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90
교랑의경 690화
“몹시도 악랄한 마적들이로구나. 아주 간이 배 밖으로 튀어나왔어!”
이 일에 대해 미리 귀띔을 들은 관졸들은 허리에 손을 올리고 의분에 차서 소리쳤다.
“아니다, 아니야!”
청원 현령이 갑자기 다급하게 외쳤다.
멀리서 말굽 소리가 들려오자, 사람들이 고개를 들고 앞을 내다보았다. 열댓 명은 되어 보이는 사람들이 매서운 기세로 달려오고 있었다.
“뭐 하는 자들이오!”
질서를 유지하던 관졸이 허리춤에서 칼을 꺼내 들어 허공에 높이 치켜들고 외쳤다. 하지만 맞은편에서 오던 열댓 명의 사람은 여전히 속도를 줄이지 않고 달려왔다.
무리 중 가장 선두를 달리던 사람이 길을 막는 관졸을 향해 채찍을 세게 휘둘렀다. 관졸이 악 소리를 지르며 옆으로 나자빠졌다.
“청원현!”
가장 앞서 있던 사람이 화가 잔뜩 난 얼굴로 불안에 떨고 있는 청원 현령을 가리켰다.
“지금 여기서 뭐 하는 것이냐! 누가 여길 오라고 했어!”
누가 나더러 여길 오라고 했냐고? 당신들이 오라고 했잖아!
청원 현령이 막연한 표정으로 말 위에 올라타 있는 사람을 바라보았다. 멀리서 북과 징이 울리는 소리와 관졸들의 외침이 들려왔다.
“관부에서 살인을 저지른 마적을 소탕하고자 하오니, 관계없는 자들은 자리를 피하시오.”
북과 징이 울리는 소리가 차츰 멀어지고, 푸르른 새벽빛이 걷히며 환한 아침이 찾아왔다.
말 위에 타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더욱 일그러졌다.
“이런 빌어먹을 청원현!”
말에 타 있던 사람 중 한 명이 채찍을 매섭게 내리쳤다.
“당초 우리가 네놈에게 뭐라고 했느냐! 부르지 않는 한 움직이지 말라고 했잖아! 그런데 지금 여기서 뭘 하고 있는 거냐고! 우리 관인께서는 원수에게 죽임을 당하신 거지, 마적에게 죽임을 당한 게 아니란 말이다!”
채찍을 맞은 청원 현령이 뒤로 고꾸라졌다. 주위에 있던 관졸들은 놀라서 눈을 휘둥그레 뜰 뿐, 아무도 앞으로 다가갈 엄두를 내지 못했다.
“대인, 대인.”
청원 현령이 손으로 바닥을 짚고 몸을 일으켰다. 그가 말 위에 있는 사람들을 향해 외치며 자신의 뒤를 가리켰다.
“오늘 새벽에 대인 쪽 사람이 와서 제게 소식을 알렸습니다. 바로 여기 있······.”
청원 현령이 고개를 돌렸다. 하지만 그의 시야에 들어오는 이들은 자신의 가노와 시종, 그리고 관아에서 데려온 관졸들뿐이었다.
오늘 새벽에 고씨 가문의 문양이 찍힌 서신을 들고 자신의 집에 찾아와 소식을 알렸던 남자는, 애초에 존재하지도 않았던 듯 언제 자신의 곁에서 사라졌는지 알 수 없었다.
큰일 났구나. 내가 계략에 빠져들었어!
떼죽음을 당하는 사람 중에는 고 관인과 그의 사람들뿐만 아니라, 나까지 포함되어 있었던 거였어!
청원 현령이 땅바닥에 털썩 무릎을 꿇었다.
“큰일 났구나.”
청원 현령이 한 방향을 가리키며 관졸들에게 지시했다.
“어, 어서 쫓아라.”
어서 경조부로 소식을 전하러 간 사람을 쫓아라!
어서 쫓아라! 빨리! 못 가게 막아야 한다!
말 한 필이 큰길 위를 질주하며 사방으로 흙탕물을 튀겼다.
