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53
교랑의경 653화
두 사람이 놀랐던 건, 누구를 때려죽이라고 한 말 때문이 아니었다. 선물 받은 하인을 돌려보내는 것은, ‘당신의 꿍꿍이가 탄로 났으니, 이들을 돌려보낸다’는 뜻을 전하기 위해서였다. 따라서 돌려보내진 자들은 결국 자신의 주인 손에 죽음을 당했다. 단지 진안 군왕의 손을 거치지만 않았을 뿐.
하인들에게는 돌아가서 죽나 죽고 나서 돌아가나, 죽는 건 매한가지겠지만, 하인을 돌려받는 주인에게 있어서는 그 의미가 확연히 달랐다.
고 선생이 표정을 가다듬고 숙연한 표정으로 말했다.
“하지만, 그중에는 궁에서 보낸 자도 있습니다.”
진안 군왕이 손바닥으로 천천히 탁자를 쓸었다.
매끈하고 부드러워. 어디서 이렇게 좋은 물건을 구해 오나 몰라. 고작 탁자일 뿐인데도 마음을 편안하게 해 주네. 꼭 저 여인처럼.
“황궁 사람이니 더욱 봐줘선 안 되지. 그들이 저버린 건, 본왕의 호의가 아니라 태후마마의 호의이니까. 감히 태후마마의 호의를 저버렸는데, 가볍게 용서할 수 있겠는가?”
진안 군왕이 나지막한 목소리로 천천히 말했다. 고 선생이 진안 군왕을 쳐다보았다.
“그럼 이번 일이 전하께서 황제 폐하와 태후마마의 명성을 지켜 드리고자 재차 음독자살을 시도한 것이 아니라, 누군가가 전하께 독을 써서 벌어진 일임을 밝히자는 말씀이신지요?”
이는 불순한 의도를 품었다는 이유로 탄핵을 당했기 때문에, 충절을 지키고 결백을 밝히기 위해 음독자살을 시도한 게 아니라, 누군가의 음해로 중독됐음을 알리기로 한 것이다.
이들을 때려죽여 돌려보내는 순간, 이 일은 명확하게 규정될 테고, 엄청난 파란을 일으킬 게 자명했다. 이미 다사다난한 시기를 보내는 조정으로서는 결코 좋은 일이 아니었다.
서재 안에 정적이 흘렀다. 바깥마당에서도 아무런 소리가 들려오지 않았다.
진안 군왕의 웃음이 정적을 깨트렸다.
“아, 숨은 조금 붙여 두지. 궁에 들어가 마마께 사죄할 마지막 숨은 남겨 둬야 하니까.”
고 선생과 경 공공은 또 한 번 온몸에 소름이 돋았다.
“본왕이 이러는 것은 다 마마와 폐하의 명성을 위한 것일세. 본왕이 전에 체면을 지키고자 자결을 시도한 일로 마마께선 상심이 아주 크셨지. 본왕에게 다시는 절대 그런 어리석은 짓을 하지 말라고 울며 당부하셨는데, 그 후로 며칠이나 지났다고 벌써 마마의 마음을 외면하고 재차 자결을 시도하겠는가? 그건 태후마마를 무시하고, 마마의 뺨을 후려치는 일이야. 그럼 세간에서 태후마마를 얼마나 욕하겠나? 본왕이 마마의 은혜를 저버리고 이리도 제멋대로 구는 것은 다 태후마마께서 본왕을 오냐오냐 버르장머리 없이 키웠기 때문이라고 험담할 것이 뻔해.”
진안 군왕이 설핏 웃었다. 입꼬리는 올라가 있었지만, 그의 눈빛에는 서늘함이 가득했다.
“본왕이 제멋대로 군다는 소리를 듣는 건 괜찮지만, 마마께 본왕을 오냐오냐 키웠다는 비난을 받게 할 순 없지.”
진안 군왕이 말을 끝내자, 고 선생이 어색한 미소를 지었다.
“하지만 말씀하신 대로 처리한다면, 반대로 전하께서 제멋대로라는 세간의 손가락질을 받으실 텐데요.”
한 번에 하인 열댓 명을 장살하고, 또 몇 명은 간신히 숨만 붙어 있는 정도로 살려두어 황궁으로 돌려보냈다는 소문이 퍼지면, 진안 군왕은 필히 그 흉악무도함으로 유명세를 떨칠 터였다.
“바깥세상의 사람들은 전하께서 정말로 남이 쓴 독에 중독이 됐는지 아닌지에는 관심을 가지지 않을 겁니다. 그저 전하께서 괜한 화풀이를 하신다고 믿겠지요.”
이어지는 고 선생의 말에 진안 군왕은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바깥세상의 사람들? 그 사람들이 본왕과 무슨 관련이 있다고? 본왕이 중독됐을 때, 그들이 본왕을 대신해서 아파 주기라도 했는가? 본왕이 다 낫고 나니, 이제야 이러쿵저러쿵 떠들기는.”
고 선생이 고개를 끄덕였다.
“하긴 그렇습니다. 전하께서 생사를 넘나드는 고생을 하셨는데, 이 정도 분풀이는 하셔야죠. 그렇다면 이 일은 말씀하신 대로 처리하겠습니다.”
