Kyoranguikyung RAW novel - Chapter 703
교랑의경 703화
같은 시각, 경성 밖의 위수(衛戍) 금군 병영 안.
누군가가 헉 소리를 냈다.
“도우후(都虞候: 무관 관직명)! 불꽃놀이가 또 보였습니다!”
군영 앞, 검은 두봉을 걸친 채 회랑 아래 서 있던 한 사내가 수하가 가리키는 곳을 따라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그의 주위에 서 있던 병사 일고여덟 명도 불꽃놀이가 펼쳐진 방향을 내다보았다.
“저희가 기다리던 그 불꽃놀이가 맞습니까?”
“벌써 세 번째입니다. 오늘 밤 경성에서 불꽃놀이를 보고 있는 사람들은 몇 명이나 될까요?”
“어떻게 저런 방법을 생각해 냈는지.”
“하늘 높이 쏘아 올리는 폭죽은 신호를 보내기에 더없이 좋은 방법이지.”
사람들이 수군대기 시작하면서, 화제가 점점 딴 곳으로 흘러갔다.
“조용!”
검은 두봉을 걸친 사내가 호통쳤다. 모두가 일제히 입을 다물자, 불꽃도 서서히 사라졌다. 밤하늘은 다시 고요해지고 동쪽 하늘에서는 푸른빛이 어렴풋하게 드리워지기 시작했다.
사내가 호통을 친 마당 안에는 숨 막히는 정적이 흘렀다.
“대인, 혹시, 그 신호입니까?”
누군가가 머뭇거리면서 물었다. 도우후가 어두운 표정으로 고개를 끄덕였다.
저건, 내가 그때 보았던 불꽃놀이가 맞아.
도우후는 일전에도 그런 불꽃놀이를 본 적이 있었다. 정찰과 탐색이 주된 업무인 척후로 오랜 세월을 지낸 도우후에게는 한 번 본 것을 절대로 잊지 않는 능력이 있었다.
도우후가 고개를 끄덕이자, 마당 안에 있던 사람들의 표정이 엄숙해졌다.
“대인, 경성에 정말 무슨 일이 난 걸까요?”
한 사람이 목소리를 낮게 깔고 조심스럽게 물었다.
도우후가 다시 고개를 들고 하늘을 올려다보았다. 종승포 장군이 서북으로 떠나기 직전의 장면이 눈앞에 떠올랐다.
“자네 말은, 경성에 무슨 일이 일어난다는 건가?”
주복은 함께 서북으로 돌아가자는 종 장군의 제안을 거절했다. 그는 경성에 큰일이 일어날 것이고, 그때가 되면 누이의 신변에 위협이 있을 테니 자신은 누이를 지키기 위해 경성에 남아 있어야 한다고 말했다.
종 장군은 젊은 나이이지만, 과감한 행동력과 특출난 결단력으로 서북의 경략사가 된 사람이었다. 그는 어릴 적 가족들이 몰살당하는 상황에서 유일하게 살아남은 과거가 있는 사람인지라, 눈치가 빠르고 영민하며 용맹하기도 했다. 처음 주복이 경성에 남겠다는 이유를 들었을 때, 도우후는 그가 죽기를 두려워하는 나약한 사내라며 비웃었지만, 종 장군은 단번에 요점을 짚어 주복에게 되물었다.
“바보 군주에 힘없는 노파, 권력이 막강한 외척과 보정 대신들이 조정을 쥐고 있는 상황에서 난세가 되지 않는 나라가 몇이나 있었습니까? 사실 다들 속으로 그리 생각하면서도, 자기와는 무관한 일이라고 여겨 안일하게 보는 것일 뿐입니다.
하지만 저는 다릅니다. 장군께서도 아시다시피, 제 누이는 진안 군왕과 혼인했습니다. 만에 하나 조정에 무슨 일이 생긴다면, 다른 사람은 몰라도 경성에 있는 종친인 진안 군왕은 필시 벼랑 끝으로 내몰릴 겁니다. 그러니 저는 누이가 경성에 있는 한, 경성에 남아 누이를 지켜야만 합니다. 누이가 안전하게 경성을 떠나면, 소인은 그때 장군의 뒤를 따라 서북으로 가겠습니다.”
