”
정교랑이 주복을 쳐다보면서 말을 덧붙였다.
“당신은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당신은 내게, 아주 중요한 사람이라고요.
정교랑의 마지막 말을 듣자, 주복은 갑자기 눈시울이 뜨거워졌다. 그는 아무 말도 하지 못하고 발걸이에 힘을 주어 말의 복부를 걷어찼다. 그 힘이 너무 셌는지, 말이 히이잉 울부짖으며 곧장 내달렸다.
주복도 말이 갑자기 이렇게 빠르게 달려나갈 줄은 몰랐는지, 몸이 뒤로 기울면서 말에 끌려가는 듯한 모습으로 대문 앞을 떠났다.
한참을 달리던 주복은 언제, 어떻게 달려왔는지도 모를 거리에 멈춰 섰다.
“너도 내게 중요한 사람이다.”
주복이 천천히 말했다.
“아니, 네가 더.”
저녁 무렵이 되어서야 연회가 끝나고, 진안 군왕의 의장 행렬이 정씨 저택 앞을 떠났다.
“지름길로 가자.”
진안 군왕이 마차 앞에 있던 경 공공에게 말했다. 경 공공이 멈칫했다.
앞뒤로 긴 의장 행렬이 있던 터라, 정씨 저택으로 올 때는 큰길을 따라서 왔다. 하지만 지름길로 가게 된다면 좁은 골목을 통과해야 해서 행렬을 분산시키고 최소한의 시위로 호위하며 가야 했다.
그러기엔······.
군왕부를 나서고부터 지금까지 쉬지 못하셔서 몸이 힘드신가?
문득 긴장한 경 공공이 곧바로 알겠다고 대답했다.
“고단해요?”
정교랑이 물었다. 진안 군왕이 정교랑을 향해 고개를 저으면서 아니라고 하자, 정교랑은 더는 묻지 않고 마차에 두었던 책을 꺼내 읽기 시작했다.
마차가 좁은 골목을 향해 천천히 움직였다. 해가 지고 한낮의 무더위가 가라앉은 시간이라 골목 곳곳에 사람들이 나와 있었다. 좁은 골목에 삼삼오오 모여서 더위를 식히던 사람들이 이쪽을 향해 오는 의장 행렬을 보고는 왁자지껄 떠들기 시작했다.
“진안 군왕의 의장이야!”
“오늘은 왕비가 친정 나들이를 가는 날이었나 보네!”
“저거 보라고. 군왕비도 같이 있나 봐.”
“그럼 오늘도 불꽃놀이를 하려나?”
길가에 서서 목을 빼고 구경하는 사람들을 본 진안 군왕의 얼굴에 미소가 떠올랐다. 그가 고개를 돌리고 여전히 책을 읽는 정교랑을 바라보았다. 정교랑은 책을 읽느라 바깥의 사람들이 전혀 보이지 않는 눈치였다.
“정방.”
진안 군왕이 정교랑을 부르자, 정교랑이 고개를 들었다.
“저기 봐요.”
창가 밖을 가리키던 진안 군왕의 눈가의 웃음이 더욱 짙어졌다. 정교랑도 진안 군왕이 가리키는 곳을 보면서 그를 따라 웃었다.
“그날 사람이 정말 많았잖아요.”
오늘 정씨 저택에서 가장 많이 대화한 주제가 바로 혼례 당일, 정교랑의 친영 행렬과 그 외의 놀라운 광경들이었다. 다들 그런 광경은 듣도 보도 못했기 때문이었다.
진안 군왕은 사람들의 대화를 잠자코 듣고 있었는데, 진소 부인이 그의 눈치를 보면서 화제를 돌렸었다. 신랑이 친영 행렬이 얼마나 떠들썩했는지 모르니, 정말 아쉽겠네, 하면서.
“원래 친영 행렬은 다 떠들썩하잖아요.”
정교랑이 진안 군왕을 향해 미소 지었다. 진안 군왕이 정교랑을 물끄러미 바라보다가 또 웃었다.
“정방, 나도 봤어요.”
나도 봤다고?