고 선생이 몸을 일으키자 진안 군왕이 고개를 끄덕였다.
“그리고 한 가지가 더 있습니다만, 부인께서 이 태의에게 이쪽 가까운 곳으로 거처를 옮기라고 하셨습니다.”
고 선생이 무언가 생각난 듯이 말했다. 진안 군왕이 미간을 찌푸렸다.
“난 다 나았는데, 굳이 가까이 올 필요가 있나?”
웬 이 태의? 왕비가 곁을 지키는데 뭘 굳이······.
경 공공이 속으로 중얼거렸다.
사실 전하께서는 이렇게 말씀하시고 싶으신 거겠지? 부인께서 계시니 괜히 와서 알짱거리지 말라고.
“부인께서 그리 분부하신 데에는 분명히 이유가 있겠지요. 지금은 전하의 건강이 우선이니, 뭐든 조심해야 할 시기입니다.”
고 선생이 웃으면서 말했다.
부인께서 내리신 결정이니, 당연히 반대하시지 않겠지.
진안 군왕이 대꾸가 없자, 고 선생은 예를 표하고 물러날 준비를 했다.
“종일 바쁘셨을 텐데, 일찍 쉬시지요.”
고 선생이 멀뚱멀뚱 서 있는 경 공공을 향해 눈짓했다.
“경 공공, 그만 가세.”
경 공공이 멈칫하고 곧바로 대꾸했다.
“소인은 전하의 시중을 들어야 합니다.”
“부인께서 계시니 자네가 시중들 필요는 없네. 그리고 자네 손아귀 힘이 꽤 쓸 만하지 않은가. 새파랗게 어린놈들은 이런 일을 통 해본 적이 없을 터이니, 괜히 단번에 다 때려죽일까 겁나는군. 그러니 자네가 가서 시범이나 한번 보여 주게나.”
고 선생이 말했다. 경 공공은 언짢은 기색으로 가만히 서 있었지만, 진안 군왕이 자신을 남겨 두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자, 어쩔 수 없이 알겠다며 예를 표했다.
“이런 일은 소인도 하기 싫습니다. 이제야 손톱을 좀 길렀더니만.”
“직접 때리라는 것도 아니잖나. 그냥 서서 지켜보기만 해도 된다니까.”
두 사람이 소곤거리면서 방을 떠나자, 진안 군왕은 몸을 일으키고 서재를 자세히 둘러보았다.
그 여인은 이 중에 무슨 책을 읽을까? 글씨를 연습할 때 썼던 종이가 이렇게나 많네.
한참을 서재에서 이리저리 기웃거리던 진안 군왕이 밖으로 걸어 나오자, 회랑 아래 서 있던 시녀들이 서둘러 진안 군왕에게 예를 표했다. 진안 군왕이 회랑 아래에서 걸음을 멈추고 안채를 바라보았다.
환한 불빛 아래로 활짝 열려 있는 문과 창문이 보였다. 얇은 휘장에 새겨진 모란꽃이 불빛에 비쳐 은은한 색을 드러냈다. 그리고 그 앞으로 시녀 한 명이 지나갔다.
“전하.”
인기척을 느낀 소심이 휘장을 걷어 올리고 밖으로 나와 진안 군왕을 향해 예를 표했다.
소심이구나.
“볼일은 다 보셨어요? 부인께서 전하를 위해 밤참을 준비하라고 하셨어요.”
밤참을 준비했다고? 나를 위해서 특별히 준비하다니, 다정하기도 해라.
진안 군왕이 음, 하고 대꾸하고는 걸음을 옮겼다.
두 시녀가 휘장을 걷어 올리자 방 안으로 들어온 진안 군왕은 다소 어색하게 안을 둘러보았다. 아무리 둘러보아도, 정교랑의 모습은 보이지 않았다.
“부인께서는 이 태의와 이야기하러 가셨어요. 전하, 이쪽으로 와서 앉으시지요.”
소심이 예를 표하면서 말했다.
진안 군왕이 속으로 안도의 한숨을 쉬고는 소심의 안내를 받으며 창가에 앉았다. 소심이 다른 사람에게 밤참을 가져오라고 시키자, 진안 군왕은 소심을 제지했다.
“지금은 됐다. 일단 차부터 한 잔 마셔야겠어.”
소심이 알겠다고 대답하자, 진안 군왕의 시녀가 서둘러 차를 우리러 갔다.
진안 군왕이 천천히 찻잔을 들어 올리고 팔걸이의자에 기대 편안한 자세로 방 안을 훑어보았다.
여기가 내 신방이구나.
내가 직접 꾸미지 못해서인지, 왕부에서 꽤 구석진 곳으로 정해졌네. 정 낭자와 혼사를 치르고 싶은 마음만 굴뚝같지 어떻게 치를지 곰곰이 생각해 볼 겨를도 없었어. 혼사가 얼마나 중요한 일인데. 물론 낭자에게는 사소한 일이겠지만, 내게는 일생일대의 가장 중요한 일이니 꼭 성대하게 치르고 싶었어. 여러 사람이 축하해 주는 시끌벅적한 분위기 속에서.