이때 쉭 소리가 들려왔다. 말 위에 있던 사람은 목에 화살이 꽂힌 채 비명 한 번 지르지 못하고 말 아래로 떨어졌다. 깜짝 놀란 말이 울부짖으면서 방향을 틀고 왔던 길로 되돌아갔다.
길가 큰 나무 뒤에 숨어 있던 세 사람이 재빨리 다가왔다. 그중 한 명이 말에서 떨어진 관졸의 옷을 벗겨 자신의 몸에 걸치고, 그의 품에서 서신 한 장을 꺼냈다. 어둑한 빛에 서신을 비춰보자, 그 위에는 청원현의 붉은 관인이 찍혀 있었다. 관졸의 옷으로 갈아입은 사내가 안도의 한숨을 쉬고 재빨리 말 위로 몸을 날려 질주하기 시작했다.
나머지 두 사람은 관졸의 시체를 길가로 끌고 가서 미리 파놓은 구덩이에 던지고 잽싸게 흙을 덮은 뒤 말을 타고 앞서간 사람을 따라갔다.
동쪽 하늘이 밝아질 무렵, 경성의 거대한 성문이 삐그덕 소리를 내며 천천히 열렸다. 일찌감치 나와 성문 앞에서 기다리고 있던 백성들이 앞뒤를 다투며 안으로 들어가려고 서로를 재촉했다.
“밀치지 마시오!”
수문장과 위병들이 호통을 치면서 수상쩍어 보이는 사람들을 골라내 검문했다. 주복은 병사들을 데리고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 앞에는 따뜻한 탕을 파는 점포가 있었지만, 이제 막 야간 장사를 마친 터라 자리를 정리하는 중이었다.
주복이 노점으로 다가가 자리에 앉았다.
“저기, 나리.”
“주 대인?”
노점의 주인장과 병사들이 의아한 얼굴로 주복을 불렀다.
“다른 건 필요 없으니, 탕 한 그릇만 주시오.”
주복이 주인장에게 말하고는 병사들을 향해 고개를 돌렸다.
“알아서들 먹어라. 다 먹은 뒤에는 집으로 가거나, 다른 곳으로 새지 말고 즉시 군영으로 복귀하고.”
병사들이 헤헤 웃으면서 알겠다고 대답한 뒤, 각자 먹고 싶은 것을 찾아 흩어졌다.
손님이 벌써 자리에 앉은 이상, 주인장으로서는 차마 내쫓을 수 없었다. 게다가 성을 순찰하는 관병을 상대로 괜히 소란을 피웠다가는 골치만 아파진다는 생각에 주인장은 군말 없이 알겠다고 대답했다. 행여 잘못 건드리면, 무슨 구실이든 갖다 붙여 노점을 뒤엎어 버릴 수 있기 때문이었다.
주인장이 점원에게 따뜻한 탕 한 그릇과 소금에 절인 생선 요리 한 접시를 내오라고 시켰다.
“이건 삼치입니다. 진 상공 댁의 참새 요리 비법으로 만든 것이니, 한번 맛보시지요.”
주인장이 웃으면서 말했다.
진 상공 댁의 참새 요리라······.
주복이 접시 위에 놓인 생선을 보다가 피식 웃었다.
과로신선, 낙득자재, 참새, 삼치.
경성의 새로운 먹거리들을 참 많이도 만들어 냈네.
주복이 젓가락을 들고 생선 살코기를 조금 떼어내 한 입 먹고는 무의식적으로 성문 쪽을 내다보았다.
소 떼와 양 떼가 안으로 들어오던 참이라, 성문 앞은 다소 소란스러웠다.
“급보입니다. 급보!”
누군가가 말을 타고 빠른 속도로 성문을 향해 달려왔다. 급보라는 말과 말을 탄 사람의 관졸 복장을 본 위병들은 재빨리 길을 터주었다.
“청원현에서 온 급보요!”
관졸이 가축들로 인해 왁자지껄한 성문을 지나며 큰소리로 외쳤다. 길가에 있던 사람들이 관졸을 쳐다보았다.
“마적 떼가 재물을 약탈하고 살인을 저질렀소!”
