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699
교랑의경 699화
“마차에서 내리라고 할까?”
진호가 물었다. 주복이 냉소를 짓고는 마차에서 시선을 거두고 진호를 쳐다보았다.
“내가 너를 모를까.”
언제나 만반의 준비를 갖춘 후에야 행동하는 진호라는 사실을 잘 아는 주복은, 진호가 이미 모든 대비를 끝냈기에 마차 안을 들여다보라는 말을 했다는 것 또한 잘 알고 있었다.
진호가 웃었다.
“나를 아직 기억하고 있었군.”
주복이 무슨 말을 하기도 전에, 진호는 말에 박차를 가했다.
“오밤중이니, 시간 끌지 않고 들어가겠네. 나중에 다시 이야기하지. 그럼 이만.”
주복이 길을 비키자, 진호와 마차는 그의 옆을 지나쳐서 성문 안으로 들어갔다. 성문을 지키는 위병들은 마차를 검문하려는 기색을 보이지 않고 그들을 안으로 들여보낸 뒤 성문을 닫았다.
성문을 지나던 진호의 얼굴에서는 웃음기가 가시지 않았다.
이런 우연이 있나. 여기서 주육을 마주칠 줄이야.
주육이 금군 병영에서 눈칫밥을 먹느라 밤마다 성벽 순찰을 돈다는 말이 진짜였나 보군. 저놈 성질머리로 그런 괴롭힘을 참고 있다니.
참고 있다고?
순간 진호의 웃음이 굳어졌다. 곧이어 그가 말고삐를 잡아당겼다. 그의 뒤를 바짝 따라오던 마차가 급히 정차했다.
“공자님?”
마부가 조용히 물었다.
진호가 고개를 돌리고 성문을 바라보았다. 굳게 닫힌 성문이 성 밖의 풍경을 차단했다. 마차에 달린 등불과 성문의 횃불에 비친 진호의 표정이 급격히 어두워졌다.
우연이라고? 이 세상에 단순한 우연 따위는 없지.
성문 밖에 있던 병사들은 말을 탈 준비를 했다. 그때, 병사 한 명이 손으로 어딘가를 가리키면서 엇, 하는 소리를 냈다.
“신기하네. 이 시간에 누가 또 오나 봅니다.”
주복이 눈을 가늘게 뜨고 앞을 내다보자, 말굽 소리가 점점 더 커졌다.
“한두 명이 아닌가 본데요?”
병사가 중얼거렸다.
눈 깜짝할 사이에, 횃불에 비친 사람들은 금세 성문 앞까지 달려왔다. 말을 탄 사람은 총 일곱 명이었고, 가장 앞선 사람은 뒤쪽 무리와 거리가 꽤 벌어져 있었다. 두봉이 바람에 흩날리고, 두모 아래로 말을 탄 사람의 얼굴이 어렴풋하게 보였다.
“어라, 여인이잖아?”
귓가에 병사들의 놀란 목소리가 들려왔다.
주복이 눈을 휘둥그레 뜨면서, 저도 모르게 말고삐를 세게 쥐었다.
왔구나!
말과 사람들이 가까이 다가오자, 주복은 말을 이끌고 앞으로 다가갔다.
“성문 열어요.”
정교랑이 단도직입적으로 말했다. 뒤따라오던 진안 군왕이 정교랑의 옆에 멈춰 섰다. 두모 아래로 굳어지는 주복의 표정이 보일 듯 말 듯 했다.
이 여인, 경성에도 자신의 사람을 남겨 두었군.
“성문을 열어라.”
주복이 말했다.
고 선생이 서둘러 앞으로 나아가던 찰나, 주복이 고개를 치켜들고 성문 위에 있는 누군가의 이름을 불렀다. 한발 늦긴 했지만, 고 선생도 이름 하나를 뱉어냈다.
성문 위에서 동시에 이름이 불린 두 사람이 서로를 마주 보았다. 자기 사람이라는 것을 확인한 두 사람은 재빨리 성문 아래로 뛰어 내려갔다.
“부(付) 낭중(郞中).”
