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60
교랑의경 660화
“왜 그러느냐? 무슨 일이야?”
이쪽의 소란을 들은 태후가 진십팔랑의 부축을 받으며 급히 다가왔다. 측전 문 앞에 선 태후는 돌연 걸음을 멈추고 놀란 표정으로 안을 쳐다보았다.
내시들과 궁녀들은 전부 서 있고, 놀랍게도 도통 제대로 앉아 있질 못하던 태자는 앉아 있었다. 몸을 배배 꼬고 뒤틀긴 했지만, 앉아 있는 건 분명했다.
그때 옆에서 공 하나가 굴러왔다. 전각에 괴성이 울려 퍼지더니, 바보가 손을 뻗어 공을 잡았다.
“전하, 이리 다시 주세요.”
진단랑이 태자를 향해 웃으며 손을 흔들고, 손짓을 하며 이쪽으로 던지라는 신호를 보냈다. 맞은편에 앉은 태자가 손에 든 공을 밀어 주었다. 공이 이리저리 삐뚤빼뚤 굴러가자 진단랑이 얼른 손을 뻗어 잡았다.
“전하, 정말 대단하세요!”
진단랑이 기뻐하며 박수를 쳤다. 맞은편에 있는 바보 태자도 따라서 박수를 치며 입을 헤 벌리고 웃었다. 그 바람에 침은 더 많이 흘러내렸지만.
“아이고.”
태후는 놀라움을 금치 못하는 모습이었다.
“아, 아니, 저게 누구네 집 아이지? 태자와 어울려 놀 수 있다니.”
낯선 사람은 관두고 궁에서 늘 함께 지내는 내시와 궁녀조차도 저렇게 태자와 함께 논 적은 없었다. 그런데 오늘 처음 본, 열두세 살 남짓한 어린 낭자가 바보와 함께 놀다니 놀랄 수밖에. 무서워하지도 않고.
태후 뒤에 선 진십팔랑이 눈을 살짝 내리깔고, 서글픈 눈빛을 숨기며 대답했다.
“제 동생, 십구랑이옵니다.”
탄핵을 하든 다른 벌을 내리든 진안 군왕으로서는 관심 밖이었다. 경성에 한바탕 거대한 풍랑을 일으킨 진안 군왕이지만, 진안 군왕부는 조용하기만 했다.
오늘 아침은 다소 시끄러웠지만.
“정말 옮기신대?”
반근이 소심에게 물었다.
“바로 옮기는 건 아니고.”
소심은 군왕부의 장부를 넘기며 말을 이었다.
“칠도 새로 하고, 칸막이도 설치하고, 새 가구도 들이고 하려면 못 돼도 중추절은 돼야 할걸.”
반근은 아, 하고 대꾸한 후 옆에 있는 쟁반에 놓인 해바라기 씨를 먹기 시작했다.
“한가해 보이네?”
소심이 물었다.
“아씨는 글씨 연습 중이고, 전하는 대청에서 쉬고 계시니, 나도 자유를 즐겨야지.”
반근이 대답했다. 그러자 소심이 장부 한 권을 던져 주었다.
“할 일 없으면 이거나 대조해 줘.”
반근은 피식 웃고 장부에 손도 대지 않은 채 해바라기 씨만 깠다.
“자유를 즐기겠다고 했잖아. 난 언니랑 달리 이런 일 못 해.”
두 사람이 한창 웃고 떠드는데, 어린 몸종 하나가 급히 달려왔다.
“부인께서 전하를 급히 찾으세요.”
반근과 소심이 놀라 서둘러 밖으로 나갔다. 마당에 있는 어린 몸종들은 벌써 우왕좌왕하며 군왕을 찾으러 뛰어다니고 있었다.
“전하께선 잠깐 누워 있다 나가셨어.”
“같이 간 사람이 있긴 해. 어디 가시는지는 안 여쭤봤고.”
나지막이 소곤거리는 목소리도 들렸다.
“무슨 일이야?”
소심이 시녀 하나를 붙잡고 물었다.
“아씨께서 글씨 연습을 마치고 나오셨는데, 전하가 안 보이자 찾으셨어요.”
