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9
교랑의경 69화
“큰형님, 셋째 아우가 정말 살아날까요?”
누군가가 물었다. 우두머리로 보이는 사내는 바닥에 앉아 있었다. 이불을 덮고 잠든 사내는 말이 없었다.
“이런 거로 정말 병이 낫는단 말입니까?”
또 다른 사내가 누워 있는 사내의 근처로 다가앉으며 이불을 걷어치웠다. 사내의 옷은 이미 여기저기 찢어져 있어 주요 부위만 간신히 가릴 정도였다. 겉으로 드러난 상처는 흰색과 초록색으로 얼룩져 소름이 끼쳤다.
“으, 추워.”
누군가가 중얼거렸다.
“춥긴 뭐가 추워. 지금이 어느 때…….”
이불을 젖히던 사내는 언짢은 듯 눈을 부릅뜨고 소리치다가 곧 멈칫하여 입을 다물었다.
“왜 그래?”
사내가 뭔가 이상하다는 걸 눈치챈 다른 사내가 물었다.
“추, 추워.”
사내가 말을 더듬었다.
“거참 성가시게 구시네!”
옆에 서 있던 사내가 퉁명스럽게 사내의 머리를 후려쳤다.
“내가 말한 거 아니라고!”
사내가 머리를 부여잡고 소리쳤다. 손에 들고 있던 솜이불이 떨어졌다.
“셋째야. 셋째가 춥다고 했어!”
방 안에 정적이 감돌았다. 우두머리인 사내가 얼른 자세를 고쳐앉더니 무릎에 얹은 손을 꽉 움켜쥐며 자리에 누운 사내를 뚫어져라 쳐다봤다.
“셋째, 좀 어때?”
사내가 떨리는 목소리로 물었다. 나머지는 전부 숨을 죽이고 눈을 동그랗게 뜬 채 누워 있는 사내에게 시선을 집중했다. 그 순간이 평생처럼 길게 느껴지기도 하고 한순간처럼 짧게 느껴지기도 했다.
“으, 목말라.”
목이 잠긴 목소리가 미세하게 들렸다. 방 안에서 천지를 뒤흔들 것 같은 소리가 터져 나왔다. 창문까지 덜덜 떨릴 정도라 밖에 있던 사람들은 놀라 기절할 뻔했다. 곧이어 우당탕 소리와 함께 사내 몇 명이 우르르 뛰쳐나왔다. 쾅 부딪친 문 한쪽이 꽈당 소리를 내며 바닥으로 뒹굴어 마당에 있던 사람들을 다시 한번 놀라게 했다.
“어, 엇, 이봐요. 문을 고장 내면 돈을 물어내야 해요!”
마당에 서서 사내의 생사를 궁금해하던 역졸이 손을 내저으며 소리쳤다. 크지 않은 역참이라 마당은 앞뒤로 있는 두 개가 전부였다. 앞쪽에서 난 시끌벅적한 소리는 자연히 뒤쪽 마당에서도 동시에 들렸다.
진 사노야가 벌떡 일어났다. 죽은 거야, 산 거야?
“노야, 그 사내들이 아씨의 방 앞에서 감사 인사를 올리고 있습니다. 깨어났대요.”
사환이 고개를 들이밀고 기쁜 얼굴로 소리쳤다.
과연? 정말로? 진 사노야가 성큼성큼 걸어 나왔다. 사내 세 명이 정교랑이 있는 방을 향해 절을 올리는 모습이 보였다.
“시끄럽게 하지 마요.”
시녀가 문을 열고 불쾌한 듯 목소리를 낮춰 말했다.
“아씨께선 아직 주무세요.”
사내들은 얼른 숨을 죽이고 입을 다물었다. 진 사노야가 앞쪽으로 걸어왔을 무렵 사내들이 묵은 방 입구는 사람들로 가득 차 있었다. 서로 안을 들여다보지 못해 난리였다.
“비켜요, 비켜. 썩 꺼지라고.”
뒷마당에서 달려온 사내들이 험상궂은 목소리로 소리치며 인파를 몰아낸 다음, 진 사노야를 안내해 방으로 모셨다. 멍석 위에 이불을 덮고 누운 사내는 미동도 않고 있었다. 두 사내가 서툰 솜씨로 물을 따랐다. 진 사노야가 가까이 다가가 살펴봤다. 창백한 안색의 사내는 두 눈을 꼭 감은 채 가쁜 숨을 몰아쉬고 있었다.
이게, 산 건가? 진 사노야의 마음을 읽기라도 한 듯 사내가 눈을 부릅떴다. 진 사노야는 저도 모르게 살짝 몸을 일으켰다. 차가운 눈에 빛이 감돌았다. 두 눈만 보더라도 죽음의 기운은 씻은 듯 걷혀 있었다.
진 사노야는 고개를 끄덕이며 시선을 돌렸다. 사내는 다시 눈을 감았다. 이쪽으로 돌아오는 진 사노야의 발걸음은 한층 가벼워져 있었고, 얼굴에도 희색이 감돌았다. 고개를 들어 보니 어느덧 두봉을 걸친 정교랑이 회랑 아래로 나오고 있었다.