성문에서 뛰어 내려온 두 사람이 위병들에게 문을 열라고 지시하려던 찰나, 누군가가 뒤에서 두 사람 중 한 명의 이름을 불렀다. 두 사람이 흠칫 놀라며 몸을 살짝 떨고는 고개를 돌렸다.
조금 전 성안으로 들어갔던 진호가 다시 성문 앞으로 되돌아왔다. 진호의 뒤로 그가 불러온 순성갑기 병사들이 보였다.
“진 대인, 진안 군왕께서 경성으로 돌아오셨습니다.”
감문관(監門官) 부 낭중이 예를 표하며 말했다.
진호가 천천히 성문 앞으로 다가갔다. 횃불에 비친 진호의 얼굴에 의미를 알 수 없는 미소가 떠올랐다.
“진안 군왕이 경성으로 돌아왔다고? 태후마마의 교지가 있었던 것이오? 아니면, 중서문하성에서 군왕을 모셔 오라고 했소?”
진호가 나지막한 목소리로 물었다.
“진 대인, 바로 엊그제 태후마마의 교지가 있었습니다.”
부 낭중과 함께 성문 아래로 내려온 사내가 말했다. 진호가 너털웃음을 터트렸다.
“태후마마께서 교지를 내리셨지만, 진안 군왕이 태후마마의 명을 거역했네. 그때는 명을 거역해 놓고, 지금에서야 다시 경성으로 돌아온다니, 저의가 뭐지?”
진호가 두 사내를 가리키며 호통쳤다.
“저 둘을 체포하라!”
진호의 뒤에 서 있던 순성갑기 병사들이 재빨리 두 사내를 체포했다. 성문 안쪽에서 들려오는 소란을 들은 주복 등의 표정이 점점 더 어두워졌다.
“성문을 열어라!”
주복이 말을 끌고 앞으로 나아가서 소리쳤다.
“주복, 이 사람아. 지금 성문을 여는 건 적절치 못해. 조금만 더 기다려 보게나.”
익숙한 목소리가 성문 안쪽에서 새어 나왔다. 진호의 말을 들은 주복은 온몸이 굳어 버렸다.
“큰일이다. 진호에게 발각되었어.”
주복이 고개를 돌리고 정교랑을 향해 말했다.
“진호가 어떻게 알게 된 거죠?”
정교랑이 물었다.
“조금 전에 마차 한 대를 끌고 성안으로 들어갔어. 어딘가 수상해 보이기도 했고.”
주복이 대답했다. 정교랑이 고개를 들고 성문 위를 올려보았다. 두모가 바람에 날려 벗겨지자, 정교랑의 얼굴 위로 일렁이는 횃불이 비쳤다.
“어떡하죠? 누군가가 일부러 성문을 막는다면, 들어가기가 쉽지 않을 겁니다.”
고 선생이 걱정스러운 얼굴로 말했다.
“쳐들어갈까?”
주복이 정교랑에게 물었다. 주복의 말을 들은 고 선생의 심장이 빠르게 뛰기 시작했다.
“왕비 전하, 경성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저희에게 지금 무엇을 숨기고 계시는 겁니까? 말할 수 없는 일이라도 있는 겁니까? 저희는 부인을 믿습니다. 부인께서 쳐들어가겠다고 하신다면, 저희도 응당 쳐들어가겠으나, 최소한 저희가 알고 있어야 하는 것은 알려 주셔야지요. 통행 허가도 없이 이대로 새벽에 쳐들어갔다가는, 종친 신분인 진안 군왕 전하께 역모의 대죄가 씌워질 것이 뻔합니다!”
고 선생이 다급하게 말했다.
“내 생각엔, 경성에 무슨 일이 난 것 같아서요.”
정교랑이 말했다.
“부인의 생각에, 무슨 일이 난 것 같아서라고요? 왕비 전하! 지금 무슨 농담을 하시는 겝니까!”
“내 누이는 농담을 하지 않습니다!”
주복이 소리쳤다.
“주 대인이 여기서 기다리고 있던 것 또한, 우리가 오리라 추측해서입니까?”