붙잡힌 시녀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소심과 반근이 멈칫하며 회랑 쪽으로 고개를 돌리자, 회랑에 선 정교랑이 문밖을 쳐다보고 있는 모습이 보였다.
오매불망······.
소심의 뇌리에 불현듯 ‘오매불망’이라는 단어가 스쳤다.
“무슨 일이냐?”
소식을 들은 진안 군왕이 원래 지내던 처소 쪽에서 급히 달려오며 물었다.
“모르겠어요. 왕비께서 전하를 찾는다고만 하셨어요.”
시녀가 불안한 목소리로 대답했다.
진안 군왕은 더 이상 묻지 않고, 방금 찾은 나무 조각을 품에 넣어 고이 간직한 후 이쪽으로 걸음을 옮겼다. 마당 문을 들어서기도 전에 회랑 아래에 선 여인의 모습이 보였다.
오래 기다린 듯한 모습에 진안 군왕은 걸음을 재촉했다.
“무슨 일이에요?”
진안 군왕의 목소리엔 본인도 미처 감지하지 못한 긴장이 묻어났다.
“어디 갔었어요?”
정교랑이 물었다.
“저쪽 대청에 갔었어요. 정리가 잘 되고 있나 보려고.”
진안 군왕의 대답에 정교랑이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별일 아니에요. 그냥 어디 갔나 해서 물어본 거예요.”
진안 군왕뿐 아니라 마당에 있던 사람들 모두가 멈칫했다. 정교랑은 벌써 뒤돌아 대청 안으로 들어간 후였다.
뭐야! 하루를 못 봤는데도 삼 년이나 떨어진 것 같다더니, 한시만 눈에 안 보여도 저리 당황하나?
진안 군왕은 웃음을 터트리고, 직전의 긴장을 훌훌 털어 버린 채 가벼운 걸음으로 층계를 올랐다.
경 공공은 어이가 없는 듯 고개를 절레절레 흔들었다.
하나는 중요한 일을 논할 때도 정신이 딴 데 가 있다가 빨리 말하라고 다그친 후 내쫓아 버리질 않나, 다른 하나는 잠시만 눈에 안 보여도 큰일 난 것처럼 굴지 않나, 아주 잘 어울리는 한 쌍이로다.
“됐다. 그만 일들 보거라.”
경 공공이 손을 내저으며 말했다.
진안 군왕이 시녀가 건네는 차를 받고 손을 휘휘 내젓자, 시녀가 얼른 자리에서 물러났다.
“잠이 안 와서 저쪽에 가 봤어요. 당신은 글씨를 쓰고 있으니까 방해 안 하려고 했죠.”
방해하고 싶지 않았다 해도, 몸종들에게 언질 한마디는 해 줄 수 있었다. 다만 그 나무 조각을 찾으러 간다는 사실을 알리고 싶지 않아 슬쩍 간 것이었다.
“갑자기 가 보고 싶어서요. 다음부턴 꼭 말할게요.”
규모가 큰 왕부가 아니었기에, 굳이 말하지 않아도 물어보면 금방 찾을 수 있는 곳이었다. 그런데도 진안 군왕은 끊임없이 해명을 늘어놓았다.
어쩌면 아씨는 정말 군왕을 찾으려던 게 아닐지 몰라. 아씨께서 말씀하신 대로 별 뜻 없이, 그냥 어디 갔는지 물어보신 것일지도.
다만, 아씨의 입에서 그런 질문이 나오니, 듣는 사람의 생각이 달라질 수밖에.
왕비께서 군왕 전하에 대해 물으셨어. 왕비께서 군왕 전하를 찾으시는 거야.
군왕 전하는 어디 계시지? 어서 전하를 찾아봐. 왕비께서 지금 당장 군왕 전하를 만나시겠대.
반근은 저도 모르게 입을 삐죽이며 웃었다.
“그래요. 그래야 만에 하나 무슨 일이 생기더라도, 당신을 빨리 찾을 수 있잖아요.”
정교랑이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역시 날 걱정하고 있었네.
순간 진안 군왕은 마음이 따스해졌다.
생각해 보니 처음 만난 후로, 이 여인은 늘 자신을 걱정하며 도와주었다. 죽을 위기를 몇 번이나 넘긴 것도 다 이 여인 덕분이었다.