정교랑이 의아한 듯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진안 군왕이 기다렸다는 듯 활짝 웃으면서 또 한 번 말했다.
“그날, 나도 내 두 눈으로 봤어요.”
진안 군왕은 ‘나도’와 ‘내 두 눈’에 힘을 실어 말했다. 정교랑이 다소 놀란 기색으로 진안 군왕에게 물었다.
“그날, 당신이 왔었어요?”
진안 군왕은 여유롭게 두 손을 목 뒤로 깍지낀 채 방석에 몸을 뉘었다. 그가 입가에 미소를 지으며 마차 천장 너머가 보이는 듯한 눈빛으로 천장을 올려다보았다.
“사람이 너무 많아서 엄청 천천히 따라갔어요. 최 악공의 칠현금 연주는 잘 못 들었지만, 사람들이 글씨를 쓸 때 시를 읊었던 건 잘 들었어요. 몸을 일으킬 수 없어서 그 광경을 직접 보지는 못했고요.”
진안 군왕은 정교랑의 질문에 대답하지 않고 천천히 말을 이어 갔다. 그러다 갑자기 몸을 일으켜 앉고는 빙긋 웃으며 말했다.
“다만, 불꽃놀이는 잘 봤어요.”
저녁인지라, 마차 안을 비추는 은은한 불빛이 진안 군왕의 두 눈을 더욱 반짝이게 했다.
“온 하늘을 뒤덮을 정도던데요? 휘장 너머로 봤는데, 진짜 예쁘더라고요. 대낮에도 그렇게 오색찬란한 불꽃놀이를 할 수 있는 줄은 몰랐어요.”
“어디 있었어요?”
정교랑이 물었다.
마차 휘장도 있고, 칠현금 연주도, 글씨를 쓸 때 시를 읊었던 것도 들었다고 한 걸 봐서는 같은 시간에 이 거리에 있었던 거 같은데.
“내가 말했었죠. 이 혼사는 내게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일이라고요. 그래서 그날을 놓치고 싶지 않았어요.”
진안 군왕이 말하고 다시 방석 위에 누웠다. 그는 천장을 올려다보면서 그날로 되돌아간 듯한 표정으로 말을 이어 갔다.
“나를 마차에 실어 달라고 하고, 왕부 밖으로 나왔어요. 그리고 이 거리에서 당신을 기다렸죠. 친영 행렬이 이 거리에 도착할 때쯤, 몰래 행렬 뒤쪽으로 붙어서 따라갔어요. 마차에 누워 있어야 하긴 했지만, 다행히도 천장이 천으로 되어 있어서, 몸을 일으킬 수는 없어도 천을 걷으니 바깥 광경이 보였어요.”
진안 군왕이 혼자 피식 웃었다.
“그때 당신은 앉아 있었겠죠? 붉은 천 때문에 바깥도 볼 수 없었을 거고요.”
그랬던 거구나.
정교랑이 진안 군왕을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맞아요. 사실 나는 불꽃놀이는 못 봤어요. 어때요, 예뻤어요?”
“네, 정말 정말 예뻤어요.”
진안 군왕이 망설임 없이 대답했다.
크지 않은 마차 안, 진안 군왕은 누워 있었고 정교랑은 앉아 있었다. 가까이 있었기 때문인지, 진안 군왕은 익숙하고 은은한 향을 느꼈다. 자신을 바라보며 미소 짓는 정교랑의 얼굴을 보자, 어디서 갑자기 용기가 샘솟았는지 그가 손을 뻗어 정교랑을 자신 쪽으로 확 당겼다.
“누워서 보니까 더 예쁘던데요? 불꽃놀이가 얼마나 잘 보였는지 당신도 한번 상상해 봐요.”
갑작스럽게 끌어당긴 진안 군왕 때문에, 무방비 상태로 앉아 있던 정교랑은 그의 가슴팍을 팔꿈치로 찍으면서 그 위로 엎어졌다.
마차 안에서 낮은 신음이 들려왔다.
“전하?”
마차 앞에 앉아 있던 경 공공이 황급히 휘장을 걷고, 작은 문을 열고 물었다.