주복이 말했다.
“두 사람의 정이 참으로 애틋하구나.”
종 장군이 크게 웃음을 터트렸다.
“멀쩡한 사내대장부가 공을 세우고 포부를 펼치기도 전에 사랑 타령 먼저 하고 있다니.”
종 장군이 주복을 비웃었지만, 주복은 창피하거나 화가 난 기색을 보이지 않았다.
“대인, 미안하다는 마음이 어떤 것인지 아십니까?”
주복이 밑도 끝도 없이 불쑥 물었다.
“미안하다는 것은, 어떤 이에게 한 행동이 떠오를 때마다 후회스럽고 괴로운 것입니다. 저는 그런 일을 겪었고, 그 후회스럽고 괴로운 감정을 뼈저리게 느꼈습니다. 그러니 두 번 다시는 그런 짓을 반복하지 않을 겁니다.”
주복이 스스로 대답했다.
아직도 정신을 못 차리고 사랑 타령이나 하고 앉아 있군. 좋아하던 사촌 누이가 다른 사람의 아내가 된 게 뼈저리게 괴롭다는 말이겠지.
도우후는 비웃는 표정을 드러냈지만, 종 장군은 웃지 않았다.
“자네의 누이가 진안 군왕에게 시집간 그 정 낭자인가?”
종 장군이 묻자, 주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집 앞에서 사람들에게 글씨 연습하는 것을 보여 준 그 정 낭자?”
“무원산 술을 빚어 무원산 형제들을 유명하게 만든 그 정 낭자?”
“불꽃놀이 하나로 이무에게 돌포탄을 만들 영감을 준 그 정 낭자?”
“폐하께 신비궁을 바쳤던 범 군감의 누이인 그 정 낭자?”
종 장군이 묻는 말마다, 주복이 고개를 끄덕였다. 도우후는 놀라움에 입이 떡 벌어졌다.
종 장군께서 주복의 사촌 누이를 이렇게 잘 알고 계시다니. 이다음엔 또 뭘 물으실까?
종 장군은 더는 묻지 않고, 호탕하게 웃음을 터트렸다.
“좋다. 경성에 남아라.”
그렇게 주복은 종 장군의 허락을 받아냈다. 게다가 종 장군은 주복에게 경성 방위 부대를 움직일 수 있는 병부(兵符)와 도우후를 주복에게 남겨 주었다.
“방청(龐靑), 주복이 자네를 필요로 할 때 꼭 좀 도와주게나.”
종 장군이 웃으면서 도우후의 어깨를 세게 쳤다. 그 힘이 어찌나 셌는지, 도우후는 어깨가 아파서 오만상을 찌푸렸다.
회상하던 도우후가 저도 모르게 어깨를 잡으면서 이를 악물었다.
지금이 바로 종 장군께서 말씀하신, 내가 필요한 때로구나.
경성에 무슨 일이 난 게 분명해. 그렇지 않고서야, 이런 야밤에 불꽃놀이가 연달아 세 번이나 벌어질 리 없어.
경성에 무슨 일이 일어난 것이냐는 수하의 질문에 도우후가 말 대신 고개를 천천히 끄덕였다.
마당 안의 사람들이 다시 조용해졌다.
도우후와 함께 있는 이들은 모두 오랜 시간 병사들을 이끌었던 노장이었다. 수년간 경성을 방위한 그들은, 경성에 무슨 일이 났다는 말이 무슨 의미인지 누구보다도 잘 이해했다.
“그럼, 대인, 하실 겁니까, 하지 않으실 겁니까?”
누군가가 이 질문을 꺼내어 정적을 깨트렸다.
이 일을 하느냐, 마느냐.