“낭자, 잘 주무셨습니까?”
진 사노야가 웃으며 다가갔다. 두모를 쓰고 있어 얼굴을 반만 내놓은 정교랑의 입꼬리가 살짝 위로 올라가는 듯 보였다.
“출발해도 되겠죠?”
정교랑이 물었다. 종잡을 수 없는 물음에 진 사노야는 흠칫했다. 은근히 켕기는 마음이었다.
“잘 쉬셨습니까? 그럼 출발하죠.”
해가 높이 솟았을 무렵, 마당의 소란은 잠잠해져 있었다. 사내의 상태가 어떤지 직접 확인하진 못했으나 나머지 사내들이 기뻐하는 모습만으로도 사람들은 그 사내가 살아났다는 걸 알았다. 마침내 일단락된 이 기이한 일은 화젯거리로 삼기에 충분했고, 다들 흡족한 마음으로 각자 갈 길을 갔다.
역참 역시 새로운 손님을 맞느라 분주하여 어제의 일은 벌써 잊히고 있었다. 쫓아 나온 사내들이 마차로 가는 정교랑을 불러세웠다. 사내들은 절을 올려 감사 인사를 표한 후 송구하다는 표정으로 고개를 들었다.
“저희가 돈이 없어 치료비는 외상으로 달 수밖에 없습니다. 아씨께서 오신 곳을 알려 주십시오. 추후 반드시 갚으러 가겠습니다.”
사내의 말에 정교랑은 아, 하는 소리를 냈다.
“돈이 없다고요?”
정교랑이 물었다. 아씨의 딱딱한 목소리가 비꼬는 소리로 들리자 세 사내는 더욱 깊이 고개를 숙였다.
“반드시 갚겠습니다.”
그중 한 사내가 목을 쳐들고 소리쳤다. 부끄러움 때문인지 분노 때문인지 얼굴이 시뻘게져 있었다.
정교랑이 고개를 돌려 사내를 쳐다보며 말했다.
“돈이 없는 게, 무슨 자랑스러운 일도 아닌데, 이렇게 당당할 건, 없잖아요.”
자리에 있던 사람들이 모두 멈칫했다. 말이 너무……. 거봐요, 거보라고. 이 여자가 이렇게 괴팍하다니까! 사람들 뒤에 선 조 집사가 속으로 소리쳤다. 세 사내 역시 멈칫했다. 방금 나서서 말했던 그 사내는 목까지 시뻘게져 있었다.
“저, 그게, 그게 아니고요.”
사내가 쩔쩔매며 말했다.
“그랬어요.”
정교랑의 대꾸에 주변 사람들은 또다시 멍해졌다.
“아니, 돈이 있다고 사람을 업신여기면 되겠습니까.”
평소 여자와 대화할 일이 많지 않았던 사내인지라 이렇게 어린 낭자와 말씨름을 하는 건 더 말할 것도 없었다. 사내는 열도 받고 답답하기도 해서 어찌할 바를 몰랐다.
“돈이 없다고 사람을 업신여겨서도 안 되죠.”
정교랑은 여전히 뻣뻣한 목소리로 말했다. 주변 사람들은 한숨이라도 내뱉으려는 듯 고개를 들어 하늘을 봤다. 어린애처럼 막무가내로군. 진 사노야는 이 정씨 집안 아씨가 전에 바보였다는 사실에 문득 믿음이 갔다. 바보의 병도 나을 수 있다는 점은 여전히 믿어지지 않았지만.
“봉추!”
우두머리인 사내가 그 사내의 머리를 후려쳐 나동그라지게 했다. 사내는 정교랑을 향해 다시 절을 올렸다.
“크나큰 은혜에는 감사하다는 말을 하지 않는 법이죠. 이 은혜는 꼭 기억했다가 반드시 갚겠습니다. 아씨의 존함을 알려 주십시오.”
이때 저쪽이 시끄러워졌다. 두 사내가 널빤지를 들고 급히 달려왔다.
“큰형님, 큰형님.”
사내들이 소리쳤다. 그 광경에 사람들은 내심 놀랐다. 저 병자가 잘못된 건가? 세 사내 역시 벌떡 일어섰다.
“무슨 일이야?”
사내들이 입을 모아 물었다. 가까이 달려온 사내가 숨을 헐떡였다.
“셋째 형님이 직접 얼굴을 뵙고 감사 인사를 드리겠대요.”
사내들이 말했다. 사람들은 그제야 누워서 눈을 감고 있던 사내가 널빤지를 내려놓자 일어나 앉으려고 버둥거리다가 도로 눕는 걸 발견했다. 사내들이 누워 있는 사내를 둘러쌌다.
“목숨을, 얻었는데, 은인의 얼굴도, 못 뵈면, 사람으로서 어찌…….”
널빤지 위에 있는 사내가 잠긴 목소리로 숨을 헐떡이며 말했다.