주복이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길가를 따라 질주하는 관졸을 바라보았다. 행인들이 수군대기 시작했다.
“마적?”
노점 주인이 몸을 일으키고 관졸이 떠난 방향을 바라보았다. 그가 혀를 차면서 중얼거렸다.
“근래에 마적이 판을 친다고 들었는데, 역시 일이 났나 보구먼.”
주인장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자리를 박차고 일어난 주복은 말을 타고 떠나갔다.
“나리, 아직 계산 안 하셨는데요.”
주인장이 서둘러 주복의 뒤를 몇 걸음 따라가며 외쳤지만, 주복은 눈 깜짝할 사이에 멀어진 후였다. 주인장은 고개를 절레절레 내저으며 오늘은 재수가 없다고 투덜댔다.
이른 아침부터 길가에 울려 퍼진 관졸의 외침은 금세 경성 곳곳으로 흩어졌다.
“급보요! 청원현에서 온 급보! 마적이 재물을 약탈하고 살인을 저질렀소!”
유흥가에서 걸어 나온 사내들이 깜짝 놀라 몸을 살짝 떨었다. 밤새 질펀하게 논 터라, 사내들은 다리에 힘이 풀려 하마터면 바닥에 주저앉을 뻔했다.
마적이라니!
멜대를 메고 음식을 팔러 다니는 장수들이 서둘러 길을 피하다가, 관졸이 외친 소리 때문에 놀라서 멜대를 바닥에 떨어뜨렸다.
정말로 마적이 있나 보네!
관졸이 곳곳을 누비며 외치자, 조용했던 경성의 아침이 순식간에 시끌벅적해졌다.
“무슨 일이냐? 새벽 댓바람부터 관아 앞이 소란스럽다니.”
야간 당직을 끝낸 관리가 미간을 찌푸리며 마차의 휘장을 들어 올리고는 밖을 내다보았다.
“대인, 청원현에서 온 급보입니다. 청원현에 마적이 나타나 재물을 약탈하고 살인을 저질렀답니다.”
마차 앞에 있던 시종이 서둘러 관리에게 다가가 목소리를 낮추고 말했다.
마적? 산적과 마적이 있는 게 하루 이틀도 아니고.
“별일도 아닌 거 가지고 호들갑은. 청원현은 마적 따위에 저리 겁을 먹었단 말이냐?”
관리가 언짢은 기색으로 대꾸했다.
“대인, 책임을 피하려고 저러는 것이겠지요. 어쩌면 마적이 대단한 인물을 죽여서, 괜히 꾸물거렸다가는 자기들도 벌을 받을지 모른다는 걱정을 했을 수도 있고요. 어찌 됐든, 사건이 발생한 곳이 청원현이니까요.”
시종이 말했다.
하급 관리들은 이래서 안 돼. 무슨 일이 났다 하면 사건을 은폐하거나 책임을 전가하려고만 하니, 쯧.
관리가 혀를 차며 고개를 젓다가 멈칫했다.
청원현, 그리고 대단한 인물?
날짜를 꼽아 보자면, 지금 이 시기에 청원현을 지나갈 만한 대단한 인물은······.
“큰일 났다!”
순식간에 얼굴이 새하얗게 질린 관리가 소리쳤다.
관졸이 급보를 외치며 문 앞을 지나가자, 세 막료는 오금이 저려 멍하니 서 있었다.
얼마나 완벽한 계획이었고, 얼마나 대단한 수완인가. 머리털 하나만 건드려도 온몸을 움직일 수 있다더니, 손만 갖다 대도 줄줄이 풀릴 일이었군.
청원현에서 온 관졸이 급보를 외치는 광경을 일찌감치 상상한 그들이었지만, 상상 속 자신들의 모습은 지금과 사뭇 달랐다. 상상 속에서 그들은 기쁨의 환호를 하며 승리를 만끽하고 있었다.
모든 게 다 바라던 대로 이뤄졌군. 우리의 바람이 아니라, 상대의 바람대로 말이야.
“대단하구나. 대단해!”