고 대인이 냉소를 지으며 말을 이었다.
“그렇다면 추측치고는 꽤 정확하십니다.”
성문 앞의 분위기가 얼어붙었다.
정교랑은 고 선생의 말에 더는 대꾸하지 않고 말을 탄 채 뒤쪽으로 한걸음 물러섰다. 정교랑이 성벽으로 시선을 옮겼다.
성벽 위에 한 사람이 나타나고, 횃불 두 개가 위에서 정교랑의 얼굴을 비췄다. 진호가 두봉을 휘날리며 정교랑을 내려다보고 있었다.
이렇게나 빨리 다시 보게 될 줄이야.
진호가 눈을 질끈 감았다가 뜨면서 다시 정교랑을 내려다보았다.
지금은 정말로 마주치고 싶지 않은데.
“진안 군왕비, 성벽을 넘어서라도 성안으로 들어오려 하신다면, 신 등은 무례함을 보일 수밖에 없습니다.”
진호의 말이 떨어지기가 무섭게, 성벽 위에 있던 위병들이 정교랑 일행을 향해 활시위를 겨눴다.
“진호, 네놈이 감히!”
주복이 재빨리 정교랑의 앞을 막아서고는 눈썹을 치켜세우며 성문을 향해 삿대질을 했다. 진호가 쓴웃음을 보이고 천천히 말했다.
“감히 그렇게 하신다면, 신 또한 그럴 수밖에 없습니다.”
성문 안팎으로 정적이 흘렀다. 매섭게 불어오는 밤바람에 횃불은 더욱 거세게 타올랐다.
“성문을 열어라! 성문을 열어라!”
성문 안쪽에서 다급한 말굽 소리와 외침이 들려왔다.
“태후마마께서 급히 교지를 내리셨습니다!”
지금 시간에 태후마마께서 급하게 교지를?
진호가 경악한 얼굴로 몸을 돌렸다. 두 내시가 말을 타고 성문을 향해 다급히 달려오고 있었다.
“무슨 교지란 말입니까?”
진호가 물었다.
내시들은 성문 앞에 선 진호와 한쪽 옆에서 병사들의 손에 붙잡혀 있는 두 감문관을 보고는 놀란 기색으로 다시 진호를 쳐다보았다.
“공공, 저 두 사람이 이 시간에 멋대로 성문을 열려 하기에, 신이 부윤 대인의 명을 받아 체포했습니다.”
진호가 문서 한 장을 꺼내어 내시들을 향해 펼쳤다.
일을 할 땐 철두철미하게 해야지. 원칙을 어긴단 말은 남들이나 듣는 소리지.
그러나 두 내시는 진호를 무시하고 고개를 들어 소리쳤다.
“어서, 어서 성문을 열어라!”
“공공들께서는 이 야심한 시각에 대체 무슨 교지를 전달하시는 건지요?”
진호가 자리를 비키지 않고 재차 물었다. 격노한 두 내시가 진호를 향해 호통쳤다.
“진 관인, 그건 진 관인이 함부로 물을 질문이 아닐 텐데요?”
성문 밖에서는 성문 안쪽의 소란이 자세히 들리지 않았다.
말을 탄 채 조용히 뒤로 물러난 정교랑은, 말고삐를 세게 움켜쥐고 성문을 노려보았다.
“안 돼. 너무 위험해.”
정교랑이 뭘 하려는지 단번에 눈치챈 주복이 재빨리 정교랑을 말렸다.
“정 낭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거냔 말입니다!”
고 선생이 정교랑을 향해 큰 소리로 외치며 말을 끌고 달려왔다. 고 선생은 부인이나 왕비가 아니라, 정 낭자라고 외쳤다.
주복과 정교랑이 동시에 고 선생을 쳐다보았다.
정교랑과 주복, 그리고 고 선생은 어느새 진안 군왕 등과 일정한 거리가 벌어졌다. 그리고 진안 군왕은 어둠 속에 서서 잠자코 그들을 쳐다보고 있었다.