마차 안의 정교랑은 진안 군왕의 몸 위로 반쯤 엎어져 있었다. 공교롭게도 정교랑의 손에 진안 군왕의 앞섶이 걸려 풀어 헤쳐지는 바람에 진안 군왕의 가슴팍이 드러났다.
에구머니나!
경 공공은 문을 쾅 소리가 날 정도로 닫고, 재빨리 휘장을 꼼꼼하게 쳤다. 얼굴이 화끈거려 귀까지 빨개져 있었다.
세상에! 잠, 잠, 잠시도 못 기다리시는 건가?
경 공공이 앞을 내다보자, 벌써 군왕부가 보이기 시작했다.
지금 군왕부로 곧장 들어가면, 혹시 두 분의 흥취가 깨지는 건 아닐까?
이박삼일 만에 전하께서는 약을 드실 필요가 없을 정도로 몸이 나아지셨어. 이대로 몇 번만 그 일을 더 한다면, 원기 왕성하여 활력이 넘치시겠지?
여기까지 생각이 닿은 경 공공은 이를 악물고 무언가를 결심했다.
황당하면 뭐 어때? 그야 남들 눈에 그리 보이는 거지. 전하의 몸을 위해서라면······.
“여봐라.”
경 공공이 목소리를 낮추고 손짓하면서 옆에 있던 시위를 불렀다.
말을 타고 있던 시위가 서둘러 경 공공의 옆으로 다가가, 경 공공의 귓속말을 들었다. 시위는 조금 놀란 기색이었지만, 그래도 군말 없이 고개를 끄덕이고 명령에 따랐다.
몸을 일으켜 똑바로 앉은 정교랑은 진안 군왕의 앞섶을 잘 여며 주었다.
“뜯어졌네요.”
“이것도 밤에 하는 거랑 비슷한 효과예요?”
진안 군왕이 이가 훤히 보일 정도로 헤헤 웃으면서 물었다.
“아니요.”
정교랑이 말했다. 진안 군왕이 가슴을 문지르며 실망한 듯 탄식했다.
“아, 그럼 괜히 아팠네.”
정교랑이 이를 드러내고 웃는 진안 군왕을 바라보았다. 진안 군왕의 새하얗던 이빨은 어느새 검게 그을린 듯 변해 있었다.
그 독이 이 사람에게 평생 지우지 못할 흔적을 남겼네. 하긴, 자신에게 일어났던 일을 어찌 잊을까. 절절히 느껴지는 아픔인데.
잊자, 잊어. 잊는 게 제일 나아.
아니야. 그럴 수는 없어!
양산! 그럴 수는 없다고!
정교랑이 손을 뻗어 진안 군왕의 뺨을 쓰다듬었다. 진안 군왕의 온몸이 뻣뻣하게 굳어졌다.
“괜히 아픈 게 아니에요. 오래 아픈 것보단 짧게 아프고 넘어가는 게 낫죠. 그럼 나중에는, 아프지 않을 테니까.”
굳은살이 박인 정교랑의 손바닥은 마냥 부드럽기도, 무언가 까슬한 게 느껴지기도 했다. 진안 군왕은 자신의 얼굴을 쓰다듬는 정교랑의 손길이, 어릴 때 안겼던 어머니 품속처럼 느껴졌다.
– 종낭(琮郞), 무서워할 것 없어. 하나도 안 아파.
몹시 아득해서 이제는 잊어버린 듯한 기억이 순식간에 휘몰아쳤다. 눈시울이 붉어진 진안 군왕은 누웠던 몸을 반쯤 일으켜 또 한 번 정교랑의 허리를 와락 끌어안고 정교랑의 어깨에 고개를 묻었다.
“정방.”
진안 군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정교랑을 불렀다.
정교랑의 몸이 살짝 굳었다. 정교랑은 반사적으로 진안 군왕을 밀치려 하다가, 잠시 머뭇거리더니 밀치려던 손을 내려놓았다.
“미안해요. 정말 미안해요. 나 때문에 아파하게 만들어서 미안해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