하지만 이건 생각지도 못했군. 혼례를 얼렁뚱땅 대충대충 치를 줄이야. 죽을 날을 받아 놓은 신랑과 상중인 신부라니.
진안 군왕이 한숨을 푹 쉬고는 손에 쥔 차를 단숨에 들이켰다.
“부인의 말씀은, 전하께서 아직 다 나은 게 아니라는 뜻입니까?”
이 태의가 긴장한 기색으로 물었다가, 곧 풀 죽은 모습으로 중얼거렸다.
“하지만 제가 맥을 짚었을 때는 분명 멀쩡하셨는데.”
아니지, 맥을 짚었을 때 멀쩡하면 뭐해? 그때도 분명 맥이 짚이지 않았는데, 이 여인이 오자마자 다시 살아났잖아.
“사실, 나는 병을 고칠 줄 몰라요.”
정교랑의 말에 이 태의가 쓴웃음을 지었다.
“부인, 너무 겸손하신 말씀입니다.”
“겸손한 게 아니라, 할 줄 아는 건 할 줄 아는 거고, 할 줄 모르는 것은 할 줄 모르는 거죠. 일부러 남에게 숨기거나 말하지 않는 건 없어요. 우리 정씨······.”
정교랑이 돌연 말을 멈췄다. 이 태의가 고개를 들자, 정교랑이 말을 이었다.
“스승님께서 내게 가르쳐 주셨던 것은 매산도(梅山道)지 의술이 아니었어요.”
매산도! 매산동만(梅山峒蠻)! 그곳은 무당들이 모여 사는 곳인데!
경악한 이 태의는 등골이 서늘해지기 시작했다.
지금 조정에서는 무당을 매우 금기시하는 분위기야. 게다가 정 낭자는 황실 종친의 일원이 되었으니, 앞으로 더욱 주의해야 할 텐데.
“저마다의 길이 있는 게지요. 위급할 때 사람을 돕는 것이 올바른 길이라고 생각합니다.”
이 주제에 대해 깊이 이야기하고 싶지 않은 듯, 이 태의가 서둘러 말했다.
정교랑이 이 태의를 바라보며 미소를 지었다. 이 태의가 이해하는 것 같기에 정교랑도 이야기를 길게 하지 않았다.
“내가 전하를 해독하긴 했지만, 이미 몸이 너무 많이 상했어요. 앞으로 더욱 요양에 힘써야 하니, 이 태의가 신경 좀 써 줘요. 내가 있다고 괜히 손 놓고 있지 말고요.”
이 태의가 웃으면서 손사래를 쳤다.
“여부가 있겠습니까.”
“이 태의의 의술은 나보다 훨씬 뛰어나요.”
정교랑이 말했다. 이 태의는 순식간에 귀가 뜨겁게 달아오르는 듯한 머쓱함에 웃음 지었다.
“아닙니다, 당치도 않지요. 어떻게 제가 감히요.”
“겸손해하지 않아도 돼요. 다른 게 아니라, 의술을 말한 거니까.”
정교랑이 말하자, 이 태의의 웃음이 어색하게 굳었다.
이 여인도 참!
이 태의가 헛웃음을 터트리며 고개를 저었다.
정교랑이 옆에 서 있던 반근을 쳐다보자, 반근이 서둘러 작은 함 하나를 이 태의 앞으로 내밀었다.
“이게 뭡니까?”
이 태의가 물었다.
“내게 물어봤던 향이에요.”
정교랑이 말했다. 이 태의가 멈칫했다가, 동방화촉을 밝힌 다음 날 자신이 물어봤던 것을 떠올리며 민망해했다.
초야를 치른 후 온몸의 기가 빨린 진안 군왕을 보고 이 태의는 한동안 방 안에 머무르면서 곳곳을 조사했다. 방을 조사하던 중, 그는 왕부에서 한 번도 맡아본 적 없던 향을 느꼈다. 분명 약 냄새가 섞인 향이었다.
“다만, 전하께서만 쓰실 수 있는 향이에요. 다른 사람이 이 향을 써서는 안 돼요. 언제 또 필요해질지 모르니, 잘 보관해 둬요.”
정교랑이 말했다. 이 태의가 놀라서 눈썹을 들어 올렸다.
“그렇다면, 전하의 해독은 이 향과 관련이 있었던 겁니까?”
“그래요. 없어서는 안 될 향이죠.”
정교랑이 대답했다.
그랬던 거로군.
이 태의가 깨달음을 얻은 얼굴로 정중하게 함을 받아왔다.
“한동안은 집에 계실 때도 많이 조심하셔야 할 겁니다. 사람을 대대적으로 정리하긴 했지만, 얼마나 많은 자가 이곳에 숨어 있을지는 아직 모를 일이죠. 이번 일로 보이지 않는 손해를 본 사람이 있을 테니, 결코 순순히 물러나진 않을 겁니다.”
이 태의가 조심스럽게 말하자, 정교랑이 담담하게 미소지었다.
“보이지 않는 손해? 글쎄요. 이런 건, 보이지 않는 손해라고 하는 게 아니에요.”