그러고 보면 난 이 여인 앞에서 늘 위험에 처하고 궁지에 빠진 모습만 보여 줬네. 기뻐할 만한 일은 전혀 없었던 것 같아.
이런 날 싫어하지 않기도 쉽지 않을 텐데.
“난 참 쓸모없는 놈이에요. 집에 있으면서도 마음이 안 놓이게 하다니.”
진안 군왕이 웃음을 터트리며 말했다.
“아니에요. 당신은 아주 쓸모가 많은 사람이에요. 그러니 더 조심해야죠. 쓸모없는 사람이라면, 누군가가 당신을 해치려 애쓰지도 않을 거예요.”
사람은 그만한 가치가 있는 사람에게만 공을 들이는 법이다. 그게 잘해 주는 것이든 해치려 하는 것이든 간에. 누군가를 해치고자 한다면, 사랑할 때보다 배로 공을 들여야 하지 않던가.
진안 군왕이 하하 웃음을 터트렸다.
“당신도 칭찬할 줄을 아네요.”
아씨께서도 칭찬할 줄 아신다고?
반근은 이해가 안 가는 듯 고개를 돌려 소심을 쳐다보았다. 소심은 무슨 말인지 알아들은 듯 웃음을 보였다.
“정방, 이리 와요.”
진안 군왕이 동쪽 곁채 쪽으로 걸어가며 손짓하자, 정교랑이 따라갔다. 소심은 반근을 향해 눈짓하고, 함께 물러났다.
“방금 보니까 내가 지금 지내는 건물도 별로 안 좋은 거 같아요. 그냥 새로 짓는 게 낫겠어요. 이쪽에 가림벽을 치면 어떨까요?”
진안 군왕은 벌써 탁자 앞에 앉아 붓을 들고 싱글벙글한 표정으로 그림을 그리고 있었다. 정교랑은 옆에 앉아 조용히 이야기를 들으며 그림을 들여다보았다.
밝은 햇살 아래 젊은 남녀가 웃으며 대화를 나누고 있었다. 아리따운 여인과 준수한 사내의 모습은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소심의 입가에 번진 웃음기가 더욱 짙어졌다.
“아씨께서 사람 마음을 저렇게 잘 달래시는지 미처 몰랐네.”
소심이 소곤거리자, 반근이 소심을 힐끔 보며 혀를 찼다.
“아씨는 원래 그 누구보다 배려심 많은 분이야.”
배려심이 많아서, 무언가를 설득하거나 강권하지 않고, 상대가 어떻게 생각하든 따지거나 해명하지 않으시지.
그런 종류의 배려를 이해할 수 있는 사람은 많지 않지만.
“아씨께서 좋은 분이라고 생각하는 사람만이 아씨의 좋은 점을 느낄 수 있지.”
소심이 웃으며 반근의 코를 톡 쳐 주었다.
반근과 소심이 휘장을 들고 문밖의 회랑 아래로 나왔다. 안에서는 진안 군왕의 낭랑한 목소리가 끊임없이 들려왔고, 정교랑이 짤막하게 대답하는 소리도 이따금 들려왔다. 그래도 진안 군왕은 신이 나서 계속 이야기를 늘어놓았다.
같은 시각 진 노태야의 방도 화기애애한 분위기였다.
“할아버지, 이것도요. 그리고 이것도 태후마마께서 상으로 주셨어요.”
진단랑이 홍마노를 내려놓고 다른 함을 열었다. 그 안에는 싱싱한 과일이며 간식들이 한가득 들어 있었다.
“공주님들의 말씀으로는 새로 진상한 거래요. 저더러 같이 먹으러 가자고 하셨는데, 어머니 말씀이 기억났어요. 예의 바르게 초청한다고 해서 무조건 가면 안 된다고 하셨잖아요. 참, 태후마마께서 이것도 상으로 주셨어요.”
진단랑의 맑은 목소리가 방 안에 울려 퍼졌다.
“할아버지, 여기 수정병도 있어요.”