여기 있는 사람들은 다 처자식이 있고, 관직에 있는 몸이었다. 성공하면 공신이 되지만 실패하면 역적이 되는 이러한 일은 결코 애들 장난으로 치부할 수 없었다. 만에 하나 일이 틀어질 경우, 목숨을 잃는 사람은 자신 한 사람만이 아니었다. 가족들, 친지들, 주위 사람들까지 한 번에 역적으로 몰릴 게 자명했다.
이 일을 해, 말아?
도우후는 종 장군의 힘에 밀려 옆으로 쓰러질 뻔했다.
“대인.”
아픔에 오만상을 찌푸리던 도우후가 종 장군에게 물었다.
“소생은 장군을 따라 여기까지 온 사람입니다. 그러니 장군께서 시키시는 일이라면 당연히 주저하지 않고 합니다. 그러나 소생에게 남을 도우라고 하신다면, 소생이 그 사람을 도와야만 하는 이유가 있었으면 합니다.”
종 장군께서 언제부터 진안 군왕의 사람이 된 거지? 설마 진안 군왕이 정말로 뭔가를 도모하고 있는 건가?
진안 군왕을 탄핵하자는 유림과 언관들의 말이 나온 것도, 정말 뭔가 있어서인가?
“진안 군왕?”
종 장군이 웃음을 터트렸다.
“군영에 그의 사람이 있다는 건 나도 잘 알고 있어. 하지만 그건 진안 군왕의 일이지, 나와는 무관한 일일세. 나 종승포는 그 누구의 사람도 아니야. 단지 이 나라를 위해 목숨을 바친 사람 중 하나일 뿐이지. 나는 나라에 목숨을 바쳤으니, 당연히 나의 본분 또한 백성들의 안위를 위해 살아가는 것이야.”
종 장군이 허리춤에 손을 올리고 비장한 표정으로 말했다.
“우리 종씨 가문은 대대손손 전장의 장수로 살아왔네. 살아도 전장에서 살고, 죽어도 전장에서 죽었지. 그런 우리의 목표는 오직 단 하나뿐이었어. 나라를 위해, 나라를 지키는 것. 말이 쉽지 행하기는 어려운 일이지. 우리처럼 최전방에서 병사들을 이끌고 나라를 지키는 자들만이 그 어려움을 잘 알고 있어.
방청, 말편자 하나로 우리 서북의 군사력이 얼마나 막강해졌는지는 자네가 누구보다 더 잘 알 거라 믿네. 신비궁 덕분에 우리 병사 한 명이 열 사람의 몫을 해낼 수 있게 만들었다는 것도 아주 잘 알 것이야. 그리고 돌포탄. 비록 오랜 시간을 기다리고 나서야 발석거 열 대를 서북으로 보냈고, 아직 실전에 쓰이지 않았기에 그 위력이 얼마나 대단한지는 모르지만, 우리가 군감에서 봤던 돌포탄 시연을 떠올려보게. 돌포탄 한 대로 얼마나 살벌한 광경을 만들어 낼 수 있었는지, 자네도 두 눈으로 똑똑히 보았잖나.
방청,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절대 그 사람을 잃어서는 안 되네.
그러니 그 사람은, 우리가 꼭 지켜내야만 해.”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다.
그래. 나라를 지키기 위해서라면, 못할 일이 뭐 있겠어?
도우후는 심호흡을 깊게 한 번 한 뒤, 마당에 서 있는 장수들을 둘러보았다.
“경성에 일이 생겼으니, 당연히 가 봐야지.”
도우후가 목소리를 낮게 깔고 비장하게 말했다.
결국 하기로 마음먹었군.
다들 도우후의 마음을 이해하면서도 주저하게 되는 건 어쩔 수 없었다.
지금 선 줄이 잘못되었다가는 참혹한 결말을 맞이하게 될 텐데.
“우리가 누구인가?”
도우후가 마당 안의 사람들을 차례로 쳐다보았다. 마당에 서 있던 사람들이 멈칫했다.