막료들의 등 뒤에서 갑자기 고능준의 목소리가 들려왔다.
문가에 서 있던 사람들이 정신을 차리고 재빨리 고개를 돌려보자, 언제 나왔는지 모를 고능준이 붉으락푸르락한 얼굴로 두 눈을 부릅뜨고 있었다.
대단하구나. 대단해! 참으로 대단한 진안 군왕이로다!
자기 아들이 어떻게 죽었는지를 듣는 아비보다 더 비통한 사람이 있으랴?
게다가 아들의 죽음을 밝힐 진상을 제 손으로 덮어 버린 아비의 절망감은, 대체 어떤 말로 설명할 수 있을까?
갑자기 고능준은 지난번 일이 떠올랐다.
이 태의에게서 몰래 훔쳐 온 향 때문에 자기 사람들을 몇 명씩이나 잃었지만, 찍소리 한 번 내지 못하고 울분을 삼켜야만 했다.
그리고 이번에는 남을 죽이려다가 도리어 죽임을 당했다. 누군가에게 맞아 어금니가 깨져도 그 어금니를 목구멍으로 삼킬 수밖에 없는 꼴이 된 것이다.
대단하구나! 진안 군왕, 참으로 대단해!
아니지, 아니야.
진안 군왕은 절대 이 정도까진 못 할 거야. 이렇게 깔끔하고 철두철미한 수법을 쓰는 자는, 오직 그 여인밖에 없지!
정! 씨!
갑자기 고능준은 목구멍이 뜨거워지는 느낌이 들었다. 곧이어 그가 기침을 하며 피를 토했다.
마당에 날카로운 비명들이 울려 퍼졌다.
바닥에 토해진 붉은 색의 선혈을 보며, 막료들의 표정 또한 복잡해졌다.
또 피를 토하셨군.
지난번에 피를 토하셨을 때가 불과 얼마 전인데. 그럼, 또 세 번째로 피를 토하실 날도 올까?
막료들의 모골이 송연해졌다.
대체, 일이 어쩌다 이렇게 된 거야?
정오가 될 무렵, 집으로 황급히 돌아온 황씨가 안아 달라며 떼를 쓰는 소보아를 뒤로하고 대청 쪽으로 뛰어갔다.
“여보, 여보.”
치마를 살짝 들고 뛰어가던 황씨가 문턱을 채 넘어서기도 전에 소리쳤다. 문 앞에 있던 시녀들이 서둘러 황씨를 향해 예를 올렸다.
“노야께선 지금······.”
시녀들이 말을 끝내기도 전에 대청 안으로 들어선 황씨가 소리쳤다.
“여보, 큰일 났어요. 지금······.”
대청 안에 있던 범강림과 젊은 사내가 황씨를 쳐다보았다. 손에 든 술잔을 보아하니, 두 사람은 술을 마시고 있던 참인 듯했다.
황씨가 멈칫하고는 민망해하며 서둘러 예를 표했다.
“주 공자님.”
주복이 고개를 끄덕이며 답례하고는 손에 쥔 술잔을 단숨에 들이켰다.
“먼저 가 보겠소.”
주복이 말했다. 범강림이 자리에서 일어나 주복을 배웅하자, 주복은 황씨를 지나쳐 밖으로 나갔다.
“여보, 방금 거리에서 들었는데, 청원현에 마적 떼가 나타나 사람들을 죽였대요. 어찌나 시끌벅적하던지, 오성병마사의 병사들까지 나섰더라니까요? 날짜를 셈해 보니, 시누이도 그쯤 갔을 텐데, 사람을 시켜서 한번 알아보는 게 어때요?”
황씨가 범강림에게 다가가서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그러자 범강림이 밖을 가리키면서 대답했다.
“주 공자가 이미 가서 물어봤소. 성문에서 급보를 전하는 사람을 마주치게 되어, 경조부로 가 알아봤다더군.”
“정말로 마적이 난리를 친 거래요?”
황씨가 서둘러 물었다. 범강림이 알 수 없는 표정을 지으며 대답했다.
“그렇소. 그리고 정말 많은 사람을 죽였어.”