“형제를 대신해 아씨께 다시 한번 인사 올리겠습니다.”
큰형님이라 불린 사내는 얼른 다시 무릎을 꿇고 정교랑을 향해 머리를 조아리며 절을 세 번 올렸다. 정교랑이 그 절을 받았다.
“돈이 없다고 했죠?”
이어 정교랑이 물었다. 아직도 돈 얘기야? 모두가 멈칫했다. 이번엔 진 사노야마저 더는 두고 보기 힘든지 나서려고 했다. 그런데 정교랑이 고개를 들어 주변을 둘러보며 무언가를 찾는 듯했다.
“주씨 가문의, 그 집사는요?”
정교랑이 물었다. 모두 멈칫해서 조 집사를 쳐다봤다. 사람들 뒤에 숨어 있다고 안전한 건 아니었군. 왜 또 날 찾아? 조 집사가 얼른 다가왔다.
“아씨?”
조 집사가 입을 열었다.
“돈이 없으면, 저자의 상태를 원상태로 돌려놓을까요?”
돈을 주면 물건을 내주고, 돈이 없으면 물건을 도로 회수하는 법. 돈이 없다면 고쳐 놓은 병도 다시 원상복구를 해야 한다. 당연한 이치이자 상도덕이고 주씨 가문의 전통이었다. 조 집사가 목소리를 낮춰 말하긴 했으나 주변 사람들은 똑똑히 들었다. 사내들은 안색이 싹 변해 분통을 터뜨렸다. 이거 봐. 하여간 있는 놈들은 사람 괴롭히는 방법도 가지가지라니까.
“주씨 가문에서는, 가정교육을 그렇게 하나?”
정교랑이 조 집사를 보며 딱딱한 목소리로 말했다. 조 집사는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후려쳤다. 망할, 쓸데없이 말참견은!
“저들한테 돈이 없다니, 자네가, 저들에게 주게.”
정교랑의 말에 모두가 멍해졌다. 정확히 말하자면 더 멍해질 것도 없는 상태였다. 아씨의 말에 온갖 생각이 다 들며 만감이 교차했다. 조 집사는 토 한마디 달지 않고 허리춤에 있던 전대를 꺼내 사내에게 건넸다.
“어찌, 이러십니까. 어찌 아씨의 돈을 받겠습니까.”
사내는 화들짝 놀라 손을 내저으며 사양했다.
“저자의 목숨을 구해 놓긴 했지만, 어떻게 될지는, 요양에 달렸어요. 고기와 생선을 먹으며 몸보신을 해야 하는데, 돈이 없다고, 하지 않았어요? 요양을 어떻게 하려고요?”
연신 돈이 없냐고 물은 게 이것 때문이었군. 사내들은 가슴이 화끈거려 얼굴까지 빨개졌다.
“이 봉추가 아씨께 절을 올리겠습니다.”
사내는 손을 들어 자신의 뺨을 매섭게 후려치면서 털썩 소리가 나도록 무릎을 꿇고 머리를 쾅쾅 찧으며 절을 올렸다. 어찌나 세게 머리를 박았던지 근처에 서 있던 사람들에게 땅이 울리는 게 느껴질 정도였다. 곧 사내의 이마에 피가 맺혔다.
정교랑은 아랑곳하지 않고 시녀의 부축을 받아 마차에 올랐다. 조 집사 역시 이곳에 한시도 더 있고 싶지 않은 듯 말에 올랐다. 이 여인이 과연 신비로운 의술을 가졌다는 사실을 확인한 진 사노야 역시 서둘러 경성으로 돌아가 부친을 치료하고 싶은 마음뿐이었다. 자리에 있던 모두가 채비를 서두르더니 곧 행렬이 빠르게 빠져나갔다.
행렬이 떠나고 나자 역참은 대번에 조용해졌다. 사내들은 그 자리에 서서 어느덧 까만 점이 되어 사라져가는 행렬을 바라봤다. 우두머리인 사내가 고개를 숙여 손에 든 전대를 바라보더니 옆에 있던 사내에게 건넸다.
“챙겨라.”
“곧장 성에 들어가 소고기랑 양고기, 생선 다 사 올게요.”
사내가 대답과 함께 자리를 박차고 뛰어나가려는데 우두머리인 사내가 붙잡았다.
“그거 말고 마차랑 말을 구해 와.”
사내가 말을 이었다.
“제일 좋은 거로.”
모두가 멈칫했다.
“큰형님, 길을 서두를 필요 없잖습니까. 셋째의 병부터 치료해야죠.”
“병을 치료해야 하니 길을 서둘러야 해.”
사내가 대로를 쳐다보며 말했다.
“좋은 거 먹고 마시는 것보다 저 아씨를 따라가는 게 더 마음이 놓여.”
저 아씨로 말할 것 같으면 다 죽어가던 사람을 하룻밤 사이에 살려 놓은 분이 아닌가. 아씨를 따라가는 게 세상 최고의 양약이리라. 사내들은 그 의미를 퍼뜩 깨달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