“위수군입니다.”
누군가가 대답했다.
“위수군은 무엇을 위해 존재하는가? 바로 경성을 지키기 위해서지. 경성에 일이 생겼으니, 우리는 당연히 가야 한다. 우리는, 우리가 존재하는 이유와 본분에 충실하기 위해서 가는 것이야.”
우리는 위수군의 사명과 본분을 지키기 위해서 가는 것이지, 어떤 개인의 사사로운 일을 해결하려고 가는 게 아니다. 본분에 충실한 게, 질책받을 일은 아니잖나?
“명을 따르겠습니다.”
마당에 있던 사람들이 일제히 고개를 숙이고 대답했다.
“늑대 새끼를 잘못 키웠구나.”
진호가 냉소를 지으면서 시선을 거두었다.
“불꽃놀이를 신호로 써서 성문 안팎으로 지원군을 요청하다니.”
“공자님, 그 자식들이 도망쳤습니다!”
수하가 외쳤다. 진호가 자리에서 벌떡 일어나 성문을 쳐다보았다.
성문을 막는 나무 지지대가 막 세워지자마자, 조금 전까지만 해도 위병들에게 붙잡혀 있던 감문관 두 명이 발버둥을 치면서 위병들을 밀쳐냈다. 나무 지지대를 설치하느라 부산스러워진 틈을 타, 감문관 중 한 명이 성문을 향해 돌진했다.
“죽어라.”
진호가 활시위를 당겨서 감문관을 향해 화살을 쏘았다.
“문을 열어라!”
감문관이 있는 힘껏 소리치면서 성문 빗장에 손을 걸쳤다. 그때, 진호가 쏘아낸 화살이 날아오더니 그가 옆으로 픽 쓰러졌다.
바로 그때, 거대한 무언가가 성문에 부딪히는 소리가 들려왔다. 감문관의 손에 걸쳐져 있던 빗장이 거대한 진동 때문에 더욱 옆으로 밀려났다.
“제기랄! 저놈들이 사전에 손을 쓴 탓에 성문이 굳게 닫혀 있지 않았어!”
진호가 소리쳤다.
경성의 성문은 다른 곳들보다 방위 업무의 강도가 낮았다. 문을 드나드는 사람들을 엄격하게 검문하지도 않았을뿐더러, 어쩔 땐 문을 잠글 때도 대충 닫는 시늉만 할 때도 있었다. 경성은 일 년 내내 사람이 붐비는 곳이기도 하고, 천자의 황궁이 있는 곳이기도 하며, 경성 안팎으로 금군 병사 이십만 대군과 순성갑기, 관아 관졸 등 만 명에 가까운 이들이 경성을 지키고 있기 때문이었다.
진호는 조금 전 자신이 빠르고 쉽게 성문을 통과해 안으로 들어올 때를 생각했다. 그건 자신의 사람이 준비해 둔 덕이었다. 자신에게 가능한 일이라면, 다른 사람 또한 충분히 가능한 일이었다.
“공자님, 누군가가 성문을 향해 오고 있습니다. 수가 적지 않습니다.”
뒤쪽 큰길가를 돌아보던 수하가 성문을 향해 달려오는 사람들을 손으로 가리키면서 말했다. 동시에, 멀리서 북과 징을 울리는 소리가 들려오기 시작했다.
“수가 적지 않다고? 부윤 대인께서 가지고 계신 병력도 만만치 않다. 누가 누굴 겁낼지 어디 한번 해 보자!”
진호가 고개를 홱 돌리더니, 위병들을 데리고 성문 아래로 내려갔다. 이때, 문이 부서질 듯한 쾅 소리가 들리면서 성문이 열렸다.
고 선생의 예상대로, 주복과 함께 있던 병사들은 성문이 열리는 순간 잽싸게 말을 타고 다른 쪽으로 도망쳤다.
도망갈 테면 도망가라지. 우리 사람인 줄 알았다가 나중에 등에 칼이 꽂히는 것보다는 나아.