청원 역참에서 떠난 뒤로부터, 진안 군왕은 단 한마디도 하지 않았다. 주복이 정교랑과 무슨 대화를 하든, 고 선생이 정교랑을 뭐라고 다그치든, 진안 군왕은 아무것도 들리지 않는 사람처럼 가만히 있기만 했다.
성문 안쪽에서 정 낭자라는 세 글자를 들은 내시들이 흠칫 놀랐다.
“정 낭자?”
내시 한 명이 크게 기뻐하면서 성문 앞으로 바짝 다가와서 소리쳤다.
“밖에 계신 분이 진안 군왕비십니까?”
“그렇네.”
정교랑이 곧바로 대답했다.
“성문을 열어라! 진안 군왕비를 궁으로 들이라는 태후마마의 교지이니라!”
내시가 손에 쥔 교지를 높이 펼쳐 들었다. 내시가 정말로 교지를 펼쳐 들자, 위병들은 더는 지체하지 않고 일사불란하게 성문을 열었다.
“잠깐.”
진호가 말했다.
“진호, 감히 태후마마의 명을 막는 것인가!”
참다못한 내시가 고함을 질렀다.
“당치 않습니다. 하온데, 태후마마의 교지에는 진안 군왕비만 궁으로 들이라고 적혀 있는지요?”
진호의 물음에 내시들이 고개를 끄덕였다. 진호가 내시들을 따라 고개를 끄덕이고는 병사들을 향해 손짓했다.
병사들이 성문 앞에 일렬로 서서 활시위를 당겼다.
“지금 뭐 하는 짓들인가!”
내시가 미간을 찌푸렸다.
“밖에는 진안 군왕비만 있는 게 아니라, 진안 군왕 또한 함께 있습니다. 신이 생각하기에, 태후마마께서는 지금 같은 시기에 진안 군왕까지 궁에 난입하는 것을 그리 반기지 않을 듯싶은데요?”
진호가 두 내시를 쳐다보며 ‘지금 같은 시기’와 ‘난입’이라는 단어에 힘을 실어 말했다.
두 내시가 흠칫 놀랐다.
새벽에 황궁 문이 열리고, 고능준과 진소를 갑자기 궁에 들였다는 것만으로도, 황궁에 무슨 일이 생겼다는 것을 눈치챈 사람들이 있을 거야. 그런데 지금 종친까지 황궁에 난입한다면, 이 일은 걷잡을 수 없어.
두 내시가 더는 반박하지 않고, 침묵으로 진호의 말에 동의했다.
“성문이 열렸습니다!”
고 선생이 소리쳤다.
뒤에 있던 마차와 사람들이 서둘러 성문 앞으로 다가갔다. 그런데 성문 안쪽에서 병사들이 우르르 몰려나오더니, 대열을 맞추고 공격 태세를 갖췄다. 병사들이 진안 군왕을 향해 활시위를 당기는 모습이 횃불에 비쳤다.
두 내시가 병사들의 뒤로 다가왔다. 그러고는 성문 앞에 있는 여인이 정말로 정교랑임을 알아보고는 감격에 찬 표정으로 교지를 높이 들며 말했다.
“진안 군왕비, 태후마마께서 입궁하라는 교지를 내리셨습니다.”
내시의 말이 끝나기 무섭게, 정교랑이 말을 이끌고 앞으로 달려가려 했다.
“교랑!”
주복이 외치면서 정교랑의 앞을 막았다.
“지금 같은 때에, 안으로 들어가면 어떡해!”
정교랑이 주복을 쳐다보았다.
“괜찮아요.”
주복이 어두운 표정으로 정교랑을 바라보며 더는 아무 말도 하지 못했다.
“궁에 도대체 무슨 일이 일어난 겁니까?”
고 선생이 말을 몰며 앞으로 더 나아가려고 하자, 진호가 손짓했다.
“쏴라.”
명령과 동시에 매섭게 날아간 화살들이 고 선생의 앞쪽에 박히며 바닥에 선을 그려냈다. 놀란 말들이 앞발을 높이 들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