진 노태야는 진단랑의 말을 흐뭇한 표정으로 들었다. 이따금 맞장구를 치며 칭찬도 해 주고, 태후마마께 감사 인사는 올렸는지 물어보기도 했다.
“감사 인사도 올렸죠. 큰절을 올리며 머리를 조아렸어요. 조금의 실수도 없었다며 언니도 칭찬해 줬는걸요.”
진단랑이 흥분한 얼굴로 대답했다.
“우리 단랑이 그리 열심히 배웠으니, 실수할 리가 있나.”
진 노태야도 칭찬을 해 주자 진단랑은 헤헤 웃음을 터트렸다.
옆에 있던 시녀가 꿇어앉으며 물었다.
“아씨, 이것들을 정리할까요?”
진단랑은 흡족한 얼굴로 고개를 끄덕였다. 시녀가 정리하는 모습을 지켜보던 진단랑이 돌연 손을 뻗어 붙잡았다.
“조부님.”
진단랑은 고개를 들어 진 노태야를 보고는 잠시 머뭇거렸다.
“네 물건이니, 네가 하고 싶은 대로 하거라.”
진 노태야는 진단랑이 무슨 생각을 하는지 대번에 알겠다는 듯 자애롭게 웃어 주었다. 진단랑이 기뻐 어쩔 줄 몰라 하며 간식과 과일이 든 함을 가리켰다.
“그럼 이것들은 정 언니한테 보낼래요. 정 언니는 간식 만드는 걸 좋아하니까, 먹는 것도 좋아할 거예요.”
그러던 진단랑이 돌연 한숨을 쉬며 미간을 찌푸렸다. 그 모습은 익살스러워 보이기도 하고 어쩐지 안타까워 보이기도 했다.
“언니한테 들었는데, 군왕께서 태후마마의 심기를 건드렸다면서요. 태후께서 군왕 부부는 입궐도 하지 말라고 하셨대요.”
진 노태야가 웃음을 터트렸다.
“정 언니 쪽에선 그런 거 신경도 안 쓸 게다.”
옆에 있던 노복이 가벼운 헛기침을 하며 끼어들었다. 아무리 집 안이라 해도 아이 앞에서 그런 대역무도한 말을 입에 올리는 건 안 될 일이었다.
진 노태야는 웃으며 잠자코 입을 다물었다.
“주고 싶으면 갖다 주려무나.”
잠시 후 진 노태야가 말했다.
기뻐하며 시녀에게 어서 포장하라고 명하던 진단랑은 또다시 손을 멈추고 걱정스러운 표정을 지었다.
“그런데 조부님, 이래도 괜찮을까요? 태후마마의 물건을 정 언니한테 줬다고, 언니가 기뻐하지 않으면요?”
진 노태야가 진단랑을 쳐다보았다.
“태후마마께서 네게 상으로 주셨으니, 이젠 네 것이지 않느냐. 네 물건을 정 언니한테 주는 거야. 대답해 봐라. 정 언니가 기뻐하겠느냐, 기뻐하지 않겠느냐?”
진단랑이 활짝 웃으며 대답했다.
“기뻐하죠!”
진단랑이 시녀의 손에서 빼앗으려던 함을 얼른 제자리에 돌려놓으며 대답했다. 그러고는 정교랑에게 줄 선물을 진지하게 골랐다.
“이게 좋겠다. 이것도 좋고······.”
진 노태야는 그런 진단랑의 모습을 미소를 지으며 바라본 다음, 노복을 시켜 진단랑이 심사숙고 끝에 고른 선물을 진단랑의 시녀와 함께 가서 직접 전하도록 했다.
노복이 자리를 떴는데도 진단랑은 여전히 흥분을 감추지 못했다.
“언니는 저한테 어떤 맛있는 걸 줄지 모르겠네요.”
진 노태야가 하하 웃음을 터트리며 일부러 놀리듯 말했다.
“이제 보니 언니의 답례가 탐났던 게로구나.”
“그야 당연하죠. 제가 정 언니한테 잘해 주면, 정 언니도 저한테 잘해 주는걸요.”
진단랑이 헤헤 웃으며 대답하자 진 노태야도 미소를 지으며 고개를 끄덕였다. 그러던 진단랑이 또 갑자기 한숨을 푹 내쉬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